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13일(토) 14: 00시 볼재 산악회원 14명이 카니발과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1박 2일로 석모도와 강화도에 다녀왔다.
11월 13일
석모도의 보문사와 마애관음좌상(磨崖觀音坐像) 석불(石佛)까지 가서 서해의
낙조(落照)를 바라보는 것이다. 날씨는 맑고 청명(淸明)하나 일몰(日沒) 시간
(17시 20분)까지 대어갈 수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외포리에서 배를 탄 시간이
16시 20분,1시간 안에 도착하여야 한다. 우리일행은 먼저 마애(磨崖)석불
(石佛)앞에서 낙조를 보려고 초조한 마음으로 370계단을 올라갔다.
정의숙 김옥순 회원이 도중에 포기하고 보문사에 있겠다고 하는 것을 용기를
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세요!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낙조를 보려고 모여든 관객들이 백 여명은 되는 것 같다. 해는 아직도
바다에서 한뺨 가량 남아 있고 바다 물은 맑고 고요하다. 잠시 후 저 붉은 태양이
바다 위에 내려앉더니 5분 동안에 바다 밑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이 너무도 장관
(壯觀)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1999년의 마음 아픈 일들이여 저 지는 해와 함께
모두 사라 저라"고 기원하였다. 계단아래에는 보문사가 있다. 보문사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 보문사: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4년(635)년에 회정 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創建)하였는데,
산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상주한다고 하여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衆生)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함을 상징한다
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 대웅전(大雄殿): 내부 넓이는 약 60평이며, 이곳에 관음보살상을 포함해
3,000불이 모셔져있다. 이날 저녁식사는 외포리 소라 3호에서 맛있게 먹고
숙박은 해수 모텔에서 밤이 늦도록 회포를 풀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보문사>
11월 14일
청명한 날씨이다.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마니산 첨성단을 향하여 산행에 나섰다.
계단 길을 오르면 지루할 것 같아 단군로(檀君路) 능선 길을 택했다.
산 중턱에서 쉬면서 서해를 굽어보니 다도해(多島海)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2시간 가까이 힘겹게 올라 정상에 도달하니 우리일행의 선발대가
반갑게 맞아준다. 계단 길로 올라온 회원들이다. 눈앞에 펼처지는 저 넓은
서해의지평선과 단군 성전의 첨성단을 돌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과 전국
체전이 열릴 때면 이곳에서 성화를 채화하여 세계 인류의 존엄(尊嚴)과 평화(平和)
를 기원한다고 하는데 장소가 너무 협소(狹小)하다고 느꼈다. 하산(下山)할
때는 계단 길로 1시간만에 내려왔다. 등산을 마친 우리일행은 전등사(傳燈寺)로
향하였다. 전등사에 담긴 내용을 알아본다.
‧ 전등사: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 ․충혜왕(忠惠王)
․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다.
또 대웅전에 1544년(중종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목판 대웅전 약사전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전등사>
이날 점심을 강화 우리 옥에서 먹고 서울로 돌아 왔으나 강화지역에는 유물,
유적이 많은 고장임으로 훗날 문화재 관광으로 다시 한번 올 것을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