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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이어 온 미국 역사 | |||||||||||||||||||||||||||||||||||||||||||||||||||||||||||||||||||||||||||||||||||||||||||||||||||||||||||||||||||||||||||||||||||||||||||||||||||||||||||||||||||||||||||||||||||||||||||||||||||||||||||||||||||||||
기사입력: 2015/10/15 [16: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아메리카 영토 확장과 전쟁
18세기 초중반 북아메리카는 캐나다 동부 퀘벡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 놓여있었다. 식민지는 영국에 조세를 납부했으나 영국의회에 대표자를 파견하지 못했다. 당시 북미는 이주민의 대량 유입과 정착민들의 증가로 전반적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60, 1770년대 북미 식민지와 영국 간에 본격적인 대립이 일어난다. 그 무렵 영국은 본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과도한 세금을 거두려했고, 이에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본국의 정책에 식민지 미국 시민들은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스턴 차 사건이다.
1773년 4월 영국의회가 차조례를 통과시켜 대중 음료인 차에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식민지인들이 강력히 저항한다. 미국의 식민지 반군들은 보스턴 항구에서 어둠을 틈 타 인디언으로 위장하여 영국 동인도회사 소유의 값비싼 차가 실려 있던 배를 파괴했다.
그 보복으로 영국의회는 손상된 차를 배상할 때까지 보스턴 시의 해상무역을 봉쇄하는 보스턴 항구 폐쇄법(Boston Port Bill)을 포함하여 식민지들 사이에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으로 알려진 일련의 징계조치를 통과시켰다. 이 사건은 미국독립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미국독립전쟁(1775-1783)이 일어나자 미 식민 반군은 1775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회의에서 조지 워싱턴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대륙군을 창설했다. 뒤이어 1776년 7월 4일, 대륙회의는 토마스 제프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1777년 연합헌장을 채택하여 다소 느슨한 형태의 연합정부를 설립해 1789년까지 존속했다.
이후 미국은 강력한 국가의 창설을 원하는 자들이 주축이 되어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조직했으며 격론 끝에 1789년 미합중국 헌법이 비준되었다. 그 후 공화국의 연방 상하 의원이 출범하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내정이 안정되자 연방정부는 본격적인 영토 확장을 위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첫걸음은 1780년 이후 추진한 프런티어 라인이었다. 미국은 이 라인을 확장하여 미동부의 장벽이었던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걸림돌로 간주된 원주민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원주민들이 대량 학살되는데 서부로 영토가 확장되는 만큼 원주민들의 수는 감소되었다. 일부 생존한 원주민들은 소위 인디언보호구역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곳에 가두어 버렸다. 미국인들은 원주민들의 투쟁사를 인디언 전쟁(INDIAN WARS)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원주민 학살사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 전쟁은 1622-1794 사이에 23건, 1811-1854에 40건, 1855-1868에 37건, 1868-1898에 46건 등 276년 동안에 146 차례에 걸쳐 미국과 원주민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말이 무력사용이지 이건 전쟁도 아니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침략과 학살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전쟁 중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경우는 1812년 영국과 전쟁, 1846년 멕시코전쟁,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등 5개의 전쟁뿐이다. 미국이 침략한 나라의 형편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에 비하여 인구나 국력이 매우 약하다. 둘째, 미국에 반격을 가할 무기나 수단이 전혀 없다. 셋째, 미국을 침략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한편, 미국이 침략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스페인전쟁, 월남전 같이 전쟁 원인을 조작하여 침략한다. ② 매우 드물지만 전쟁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여 도전하게 한다. ③ 침략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예고 없이 무조건 쳐들어간다.
①의 방법은 매우 자주 쓰인 방법으로 조작공격 작전 또는 위장공격 작전이라 부른다.
