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 기차를 타고
어제는 기차를 탔다.부산해운대에 볼일이 있어서다.
서경주에서 해운대까지 무궁화기차, 육천원에 표를 끊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눈은 바깥으로 고정이다.
산과 들이 휙휙 지나간다.
산은 겨울산이 온전한 제 모습이다
옷을 벗은 나무들이 산수화에 나온 띠처럼 음영이 지는 산들을 본다.
경주 가까이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는 저기가 어디쯤이지 다 알 것 같다.
우리나라는 산이 생활권 안에서 같이 부대끼는 셈이다.
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요즘은 산중턱에, 산계곡진데, 심지어 산꼭대기에도 너무 많은 집들과 시설물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산이 자꾸 없어진다는 것이 걱정이다.
역 이름도 귀에 담긴다.
안내방송에 나오는 좌천역이 인상적이다, ‘한직으로 밀려나다’가 좌천일텐데 그 옛날 큰 선비가 좌천되어 와서 마을이 좌천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별 상상을 다해본다.
동해남부선 무궁화기차, 의자는 낡아 삐걱이다 못해 허리가 아팠다.
2시간정도 가면서 몇 번이나 허리를 들었다 놨다 했다.
이익을 많이 내지 못하니 투자는 항상 뒷전이리라.
해운대역에서 내려 139번 시내버스를 탔다.
우체국도 지나고 빌딩아파트도 지났다.
버스 안내멘트에 동백초등학교라고 나온다. 참 이쁜 이름이다.
목을 빼서 학교 담장에 동백꽃이라도 피었나 찾았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해운대 구청 앞에 내렸다. 구청 가는 길을 어떤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자신의 친정이 경주 가까운 곳이라고 말하며 지름길 골목길로 같이 가주신다.
해운대 구청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두리번 찾아보니 중국집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늦은 점심시간이라 나 혼자 뿐이다.
자장면을 시켰다.
자장면을 먹어본 것이 오랜만이다. 나이가 들고는 면 종류는 멀리하게 된다.
모임이나 외식을 가도 언제부터인지 속 편한 한식을 찾게 된다.
단무지와 양파에 식초를 뿌린 반찬으로 자장면 한 그릇을 맛나게 먹었다.
자장면을 처음 먹어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4학년 열한살 때였다.
다니던 학교에는 하루에 두 번 버스가 왕래한 시골학교였다.
담임선생님이셨던 이종학 선생님과 몇몇 아이들이 읍내에서 하는 대회에 참가했던 날이다.
버스 기름 냄새에 멀미를 했던 기억이 난다.
대회를 마치고 중국집에서 새까만 자장면을 한그릇씩 받았다.
낯설게 먹었지만 얼마나 맛있었는지 ..생애 처음 먹어본 자장면 먹은 때를 잊지 못한다.
그후에 졸업할 때까지 시골에는 자장면 집이 없었다.
중학교에 유학 와서도 가난하고 모범자취생이 자주 먹을 수 있는 자장면은 아니였다.
자장면하면 나에게는 유년시절 이종학선생님과 겹쳐져서 생각이 같이 따라온다.
선생님은 몇년전에 고인이 되셨고 그때 우리초등동기 40여명이 선생님 빈소를 찾았다.
그러고 보면 내 기억에는 음식에 대한 유감이 많다.
유감이 만다는 것은 내가 맛나는 것을 좋아하고 탐식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일 것이다,
먹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면 음식에 대한 유감이란 말도 꺼내지 않을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닭백숙 같은 것이다.어릴 때 엄마가 닭을 잡아 백숙을 만드셨다.
실컷 놀다가 때를 놓쳐 집에 오면 마당에서부터 고기 냄새가 났다.
살코기는 없고 실오리처럼 몇가닥 살점이 떠있는 멀건 국물을 준다.
거기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린 기억이 생생히 난다.
말아먹은 밥은 백숙에 함께 넣어 푹 고은 찹쌀밥이였다.
