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arley-Davidson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
명품으로 부활한 ‘꿈의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 | |
기사입력: 09-10-30 11:55 조회: 5998 별점: |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할리데이비슨 100년 성공의 비밀 | |
|
오토바이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질주하는 폭주족이나 도로 위를 헤집고 다니는 배달용 오토바이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성공한 남자의 로망’ 혹은 ‘멋진 취미생활’과 연관 짓는다. 바로 미국의 대형 모터사이클 생산업체인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Inc.)의 오토바이 마니아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할리데이비슨은 단순한 오토바이가 아니라 내 꿈을 실현시켜주는 수단”이라고. 고객들에게 다른 오토바이들과 차원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할리데이비슨. 할리데이비슨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됐을까? 할리데이비슨의 역사는 자전거 회사에 다니던 윌리엄 할리(William S. Harley)와 철강모터회사에 다니던 아서 데이비슨(Arthur Davidson)이 의기투합한 19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동네에 살던 두 청년이 세계 최초로 자전거에 모터를 단 모터사이클을 상용화한 것이다. 이들은 이 모터사이클에 자신들의 이름을 따 할리데이비슨이라고 이름 붙인 뒤, ‘최고의 모터사이클을 만든다’는 창업 정신으로 업그레이드를 계속해나갔다. 결국 이들은 1909년 ‘V-twin’이라 불리는 엔진을 개발했다. 엔진 두 개를 ‘V’자 모양으로 붙여 놓은 이 엔진은 당시 모터사이클로서는 최고 속력인 시속 96km를 주파했고, 당시 최대인 7마력의 힘을 내는 막강한 엔진이었다. 이후 할리데이비슨은 세계 1,2차 대전에 군사용으로 쓰이면서 품질을 더욱 인정받았다. 여기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미국을 질주하는 주인공이 등장한 영화 ‘이지 라이더(Easy Rider)’가 흥행하며 할리데이비슨의 유명세가 거세졌다. 모터사이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100년 역사를 함께한 할리데이비슨의 현재 규모는 어떨까? 지난 2008년, 할리데이비슨은 128개 국에 30여 만 대의 대형모터사이클을 팔아 약 7조 원($5.59 Billion)의 매출을 올렸다. 물론 세계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매출이 정점에 도달했던 2006년에 비해 줄어든 수치지만, 수익률은 여전히 12%에 달했다. 경쟁참패… 곤두박질 친 명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할리데이비슨 내부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1969년 할리데이비슨을 인수한 레저용품 기업 AMF와 원래 할리데이비슨의 기술자 진영 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난 것이다. AMF는 할리데이비슨의 내부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경쟁자들을 따라 하려 했다. 이에 반해 할리데이비슨의 기술자들은 할리데이비슨이 갑자기 소형 모터사이클을 만들 기술은 부족하다고 여겼다. 기술자들이 파업을 불사할 정도로 AMF 측과 부딪히자 결국 할리데이비슨의 품질은 떨어졌다. 불량률은 50%로 올라갔고, 사후 서비스는 몇 개월을 기다려야 받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오죽하면 이를 빗대 ‘할리데이비슨을 사려거든 2대를 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 당시 소비자들이 할리데이비슨을 외면한 건 당연했다.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GE보다 잘 나가는 할리데이비슨? 과연 할리데이비슨은 어떤 노력을 한 것일까?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할리데이비슨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을 지금부터 파헤쳐보자. 전략1. 할리데이비슨만의 ‘위풍당당’ 캐릭터를 만든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100미터 밖에서도 할리데이비슨임을 알리는 웅장한 소리가 있어야만 할리데이비슨 스타일이 완성된다. 미국에서는 ‘Potato, potato’라고도 불리는 이 소리는 할리데이비슨의 2기통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매특허와도 같은 배기음이다. 실제로 할리데이비슨은 1994년 이 배기음에 대해 특허를 받으려고도 했었다. 비록 6년 간의 공방 끝에 특허 출원에는 실패했지만,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할리데이비슨이 배기음에 대해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으니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신기한 점은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이 배기음에 대해 느끼는 점이다. 고객들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있을 때 들리는 배기음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시끄러운 소리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그들은 “배기음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심장 박동과 같다”며 “심장과 비슷한 주기로 소리가 나고 이에 따라 온 몸에 진동이 느껴져 타는 사람의 질주본능을 자극한다”고까지 말한다. 보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할리데이비슨의 배기음은 타는 사람들에게는 귀 뿐만 아닌 마음까지 사로잡는 요소가 된 셈이다. 할리데이비슨 할리스타일을 완성해주는 소리까지 디자인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1997년 세운 소리연구소인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Lap’에서 드러난다. 