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숲이 울창한 이 곳은, 제라스의 집이 있는 절벽의 바로 밑이나, 제라스의 집에선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숲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가에 한 사나이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나 목숨을 건진 것 만큼은 확실하다.
그의 옆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제 불혹에 가까이 왔을만한 그 남자는 매서운 눈매, 강한 인상을 주게 생겼다.
연못가에 쓰러져 있는 남자는 보라색 머리카락, 제라스에게 죽음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제로스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가브가 분명할 것이다.
"으, 음...
제로스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브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제로스를 보면서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정신이 드나보군. 제라스가 자네를 살렸네. 나도 도무지 이해는 못하겠지만. 어이, 제라스와 무슨 사이인가?"
가브는 궁금하다는 듯이 그의 굵고 남성적인 목소리로 고통스러워 하는 제로스에게 물었다.
"제라스? 그게....누,누굽니까? 난.....어떻게 된거죠?"
제로스의 그 대답에 가브는 몹시 난처해 하고 있었다. 제라스를 모른다고 말하다니.....가브는 자신이 사람을 잘못 찾은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을 하며 제로스에게 이름을 물었다. 제라스가 말한 그 '제로스 인버스'인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이름? 모르....게, 겠습니다...."
제로스는 몹시 지치고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하였다. 그러더니 그는 곧 다시 정신을 잃었다.
가브는 이것으로 제로스가 기억을 상실했다고 확신했다. 솔직히, 사람을 잘못 찾았을리는 없다. 이 숲을 찾는 사람은 매우 적고, 제라스의 말처럼 큰 부상을 입은채 기절해 있었으니까.
그로부터 약 열흘이 지났다. 제라스의 제자들은 지난번 제로스의 일로 더더욱 제라스를 무서워 하며 잘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 제자들 중엔 제로스의 일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자들이 있었다. 제라스의 양녀 리나와 수제자인 제르가디스, 가우리, 아멜리아 등이 그들이었다.
특히 리나의 경우는 그 이후론 제라스와 거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피리아가 제라스의 명으로 잠시 어딘가를 다녀와야 한다고 한다.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피리아를 못본다고 하기에, 사제들은 모두 그녀에게 인사를 하였지만 리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아멜리아씨. 리나...."
"피리아 님. 잘 아시겠지만 리나 님은 그 일로 아직도 화가 풀리시지 않으셨어요."
그렇다. 제로스가 죽은 이후, 리나는 제라스에게 상당한 반감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피리아의 경우는 그런 리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리나를 비롯한 일부는 제라스가 그정도로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리아는 리나에게 제라스에 대한 화를 풀어야 한다고 하였고, 제로스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도 전혀 충격받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 점에 리나는 실망했던 것이었다.
"그렇군요.....아쉽네요. 그럼, 모두들 안녕히계세요."
피리아는 쓸쓸하게 떠났다. 그녀는 리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라스에 대한 것만큼은 지금도 옳지 않아고 생각했다.
'리나씨는 그렇게 스승님을, 제라스 님을 모른단 건가? 그분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후....그렇다고 제로스가 살아있단 사실을 말해줄 수도 없었어. 제라스 님과의 약속이었으니까.'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봐, 리나. 피리아가 떠났다. 그 일도 그렇지만 피리아에게 꼭 그래야 했나?"
"제르. 내 일이야. 신경쓰지마."
그만큼, 리나는 완고했다. 그녀에게 있어 제로스에 대한 사랑은 피리아에 대한 우정보다 더했던 것이다.
동쪽. 제로스는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몸은 많이 회복된 것 같고, 밝고 명랑한 생활을 하는 그이지만 아직까지 기억은 되찾지 못했다. 가브와 동쪽 최고의 고수, 적법사 레조는 제로스의 기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별다른 소용은 없었던 것 같다.
"이봐. 좀 잡히는 거라도 있나?"
가브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글쎄요.....생각보다 잘 않잡혀요. 후아암~ 낚시는 참 지루하네요."
"너, 태공망이란 사람을 아냐?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그는 사람을 낚았지. 그 사람을 도와 큰 일을 해냈네. 너도, 그런 대망(大望)이 없냐?"
가브는 제로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아니, 그것보단 그동안 제로스와 지내며 그가 큰 제목감임을 느꼈기에 그를 큰 인물로 키워주고 싶었다.
"대망이 뭔데요?"
"그, 그건.....레조한테 물어보도록 해. 아! 레조가 자네를 찾더라고. 낚시는 내가 맡을 테니까. 어서 가보도록 해."
가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로스는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바위를 점프에 다닐 정도로 날렵했다. 아마도, 그동안 가브와 레조에게 수련을 조금 받은 것 같다.
