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와 창비에 보낸 엄마를 부탁해 소설 표절의혹 추가 질의서
안녕하세요?
오늘은 주말입니다.
어제에 이어
추가 질의서 보냅니다.
아래 내용 비교 문장은 오길순 작가와 저희 언론사에서 검토한 결과입니다.
유사성 표절 여부 의혹에 대한 질문이오니 창비와 신작가의 공식적인 입장을 포괄적으로 답변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문제점이 더 발견 되면 또 메일 드리겠사오니 양해 하여 주십시오.
김지원 기자 배
사모곡과 엄마를 부탁해 비교 1
오길순
1. 사모곡 (오길순) 1-1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2.어머니를 잃은 지 열사흘 째(사,p 115.1) 2-1 엄마를 잃은 지 일주일 째
(엄. p.10.1)
3. "느이 엄마를 잃어버렸다“(사.p 113.13) 3-1 너는 엄마를 잃어버렸다(엄 p 16.2)
4. 화창한 오월,단오제 인파 속에서 아버지는 4-1 하필 번잡한 토요일 오후,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놓친 (사 114.3) 엄마 손을 놓친 (엄 p.16.11)
5. 교생지도를 마침과 동시에 전주행 5-1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다가 엄마 고속버스에 올랐다. 가 사라진 지하철 서울역에 내렸다. 6.귀향한 동생들은 자취조차 없는 어머니를 6-1 내일부터 모두 일을 그만두고 이 동 찾아 길거리를 헤맸다 (사.p114.8) 네 저 동네 무조건 헤매고 다닐까
7.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 같았다 7-1 이 도시에서 엄마 혼자 갈수 있는 곳은 (사.p114.22) 는 곳은 없다는 것을 (엄.p. 10.10)
8. 어느 하늘 아래서 어머니는 떨고 계실까 8-1 엄마가 쭈그리고 앉아있었을 ( p.114. 14) 지도 모를 자리에 무릎을 접고 (17.9)
9.젊은 날엔 치마폭에서 센바람이 일고 9-1 빌딩도 무찌를 듯한 걸음걸이 (사.116.23) (엄.p.17,12)
10. 스물 한 살 나의 10-1 스무 살이던 오빠는
11. 어버이를 잃은 일만큼 부끄러운 일이 있을까. 11. 너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다가 들킨 (사.p.113.6) 것처럼 귀밑이 붉어졌다 (엄.11.1)
12. 치매 12-1 뇌졸중
13.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놓치다.(핵심언어) 13-1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놓치다(핵심
14. 택시기사 도움 14-1 전단지 인쇄인 도움
15. 이종 언니의 집을 잃은 어머니의 방황 15-1그의 집이나 동생들의 집 말고 이 도시에서 갈만한 곳은 없다.
줄거리 <사모곡>
아버지가 전주 단오제에서 치매를 잃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놓쳤다. 이후 가족들이 어머니를 찾아도 못 찾았다. 교사인 작가가 교생 실습지도를 마친 13일 째 토요일 어머니가 실종된 곳을 역추적으로 흔적을 찾아 서울의 고속터미널에서 전주로 내려간다. 함께 다닌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부랑아 보호소에서 몰골이 된 어머니를 찾아온 체험수필이다.
<엄마를 부탁해>
아버지가 서울역 지하철에서 뇌졸중을 앓고 있는 엄마의 손을 놓쳤다. 이 후 가족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엄마를 찾는다. 작가인 작가는 중국의 북 스토어에 있었다. 일주일 째 가족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역추적 흔적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결국 어머니의 실종으로 끝난다.
사모곡
오 길 순
어버이날 아침, 거리는 꽃길이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카네이션 물결이었다. 어른들은 꽃마음으로 걸었다. 내 마음도 하얀 꽃 한 송이 하늘에 띄워본다. 라디오에서는 ‘이 생명 팔아서라도 너에게 다 해 주고 싶었다.’며 애통히 떠난 어머니를 그리는 재소자의 사연을 소개한다.