할리데이비슨은 이 소리연구소에서 점점 심해지는 소음 공해 기준을 지키면서도 특유의 배기음을 잃지 않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소는 각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하는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진동과 배기음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무나 못 타는 할리데이비슨, 명품으로 거듭나다 할리데이비슨의 원래 멤버였던 13인의 경영진은 1981년 사비를 모으고, 모자란 돈은 빌려서 회사를 AMF로부터 독립시켰다. 그리고 초기의 창업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곧바로 ‘독수리는 홀로 비상한다(The eagle soars alone)’는 이름의 경영 혁신 프로그램을 벌였다. 여기서 독수리는 할리데이비슨을 상징한다. 경쟁기업들이 많지만 할리데이비슨이 유일한 최고가 되겠다는 다짐이 드러나는 문구였다. 이를 위해 할리데이비슨은 경쟁기업인 일본의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이 도입해 효과를 본 JIT(Just-in-time) 재고시스템, MAN(Materials as need) 생산 관리 제도, 퀄리티 서클(Quality Circles) 토론 모임(직원들 스스로 품질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모임)을 도입했다. 할리데이비슨의 노력은 결국 빛을 발했다.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1988년까지 재고는 67%, 불량률은 70%가 줄어든 반면 생산성은 50%가 올랐다. 1993년 불량률은 0.3%에 불과했는데, 이 당시 모터사이클 산업 평균 불량률은 1.5%였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문량이 늘어도 할리데이비슨은 판매량을 급하게 늘리지 않았다. 당시 CEO였던 리차드 티어링크(Richard Teerlink)는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닌 품질이다. 수요에 부응하려고 생산량을 급히 늘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1993년 혼다가 395만 대를 팔 동안, 할리데이비슨은 8만 대라는 판매량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러한 소량생산 전략은 ‘아무나 탈 수 없는 할리데이비슨’의 명품이미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 당시 할리데이비슨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은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마음이 급한 고객들은 원래 가격에 10% 프리미엄을 더 내야 하는 암시장을 찾을 정도였다. 이후 할리데이비슨은 미국 국가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면서 명품의 위치를 탄탄히 했다. 이를 위해 할리데이비슨은 비용이 덜 드는 중국 등지로 생산 공정을 옮기지 않고, ‘Made in U.S.A.’를 고수한다. 할리데이비슨의 본사는 위스콘신 주에, 공장은 위스콘신 주, 펜실베니아 주, 미주리 주에 있다. 또 ‘일본 및 유럽의 경쟁 기업들의 공세 속에서도 살아남은 유일한 미국 모터사이클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00년이 넘도록 미국을 지킨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전략은 적중했다. 미국 국민들은 할리데이비슨을 지키는 일을 나라를 지키는 일처럼 생각했다. 특히 할리데이비슨 공장은 1987년 레이건 대통령, 1999년 클린턴 대통령, 2006년 부시 대통령 등 미국 대통령들이 정치적으로 고비를 맞을 때마다 방문해 미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대통령의 성지가 될 정도다. 고품질, 소량생산, 국가대표 브랜드라는 이미지는 할리데이비슨을 깡패같이 거친 남성들이 타는 모터사이클로 평가 절하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전문직종의 종사자들인 러비족(Rubbies: the rich urban bikers)과 같은 부자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할리데이비슨 고객들의 평균 연봉 수준은 계속 높아져 2004년 8만 달러 정도였던 고객들의 연평균이 2008년에는 거의 9만 달러에 달하고 있다. ▶할리데이비슨 타는 사람이 모인 H.O.G., 소속감을 준다 주목할 점은 호그가 할리데이비슨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순수하게 회원들 스스로 운영하는 모임이라는 점이다. 호그 회원들은 지역별 국가별 정기 집회를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진다. 뿐만 아니라 호그 멤버십 매뉴얼(H.O.G. Membership Manual)을 만들어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으로서 규율을 지킨다. 도대체 왜 호그 회원들은 스스로를 제약하고, 귀찮은 일에 나서면서까지 호그 활동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고객들은 호그를 통해 ‘함께’ 할리데이비슨을 즐긴다. 할리데이비슨을 통해 끈끈한 동지의식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나눠 타면서도 쉽게 인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 사귀기 쉽지 않은 시절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고 싶은 욕구 중 상위 개념에 속하는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만족스럽게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호그는 고객들이 기대하지도 못했던 소속감이라는 욕구를 채워준다. 고객은 스스로 호그에 시간과 열정을 쏟게 되고, 이는 자연히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충성도로 연결된다. ▶개성 표출! 세상에 한 대뿐인 나만의 할리데이비슨 고객들은 이 과정을 ‘커스텀(Customization의 약자)’이라고 부른다. 고객들이 커스텀을 얼마나 즐기는 지는 인터넷에서 ‘할리데이비슨 커스텀’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블로그에 올라온 사례를 살펴보자. 한 고객은 2008년 9월 할리데이비슨의 팻보이라는 모델을 헤드라이트와 손잡이 부분 등을 커스텀해서 샀고, 최근 핸들과 안장 등을 또 한 번 커스텀 했다고 한다. (출처: yjbarun.tistory.com) 그는 3번의 커스텀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들었지만 오히려 앞으로도 여유 자금이 생기면 여러 장식용품을 더 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들에게 커스텀은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운 경험이 되는 것이다. 100만 의 할리데이비슨이 있어도 똑 같은 것은 한 대도 없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런데 고객에게 개성 표출의 수단이 된 파츠와 액세서리가 할리데이비슨에게는 또 다른 수익창출 수단이 되고 있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할리데이비슨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이어 타기도 한다. 