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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중국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예로부터 동악(東岳), 태악(太岳), 대종(岱宗), 대산(岱山)이라 불렀고, 춘추시대(BC722~BC481)부터 태산이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태산은 오악독존(五岳獨尊), 오악독종(五岳獨宗), 오악지장(五岳之長) 등으로 불리며 중국의 오악(또는 오대산) 중 으뜸으로 꼽았다. 오악독존의 태산은 오랜 시간동안 중국민들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오악은 동악 태산(1,545m), 서악 화산(2,160m), 남악 형산(1,265m), 북악 항산(2,052m), 중악 숭산(1,512m)을 말한다. 각각 중국 대륙의 동·서·남·북·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산들이다.
산동성 중부의 태안, 제남, 역성, 창청 4개 시현에 걸쳐 있는 태산은 총면적이 426㎢에 이르며, 동서 30㎞, 남북 40여㎞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우리의 지리산 크기와 비슷하다. 산청, 하동, 함양군 등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총면적이 438.9㎢ 정도다. 그러나 태산은 우리의 ‘어머니의 산’ 지리산과 달리 웅장한 봉우리가 첩첩으로 둘러싸여 훨씬 험하고 가파르다. 산동성 중앙 평원지대에 우뚝 솟아 더욱 높아 보인다.
중국인에게 태산은 하나의 산으로서가 아니라 신앙과 믿음을 주는 영적인 산으로 존재했다. 중국의 제왕들도 태산에 올라 봉선제사를 지내야만 진정한 제왕으로 간주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봉(封)은 하늘에 근접한 태산의 꼭대기에 흙을 모아 둥근 제단을 쌓고 천제를 지내는 곳을 말한다. 선(禪)은 태산의 앞에 있는 작은 산에서 흙을 쌓아 사각형의 제단을 만들고 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는 대지의 덕을 넓혀, 그 넓은 덕에 보답하는 것을 말한다.
제왕이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태평하고 번영한 것으로 간주된다. 황제 자신은 명실상부하게 진룡천자(眞龍天子)가 되는 것이다. 태산 정상 옥황정 위에는 역대 제왕이 봉선하던 고등봉대(古登封臺)가 있다. 봉선은 외면상 천제에게 공을 보고하고 은혜에 감사하며 복을 기원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신권을 빌어 통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제를 비롯해 진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이세 황제 호해(胡亥), 한 무제, 후한 광무제, 당 고종, 당 현종, 송 진종, 송 휘종, 원 쿠빌라이, 청 강희제, 청 건륭제 등이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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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운해가 잔뜩 낀 만인석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고 촬영하기 위해 붐비고 있다.<사진=중국태산트레킹 황동호 사장 제공>/2태산 정상 옥황정 바로 앞의 무자비./3D코스로 가면 가파른 칼바위능선이 아찔하게 펼쳐진다. /4D코스로 오르며 바라본 태산 주변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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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시황·한 무제·당 현종 등이 올라 제사 지내
이들이 왜 하필 태산에서 천제의식을 지냈을까? 정상이 1,545m로서 그리 높지도 않은 태산이 어떻게 해서 중국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을까? 누구나 가질만한 궁금증을 한번 추측해봤다.
첫째, 동양사상에서 차지하는 동쪽의 의미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동(東)은 한자에서 보듯 나무(木) 사이로 해(日)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동의 의미는 만물을 잠에서 깨우는 생명의 탄생과 연결된다. 태산을 동악이라 불렀던 이유도 여기 있다. 생명의 탄생은 바로 번영과 연결되고, 역대 왕들은 그 번영을 태산 봉선의식을 통해 자신의 치적으로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역대 왕들이 봉선의식을 지내던 대묘(岱廟)가 바로 태산 앞에 있다.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지내고 태산 정상 옥황정에서 다시 옥황상제에게 의식을 치렀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목조건축물인 대묘는 북경의 고궁과 곡부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건축에 들어간다.
둘째로 산 자체가 신앙의 대상으로 풍년과 추수 감사제는 물론 홍수나 지진이 나도 제사를 올렸다. 중국의 민족종교인 도교 발상지이기도 하며, 불교 사원도 곳곳에 있다. 진시황의 대륙통일 이후 중국 민간신앙의 본산지인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태산을 물으면 대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높이를 떠나 그만큼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태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방증이다.