빠르게 뛰어가는 제로스 앞에 한 남자가 보였다. 제로스는 빨리 멈추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었다.
두 사람은 충돌했다.
"아이고 아파라....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급했거든요."
"아니요, 뭐......"
그 남자는 말을 잊지 못한채 제로스를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니 제로스또한 그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아름다운 금발에 맑은 푸른 눈을 가진,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였다. 제로스는 그 남자에게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 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제로스!!"
남자는 목소리또한 곱고 가늘었다. 제로스는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자신을 아는 채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를.....아세요?"
제로스는 그 특유의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순간 남자는 당황했다. 자신을 제로스에게 정채를 들키면 안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아는 채를 해버렸다.
'내가 이런 모습을 해서 못 알아 보는건가? 그렇겠지.....제라스님의 명령대로 난 이 모습을 유지해야 해.'
그 남자는 다름아닌, 남장을 한 피리아였던 것이다. 제라스는 피리아를 이 동쪽으로 보내 제로스를 찾도록 한 것이다. 가브에게 제로스를 부탁하긴 했지만 그녀는 안심을 못했었다.
그리고, 더더욱 피리아를 보낸 이유는 제로스를 감시시켜 루나의 거처를 알아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가브와 레조에겐 부탁할 수 없었다. 제자인 피리아가 차라리 더 믿을만 했다.
"아....전 그냥, 아는 사람이 이 근처에 사는데, 그 사람한테 보라색 단말머리에 제로스란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 들었거든요."
"아~ 그러세요? 누구요?"
바로 그 때, 때마침 레조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레조는 어려서부터 앞을 못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고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비록 맹인이라 하여도 그는 제라스보단 아니지만 상당히 강한 사람이다. 레조가 제로스에게 피리아에 대해 묻는다.
"제로스, 이 사람은 누굽니까?"
레조의 집.
"아~ 그러니까 이 분은 레조씨께 들어서 제가 누구인지 알았던 거군요."
"그런 셈이지."
레조는 이미 피리아가 올 것이라고 제라스에게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는지 피리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피리아와 아는 사이라 하여 그녀를 구해주었다. 피리아로서는 정말 고마워 하였다.
"그런데, 성함이?"
"피리아. 피리아 울 콥트."
피리아는 숨기지 않고 본명을 말했다. 제로스가 기억을 상실했단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이렇다면, 제라스의 명령대로 제로스를 감시하는 것은 더더욱 쉬워질 것이다.
"이름은 꼭 여자이름 같네요. 피리아씨는 얼굴도, 목소리도 여자같아요. 그래서 첫눈에 반할 뻔했다니까요! 하하하."
제로스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솔직히 피리아는 제로스란 사람을 원래 못마땅해 했기에 제로스가 반할뻔했다는 말이 너무나 듣기 거북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의 제로스는 왠지 친근감있게 느껴졌다.
그리고......리나가 생각났다. 제로스는 리나마저도 잊어버린 것일까?
"피리아씨. 어서 드세요. 감자가 식겠어요."
"아, 잘 먹겠습니다."
피리아는 감자를 한입 베어먹었다. 레조가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레조는 앞을 못보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끼익,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가브가 들어온다.
"이 사람은 누구지?"
"가브씨. 제 조카뻘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조카? 너한테 가족도 있었나?"
가브로선 레조에게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레조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선 잘 말하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피리아는 가브를 보며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제라스를 찾아올 때도 항상 그렇게 느꼈지만.
하지만 가브는 의외로 자상했다. 손수 갑자의 껍질을 벗겨서 피리아에게 주었다. 초면이니까 잘해줘야 한다고.....
감자를 먹는 피리아를 제로스는 계속 바라보았다.
레조의 집은 평화로왔지만 제라스의 집은 어수선했다. 리나, 가우리, 아멜리아, 제르가디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라스 님. 저희는 제라스 님의 위선적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떠납니다.]
라는 짧은 편지만을 남겨놓고.
"후.....리나, 10년을 넘게 자식으로 키워왔는데 나를 버리고 떠나는 거냐?"
제라스는 양녀인 리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본래 리나는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기에 언제가는 떠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리고 리나와 제자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외부에는 악하고 강한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댓글 기, 기억상실이라....그렇다면 제롯피랴가 가능(?) 아니지...보통 이런건 기억을 되찾아 돌아가잖아....
흥미진진하군요^^ 다음편, 기대해도 되죠??
다음편도 빨리 나왓으면 좋겟어요//[기대만땅]빤짝빤짝!!!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ㅇㅇ 기대되네요 4화 ㅇㅇ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다......
다음편도 기대고 음음 바르가브가 안 나온 거 같은........ 그 근데 1부 어디에 있죠 못받어!!!!!!!! 훌쩍 아 그러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