이 작전은 원래 선박에 다는 국기를 적국의 기로 바꾸어 달고 공격을 한데서 유래한다. 미국이 미-스페인 전쟁을 유발하기 위하여 1898년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 군함 메인호(USS Maine)사건을 조작한 일이나, 1964년 8월 2일 미국이 월남전을 유발하기 위하여 조작한 미 군함 매독스(USS Maddox)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잠깐, 13개주가 독립을 선언할 당시의 미국 영토를 살펴보기로 하자. 1776년 독립을 선포할 당시 미국은 필라델피아, 조지아 등 13개의 독립국이 연대한 연합 국가였다. 면적은 940.963㎢이고 인구는 약 250만 명 정도였으며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된 1783년에도 400만을 못 넘겼다. 초기 아메리카합중국의 면적은 현재 미국의 넓이 9,826,675㎢의 10%정도인 셈인데, 남북한의 4.3배나 되는 크기다.
독일·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스위스·벨기에·네덜란드의 합계 면적인 941.694㎢와 유사하다. 그러나 신생국 미국은 이 정도의 넓이로 만족하지 않았다. 미국이 영토 확장 야심을 본격적으로 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프슨부터였다. 1803년 제프슨은 1800년 프랑스가 스페인으로부터 할양받았던 미 대륙 중앙부 210만㎢의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사들여 단숨에 국토를 2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그 후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재차 점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멕시코와의 전쟁이다. 미국-멕시코전쟁(1846.4-1848.2)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미국과 멕시코가 영토분쟁을 한 전쟁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멕시코는 지금의 뉴멕시코 주, 유타 주, 네바다 주, 애리조나 주, 캘리포니아 주, 텍사스 주, 서부 콜로라도 주의 거의 모든 영토를 미국에 양도했으며, 미국은 이 대가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인 1,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리고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만㎢의 영토를 넓혔다. 많은 이들이 이 전쟁을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 부른다.
비폭력 시민 불복종을 주장하여 간디와 톨스토이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데이비드 소로(H. D. Thoreau 1817-1862)는 이 전쟁에 반대하여 세금을 내지 않고 저항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아직도 이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전쟁
미국은 자국의 영토 확장이 끝난 후로도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은 침략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으로부터 하와이 침공을 당했지만 하와이는 그 당시 미국의 식민지였을 뿐, 공식적인 영토가 아니었다.
그러면 건국 후 지금까지 미국은 얼마나 전쟁에 관여했을까? 1993년 10월 7일 워싱턴 시 소재 미의회도서관 의회연구원 외교국방분과 미국외교정책 전문가 콜리어(Ellen C. Collier)는 “미국의 전쟁, 1798년부터 1993년까지 미합중국 군대에 의한 해외 무력사용 사례들”이라는 목록을 작성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195년 동안 234건의 전쟁에 개입했다. 물론 1993년 이후에도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의 데이터는 34건이다. 14년 동안 34건인데 1798년부터 셈을 하면 210년 동안 268건의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1년에 1건 이상의 전쟁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콜리어가 작성한 문서의 출발 시기인 1798년 이전에도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문서에 누락된 전쟁도 상당히 많다. 미국은 전쟁으로 시작하여 전쟁과 함께하는 국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아래는 클리어 문서 중 일부다.
