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과 발가락
어린 시절 링컨은 불량배들과 자주 어울렸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런 링컨에게 석탄 한 덩이를 쥐어주며
“손에 검정이 묻지 않게 받아보렴.” 그랬다한다.
이를 알아차렸던지 링컨은 그 후로 불량배들에 물들지 않았다는데,
어떤 더러움에도 물들지 않고 피어난다는 꽃,
연꽃의 속성 중 으뜸으로 이제염오(離諸染汚)를 든다.
그런 연꽃도 꽃 대공을 더듬어 내려가노라면
종당엔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있음을 만나게 된다.
추운 날
수면을 스치는 백조의 유영을 보라.
걸림 없는 자유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그렇듯 연꽃의 고운 자태를 즐기는 것도
백조의 유영을 즐기는 것도
때론 물 위까지만 시선을 두고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찬물에 발갛게 상기된 채
한없이 헤젓는 발가락은 어찌 보아야 하는가?
대개 아름다움은 ‘미학적 범주’로 간주된다.
그래서 윤리적인 것과 충돌한다고 보는 이가 많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도덕과 관계가 없어 보이더라도
완전히 맨몸인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수전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 에서)
문학은 어떨까?
“발가락이 닮았다”
이는 1930년대에 나온 김동인의 소설인데
유곽에 자주 출입해 성기능을 상실한 주인공 M은
늦장가를 든다.
그러한 M이 결혼 2년 뒤에 아기를 안고 의사를 찾아간다.
자기 자식임을 보장받으려는 심사다.
M의 친구인 의사는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아기가 발가락뿐만 아니라 이모저모
M을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해준다.
이걸 대개는 휴머니즘 소설로 분류하지만
M 아내의 불륜엔 눈감아야 하는가?
M의 속셈인 대를 잇는다는 건 무얼 말하는가?
과학(의학지식)은 휴머니즘 아래에 두어야 하는가?
그래서 이 소설이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다 하더라도
도덕이나 윤리와 유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물 위만 보고 살아가는 것 같다.
대전 육군통신학교에서 군 생활 할 때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군에 입대했으니
용돈도 조달받지 못했을 뿐더러
아직 딱지가 덜 떨어진 때였다.
토요일 외출허가를 받고 인근 고모님 댁이나 방문했는데
하루 자면서 쉴 요량이었던 것이다.
허나 다른 동료들은 대포집으로, 시내 유곽으로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을 터였다.
대전에 사는 고모부가 경찰서장이었는데
당시엔 충남 청양경찰서에 근무 중이었다.
따라서 고모님도 따라가서 함께 그곳 관사에 머물었다.
고모님 딸인 상희는 대전 성심여고 2학년이었다.
고모님 아들 상구는 마침 그날 친구집에 놀러갔다 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다가
잠자리를 펴고 상희와 함께 누우려는 찰나에
동생 상구가 들어오더니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계시란 말인가...
한동안 잠을 청하려 뒤뚱뒤뚱하다가
사촌들의 발가락과 내 발가락이 맞닿기도 했다.
이건 또 무슨 전조인가...
밤은 여지없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형, 잘 잤어?” 상구가 하는 말인데
이건 또 무슨 인사던가...
나는 그날 밤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손으로는, 입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렇게 밤을 지냈던 내 발가락,
그런 발가락으로 지금도 나는 평형을 잡으며 걷는다.
첫댓글 남성방 이벤트 첫 응모글로 참여하신 석촌선배님의
발가락이 닮았다..
윤리와 도덕에
벗어난 휴머니즘에
고갤 끄덕이며..
의미있는 첫 참여글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부끄럽습니다.
석촌 선배님께서 대전에 있던
육군 통신 학교를 나오셨군요.
거기가 상당히 군기가 세다 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대전에서 다녔습니다.
가끔씩 목욕하러 유성 온천에 가노라면
공군 기교단(공군 기술 교육단) 근처에
있었던 걸로 기억 합니다. 맞나 모르겠네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미 제대를 하셨겠지요.
남성방 활성화를 위해서 이벤트라고 열어 놓기는 했는데
참여 하시는 분이 없으셔서 기가 꺾여 가는데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건강히 계시다가 10월 창립 기념 회장에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그랬군요, 저와 접점이 많이 있네요.
산애님이 애쓰시는 걸 보고 올려봤는데
제 글이 재미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