어버이를 잃은 일만큼 부끄러운 일이 있을까? 생사를 알길 없이 부모를 잃은 심정은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홍수에 씻긴 무덤 앞에서 망연자실 애통해 하는 유족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죽음 뒤에 오는 허무일 바에랴! 뭘 그리!”
얼마나 무지한 소견이었나.
“놀래지 마라. 느이 어머니를 잃어 버렸다,” 아득한 아버지의 음성이라니.......
직장인이랍시고 터미널 배웅조차 소홀했었다. 어쩌다 상경한 부모님이 바쁜 내 형편에 새벽 선잠으로 떠나시던 날, 차라리 농부의 아낙이 백 번 편하리라던 부모에게 나는 얼마나 불효한 여식이었나.
아버지는 정신이 혼미한 어머니를 위해 꽃나들이를 나서곤 했다. 그날도 어머니의 답답함을 풀어 드리고픈 출행이었다. 화창한 오월, 단오제 인파 속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놓친 것이다.
훌쩍 나가버리던 어머니, 치매를 앓아온 어머니가 벽시계나 달력, 헌 옷까지 길거리에 내던지고 떠나면 가족들은 혼비백산 발 구르기가 한 두 번이었던가. 이 번에도 경찰서며 부녀복지관, 심지어 부랑아 보호소까지 찾아 나섰다.
귀향한 동생들은 자취조차 없는 어머니를 찾아 길거리를 헤맸다. 어딘가에 살아계시기만 하다면.......돌아가셨대도 좋으니 시신이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아버지는 식음을 잊고 동서남북 찾아 다니셨다.
하루도 비울 수 없는 교직, 더욱이 교생 실습 기간이라 말도 못 꺼내고 퇴근한 저녁이면 이불을 쓰고 오열했다. 어느 하늘 아래서 어머니는 떨고 계실까. 따뜻한 방은 차라리 괴로운 가시방석이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서울의 부녀보호소와 시립병원을 찾아 나섰다. 애걸하며 병실을 기웃거렸지만 어디에도 어머니의 기척은 없었다. 밤마다 친정과 전화해 보지만 어머니의 흔적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 같았다.
그 때 슬기 어머니가 떠올랐다. 불란서 문화원이 쉬는 토요일, 교실미화에 봉사해 준 슬기 어머니, 부끄러운 가정사를 이해하리라. 아니 이 슬픔을 이해하리라.
행려병자를 검찰이 관할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훈규 검사, 전주의 검찰청으로 날마다 내 어머니 생사를 확인 해준 슬기 아버지이다. 최악의 사태는 아니라는 위로는 벼랑에서의 한 줄기 불빛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지 열 사흘 째, 교생지도를 마치는 동시에 전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역추적을 하다 보면 어딘가에 흔적이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를 끝까지 찾으려는 결심으로 몇 가지 금붙이를 챙기는 내게 남편은 기어이 동행을 고집했다.
머리 허연 할머니는 물론, 산이고, 나무고, 전봇대고, 그림자고, 작은 새 한 마리도 어머니같았다. 다리 저는 노인도 등 굽은 남자도 모두 어머니였다.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어머니의 환영, 불현듯 다가서는 어머니를 그토록 간절히 불러본 적이 있던가. 촌각을 다투는 초조함 속에서 서산의 지는 해가 원망스러웠다.
하여튼 그날 밤 아홉시 경, 서울을 떠난 지 다섯 시간도 안 되어 전주의 부랑아 보호소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눈과 귀와 입이 마비된, 이름도 성도 잊은 어머니 설명이 왜 그리 더디던가. 모두들 머리를 내젓는데 주방 아주머니의 귀 기울임이 아니었던들.......
애원하는 내 모습에 ‘그 할머닌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주머니는 저 쪽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어둠 속에 나타난 절름발이 노인은 스물다섯 살 나를 떠나보내고 힘겨울 때마다 달려와 주던 내 어머니에 틀림없었다. 나무처럼 돌처럼 굳어버린 어머니, 장승처럼 멀건 눈으로 바라보는 나의 어머니. 그 감격이라니! 그 영광이라니! 감당할 수 없는 신의 은총에 꿈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어둠 속에 엎어진 채 큰 절을 올렸다.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나보다도 기뻐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 것 같다며 시대의 희망이라며.