○ 트리폴리 전쟁 (1801∼1805), 모로코와 전쟁 (1801∼1805), ○ 스페인과 전쟁 (1803∼1806), ○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기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1812∼1815), ○ 스페인령 서부 플로리다 강탈 (1812∼1814), ○ 말카스제도 누크 히버섬 상륙, 침공 (1813), 알제리 전쟁 (1816∼1818) ○ 옐로우스톤 원정 (1819∼1829), ○ 쿠바, 푸에토리코, 산토도밍고, 멕시코의 유가탄 반도 침공 (1819∼1825), ○ 하와이 제도 침공 (1826), 그리스 미코노스섬, 앤드로스섬 침공 (1827), ○ 포클랜드 군도 침공 (1831∼1832), 수마트라섬 쿠알라토르 침공 (1832)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33), 사모아 제도 침공 (1835), ○ 수마트라섬 침공 (1838), 피지 군도 침공 (1840), ○ 길버트 군도의 드래몬드 제도 침공 (1841), 리베리아 침공 (1843) ○ 멕시코와 전쟁(1847∼1848), 아이티의 사마나만 점령(1847), ○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52∼1853), 니카라과 침공 (1853∼1854), ○ 중국 상해, 광동 침공 (1854∼1856), 피지 군도 침공 (1858)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55∼1858), 뉴 그레네이더 하나마 침공 (1858) ○ 니카라과 침공 (1857), 유이하 제도 침공 (1858), 파라과이 침공 (1858∼1859) ○ 중국 상해 침공 (1857), 판 데트카 해협의 산판섬 침공 (1859), ○ 멕시코 침공 (1859),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 키센보 침공 (1860), ○ 일본 시모노세키 침공 (1863∼1864),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65), ○ 중국 침공 (1863∼1864), 멕시코 침략(1866), 대만 침공 (1867), ○ 조선 침공 (1867∼1872), 우르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68), ○ 일본 침공 (1868), 콜롬비아 침공 (1868), 멕시코 침공 (1870∼1873), ○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70), 하와이 군도 호눌룰루 침공 (1874), ○ 멕시코 침공 (1876), 이집트 침공 (1882), 파나마 침공 (1885), ○ 아이티 침공 (1888), 조선 상륙(1888),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륙 (1890), 아이티 침공 (1891), ○ 칠레 침공 (1891), 호눌룰루 상륙, 하와이 제도 점령 (1893) ○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침공 (1894), 니카라과 상륙 (1894), ○ 조선과 중국 상륙 (1894∼1896), 콜롬비아 상륙 (1895), ○ 니카라과 상륙 (1896), 하와이 제도 병탄 (1898), 니카라과 상륙 (1898), ○ 미서전쟁, 쿠바, 필리핀, 괌, 푸에토리코 점령 (1898∼1899) ○ 니카라과 상륙 (1899), 피지 제도 군사원정 (1899), 사모아 침공 ○ 추추라이섬 점령 (1899), 필리핀과 전쟁 (1899∼1902), ○ 중국 의화단 진압 군사원정 (1900∼1901), ○ 파나마, 콜롬비아 상륙 (1900∼1902), ○ 사마르섬, 필리핀 레에테섬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군사작전 (1903∼1904) ○ 파나마 운하 영구점령 (1903), 산토도밍고 침공 (1903∼1904), ○ 파나마 상륙 (1904), 조선 상륙 (1904), 쿠바 점령 (1906∼1909), ○ 니카라과 침공 (1910), 온두라스 침공 (1910-1911) ○ 중국 상륙, 베이징 침공 (1911∼1912), 파나마 침공 (1912), 쿠바 상륙 (1912) ○ 터키 상륙 (1912), 니카라과 침공 (1912∼1915), 멕시코 상륙 (1913), ○ 아이티 상륙 (1914), 멕시코 침공 (1915∼1916), ○ 산토도밍고 점령 (1916∼1925), 제1차 세계대전 참전 (1917∼1918), ○ 파나마 치리키 점령 (1918∼1920), 신생국 소련 침공 (1918∼1920), ○ 온두라스 상륙 (1919), 코스타리카 침공 (1919), 과테말라 침공 (1920), ○ 파나마, 코스타리카 침공 (1921), 중국에 무력개입 (1922∼1941), ○ 온두라스 침공 (1924∼1925), 파나마 침공 (1925), ○ 니카라과 침공 (1926∼1933), 온두라스 침공 (1931), 쿠바 연안 정찰 (1933), ○ 중국 양자강 연안 점령 (1937), 중국 광동, 태평양의 엔더베리 점령 (1938), ○ 제2차 세계대전 참전(1941∼1945) ○ 그린랜드 항구 점령 (1941), 아이슬랜드 점령(1941), ○ 코리아 전쟁 (1950∼1953), 이란의 모사디그 정권 전복 (1953), ○ 과테말라 군사개입 (1954), 중동 위기 선동 (1958), ○ 케모이섬, 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958), ○ 유-2 첩보기 소련 영공 정찰 (1960),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1960), 피그만 침공 (1961), 베를린 위기 선동(1961), 통킹만 무력도발 (1964), ○ 베트남 전쟁 (1964∼1972), 도미니카 공화국 내정개입 (1965), ○ 엔크루마 정권 전복 (1866), 