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분주히 준비하는 여자 셋
아래 윗층 오르내리며
이것 저것 서로 빌려오고 빌려가고 바쁘다
계단 오르내리기 잠깐은 괜찮은데
더 나이들어선 계단이 있는 집은 좀 무리겠다
내가 실내계단이 있는 집에서 살 일은 없을테지만.
남편은 루프탑으로 잠깐씩 나가
몸에 좋지않은 간식(흡연)을 즐기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 정원을 두리번 거리기도 한다
사각형의 닫힌 호텔보다 좋은 점이 이거였구나
오늘 아침 메뉴는
지난 번 여행때 실패했던 우진해장국이다
고사리를 넣은 해장국인데 웨이팅이 너무 길어 포기했던 집이다
두 딸과 남편은 각자 제주여행 중에 모두 먹어봤다고 한다
남편은 식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고
딸들은 너무너무 맛있다고 하니
아직 먹어보지 못한 나는
2대1의 호불호에 어느 편에 서게 될지 궁금하다
우린 차에 앉아있고
두 딸들이 번호표 받고 기다리겠노라
차를 세우기가 무섭게 뛰어내린다
먹는데 열정적인 딸들
딸들아, 너희는 다 먹을 계획이 있었구나
1시간 정도를 기다리니 차례가 되었다는 전화
거리두기로 테이블이 적으니 더 웨이팅시간이 길어지나보다
반갑다 고사리 해장국
바로 너였니?
어디 맛좀 볼까?
음~~~
맛있다
오래 끓여 고사리의 식감은 없지만
얇게 찢은 고기가 씹히면서 식감을 좋게 한다
흐음 흐음 하면서 한그릇 뚝딱!
기다릴만 하다
가끔 그 맛이 생각날 듯 하다
이건 꼭 먹어야 한다며 빈대떡을 주문했는데
도톰한 녹두빈대떡이
그야말로 겉바속촉라고나 할까
아주 맛있다
이렇게 도톰하게 만들었으니 값도 도톰합니다
자 이제 오래된 숙제를 해결했으니
오늘의 미술관으로 향합시다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건축물은
지난 제주여행 중 '본태박물관'에서 처음 만났다
만나고 그의 독특함에 금방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는 건축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는 구조적 기능을 넘어
자연과의 교감, 비일상적 공간의 체험과 같은 미학적 기능을 구현해야한다고 말한다
자연 앞에 위엄을 보이며 서 있는 건물이 아니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건축가라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은 자연속에 잠겨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자연을 이겨내고 뽐내려는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이 건축물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관람자가 곳곳에서
섭지코지의 물, 바람, 빛, 소리 등을 모두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연출했다
안도타다오 다운 물과 어우러진 입구엔
제주의 강한 바람으로인해
고요히 흐르고 있을 물이 비처럼 뿌려진다
아!
이런 공간은 얼마나 절묘한가
저 멀리 성산일출봉을 긴 사각 프레임안에 들여놨다
그것도 심지어 돌 담장을 뚫고 구멍을 낸 듯 한 느낌으로
우리의 눈 높이에 맞추어
성산일출봉을 딱 들여다 놓았다
안도타다오 건축의 위트라고 해야할까
아님 파격미라고 해야할까
신선한 충격을 받은 나는 그저 그가 위대해보이기만 한다
그러고 보니
건축가 얘기만 하고 정작 이 미술관 소개는 시작도 못했네
유민미술관은 유럽에서 일어났던 아르누보 작가들의 유리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제까지 본 유리공예의 상식으로 잘 이해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기법의 작품들이
유민 홍진기선생의 수집품들이다
유리에 유리로
이렇게 정교한 조각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미켈란젤로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것 같다
"쉬워요, 유리 속에 갇힌 사람들을 그저 꺼내주기만 하면 되거든요"
혹시 로댕처럼 이렇게 대답하는 건 아니겠지
이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유리로 어찌 이리 섬세하게
만들었을까
지금도 흐르고 있는 진행형인듯도 하고
시간을 정지시켜 놓은 듯도 하고
아르누보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프랑스 낭시지역의 유리공예가들은
고온에서 녹인 유리를 대롱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색유리를 덧씌우고, 조각하고, 부식 시키는 등 새로운 공예기법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본태박물관처럼
잠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관람방이 있다
이것도 잠시 쉬어가라는 안도타다오의 정신이 담긴걸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큰딸은 아빠의 카메라 앞에서
또 장난끼 발동했다
바람을 맞으며 섭지코지 전망대까지 올랐다가
바람에 날아갈 뻔 했다
옆으로 부는 바람이 계단 난간 한쪽으로 내 몸을 자꾸 밀어낸다
난간 꽉 부여잡고 내려왔다
떽!
이놈들 대문을 그리 넘어다니면 못써!
안도타다오의 또하나의 작품인 글라스하우스의 카페 민트에서
잠시 몸을 녹이기로 한다
커피를 좀 전에 마신 터라
쥬스를 주문했더니 색감이 아주 예쁘다
바람에 산발이 된 머리도 좀 정리하고
몸도 녹이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평화로운 시간
포토존에서 이런 민망 유치한 사진도 찍어보고
그러고보니 이 녀석들
본인들 하기 민망한 사진은 꼭 엄마를 시키는 것 같네
또 하라면 열심히 포즈를 취해주는 엄마라는 여인
날이 좋으면 천천히 걸으며
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섭지코지 등대까지 둘러볼 텐데
너무 바람이 심해
이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전화하면 곧장 달려와 준다
1일 1카페 실천으로 찾아간
카페 '한라산'
바닷가에 위치한 카페인데
넷이서 주문하니 이렇게 센스있는 컵홀더로 답한다
셋이서 주문하면
'지금, 제주, 여행중' 일테고
둘이서 주문하면
'제주, 여행중' 일까
아님
'우리, 제주' 일까
저녁은 제주도민들끼리 알려진 횟집 모살물에서 먹기로 한다
모살물이란 뜻이 궁금해 찾아보니
모살은 모래,
그러니까 모래에서 솟아나는 물이란 뜻이다
회를 먹고 난 후 끓여준 지리탕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
미역을 넣은 지리탕
번쩍번쩍하는 일식요리집 인테리어를 상상하면 안됩니다
여긴 제주도민들이 소소하게 먹는 회맛집이니까요
숙소로 들어와 칵테일 만들어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나무로만 세워진 오두막이
바람을 무방비로 들여보낸다
양철지붕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조용히 칵테일 마실 분위기는 아닌듯하다
철수하고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문을 여니
접시 안의 간식이 다 날아갈 듯 바람이 분다
따뜻한 실내에서 조용조용 이야기하며 밤을 보낸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루프탑의 조명 전선이나 설치물들이
바람과 노느라 시끄럽게 떠든다
조용히 하라고 문을 열려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