두 번째까지의 이유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이유라면 세 번째는 현실적이고 편리성의 문제다. 그리 높지 않아 누구나 하루 코스로 등산할 수 있도록 케이블카, 버스, 계단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산 아래 종점에서 중간기점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중천문까지 버스가 올라간다. 이후부터 케이블카를 타든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중국에서 펴낸 책에서는 계단은 총 7,736개라고 적혀 있다. 일부에서는 7,400개 또는 7,412개라고도 한다. 하지만 7,736개이든 7,400개이든 오르는 사람에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일일이 계단수를 세어봤겠나. 편리한 접근성으로 중국의 새해나 명절 등에는 최대 200만 인파가 모인다 한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다. 일출 사진을 보면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다. 그래서 하루 평균 태산 등산객이 5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설악산 단풍 때 모이는 최대 인파가 하루 평균 3만이 채 안 된다.
네 번째, 산동성은 중국의 동쪽 중앙부이고, 북경과 상해를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 지역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비행기로 북경이나 상해 등지에서 제남성 국제공항까지 1시간이면 도착한다. 중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산을 태산으로 꼽는 이유도 대체로 이에 해당할 것이다.
세 번째 이유에서 재미있는 상황을 조금 덧붙이면 태산 입장료가 중국 화폐로 125위안이다. 현재 환율로 대충 1:200으로 잡으면 우리 돈으로 2만5천원쯤 된다. 지역마다 조금 차이는 있으나 산동성 근로자들의 평균 월수입이 1,500위안 내외로 알려져 있다. 월급의 10분의 1 정도를 태산 입장료로 낼 정도다. 입장료뿐 아니라 케이블카, 버스, 택시 등에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태산을 관리하는 태안시청 관광수입은 단연 중국에서 최고다.
태안시청 청사는 우리 국회의사당 규모의 5배는 족히 될 듯했다. 2005년 그 많은 돈을 관리하는 태안시 공무원들 중 300여 명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고 한다. 태안시청이 텅 비었을 정도라고 했다.
태산은 대묘, 홍문궁, 만선루, 보조사 등의 명소와 여러 시대에 걸친 경문, 시문 등이 다양한 서체로 새겨져 있는 암벽문화유적,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여주는 화려한 경관 등으로 유네스코(UNESCO)로부터 1987년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태산 등산로는 등산객 90% 이상이 계단길을 따라 정상 옥황정으로 간다. 이들은 엄격히 말하면 유람객 수준이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올라오는 사람도 많다. 중국태산트레킹 황동호(51) 사장이 한국인 등산객들을 위해 등산로 7개 코스를 개척해놓고 A~G코스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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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들머리에서 정상까지 평균 5시간 소요
그를 만난 이튿날 태산에 등산 온 철원산악회 일행들과 함께 동남쪽 D코스를 따라 산행에 나섰다. D코스로 정상에 올라 기존 계단길인 A코스로 하산했다. D코스는 행화촌 마을에서 출발해서 연화봉~아토봉~칼바위능선~태산 정상에 이른다. 태산엔 봉우리가 많은 만큼 이름 없는 봉우리에 그가 이름을 붙인 경우도 많다. 아토봉, 연화봉 등이 이에 해당한다. 태산엔 72개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무명봉이 있다. 이들이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등산객 수준의 보행속도면 D코스로 정상까지 약 5시간 걸린다. 어느 코스이든 정상까지 가려면 여러 개 봉우리를 거쳐야 한다. 봉우리들이 원체 가팔라서 가는 도중 한 곳 이상은 암릉 버금가는 구간을 거치게 된다. 무지막지한 힘든 계단길을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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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태산 천가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2칼바위능선이 끝나면 여성 상징 바위가 바로 눈앞에 나온다. /3정상에 오악독존이라 새겨진 마애석./4여성 상징 바위를 불과 10m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남성 상징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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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숙소에 나서 산행 들머리인 행화촌 마을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8시10분. 구름인지 안개인지 조금 끼어 날씨가 흐렸다. 태산엔 맑은 날이 연중 며칠 안 된다고 했다. 밤나무 숲길이 줄곧 이어졌다. 태산 곳곳엔 밤나무가 널려 있었다. 밤나무 묘목 군락지도 눈에 띄었다. 개울을 지나 10여 분 올라가니 임도가 나왔다. 정상에 호텔까지 있으니 임도가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정상까지 차는 올라갈 수 없다. 필요한 물건은 사람들이 일일이 짊어져서 나른다. 임도를 따라 다시 10여 분 지나 산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꼬불꼬불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연화봉에서 첫 휴식을 취했다. 인수봉 정도는 안 되지만 암벽꾼들이 보면 탐낼만한 암벽 봉우리였다. 태산은 전형적인 악산(岳山)이라 한국의 암벽꾼들이 가면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그냥 생길 것 같았다.
