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랜덤하우스중앙, 2006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함께 당선되면서 등단한 소설가 송기원이 1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미발표된 시 44편을 실은 이번 시집은 중견화가 이인이 시 전편을 읽고 시편마다 그린 꽃그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시인은 장터와 창녀촌의 뒷거리 인생, 민주화투사, 계룡산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구도의 삶의 체험에서 나온 직관으로 꽃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의 아픔과 회환, 오르가즘과 달관의 세계를 보여준다.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로 노래한 시 44편을 총6부로 나누어 담았다.
▶ 목차
서시/ 꽃이 필 때
1. 그대에게 가는 길
바람꽃/ 찔레꽃/ 진달래꽃/ 각시붓꽃/ 개나리/ 함박꽃/ 수선화
2. 하르르, 황홀하게
모란/ 목련/ 복사꽃/ 넝쿨장미/ 달맞이꽃/ 배꽃/ 밤꽃/ 능소화/ 해당화/ 석류꽃
3. 사방천지 꽃향기
망초꽃/ 초롱꽃/ 꽃향기/ 산나리/ 개구리밥/ 백리향/ 제비꽃/ 영산홍/ 나비난초/ 애기똥풀꽃
4. 치자꽃 향기처럼
구절초/ 안개꽃/ 오랑캐꽃/ 조팝꽃/ 매화/ 여름민들레/ 치자꽃
5. 마지막 기다림마저 지워져버린 다음
눈꽃1/ 눈꽃2/ 눈꽃3/ 눈꽃4/ 눈꽃5
6. 꽃봉오리가 터쳐나는 노래
참꽃/ 개망초꽃/ 유채꽃/ 동백꽃
해설| 흙탕물 속에 핀 연꽃. 이경철
대담| 아픈 사랑도 이리 눈부신 꽃세상인 것을. 송기원/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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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의 소년 송기원, 꽃밭에서 뒹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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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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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랜덤하우스중앙 |
맑았다. < 마음 속 붉은 꽃잎> 이후 15년만에 내놓은 송기원(60)의 신작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중앙)의 출간을 알리는 기자간담회. "모든 정성을 쏟아 애쓰며 시를 쓰는 분들이 많은데...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낮추는 그의 낯빛과 눈빛이 맑았고, 목소리는 소년의 그것 같았다. 송기원의 '소년 같은 맑음' 속에는 출생에 대한 열등감으로 자살충동에 시달렸던 중학생 시절의 절망과 예민했던 문학청년 시절의 고뇌 또한 오롯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그 그늘은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시인이 뿜어내는 빛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송기원의 육십 년 생애는 시쳇말로 '기구'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엔 민주화운동에 투신, 감옥을 4번이나 들락거렸고, 그 와중에 어머니가 자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세상과 문학에 염증을 느끼고 인도로 훌쩍 떠나기도 했으며, 오랜 기간 절필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이번에 내놓은 신작시집에서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송기원이 혼란과 혼돈으로 점철된 인간사를 한 발자국 뒤에서 그윽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시인은 산과 들에 철 따라 피어나는 마흔 가지 꽃을 세상과 인간의 진실을 노래하는 매개체로 삼아 꽃밭에서 뒹군다. "그대여, 얼마나 오래 숨어살면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아야/ 그대는 치자꽃 향기처럼 나에게 풍겨올는지요"라는 시구는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친다. 이순(耳順)에 이른 시인이 아직도 찾지 못한 '그대'를 우리 역시 찾지 못한 까닭에 느껴지는 동질감 탓이다. 아프고 아린 노래 속에서 발견하는 인간과 세상의 진실시집 속은 ' 바람꽃' ' 각시붓꽃' ' 수선화' '달맞이꽃' ' 능소화' '망초꽃' ' 구절초' 등 오만가지 꽃 이름으로 환하다. 그러나, 그냥 사는 것이 아닌 느끼며 사는 이에게 생이란 기쁨보단 슬픔에 가까운 법. 그래서일까?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에는 아프고, 아린 진술이 더 많다. 예컨대 이런 노래다. 목소리에도 칼이 달려, 부르는 유행가마다
피를 뿜어내던 어린 작부
붉게 어지러운 육신을 끝내 삭이지 못하고
백사장 가득한 해당화 터쳐나듯
밤바다에 그만 목숨을 던진 어린 작부
- 위의 책 중 '해당화' 전문.절대빈곤이 지배하던 50년대에 유년을 보낸 송기원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자동기들이 종종 색주가로 팔려가던 것을 보곤 했다. 붉디붉은 꽃 해당화와 50년 전 친구들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 시인은 '생이란 본래가 서러운 것'이라는 진실을 새삼 깨달았지 않았을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다. 하지만, 절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래 두 편의 시를 보라.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다 말고/ 사립문을 뛰쳐나온 갓 스물 새댁/ 아직도 뚝뚝 젖이 돋는 젖무덤을/ 말기에 넣을 새도 없이/ 뒤란 복사꽃 그늘로 스며드네/ 차마 첫정을 못 잊어 시집까지 찾아온/ 떠꺼머리 휘파람이 이제야 그치네.