나는 이 찹쌀밥이 질고 물컹하여 싫었는데 백숙 할 때마다 찹쌀을 듬뿍 고으셨다.
때를 놓친 나의 불찰이긴 했지만 살코기 한 점 숨겼다가 주면 좀 좋았을까 하는 서운함이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을 키울 때는 통닭을 주문할 때는 아이마다 한 마리씩 시켜서 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몰랐는 행동같다.
나의 아이들은 이제는 다 컸다. 자식의 건강 생각을 못했던 엄마지만 통닭 한 마리씩을 공평하게 시켜준 엄마를 고맙게 기억한다.
친정 식구들과 옛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나의 그릇에 살코기 한점 없었던 닭국물이야기가 튀어 나온다.
엄마는 그러신다. 식구는 많고 누가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몰랐다고 하신다.
그랬을 것이다.엄마는 일에 치여 살았다. 엄마인들 고기 실컷 자셨겠는가?
지금의 엄마는 내가 고기를 좋아했던 것을 늦게 알았단다.
많이 미안해하시면서 요즘은 고기 먹자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그렇지만 이제는 엄마도 나도 고기 많이 먹으면 안 되는 몸과 나이가 되고 말았다.
이래저래 음식유감이다.
섣나곱재기 기차를 타고 사천오백원짜리 짜장면을 먹고서 나는 참 말이 많다.
우짜겠능가! 수다쟁이아줌씨를!
첫댓글 동해남부선 무궁화호!!
이름만으로도 이야기가 막 쏳아질 것 같은 설레임이 듭니다ㅎㅎ^^*
무궁화호는 괜시리 느긋하게 맘 갖게 해주는 서민기차지요.
KTX가 간격이 좁아 옆사람 눈치 본다면 무궁화호는 간격이 넓어 그저 편안히 숨쉬기 좋은 참 편안해요.
그날 제가 앉은 의자가 얼마나 삐걱대고 뒤로 넘어가던지요,
--바꿔주세요-- 절로 말하고 싶더군요.
저도 일요일에 해운대 갔다 왔어요. 오늘 내일 너무 할 일이 많아 모레쯤 댓글 쓸께요.
저두 할 말이 많아서요..
비도 오는데 무슨 할일이람요? 감기기운도 있으시다며 좀 쉬시지요?
어느날 님은 이 밤에, 비오는 이 밤에 친구랑 첨성대 돌고 있다고 하대요.
@엽서 비정상인도 많은 카페예요. 그건 경주이기에 가능한 사람들이지만..
어느날님, 고간 해외여행갔다 왔대요.
낭군님하고 갔으니 이해해주고 카페 하루 결석에 막걸리 한주전자씩 내놓으라하셔요.
젊은 사람이 언니 오빠들은 열심히 카페 출석부 체크하고 가는데 무단결석 삼일이상이면 곤란하잔습니까 카페운영자님
해운대 구청은 왜 가셨는지요? 별 거 다 묻죠?
첨에 경상도에 와서 출산에 살게 됐는데 동해 남부선 기차가 너무 맘에 들었어요.
물고기의 비닐까지 환히 드려다 보인다는 동해. 부산에서 강릉까지 가고 싶었지요.
동화도 한 편 썼어요. '갈매기와 나무십자가'
이제 우리집 앞 동해남부선 철로도 곧 없어진다고 합니다. 통일호, 무궁화호 그 추억도 깡그리 잊게 될까요?
기차 타고 해운대 갈 일도 없을까?
솔향님 . 글 맛있게 읽었습니다.
부산에서 시작을 하던 저 남쪽 해안 어디에서 시작을 하던 강원도 끝까지 갈 수있는 기찻길이........................
동해바다를 죽 따라가면서 기차길이 있었다면....
만약에 그게 오래전에 기차가 다녔다면
우리 문학사에 글쟁이들이 많고 많은 이야기글을 낳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해안에 쑥 들어간 부분에는 그름다리를 놓아 그 위로 철로를 깔아 바닷물 위로 기차가 지나가고....... 철썩 쏴아 칙칙 푹푹
동해바닷길에 기차가 다녀.....저 설악산을 지나 화진까지 기차가 다녔다면 ........참 좋았겠지요?