황동호 사장은 이 등산로가 자신이 개척하기도 했지만 염소 방목꾼들이 다니던 길이라고도 했다. 등산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염소 똥이 그 사실을 말해줬다. 희미한 등산로를 황 사장을 따라 올라갔다. 아토봉이 나왔다. 황 사장이 이름 붙인 봉우리다. 태산에 트레킹 온 아토산악회 이름을 땄다고 했다. 봉우리 하나만 우뚝 솟은 암벽 덩어리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출발했다. 10여 분 지나니 아찔한 칼바위능선이 나왔다. 쳐다만 봐도 아슬아슬한 암릉이다. 이 길을 지나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렸고 오금이 펴지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수백 미터 낭떠러지가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능선길은 2㎞가 족히 됐다. 1시간여 조심조심 지나가니 드디어 능선 끝이다. 긴장한 만큼 기분도 짜릿했다.
칼바위능선을 내려오자마자 바로 여성 상징 바위가 떡하니 눈앞에 띈다. 남성들이 서로 기를 받는다고 앉았다. 태산의 기는 유명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국의 정치인들과 무속인들이 태산의 기를 받으러 태극봉에 자주 온다고 했다. 여성 상징 바위에 앉으니 10m쯤 앞에 남성 상징 바위가 우뚝 솟아 보인다. 묘한 연상이 스쳐 지나갔고 무슨 궁합인가 싶었다. 다들 한 포즈 취하고 다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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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우뚝 솟은 ‘아토봉’. /2태산 정상 옥황정에 있는 옥황상제 모습.촬영금지지만 몰래 찍었다. /3옥황정 내에 있는 태산극점./4태산 정상에 붐비는 사람들.최고 200만 명이 모인다고 한다
- 7천여 계단길 30여 분만에 하산
정상 도착 1시간여 앞두고 점심 자리를 펼쳤다. 낮 12시 정각이다. 식사와 잡담으로 1시간여 보낸 뒤 다시 일어섰다. 왼쪽 능선으로 하늘을 향한 촛대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은 천촉봉과 소천촉봉, 이들 주변의 기암절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옆 이름 없는 봉우리를 철원산악회 등산 기념으로 철원봉으로 명명했다.
마침내 정상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조그맣고 빨간 열매를 맺는 마가목 군락지를 지나 일출을 보는 광장인 만인석에 올라섰다. 명절 때만 되면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자리 잡기 힘들다는 그 만인석 광장이다. 태산 정상의 동쪽 끝자락이라고 볼 수 있다.
드디어 정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신선교를 지나 오악독존과 앙두천외라고 새긴 마애석 등이 나타났다. 태산에는 글을 새긴 돌이 2,200여 개소나 있어 중국 마애석각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정상엔 명나라 때 세웠다는 옥황정이 있다. 옥황대제를 모신 사원이다. 정중앙엔 옥황상제, 왼쪽엔 관세음보살상, 오른쪽엔 재물을 부르는 신을 모시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중국의 수많은 황제를 발아래로 굽어보며 오랜 세월을 지켜왔다.
옥황정 입구 바로 앞에 그 유명한 무자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무자비에 대한 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하고 BC 220년 전후 태산 정상에 올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는 뜻에서 세웠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한 무제가 BC 100년 전후 자신의 업적을 후대인들이 평가하라고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다는 설이다. 두 가지 설 모두 그럴 듯하다. 역사학자들은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무자비를 보고 있으면 과거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상상의 나래가 다가가는 듯했다. 모두 2,000년 전의 사실들이다.
이젠 하산길이다. 옛날 황제들이 다니던 천가를 거쳐 남천문에서 갈림길이다. 천가는 옥황정, 일출을 보는 일관봉과 더불어 태산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각종 기념 가게들이 내려가는 오른편으로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남천문에서는 케이블카 타려는 사람은 곧바로 조금 더 걸어가면 되고, 걸어서 가는 사람은 그 무지막지한 계단길로 내려가면 된다. 계단길은 힘들지만 각종 유적지를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남천문에서 계단길로 1.5㎞ 내려오면 유서 깊은 오대부송이 있다. 이 소나무의 유래는 진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시황이 봉선을 지내기 위해 산을 오르다가 큰 비를 만나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시황은 소나무에게 24작위 중 9번째 작위인 오대부를 내려 고마움을 표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소나무는 2000년 전의 그 소나무가 아니고 청나라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7,000여개의 계단길을 30여 분만에 내려왔다. 무릎이 욱신거렸다. 중천문은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는 곳이고, 계단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하산행 버스를 탔다. 철원산악회팀들은 케이블카로 내려왔지만 시간은 10분은 채 차이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천외촌 광장까지 와서 그 날의 산행을 모두 끝냈다. 천외촌 광장은 서쪽 등산길의 시작이고, 산과 도시의 결합부이며, 등산객과 유람객의 집산지이기도 한 곳이다.