- '복사꽃' 전문.
건너 배밭에는 배꽃들이 한창이어서/ 해종일 벌나비들이 잉잉거리네/ 밭일을 하다말고, 젊은 과수댁/ 고쟁이 까서 소피 볼 때/ 홀연히 어지러워라/ 해종일 잉잉거리는 벌나비만이 아니라/ 삼년 넘게 굳게 닫힌/ 이녁의 자궁 안에 난만한 것들!
- '배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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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원 시인(우)과 이인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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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랜덤하우스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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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한 폭의 수채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복사꽃'과 '배꽃'. 모질고 모질어 끝끝내 잘라낼 수 없는 첫사랑의 쓰라림을 다독이고, 말라버린 과부의 자궁에서까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경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아도 송기원은 '시인'의 이름으로 인구에 회자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인 화백이 시 한 편마다 일일이 붙인 그림은 책의 격조를 한층 높이고 있다. 오는 16일부터는 두 사람의 작품이 행복하게 만난 시화전이 교보문고 강남매장에서 열린다. /홍성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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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평〉
꽃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송기원,『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랜덤하우스 중앙, 2006, 2. 3.
이은봉
송기원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대상은 꽃이다. 매화, 오랑캐꽃, 개나리, 영산홍, 능소화, 여름 민들레, 망초꽃이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시인 자신의 시각과 태도를 매개로 하여 예의 꽃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時空이 이번 시집이다. 따라서 그의 이번 시집의 독서와 관련하여 정작 중요한 것은 꽃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대상과 관련하여 그가 갖는 시각과 태도는 크게 두 가지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하나는 예의 대상을 객관화하는 경우이고, 둘은 예의 대상을 주관화하는 경우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시각과 태도가 비교․대조되면서 병치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말 그대로 비교․대조되면서 병치되는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태어나는 그의 시라고 하지만 심미적 수준이 모두 고른 것은 아니다. 심미적 성취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은 시도 다수 섞여 있는 것이 이 시집이다.
송기원의 이번 시집에서 화자는 끊임없이 가공되는 가운데 꽃이라는 대상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각과 태도를 보여준다. 물론 그의 시적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꽃은 자연의 사물이다. 하지만 일단 그의 시 안에 들어오면 꽃은 자연의 사물만이 아니라 인간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된다. 꽃이라는 사물이 일종의 객관상관물로 존재하며 알레고리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목은 꽃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내용은 꽃보다 사람의 이미지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것도 이러한 방법적 자각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시인이 선택하는 시각과 태도에 따라 시의 소재로 등장하는 꽃의 내포가 적절히 변형되고 변주되는 가운데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송기원은 시인인 동시에 소설가이다.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경외성서」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송기원은 시와 소설의 양면에서 적잖은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지금은 시인으로보다는 소설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이 이렇게 알려진 데는 그 자신이 시인으로보다는 소설가로 평가받기를 희망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의 문학적 활동은 시의 면에서보다는 소설의 면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온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그대 언 살이 터져 詩가 빛날 때』(실천문학사, 1983)와 『마음속 붉은 꽃잎』(창작과비평사, 1990)과 같은 뛰어난 시집을 간행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이후 송기원은 시보다 소설에 주력해왔고, 그리하여 최근에는 거의 시를 발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시를 방기해왔던 그가 새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를 간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만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으로서 그의 활동도 충분히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