라오스, 캄보디아 무력개입 (1970), ○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 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974∼1975), ○ 케냐의 무왕기 카리우기 암살 (1975), ○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권 전복 (1975), 콩고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1977), ○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 카다피 암살계획 (1981), 파나마의 토리호스 암살 (1981), ○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 잠비아 대통령 암살계획 (1981) ○ 폴란드 내정간섭(1980∼1984), 아프가니스탄 군사개입 (1980∼1984), ○ 엘살바도르 내전 군사개입 (1981∼1983), ○ 니카라과에서 군사도발 (1981∼1983), ○ 시드라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군사도발 (1982), ○ 그레네이더 침공 (1983), 걸프전 (1990-1991), ○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1994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침략기도 무산 ○ 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이라크 공격 (1998), 유고연방 침공 (1999)
오늘도 미국은 지구촌 어느 곳에선가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의 국가 중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은 나라는 과연 몇 개 국 정도 될까? 아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
전쟁이 발생하면 당연히 인명 피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개입한 전쟁에서 미군이 사망한 수자는 어느 정도 될까? 먼저 미국의 피해를 살펴보자. 아래 표는 미 육군 군사 역사 연구소(U.S.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에서 작성한 것이다.
주요 전쟁 미군 사망자 수
1775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이 개입한 주요전투에서 미군의 사망자 수는 약 625,000명이다. 수없이 많은 전쟁 중 미군이 1만 명 이상 사망한 경우는 내전이라 할 수 있는 독립전쟁, 미영전쟁, 남북전쟁을 제외하면 멕시코와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뿐이다.
그렇다면 상대국의 사망자 수는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상기 전쟁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미국인 희생자 수는 몇 명 정도가 될까? 아쉽게도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 그러나 몇 가지 다른 데이터를 활용하면 추정치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1천백만여 명, 추축국은 5백7십만여 명이 사망했다. 그 중 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나라는 소련, 중국, 독일, 일본 등이다. 그러나 미국의 사상자 수는 사십만 명이 조금 넘을 뿐이다. 미 본토에선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미 본토에 까지 전쟁이 확대되었다면 적어도 4-5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희생자 수
상기표의 제2차 세계대전데이터는 민간인 사망자를 뺀 숫자다. 제2차 세계대전은 중립국이 별로 없고 더욱이 유태인 학살 사건을 포함해야 되기 때문에, 민간인 희생자는 통계를 낼 수 없다고 한다. 만약 예상 민간인 희생자 수를 더하면 미국인 희생자 수는 어느 정도일까? 게다가 최근 들어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례가 대거 발굴됨으로써 민간인 희생자 수는 짐작도 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필리핀 전쟁, 한국전쟁, 월남 전쟁 등에서 학살된 민간인 수 역시 추측만 무성했었지만, 최근 들어 그 실체가 조금씩 들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이 참전했던 모든 전쟁이 미 본토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미군의 희생자 수는 적어도 천만 명을 웃돈다고 보아야 될 터이다. 여기에 민간인 희생자 예상치를 덧붙이면 현재 미국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결국 결론은 자명하다. 미국이 수많은 전쟁을 저지르고 현재도 미래의 전쟁을 계획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그들의 본토와 전쟁은 무관하다는 확신 때문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일과성으로 그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3942§ion=sc7§ion2= |
첫댓글 미국이야말로 이 시대의 악의 축이네요.
악의축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