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실 이상보 회장님 팔순 잔치 축하 글]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사무총장 이대로
선생님, 더 많이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 주세요.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한실 이상보 회장님을 모시고 한글사랑운동을 할 수 있어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일하면서도 만나고 놀면서도 만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고 함께 모시고 배울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고 기쁨이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40년째 국어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한글이 살고 빛나야만 우리말이 살고, 우리말이 살아야 우리 겨레와 나라가 잘된다고 굳게 믿고 한글사랑운동에 앞장서왔다. 그동안 한글사랑운동을 하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나고 모시고 일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 모두와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모든 선생님이 존경스럽고 고맙기만 한 게 아니다. 때로는 힘들게 하고, 괴롭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름난 분이라지만 실망스런 사람도 있다. 흔한 세상 말로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분이 있다. 그러나 만난 게 잘했고 고맙고 존경스런 분이 있다. 함께 일하면 모든 일이 잘되는 분이 있다. 그런 존경스런 분들 가운데 한 분이 한실 이상보 회장님이시다. 지금 이상보 교수님은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회장님이시고 나는 이 모임 사무총장으로서 이 회장님을 모시고 함께 활동하고 있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글문화연대 등 50여 한글단체 연합회이다. 이 모임은 사무실과 큰 조직을 가지고 날마다 근무하는 모임이 아니고 개별단체가 따로따로 하는 일이 있고, 함께 힘을 모아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힘을 모아 활동하는 모임이다. 초대 회장님은 돌아가신 안호상박사님이신 데 그 때는 한자혼용단체와 맞서서 싸우는 일을 많이 했고, 다음 회장님은 한갑수 선생님이셨는데 한자단체와 싸울 일이 적어서인지 모임 활동이 시들한 상태에서 이상보 교수님이 회장님을 맡게 되었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니 많은 분이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한글단체들 사정이 어려우니 아무도 나서지 않다가 많은 분이 이상보 교수님을 추천했다. 이상보 교수님도 처음에 사양하다가 내가 사무총장을 맡는 조건으로 수락하셨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 어려울 때 총대를 메겠다고 하시고 모임은 살아 움직여야 하기에 모시기로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한글단체를 위해서 참으로 잘한 일이었고 운명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실 선생님을 모시고 한글과 한글단체를 위해 중대하고 뜻깊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일은 한글단체가 오랫동안 바라고 애쓰던 한글날 국경일 제정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이상보 회장님과 내가 손발이 맞아서 큰 효과를 봐서다.
한글단체는 10년이 넘게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기를 바라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지쳐있었다. 16대 국회 때 나는 한글날국경일제점범국민추진위원회(회장 전택부) 사무총장을 맡고 죽을 힘까지 다했는데 이루지 못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엔 발벗고 나서는 신기남의원과 또 여러 의원이 있었으나 야당인 한나라당엔 그렇지 않아서 힘들었었다. 그런 어려움을 이상보 교수님이 풀어주셨다. 이 회장님의 사위이신 정두언님이 17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은 말할 거 없고 한글단체가 하는 국회 활동을 발벗고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이상보 회장님은 내게 "국회에 가면 정두언의원실에 꼭 들러서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나 마음 놓고 부탁하시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정두언의원을 만나보니 친형제처럼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장인께서도 말씀하셨지만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어야 한다는 건 제 소신입니다. 한나라당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고맙고 기뻤다. 그리고 17대 국회엔 꼭 한글날 국경일 제정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각오가 굳어지고 자신감이 들었다. "이제 꿈은 이루어 진다."는 느낌이 온몸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 의원은 말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발벗고 나서 주어서 그 법안이 통과되는 데 큰 몫을 해주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글문화세계화를위한의원모임'을 만들었는데 정의원이 그 모임의 한나라당 간사를 맡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한글 사랑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뒤에, 그 경축 행사 준비를 할 때도 발벗고 도와주었다. 문광부에서 우정사업본부에 기념우표 발행을 요청했는데 안 된다고 하는 걸 정의원이 나서서 되게 했다.
기념우표 발행에 힘쓴 일에 고마운 인사를 하러 국회로 갔더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요. 오히려 한글과 우리말을 살리는 데 애쓰시는 선생님들께 감사해야지요."라며 "제가 국회에서 해야 할 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제게 시키세요."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많은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정의원은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모두 이상보 교수님 덕이고 내가 만나 함께 일을 함으로서 잘 풀린 이야기다. 이상보 교수님과 정두언 의원은 김대중 정권 때 김종필 총리가 한자병용 파동을 일으키고 한글을 짓밟으려 할 때도 도와 주었다. 그 때 한글단체 대표들이 김종필 총리실에 항의 방문한 일이 있는데 이 회장님은 함께 항의 방문했다. 그 때 정 의원에 총리실에 근무했는데 여러 모로 신경을 써주었다. 한글과 한글단체가 어려울 때 꼭 필요한 곳에서 일하면서 도와주는 두 분이 고맙다. 그리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법안이 통과 되었을 때 많은 분들이 나보고 애썼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내가 칭찬받을 수 있는 건 이상보 회장님이 잘 이끌어 주시고 정두언 의원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한글사랑운동을 하면서 이상보 회장님과 관련된 일화를 적었는데 그 밖에 한 사람으로서 이 회장으로부터 배우고 느낀 이야기를 적어보자.
이 회장님은 따뜻한 분이다. 전자우편 꼼꼼한 분이다. 젊은 분이다. 맑고 깨끗한 분이다. 높은 인격과 지식을 가진 분이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면서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주시길 바란다. 2006.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