부산
그리고 해운대 !
역동적, 다이나믹, 활기, 생기, 꿈틀거림.......
그런 단어들이 생각나는 곳입니다.
저도 근래에 이런 저런 일로 자고 가게 되더군요.
그런데
해운대라는 지명, 그리고 해운 최치원 선생의 흔적들을 보며
경주 사람으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답글이(힌트) 궁굼해서 찾아보니 아랫글이 나와서 옮겨봅니다.
해운대 이름에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오늘날 '해운대(海雲臺)'의 지명을 있게 한 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있다.
그는 해운대의 빼어난 해안 절경에 매료돼 대(臺)를 쌓고 동백섬 바위에 자신의 호 '해운(海雲)'을 새겨 해운대라는 지명이 유래하게 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소나무향기 무지함을 공고
저는 최치원 선샘의 호가 海雲 였는지도 몰랐네요..
@미류나무 최치원 선생님의 호는
고운
또
해운 입니다 ㅎ
주로
고운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요.
@남산 덕분에 상식을 넣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1일에 갔었던 해운대. 그날따라 정말 역동적이고 일욜이라서인지 10분 거리가 30여분 씩은 소요되었다.
해운대 도착은 오전 10시경이었다. 옵스 빵집에 가 아침으로 커피와 빵을 한개씩 밖에 안먹었다. 왜냐하면 지인의 생일 밥을 근사한 뷔폐에 가서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 먹고 싶어도 서로가 먹지말라고 말렸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 해운대 거리는 새로운 기분이었다. 미술관으로 도서관으로 재미있게 다녔다.
그리곤 서로가 헤어져 각자 볼일을 보고 다시 만나니 서로가 하고싶은 것이 다른 것이다.
근사한 점심은 커녕 서로가 빵 한조각도 못 먹었다. 지인은 영화의전당에서 3시간짜리 다큐 영화를 보고싶고 나는 쎈텀에 가고싶다
영화 3시간이란 나에게 너무 길었다. 내용도 모르고 자신도 봐야 안단다. 우선 도로가 너무 복잡해 주차도 어느곳으로 가라고 건물 마다 주차요원들이 나와 있다. 영화의 전당 앞도 차를 빼고박도 못했다. 슬슬 스트레스가 온다. 간신히 도착한 영화의 전당에서 지인을 내려주며 끝나고 버스타고 오라 했다. 나도 어찌어찌 해운대를 빠져나와 부산 톨게이트에 도착 쭉쭉 빵빵 달렸다. 돌아오는 길 배가 넘 고파 언양 휴게실에서 우동 한그릇으로 우선 배를 채웠다.
생일밥 먹자고 나드리 갔던 해운대에서 쫄쫄 굶고 떼놓고도 왔다.
저녁 늦게 전화가 왔다. 경주라고..
자기 영화 안본거 너무 잘했단다. 그 한마디에 스트레스는 확 날라갔다.
해운대에서 친구의 생일축하 점심을 먹자해놓고는
일정이(서로의 기호) 맞지 않았지만,
맘 편한 친구였기에 가능한, 한분은 영화보려고 남았고
미류님은 경주로 돌아오셨고...............것도 배가 엄청 고파가며.... 추억이 되겠네요.
생일 점심은 경주서 다시 날 받으셔야겠어요.
해운대는 잘은 모르지만 역동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더군요.
긴 댓글 주셔서 감사드려요..
@소나무향기 서울은 강남이라해도 부분부분 건물이 들쭉날쭉 한데 해운대는 하얀 도화지에 처음부터 기획을 해 역동적인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전반적으로 국제도시 같은 느낌으로 깨끗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툭하면 무궁화타고도 잘가요. 해운대역이 요즘 바뀌어 중심부로 들어가기가 불편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