그 보호소는 가족들이 여러 번 찾아갔던 곳이었다. 그 때마다 헛걸음 친 것은 어제 금요일 밤에야 경찰이 인도한 때문이라니, 내가 하루만 빨리 왔어도 아슬아슬했을 상황에 감사할 뿐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어떤 인연이었기에.
유년의 바다였고 그리움이었던 어머니는 내 소녀 시절의 눈물이었다. 어머니가 갚아도 남는 빚은 스물한 살 나의 짐이었다. 과분한 혼사비와 끊임없는 교육비로 감당하기 어려운 빚더미가 나의 졸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삼 년간의 재판 과정은 소녀티를 벗지 못한 나에게 시련이었다. 결국 승자가 되었지만 패자처럼 휘청거려야 했던 가세는 오랫동안 내 책임이었다. 어머니는 유년의 그리움이었지만 내 젊은 시절의 슬픔이기도 했다.
길 잃은 우환 중에도 깔끔함은 남아 음식 한 입 못 얻어 쓰러져 있던 어머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진즉 삶을 포기 했으리라는 치매 노인. 이주일 동안을 어떻게 살았을까. 검게 그을린 얼굴, 걸친 누더기, 몰골로 짐작만 할 뿐. 담장 위의 빨래를 덮고 자다 물벼락을 맞고 개구쟁이들이 작대기로 쫓아 산 속으로 도망갔었다는 토막 이야기. 대문 하나 차이로 이종 언니의 집을 잃은 어머니의 방황은 영혼조차 꺼져버린 바람인 듯 어머니 손은 앙상한 나뭇가지였다.
젊은 날엔 치마폭에서 센바람이 일고 카랑한 목소리로 육남매를 지켰던 어머니, 이제는 깃털만큼의 힘도 없어 산속으로 쫓겨 간 거리의 할멈, 물벼락으로 밤새 서러웠을 바보. 나의 어머니.
친정에서 돌아오던 이튿날, 남편은
“ 개선장군의 기분이 이럴까?”
가슴을 젖혀 벅차게 웃었다. 어머니를 찾게 한 하느님께 한없이 기도하고 싶었다. 희망을 준 슬기 아버지, 보호소로 안내한 택시 기사님, 귀 기울여 준 주방 아주머니, 그 고마움을 어떻게 다 표현하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 어버이를 잃어버린 일. 이승의 해후는 신의 응답이었을까, 은총이었을까? 어머니는 돌아와 삼년 후 영면하셨다. 인생 칠십이 그리도 험난할 것을, 마지막 인생은 삶도 아닌 것을. 너무도 바빠서 고민 한 번 못 해 봤을 어머니. 불쌍한 나의 어머니. 오늘 저 하늘에 하얀 카네션 한 송이 올리고 싶어라.
<<목동은 그 후 어찌 살았을까>>2001년 9.25.범우사
이훈규 검사 (2015 현재 차의과대학교 총장)
사모곡 (오길순) 줄거리
사모곡: 아버지는 정신이 혼미한 어머니를 전주 단오제에서 잃어버렸다. 단옷날 혼잡한 축제의 인파 속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손을 놓친 것이다. 어머니를 잃었다는 전화를 받은 나는 아득했다. 마침 서울교대부속학교 교생 지도교사로 실습 중이어 갈 수 없었다. 밤마다 이불을 쓰고 울어야 했다.
어머니를 잃은 지 13일 째 되는 토요일 오후 4시, 교생 실습을 끝낸 나는 남편과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놓친 덕진 공원에서 역추적을 하다보면 끝내 gms적을 찾을 것만 같았다. 다리 저는 사람이나 노인은 물론 전봇대도 나무들도 온 세상이 온통 어머니로 보였다. 눈감으면 보이는 수천수만 어머니 앞에서 정신이 돈 것 같았다.
