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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그 후, 붉은 눈의 아이에게 마을 사람들은 아파하는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지요. 하지만 그들의 병은 낫지 않았어요. 그리곤 '빈병'이 되곤 하였어요. 그들의 눈에는 중요한 게 빠져있었으니까요.
이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붉은 눈의 아이가 '영혼을 먹는 마녀'라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그 붉은 눈이 영혼을 먹는다는 소문도 있었지요.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붉은 눈의 아이를 귀신이라도 보는 양 상대하지 않으려 하고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주변에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지기도 하였지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것으로 분풀이 하는 듯 하였어요. 그렇게 아무도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자, 그 아이는 모습이 초췌해지고 이전처럼 노래도 부르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멍청한 인형처럼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죠. 그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데려갈 사람을,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사람을 기다렸어요. 끈이 풀려버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함박눈이 내리던 날.
저 멀리 어떤 할아버지가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붉은 눈의 아이는 눈 속의 토끼처럼 그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죠.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입에서 하얀 입김과 함께 말이 흘러나왔어요. "나와 함께 가주지 않겠니?" 소녀는 말없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소녀는 자신이 있던 자리를 뒤 돌아 보지 않은 채, 그저 조금 앞에 걷는 할아버지를 따라갔어요. 눈이 심하게 내리고 있어 바로 앞도 보일 듯 말 듯 하였지만, 조금도 뒤쳐지지 않았어요. 낮은 언덕 위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나무로 만든 오두막집이라 초라한 듯 보였지만, 붉은 눈의 아이는 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도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두꺼운 나무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밖과는 달리 깨끗하고 튼튼해 보였어요.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우선 씻으라고 하였지요. 불빛 안에서 소녀는 더욱더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지요. 소녀는 말이 없었어요. 마치 말을 잊은 것처럼.
할아버지가 주는 흰 옷을 입고는 다시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어요. 물기가 묻은 머리칼을 털지도 않고는 서있었어요. 그리고는 이상한 말을 했어요. "할아버지는 어떤 노래를 듣고 싶으세요?" 얇은 미성의 목소리였지만, 노래를 부를 때와는 또 다른 목소리였어요. 이 말은 붉은 눈의 아이가 이 마을에 와서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어요. 여태까지는 말도 않고 있었지만, 이 할아버지에게는 달랐어요. 그는 머지않아 이 곳을 떠날 것이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벽난로의 붉은 빛이 무릎에 닿을 만큼 가까운 의자에 앉았어요. 그리고는 난로를 보며 말했어요. "…미래…. 미래를 알려주는 노래를 듣고 싶단다." |
▶+04 |
"내 점괘가 틀린 건가."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이쯤에서 죽지 않으면, 에틱스로의 전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이 일은 점점 극으로 치닫는 것일 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게 된 거지 나는?' 애초에 과거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의 단절 구간이 발견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얼마정도의 기간 동안의 기억이 완전히 삭제되어있었다. 과거의 내가 억지로 걸어둔 제약일지도 모르지만, 미래의 나로서는 거치적거리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검은 방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덜컹거림이 잦은 게 도시를 벗어난 듯싶다. 검고 두꺼운 천을 다시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며 안쪽의 상황에 주의를 집중했다. 완벽하게 밖과 차단된 밀폐공간을 연상시키는 이 마차는, 부의 제국 데나리를 벗어나 스페이드 제국으로 향하고 있는 듯 하였다. '초아'라고 이름을 밝힌 앞의 여자는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는 무료함에 창밖을 내다보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려는 듯 했다. "글쎄요. 마스터의 점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아, 일일이 내 말에 대답할 필요는 없어." 