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肹召 子欲往 필힐이 부르자 공자께서 가려고 하셨다. 佛 音弼 肹 許密反: 佛은 발음이 필이고, 肹은 허밀반, 즉 힐이다.
○ 佛肹 晉大夫趙氏之中牟宰也 필힐은 진나라 대부 조씨의 중모성 읍재다. 子路曰 昔者由也聞諸夫子曰 親於其身爲不善者 君子不入也 佛肹以中牟畔 子之往也 如之何 자로가 말하기를, “옛날에 제(由)가 공자께 들으니, 말씀하시기를 ‘직접 자신이 나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군자는 그 무리에게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필힐이 중모읍을 점거하여 배반하였는데, 공자께서 가려고 하심은 어째서입니까?”하니, 子路 恐佛肹之浼夫子 故問此以止夫子之行 親 猶自也 不入 不入其黨也 자로는 필힐이 부자를 더럽힐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물어서 부자가 가시는 것을 저지한 것이다. 親은 스스로와 같은 말이다.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慶源輔氏曰 所謂親於其身爲不善而君子不入者 正恐其汚己也 此固子路之所知也 至於人之不善不能浼聖人 則非子路之所能知也 故引此爲問欲以止夫子之行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른바 ‘제 몸에 스스로 不善을 행하는 자에게 군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 자가 자기를 더럽힐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래 자로도 알고 있는 바였다. 남의 不善이 성인을 더럽힐 수 없음에 이르러서는 자로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를 끌어다 질문을 함으로써 공자가 가는 것을 제지하고자 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聖人道大德弘 所過者化 人之不善一經聖人照臨之 則大者革心 小者革面之不暇 何至有浼於聖人 若夫昏頑之至 不可以常理化者 則聖人又自有以處之 在上則或若堯舜之待三苗 在下則若夫子之待陽貨公山佛肹 亦豈能浼於聖人哉 성인은 도가 크고 덕이 넓어서 그 곁을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교화가 되니, 사람의 不善이 일단 성인의 감화를 받는다면, 크게는 마음을 바꾸고 작게는 얼굴을 바꾸기에 겨를이 없을 터인데, 어찌 성인을 더럽히는 지경에 이르겠는가? 만약 저 멍청하고 완고함이 지극하여 일상적 이치로는 교화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성인께서 또한 스스로 처리할 바가 있을 것이다. 성인께서 위에 계신다면, 요순임금이 삼묘를 대하신 것처럼 할 것이고, 아래에 계신다면, 마치 공자께서 양화, 공산불요, 필힐을 대하신 것처럼 할 것이니, 이 역시 어찌 성인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子曰 然 有是言也 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또 이런 말이 있지 않느냐? ‘단단한 것은 갈아도 닳지 않고, 흰 것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 磷 薄也 涅 染皁物 言人之不善 不能浼己 楊氏曰 磨不磷 涅不緇 而後無可無不可 堅白不足而欲自試於磨涅 其不磷緇也者 幾希 린은 얇다는 말이다. 녈은 사물을 검게 물들인다는 말이다. 이는 곧 남의 不善이 나를 더럽히지 못한다는 말이다. 양씨가 말하길,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은 연후에 반드시 해야 함도 없고 절대 해서는 안 됨도 없다. 굳세고 흼이 부족하면서도 스스로 갈고 물들임에 시험당하고자 한다면, 그 얇아지지 않고 검어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드물다.”라고 하였다.
齊氏曰 涅 水中黑土 今江東皂泥 제씨가 말하길, “涅은 물 속의 검은 흙이니, 지금 강동의 검은 진흙이다.”라고 하였다.