서울에서 떠난 지 두어 시간 후, 전주고속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는 덕진 공원을 시작으로 도시의 외곽인 부랑아 보호소에 안내했다. 내 어머니같은 이는 모른다했다. 그런데 내 부탁이 너무도 간절했는지 밥하는 아주머니가 관심을 주었다. “그 할머닌가?” 하더니 내 간절한 애원에 저 쪽 어떤 동에서 노인을 모시고 왔다.
한밤 중 어둠 속으로 다리를 절며 오는 사람은 분명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었던 내 어머니였다. 이름도 나이도 잊어버린 어머니, 주소도 글씨도 잃어버린 어머니, 젊은 날 그리도 똑똑하던 어머니는 더욱 바보가 되어 있었다. 날마다 아직은 괜찮다며 위로해 준 슬기 어머니(전 경기 박물관장, 이훈규검사(현 차의과학대학교 총장)의 아내) 이름도 못 물어본 택시 기사님, 타인의 말에 귀담아 들어준 주방 아주머니, 모두가 잊을 수 없는 분이기만 하다. 어머니와의 이승에서의 해후는 고마운 신의 은총이기만 하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아버지는 서울 역 지하철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 손을 놓쳤다. 아버지의 생일 날 상경하다 실종된 것이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을 모르다가 화자는 북경의 북 스토어에서 실종을 알게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실종을 까맣게 모른 것이다. 이 후 가족들이 어머니를 찾으러 방을 붙이고 대화가 서로 어긋나면서 펼쳐진다. 그런데 어머니의 실종은 끝내 미궁에 빠지고 만다. 이 후 어머니가 눈을 감으면서 회상하는 마음을 소설적 장치로 구도화 시켰다. 사모곡에 비해 비극의 결말이다.
표절이라 하는 이유
지난 6월(2011년) <<엄마를 부탁해>>를 한 권 샀다. 작가들이라도 소설을 읽어줘야지. 하면서 그 밤에 다 읽었다. 마침 세상에 유명해진 책이라 읽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내용이 내 원작과 같았다. 소설적 장치로 교묘히 바꿨어도 원작자의 영혼을 속일 수 있으랴.
여러 문장도 교묘한 표절이지만 스토리 자체가 엄연한 표절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자신이 어머니와 보름을 지내면서 들은 이야기라 하나, 이것은 표절의 강조화법으로 여겨진다. 일류라 표방하는 유명 작가가 중견 수필가의 글을 그렇게 맘대로 차용해도 된다는 게 참으로 아쉽고도 슬프다.
나는 2주일의 교생 실습을 끝내고, 전주로 무조건 남편과 떠나 기어이 어머니를 찾아 왔지만, <<엄마를 부탁해>>는 끝내 실종으로 결말을 맺는다. 원작을 각색하려면 동의를 구하거나 혹은 훗날 경과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 동안 원작자는 무수히 불면하고 가슴을 떨었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견뎌야 했다. 소설가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5개월 동안을(2011년 11월) 인내하며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다.
신경숙을 소설가로 안내한 담임, 최홍이 선생(현 서울시 교육의원)은 오길순과 교육대학 동기동창동반이었다. 그래서 안부 겸 전화로 표절의 내용을 얘기하라고 일렀다. 지난 6월이었다. 그의 블로그를 찾아 방명록에 신작가에게 전했느냐고 써 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무런 대답이 없다. 전해졌는지 모른다. 연락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원작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문서화 한다.
( 이 내용은 2011년 11월, 법무 법인에 보였던 간단한 내용임. 이후 내용증명을 보내라는 변호사의 의견이었지만 연말을 기점으로 잊으려 노력함, 그런데 수시로 언론이나 방송에 나와 잊으려는 상처를 덧냄.(2012년 5월 현재)
***2012년 5월17일자 교육산업신문에 기사화 됨
엄마를 부탁해는 *줄거리가 비슷하고 핵심 문장이 유사하며 장소나 인물만 다르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