난 귀찮은 일을 굳이 하겠다는 하인을 말리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에게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의 정보를 얻어내긴 무리일 테니. '초아'또한 내가 만들어낸 인형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들었던 경로와 설계, 그 어떠한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선 에틱스를 만들 때의 기억이 끝일 뿐. 그 이전의 인형이라고 해봤자. 자아가 없는 일종의 밀랍인형에 불과했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초아'라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어쩌면 '에틱스'를 상회할 수도 있는 그런 인형을 만들던 기억이 나지 않을 리 없다. 따라서 그녀는 요번 일을 통해 만들어진 인형인 것이다. 과거의 나는 어째서 이 아이를 만들었던 것일까. 그녀에게서 구해지고 나서, 핵심이 되는 것들을 물어봤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입력되지 않은 듯했다. 단지 '데나리의 해변 마을에 있는 마스터를 찾아서 스페이드로 데려와라.' 라는 명령을 받고 그에 따르는 것뿐인 그녀는 지금 나에게 있어선 그저 길잡이에 불과했다. '다이서(Dicer)', 주사위를 다루는 사람. 그게 그녀의 능력이다. 그녀의 주사위 또한 인간의 물건도, 그녀 본연의 물건도 아닌 단지 신의 은총이라는 '죄악'을 엎어 쓴 물건일 뿐이다. 그녀의 주사위의 눈은 각각의 마물을 가둬둔 하나의 구심점이다. 그 점으로부터 어떤 마물이 나올지는 그녀 자신도 모르며, 그저 운에 따라서 순기능을 하기도, 역기능을 하기도 할 따름이다. 주사위의 눈 자체에서 어떠한 규칙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6’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며, ‘1’이라 고해서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닌. 그런 아이러니한 주사위였다. 분명 에틱스를 개발한 당시의 나에겐 그저 보관중인 '신의 기술'이었다. 이것까지 사용했다는 건 역시 이 전의 것인 '그것'도. "초아라고 했지? 이전의 나에 대해서 말해주겠어?" 최후의 희망이라도 걸어보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 할 터.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전의 주인님으로부터 연결이 끊어졌을 때부터 떠오르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연결이 끊어졌다.'라……." 인위적인 단절인건가. "그것보다 이것을……." 그녀가 내민 것은 고급스러운 원목의 케이스로, 나로 하여금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이 가게 할 만한 물건이었다. 그 나무 상자를 내 무릎위에 올려두고, 부드러운 천에 감긴 그것을 살며시 들추어내었다. 한동안 손에 대지 않았던 짧은 접이 식 단도 '타나토프시스(Thanatopsis)'. 그것을 꺼내어 예전 모습 그대로, 손목을 튕겨 날을 꺼내어보았다. 약간 뭉뚝하면서 검 날이 곧지 못한 그 모습은, 내 팔꿈치의 딱 반 크기로 손 안에서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이걸 다시 쓰게 될 줄이야."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저 마차인가." "예, 그렇습죠." 나름대로 진지하게 시작해보려 했지만, 이 녀석이 문제였다. '백작 미스트레스' 백작이 된지 얼마 안 된 소인으로, 갖은 아부를 일삼으며 백작의 자리까지 꿰어 차게 된, 다른 의미로 '대단한 전설'인 사람이었다. 아부 하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데, 아까부터 내 옆에서 '예, 예.'그러면서 마음에 있지도 않은 말을 내뱉는 게 거북할 따름이었다. 난 그의 상관으로, 온갖 부호들이 넘쳐나는 데나리(Denari)에서 드물게 중산층의 공작이다. 공작이 되면서 평민 때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 이름을 지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라, 누군가가 불러도 바로 돌아볼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단지 왕의 말상대가 되어준다는 명목하나로 일개 시종관에서 공작으로 승급한 것인데, 아직 정사에 관해 개념이 부족한 왕으로서는 합당한 대우였겠지만,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작위수여였던 것이다. 당연히 온갖 노력을 들여 공작이 된 신하들은 나를 멸시하는데 한 몸이 되어있었다. 요번의 일은 왕이 직접내린 것이 아니라, 적국 스페이드의 황제가 찾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된 일행이 아국에 있다 길래 잡아오라고 명령한 것일 뿐. 예의 검은 마차가 어느새 내 옆을 지나가려하고, 난 손을 뻗어 그 마차의 바퀴를 가리켰다. "Magnus XVII." 짧은 불꽃이 그 마차의 바퀴를 정확히 건드렸고, 그에 이어서 마차가 균형을 잃으며 뒤집어졌다. -콰당탕탕!!! "역시 대단하십니다. 켈빈 공." 옆에서 아까부터 갖은 미사여구를 붙여 나를 닭살 돋게 한 그를 힐긋 바라보고는, 내가 할일을 마저 하려하였다. "Magnus XI." -스릅 미끄러지는 듯 한 흰색의 물결이 마차를 강타한다. 순식간에 마차는 박살이 나고, 피어오른 먼지를 삭히며 나타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부도, 마차 안에 있어야 할 '그녀'도. "당신 뭐야?" 날카롭게 파고드는 칼날이 내 목 언저리에서 반짝인다. '어느 틈에?!' "난 협박 같은 건 안 좋아해." 눈을 돌려, 자신과 같이 왔던 미스트레스 백작을 바라보았지만, 그 자리에는 단지 단백질과 여러 가지 수분이 함유된 유기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백작의 상징인 펜타클(Pentacle)도 그의 체액에 젖어 붉게 빛을 머금고 있었다. '상대는 마법을 쓰지 않는 자.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Magnus IV." -팡! 내 목으로 부터 섬광이 펼쳐지며, 상대방의 칼을 떨쳐내었다.
