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숲을 거닐며 윤회를 생각하다 옥창열
순환의 서사
여름철 무성한 숲을 거닐다 보면 문득 숨이 멎을 듯한 거대한 생명의 숨결을 느끼곤 한다. 짙은 초록으로 물든 울창한 나뭇잎들이 쏟아내는 열기와 세찬 소나기를 머금어 짙어진 흙내음, 그리고 매미 울음 가득한 숲을 활기차게 가르는 들짐승의 움직임까지. 이 찬란한 생명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이 모든 것들을 이루는 근원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나무와 풀, 호랑이, 그리고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인간의 몸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의 거대한 뼈대는 탄소로 빚어졌다. 물을 제외한 우리 몸의 절반 이상은 탄소다. 네 개의 팔을 뻗어 주변의 다른 원소들을 단단히 움켜쥐는 탄소의 비범한 결합력 덕분에, 생명은 비로소 복잡하고 정교한 단백질을 만들고 DNA라는 생명의 지도를 새길 수 있었다.
식물은 보이지 않는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햇빛이라는 우주적 에너지를 더해 제 몸을 키운다. 기체에 불과했던 탄소가 비로소 생명의 살과 피가 되는 유기질 탄소로 고정되는 순간이다. 동물은 제 손으로 탄소를 빚지 못해 식물을 먹거나 다른 동물을 취하고, 다시 호흡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식물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참으로 경이로운 순환의 서사가 아닌가.
영혼의 신기루
고대 인도의 전통 신앙이나 대승불교 계열에서는 인간이 쌓은 선과 악의 업에 따라 좋은 가문에 태어나기도 하고 개나 소 같은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한다며 인과응보의 윤회를 설파했다. 그러나 합리적 사유의 눈으로 바라볼 때, 기억과 의식을 품은 영혼의 영속을 증명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뇌라는 물질적 기반이 멈추는 순간, 내가 ‘나’라고 믿었던 그 견고한 자아는 신기루처럼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선을 의식에서 물질로, 자아에서 원소로 돌리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아름다운 윤회가 눈앞에 펼쳐진다. 자아의 영속은 없을지라도, 나를 구성하던 육체의 원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이 지구를 영원히 구르는 거대한 순환 속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대지에 묻히거나 한 줌 연기로 흩어진 나의 탄소는, 어느 날 들판에 피어날 이름 모를 야생화의 줄기가 될 것이며, 깊은 산속 호랑이의 강인한 근육이 될 것이고, 먼 훗날 다시 태어날 어느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만드는 세포가 될 것이다.
지구상의 탄소 총량은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 심장을 뛰게 하는 탄소 원자 중 어떤 것은 수억 년 전 대지를 호령하던 공룡의 뼈 조각이었을지도 모르고, 어느 먼 시대 청산을 노래하던 시인의 뜨거운 심장에 머물던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동식물의 생을 거쳐 잠시 내 몸에 머무는 이 원소들의 여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윤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윤회의 참 모습
인과응보를 강조한 대승불교의 대중적 방편과 달리, 실제 붓다가 설파했던 본래의 사상은 이러한 현대 과학의 원소 순환과 한 핏줄처럼 닮아 있다. 초기 불교 철학의 정수는 고정불변하는 나를 부정하는 ‘무아론(無我論)’에 있었다. 영혼이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이사 가듯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나’라는 주체는 원래 없다고 본 것이다. 단지 인연과 조건에 따라 물질과 정신의 에너지가 잠시 모였다가 흐르는 과정이 있을 뿐이므로,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친다.
무아(無我)의 철학을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곧 탄소의 순환이다. 영원히 고정된 내 몸이란 없다. 원소들이 화학적 인연에 따라 잠시 결합하여 인간이라는 형상을 이루었을 뿐, 때가 되면 흩어져 대지와 공기로 돌아가고,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 나무가 되고 풀이 된다.
"강물은 고정된 형태 없이 끊임없이 흐르며 바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강'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생과 사도 이와 같다."
자아라는 짧은 기억은 한 세대의 삶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일부였던 원소들이 앞으로 태어날 수많은 생명의 뼈대가 되어 이 푸른 행성을 영원히 영속하리라는 진실은, 영혼 구원이라는 비과학적 위안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깊은 안도감을 준다. 나는 죽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대지의 모든 생명 속으로 번져가는 것이다. 숲을 흔드는 바람 속에서, 나는 그 순환의 푸른 숨결을 느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