問公山之召子路不悅 夫子雖以東周之意論之 子路意似有所未安也 故於佛肹之召 又擧所聞以爲問 其自信不苟如此 學者未至聖人地位 且當以子路爲法 庶乎不失其身 不可以聖人體道之權藉口 恐有學步邯鄲之患也 朱子曰 得之 누군가 묻기를, “공산불요가 불렀을 적에 자로가 기뻐하지 않자, 공자께서 비록 동주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그것을 논하였지만, 자로의 생각에는 여전히 편안하지 못한 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필힐의 부름에 대하여 다시 공자께 들은 바를 들어서 질문을 하였으니, 그 스스로 믿는 바를 소홀히 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아직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으니, 도리어 마땅히 자로를 본보기로 삼아야 거의 제 몸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성인께서 도를 체행하는 권도를 가지고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는 근심이 생겨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잘 터득하였구나!”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子路之說在子路則當然 蓋子路以己處聖人而未能以聖人觀聖人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자로의 말은 자로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다. 대체로 자로는 자신으로써 성인을 대처하였지만, 성인으로써 성인을 살필 줄은 몰랐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磨不磷涅不緇而後無可無不可者 聖人之事也 堅白不足而欲自試於磨涅 則後世不度德不量力 輕擧妄動 始欲自附於聖人 而終則陷其身於不義之流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갈아도 닳지 않고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은 연후에 可도 없고 不可도 없다는 것은 성인의 일이다. 굳세고 하얀 것이 부족하면서도, 스스로를 갈고 물들이는 것에 시험하고자 한다면, 이는 곧 후세의 자기 덕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힘을 헤아리지 못하여 경거망동함으로써, 처음에는 자기를 성인에게 붙이려 하다가, 끝내는 제 몸을 불의에 빠뜨리고 마는 부류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楊氏謂堅白不足以下 非夫子所言之本意 乃爲子路輩言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양씨가 한 ‘견백부족’ 이하의 말은 공자께서 말씀하신 본래의 뜻이 아니라, 도리어 자로와 같은 무리를 위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내가 어찌 포과이겠는가? 어찌 매달려 있을 뿐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 匏 瓠也 匏瓜繫於一處而不能飮食 人則不如是也 포는 조롱박이다. 포과는 한 곳에 매달려 있을 뿐, 먹고 마실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이처럼 하지 않는 것이다.
朱子曰 不食謂不求食 非謂不可食也 今俗猶言無口匏亦此意 주자가 말하길, “不食이란 먹기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먹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세속에서 입이 없는 표주박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역시 이 뜻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匏瓜繫而不食 蓋言匏瓜蠢然一物 繫則不能動 不食則無所知 吾乃人類在天地間能動作有思慮 自當見之於用而有益於人 豈微物之比哉 世之奔走以餬其口於四方者 往往借是言以自況 失聖人之旨矣 此不可以不辨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포과처럼 매달려 있을 뿐 먹지 않는다.’라는 말은 대체로 포과가 꿈틀거리는 하나의 물건이지만, 얽매여있다면 움직일 수 없고, 먹지 못하면 곧 아는 바가 없는데, 나는 곧 사람의 부류로서 천지간에서 능히 움직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니, 스스로 마땅히 쓰여서 남에게 유익함이 있어야 함에도, 어찌 미물에 견주겠는가? 라고 말한 것이다. 세상에서 사방으로 분주히 다니면서 제 입에 풀칠하는 자들이 종종 이 말을 빌려서 자신을 비유하곤 하는데, 이는 성인의 뜻을 잃은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張敬夫曰 子路昔者之所聞 君子守身之常法 夫子今日之所言 聖人體道之大權也 然夫子於公山佛肹之召 皆欲往者 以天下無不可變之人 無不可爲之事也 其卒不往者 知其人之終不可變而事之終不可爲耳 一則生物之仁 一則知人之智也 장경부가 말하길, “자로가 예전에 들은 바는 군자가 몸을 지키는 일상적인 법도였다. 부자께서 오늘 말한 것은 성인이 도를 체현하는 큰 권도다. 그러나 부자께서 공산불요나 필힐의 부름에 모두 가고자 한 것은 천하에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고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신 까닭이다. 공자께서 결국 가지 않으신 것은 그 사람이 결국 변화되지 못하고 그 일을 결국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따름이다. 