뒤집어 말하면 할리데이비슨 제품이 소모돼 재구매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이다. 이런 와중에 할리데이비슨의 파츠와 액세서리는 수익 측면에서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이는 할리데이비슨의 수익구조에서도 드러난다. 할리데이비슨 수익의 80%는 모터사이클에서 나오고 있지만, 나머지 20%는 파츠와 액세서리 의류 등을 팔아서 거두고 있다. ▶’경험’을 팔아 고객을 팬으로 만들다 전략3. 비전으로 경영한다 ▶할리데이비슨 마니아인 직원 할리데이비슨의 인사 담당자 하워드 살라자(Haward Salazar)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입사 지원자 중 할리데이비슨 자체가 좋아서 지원하는 사람이 90% 가까이 됩니다.” 실제 할리데이비슨 직원의 절반 이상이 호그 회원이라고 한다. 즉 고객이자 마니아들을 직원으로 뽑은 셈이다. 이런 직원들이 매장에서 할리데이비슨을 설명한다면 제품과 회사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담길 수밖에 없다. 설득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직원들이 마니아이다 보니 자신이 할리데이비슨을 타면서 느낀 점을 제품 개발에 건의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온다.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조직문화: 열정, 핵심가치만 남기고 자유를 준다 할리데이비슨의 미션과 핵심가치, 그리고 핵심가치 이외 사항에 대한 자유는 할리데이비슨 내부의 직원은 물론 부품공급업자와 같은 협력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할리데이비슨의 부품공급업자 사례를 살펴보자. 할리데이비슨의 부품공급업자로 선정되면, 가장 먼저 본사로 1주일 간 파견 교육을 받는다. 그들은 공장을 견학하며 제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할리데이비슨 직원들의 열정과 조직문화를 체험한다. 몸으로 할리데이비슨의 조직문화를 느낀 뒤 할리데이비슨의 미션과 핵심가치에서 파생된 세부 지침 사항을 교육받는다. 여기에 할리데이비슨의 부품공금업자로서 지켜야 할 기밀 조항, 공정 거래 기준 등이 담긴 것이다. 이처럼 할리데이비슨은 할리데이비슨을 좋아하는 고객들을 직원으로 뽑고, 비전경영을 통해 그렇지 않았던 직원들까지 열정을 길러주려 노력했다. 결국 할리데이비슨 직원들에게 직장은 놀이터로, 일상이 업무로 바뀌는 ‘몰입’을 경험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모든 기업이 바라는 조직문화를 가진 셈이다. 전략4. 고객층을 넓혀라 2006년 할리데이비슨이 시도한 광고를 살펴보자. 한 남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유모차를 밀고 가고 있다. 마치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가는 듯한 자세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문구는 ‘Stop Dreaming’이다. ‘더 이상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싶다고 상상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도전하라’는 뜻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이렇게 평소에 할리데이비슨을 꿈꾸던 사람들을 실제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단 할리데이비슨은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할리데이비슨을 실제로 탈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고, 실제로 탔을 때 어떤 기분인지를 직접 느껴 구매로까지 이어지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또한 할리데이비슨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젊은 층과 여성까지 포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속도감을 즐기는 젊은 층을 겨냥해 비교적 작은 몸체에 최고 시속이 217km까지 나오는 최신형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혼자 할리데이비슨에 도전하기를 겁내는 여성들을 위해 할리를 타는 여성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바로 ‘Ladies of Harley(LOH)’다. 할리데이비슨은 홈페이지에 여성들만을 위한 섹션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할리데이비슨을 타기 시작한 계기, 타는 방법 등을 공유했다. 여성들을 고객으로 포섭하기 위한 전략인 동시에 남자들이 할리데이비슨을 구매할 때 가장 큰 훼방꾼(?)이 되는 여성을 지지자로 바꾸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심장 소리 같은 떨림의 할리에 네 몸을 맡겨봐’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녀시대의 유행곡 ‘소원을 말해봐’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싶은 작곡가의 소원이 담긴 노랫말이다. 당신의 기업은 누군가에게 소원이나 꿈이 돼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할리데이비슨이 알려준 전략을 어떻게 적용할 지 생각해 볼 때다. 최미림 IGM 연구원 mrchoi@igm.or.kr |
출처 : http://www.globalstandard.or.kr/bbs/board.php?bo_table=sub0300&wr_id=830
첫댓글 Harley 타구 싶당
축하합니다 쥔장님 이미지랑 너무 어울리는 물건입니다 ㅎㅎ 안전운전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세.....
정말 완벽한 오토바이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고인이 된 김광석 덕분에 신장매출이 늘어났다는데, 그 내용 아시지요? ㅋㅋ
예전에 가수 김광석씨가
들은 듯 예
""자긴 나이 먹어 할리데이비슨 타는게 꿈이라고""
말씀하신걸 어디서 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