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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어떤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할지는 부모에게 늘 숙제로 남아 있다. 오랫동안 어린이도서관에서 가정독서지도 수업을 이끈 김은하씨가 펴낸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에서 부모들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았다. |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은 이유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부모는 아이가 입학 전에 능숙하게 읽고 쓸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초등학교에 입학을 압둔 자녀를 부모가 도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학교생활에 빨리 적응하려면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즉 듣기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어주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부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말귀를 잘 알아듣게 된다. 한글을 빨리 깨쳤다고 혼자만 읽게 한 아이는 귀가 예민하지 않다. 그러니 혼자서 읽을 수 있는 초등학교 어린이에게도 자주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
쓰기에만 치중하다 보면 발음법칙을 소홀히 한다. 또 긴 문장을 읽을 때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숨도 안 쉬고 단숨에 읽는다. 부모가 발음, 억양, 호흡, 끊어 읽기 등에 신경 쓰면서 읽어주는 수고가 몇 년 쌓이면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도 청산유수로 읽을 수 있다.
부모가 책을 읽어줄 때 잠자코 듣고만 있는 아이는 거의 없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을 묻고,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떠오른 느낌에 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사고 능력이 길러진다. 평소 아이의 질문에 ‘네 생각은 어떠니?’ 하고 대화의 물꼬를 터주면 아이의 사고력이 쑥쑥 자라 어느덧 부모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책을 읽어주면 연상력이 발달한다. 연상 작용이란 머릿속에 그림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상상력과도 일맥상통한다. 유아가 혼자서 책을 읽을 때는 주로 글자에 집중하는데 이 점이 연상 작용을 방해한다.
그림책에 대한 오해와 진실
독서 습관의 골격을 다지려면 고학년이 되어도 그림책을 읽는 것이 좋다. 그림책은 나이의 장벽을 허무는 책이다.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책이 그림책이다. 젤 바클렘의 그림책 ‘찔레꽃 울타리’(마루벌)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3백만 부가 넘게 팔린 그림책의 고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기 회사 영국의 로열 덜튼사에서는 이 그림책을 ‘Four Season’이라는 찻잔 세트로 빚어 판매하고 있다.
그림책은 문화, 과학, 역사, 인물, 철학 등 모든 주제를 다루는, 어린이 책에서 가장 포괄적인 갈래다. 따라서 여러 분야의 그림책을 읽은 아이는 다른 책도 쉽게 받아들인다. 어려운 주제에 입문할 때 그림책의 도움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는 내용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시공사)를 읽으면 사회 교과서에 나온 ‘도시화’의 개념을 쉽게 이해한다. 청각 장애자에 대해 물으면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히말라야)를 책상 위에 놓아준다. 장황한 설명보다 훨씬 낫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일상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좋은 그림책을 많이 본 아이들은 색감이 좋고 형태를 포착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상상력도 풍부해서 화면에 무엇을 채워넣어야 할지 망설이지 않는다. 미적 감각을 키워준다고 미술학원에만 보낼 것이 아니라 아이가 즐겨 보는 그림책의 질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제인 레이의 ‘세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단다’(마루벌)에서 수십 가지의 이름 모를 파랑, 갈색과 녹색을 볼 수 있다. 리즈베스 츠베르거의 ‘안데르센 동화’(마루벌)나 ‘난쟁이 코’(마루벌)에서는 다양한 시각 구도를 경험할 수 있다. 리즈베스 츠베르거는 아동 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세계 정상급 일러스트레이터다. 동화를 읽고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독후감이 아닌가!
좋은 책을 고르는 잣대
어린이 독서교육에서 어른들의 역할은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아이의 발달수준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의 취미, 지적 능력, 성별, 적성, 생활 경험과 환경에 따라 독서 취향이 다 다르다. 무조건 책이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게 마련이다.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서 책을 고르면 아이가 책 읽기에 흥미를 보인다.
요즘은 외국 어린이 서적이 많이 번역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이 번역될 듯한데 세계화 시대에 책 고르기에 중요한 또 하나의 기준은 ‘과연 그 책이 우리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데 해가 되지 않을까?’를 따져보는 것이다. 번역서 중엔 인종 차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들이 더러 있다.
사회학에선 ‘피해적 사회화’라는 용어를 쓴다. 사회에서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너희는 이것밖에 안되는 종자다’ 하고 지속적으로 차별함으로써 사회화의 희생자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 차별, 계층적 차별, 성 차별이 대표적인 예다. 어린이 책에서 성 차별은 피해적 사회화를 강화한다. 작가조차 알게 모르게 피해적 사회화를 조장하는 경우가 있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등이 그러하다. 반면 개성과 모험심이 강한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산적의 딸 로냐’(시공주니어)를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은 새롭고 진취적인 가치관을 제공한다. 그의 작품은 남녀평등의 문제를 생쌀 씹듯 드러내놓고 강조하기보다 여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스며 있다.