다음 호에서는 F코스에서 A코스로 하산하는 과정을 문학작품과 마애석각에 나타난 태산을 함께 살펴보면서 올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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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태산에 7개 등산로 개발
황동호 중국태산트레킹 사장
“중국에 등산붐 일으킬 겁니다.”
“2005년 5월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태산에 올라 등산로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갔던 길 10회 이상, 1년에 200회 이상 태산에 올랐습니다. 2년간 개척했으니, 총 400회 이상 태산을 오르내린 셈이죠. 아마 저가 세상에서 제일 많이 태산에 올랐을 겁니다.”
중국태산트레킹을 만들어 태산 가이드를 하고 있는 황동호(51) 사장. 처음엔 고생도 무지 했다. 눈이 와서 없어진 길을 찾아 헤매다 미끄러져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길을 완전히 익히기 위해 산행리본도 붙이지 않고 다녔다. 어둑해진 저녁 무렵 귀신 같은 동물을 만났으나 서로 놀라 도망가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등산로를 완전히 개척한 2007년 5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태산 트레킹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한 기존 계단길에 식상한 등산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호평도 이어졌다. 각 코스마다 짜릿한 암릉코스가 꼭 있어 경관과 스릴 모두 맛볼 수 있는 등산로를 소개한다. 태산이 가진 유적 소개는 필수다. 중국 현지에서 인터넷(http://cafe.daum/lovetaishan)으로만 소개하고 있으니 홍보에 한계가 있었다. 인터넷에 ‘중국태산트레킹’으로 검색해도 된다. -
- 한국에서의 무료 전화(0505-679-1526 또는 0504-898-7440)도 개통했다. 한국 어디에서 전화해도 공짜다. 그는 등산객에게 한국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대장금’이란 식당도 개업했다. 최근엔 100% 태산의 기를 받은 자연산 도토리 가루까지 제공하면서 한국 등산객에게 태산을 소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원래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건설자재사업으로 10억 남짓 벌었다. 그 돈을 자본으로 중국에서 김치를 수입했다. 중국김치를 한국에 첫 소개한 장본인이다. 진해에 가공공장과 냉동창고를 세웠다. 사업은 번창했다. 수십억을 벌었다. 자녀들 학교운영위원장을 5년간 맡아 지원하기도 했다.
진해 JC회원으로도 11년간 활동했다. 상임 부회장까지 맡고 회장할 차례였으나 IMF와 태풍 매미로 인한 타격으로 사업을 완전히 접어야 했다. IMF로 30억원 가까이 날렸다. 그나마 조금 버틸 여력은 있었으나 2003년에 몰아닥친 태풍 매미로 확인사살(?) 당했다. 정해진 금액으로 계약을 맺은 김치를 태풍으로 인해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도저히 납품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완전히 거덜 났다.
교류하고 친분있던 사람들 하나둘씩 떠나고 세상 살 의욕도 잃었다. 자살하려 방에 들어갔으나 딸이 5분마나 한 번씩 문을 열어 확인했다. ‘내가 어찌 저런 딸을 두고 갈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왔다. 처음에 마음을 안정시키려 막무가내 태산에 올랐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수차례 오르니 ‘아, 이것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국 여행가이드 자격증도 땄다. 지금은 사업가로서 재기나 굴곡 있는 삶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을 더 갖고 있다. 그냥 먹고 살 정도만 벌면 된다고 여긴다.
앞으로 태산과 연계해 5악도 개발해 볼 작정이다. “중국에 등산문화붐을 일으켜 볼 생각입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여가를 즐기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등산이 어떤 운동보다 좋다는 걸 인식시켜볼까 합니다.”
그의 불도저 같은 사업가적 기질과 30년 되는 산행 경력을 중국에서 발휘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글·사진 박정원 차장대우 jungw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