"쳇." 너무 몸 가까이에서 마법을 사용한 탓일까. 목 부근에서 아린 통증이 전달된다. 이렇게 되면 나 역시 검을 쓰는 수밖에 없는 건가. 빠르게 검을 뽑으며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가문의 펜타클을 수여받은 자. 이를 상대로 검을 쓴다는 것은 데나리(Denari)제국 전체를 적으로 삼겠다는 말과 같다. 계속 하겠는가?" "넌 나를 모르는 군." 상대의 기괴한 모양의 단도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단검을 상대로 싸운 적이 부족한 나로서는 공격의 루트를 읽기 어렵다.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아직도 상대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 단지 나의 목숨을 앗아갈 부위를 계속 해서 노릴 뿐……, 계속 해서 급소를 노릴 뿐? 그렇다면, 상대방은 내 목숨을 앗아가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인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따위로 달려들 뿐이라면, 금방 죽게 되는 건 뻔 한 일. 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저 급소와 내 몸이 직결 적으로 유리한 부분만을 노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속력도 생각해보면, 단도와 장검의 차이일 뿐. 그다지 신체적 여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대로 라면 이 싸움, 나에게 승산이 있다. 계속되는 접전 사이에 잠시간의 틈이 생겼다. 상대방도 나도 슬슬 지쳐가는 것인가. 난 장검을 똑바로 들었다. 검의 끝이 떨리는 것을 다잡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그리고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반복해서 몸에 익히 검류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가볍게 나르는 듯 한 나의 검은, 상대방의 흉부를 스치며 선명한 혈선을 남겼다. "크큭. 제법 하는걸! 그나저나 살 오른 돼지 마냥 뒹굴 대는 부자들의 나라 데나리에 검을 쓰는 자가 있다니. 놀랍군." "이제 항복할 마음이 생긴 건가." "아니, 더 싸우고 싶어졌어." 상대의 남자는 자신의 흉부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역효과인건가. 생포하라는 명령은 아니었으니, 죽여도 괜찮을까. 아까의 검류를 다시 몸으로 옮긴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육체적으로 익힌 습관으로 검을 내지른다. -스르릉 나의 검면을 타고 내리는 단도의 떨림이 전해진다. 순식간에 검 밑까지 파고든 그 단도는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도 못하는 사이에 나의 손가락을 앗아갔다. "방심하면 안 된다니까." 힘줄이 끊어진 나의 손에서 힘이 풀어지며, 장검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뭐였지? 방금 전의 그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검류를 역행하는 그 모습이 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 뿐이었다. 평생을 바쳐 연마한 검술. 다른 사람들이 놀면서 지낼 때, 열심히 수련한 성과가 이것인가. 그는 히죽대면서 나의 떨어진 공허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검을 든다는 건 장난이 아니라니까." 죽일 것 같은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사뭇 아까와는 다르게 차분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좋은 재미거리였어." 언뜻 보기에는 소년으로 밖에 안 보이는 차가운 남자는 다시 아까와 같은 검은 마차에 올라탔다. 흑마가 이끄는 그의 마차가 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주위에는 얼마 전까지 살아 숨 쉬던 인간들이 죽어있었고, 나는 손가락을 잃었다. 나에게 무엇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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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실력부족에 허덕이는 글쟁이 렌입니다.
비축분은 7화 까지일까요.(+,- 합치면 14화)
시험기간 대비용으로 비축해두고 있습니다.
일단은 시험이 29일날 시작하니까 오늘부로 글 쓰는 건 잠시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비축분이 있으니 꾸준히 업로드 될지도..
아, 언제나 글을 올릴때는 욕먹을 각오까지 하고 올립니다.
전 당연히 부족합니다. 부족한점을 찔러주시고, 제가 알 수 없었던 점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캐릭터 묘사가 너무 집중되고 쓸데 없이 세분화 된 것 같은데, 어떻게 고칠 방편을. 대체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답답해서 그냥 올려봅니다. 분산해도 그리 나아질 것 같지 않고 말이죠. |
첫댓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D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싸우는 장면이 멋지군요. 다음 편들이 별로 뛰어나지 못한 저의 이해력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싸우는 장면이라는게.. 제일 묘사하기 힘들어서 대충끝낸듯도 싶습니다. 제 상상속에서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 글만쓰면 뭔가 용량딸려서 프레임 딱딱 끊기는 듯 하달까요..// 만화같은 묘사가 아닌 소설다운 묘사를 하고 싶었지만 힘들어서 만화가 무심결에 나왔을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