독서교육과 예술의 상관관계
‘독서교육’ 하면 책을 손에 쥐어주고 책상 앞에 앉혀놓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이와 비슷한 예로 ‘글짓기 교육’도 문장을 매끄럽게 만드는 잔재주를 가르치거나 학원에 보내 글을 많이 쓰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독서나 글쓰기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 자연에 교감하는 것이 모두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글쓰기에도 영감을 준다. 모든 예술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한 독서력을 지닌 사람이 꽤 많다. 굳이 독서교육과 관련짓지 않더라도 예술 및 자연과 교감하는 사람은 그만큼 삶이 풍요로워진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기 바란다면 집안 분위기부터 예술과 친근해지도록 바꾸어보자. 우선 아이들과 음악 감상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꼬마 친구들에게 선물한 음반 가운데 예외 없이 환영받는 작품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어린이를 위한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다. 프로코피예프는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즐겨 듣던 러시아의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작곡했다고 한다.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등 각각의 악기로 표현한 주제가 흥미롭고 음악 중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아이들이 집중해서 듣는다. 우리나라엔 성악가 조수미가 해설을 맡은 음반이 있는데 탄탄한 발성과 노래하는 듯한 낭독이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음악과 더불어 그림책도 함께 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피터와 늑대’는 음악과 그림책이 행복하게 만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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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대화할 때 피해야 할 것들
“지렁이한테 소금을 뿌리면 왜 죽어요?” 하고 물었는데 “사람도 소금을 많이 먹으면 죽는데 지렁이가 어떻게 안 죽어?” 하고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다시는 질문하고 싶지 않아진다.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자세다. 아이들의 질문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할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대화는 훈계나 비난이 되고 만다. 듣고 싶은 답을 머릿속에 그리거나 답이 뻔한 질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미운 오리 새끼의 엄마 오리는 겉모습만 보고 차별했습니다.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요?” “헨델과 그레텔의 부모님은 가난해서 아이들을 숲속에 버렸습니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같은 질문은 답이 정말 뻔하다. ‘예’ ‘아니오’로 대답하거나 주어진 문장을 해석하는 것, 그 이상의 사고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실직으로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부모가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고 바꿔 물으면 딱히 정답이 없다. 아이들은 ‘고아원에 보내면 굶기기야 하겠나’ 싶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동정론을 펼 수도 있고,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더 이상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토론이 재미나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독후처리법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독후감을 쓰는 것 등을 ‘독후처리’라 한다. 독후처리란 책을 읽고 난 느낌, 생각, 비판 의식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책에서 얻은 값진 교훈이 아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스며들도록 다지는 활동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때때로 막막하다. ‘골목길의 아이들’(길벗어린이)을 읽고 몸이 불편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늘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저금통을 깨고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 돈을 주거나 수술비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골목길의 아이들’은 청소부인 러글스씨와 손빨래 세탁소를 하는 부인, 그리고 그들의 일곱 아이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다. 표지 뒷면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명랑하게 자라는 빈민가 어린이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아 쓴 이야기’라고 되어 있지만 아이들은 러글스 가족이 가난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여러 증거를 찾아줘도 의아한 표정이다. “안정된 직장이 있는데 왜 가난해요?” 아파트 재개발 사업으로 산동네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에 관해 토론을 하면 “새 집 생기면 좋잖아요? 오피스텔에 잠시 가 있으면 될 텐데” 하고 말한다. 넉넉한 집안의 아이일수록 이런 현상이 심하다. 가난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한동네에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섞여 살았다. 지금은 달동네와 고급 주택가가 멀리 떨어져 있고 거기서 자라는 아이들은 서로 만날 기회도 거의 없다. ‘꽃동네 이야기’와 ‘골목길의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서로에 대한 염려와 이해로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면 그것이 최상의 독후감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몫이다.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는요… 98년부터 2003년까지 어린이도서관에서 학부모들에게 ‘가정독서지도’ 수업을 하고, ‘여성신문’에 교육칼럼 ‘책과 어린이’를 연재한 김은하씨가 아이들 독서지도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를 위해 좋은 책 고르는 법과 아이에게 책을 읽힐 때 꼭 알아둬야 할 점 등을 깔끔하게 정리한 책. 학부모 상담 사례와 자신의 육아 경험이 적절히 섞여 있어 실전에 강한 독서지도 지침서로 손꼽힌다. 김은하씨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이화여대와 성균관대 등에서 사회학 강의를 하며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 후속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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