하나는 곧 만물을 내는 仁이고, 하나는 곧 남을 아는 지혜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佛肹召子 必不徒然 其往義也 然不往者 度其不足與有爲也 정자가 말하길, “필힐이 공자를 부른 것은 틀림없이 한갓되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공자가 가는 것은 의로운 것이다. 그러나 가지 않았던 것은 그가 더불어 훌륭한 일을 도모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헤아렸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公山弗擾佛肹召而欲往者 乃聖人虛明應物之心 答其善意 自然而發 終不往者 以其爲惡已甚 義不復可往也 此乃聖人體用不偏 道並行而不相悖處 然兩條告子路不同者 卽其所疑而喩之爾 子路於公山氏疑夫子之不必往 故夫子言可往之理 於佛肹恐其浼夫子也 故夫子告以不能浼己之意 주자가 말하길, “공산불요와 필힐이 불렀음에도 가고자 한 것은 곧 성인의 허심탄회하고 명철하게 남을 대하는 마음이 그 선의에 대답하여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고, 끝내 가지 않은 것은 그가 악을 행함이 이미 심하였기에 義에 비추어 더이상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성인의 體와 用이 치우치지 않고 도가 나란히 행해져서 서로 어긋남이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자로에게 알려준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은 자로가 의문을 가진 바에 나아가 그것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일 뿐이다. 자로는 공산불요에 대하여 공자께서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그래서 공자는 갈 수 있는 이치를 말한 것이다. 필힐에 대해서는 그가 공자를 더럽힐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공자께서는 그가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는 뜻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夫子於佛肹之召 但謂其不能浼我而已 於公山氏之召 却眞箇要去做 공자께서는 필힐의 부름에 대하여 단지 그가 나를 더럽힐 수 없다고만 말하였을 따름이나, 공산씨의 부름에 대해서는 오히려 진짜로 가서 하고자 하였다.
問佛肹不擾之召 孔子欲往 此意如何 曰 此是一時善意 聖人之心 適與之契 所以欲往 然更思之 則不往矣 蓋二人暫時有尊賢尙善之誠心 故感得聖人有欲往之意 然違道叛逆 終不能改 故聖人亦終不往也 譬如雲陰忽略開霽有些光明 又被重陰遮蔽了 問陽貨欲見 却終不許他 曰 貨全無善意 來時便已不好了 故亦不能略感聖人 누군가 묻기를, “필힐과 공산불요가 불렀을 적에 공자가 가려고 하였는데, 이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것은 그들의 한때의 선의인데, 성인의 마음이 때마침 그것과 더불어 들어맞은 것이다. 그래서 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여 보고서 가지 않았던 것이다. 대개 두 사람에게 잠시 동안 현자를 높이고 선을 숭상하는 정성스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성인을 감동시켜 가고자 하는 뜻을 갖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도를 어기고 반역함을 끝내 고칠 수 없었기에, 성인께서도 역시 끝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예컨대 구름 그림자가 갑자기 걷히면 다소 광명이 있다가도 다시 짙은 구름에 가려지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양화가 만나보고 싶어 했지만, 끝내 그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양화에게는 선의가 전혀 없었고, 올 때에도 이미 좋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역시 성인을 조금도 감동시키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自聖人言之 則固無不可爲之時 亦無不可爲之事 無不可敎之人 然其所遇 則有不可必者 天未欲平治天下 則在時者有不可爲也 上之人不我用 則在事者有不可爲也 誨之詢詢 聽之藐藐 則在人者有不可敎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성인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본래 할 수 없는 때가 없고, 또한 할 수 없는 일이 없으며, 가르치지 못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만나는 바에 있어서는, 반드시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늘이 아직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으면, 때에 있어서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윗사람이 나를 쓰지 않는다면, 일에 있어서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일깨워주기를 정성스러게 하여도 듣기를 아득히 한다면, 사람에게 있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