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전국 한문경전 성독대회(정읍)를 다녀와서
具 凡 會(성균관 한림원 3학년)
성독(聲讀)은 우리의 옛 선조들이 소리 내어 책을 읽던, 다시 말해 전통적인 글 읽기 방식이다. 그런 만큼 그 역사 또한 유장하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소 달랐을 수는 있으나 고전을 읽던 선비들의 청아한 목소리가 이 땅에 울려 퍼진지도 벌써 1천5백 년쯤은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유학을 숭상했던 조선시대에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사대부들의 글 읽는 소리로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요즘의 50대 중에는 새벽이면 할아버지나 증조부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을 깼던 분들도 많을 것이다.
지난 196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지방 곳곳에 있던 글방이나 서당들에서 흘러나오는 훈장과 학동들의 한문 경전 성독 소리가 마을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곤 했다.
그랬던 성독이 대다수 일반 사람들 곁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서양식 제도권 교육과 경제 우선의 물질문명에 밀려 우리의 시야에서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반세기 가까운 성독의 암흑기에 성균관을 비롯한 지방 향교와 서원, 한문학자와 그 제자 등 극소수 인사들을 중심으로 실낱같은 명맥을 유지해왔던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이 시기에 이들이 없어 성독이 아예 멸실돼 버렸다면, 어쩔 뻔 했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저 이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14일 성균관과 교육부, 전라북도와 정읍시 등 13개 단체의 후원을 얻어 정읍시 문화원이 정읍시 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주최한 제 7회 전국 한문 경전 성독 대회는 성독의 부활과 보전,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특히 이 대회에서 성균관 한림원은 사상 처음으로 고급부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 각각 장원을 휩쓸고 개인전 장려상까지 받아 전국 각 처에서 몰려온 4백여 유생들에게 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물론 우리 스스로에게도 벅찬 감격과 감동이었다.
자화자찬 같아 긴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했던 한림원생 15명은 짧은 연습기간 임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熱)과 성(誠)을 다했다. 대회 날까지 시간이 워낙 촉박해 휴일에도 나와 연습을 했지만, 연습시간은 다 합해봐야 10시간도 채 안 됐다.
하지만 우리에겐 한림원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없다는 절박한 공감대와 불같은 의지가 있었다. 평소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했으면 모두 수석을 놓치지 않았을 준재들의 면면이었다. 역시 성균관 한림원 유생다운 대단한 저력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또 하나, 학생들의 이 같은 열의에 동화된 성독 대가(大家) 조동영 선생님의 각별하고 수준 높은 지도가 있었기에, 뜻밖에 이처럼 첫 술에 배부른, 값진 성과를 거뒀다.
이날 시상식이 있기 전, 몇몇 심사위원들의 성독도 들어봤지만, 역시 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조선생님의 성독은 한마디로 절창(絶唱)이었다.
한림원 성독의 앞날이 탄탄대로(坦坦大路)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면을 빌어 조선생님께 거듭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다들 잘했지만 어디 이뿐인가.
깊은 관심과 격려 속에 거액의 격려금을 하사하신 최영진 원장님과 대회날 휴일도 반납한 채 새벽같이 달려나와 선수단장으로 우리들의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았던 김종서 선생님, 그리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김준.임옥균.허종은.이성호.함현찬 선생님께도 엎드려 감사를 드린다. 한 분 더 있다. 나이도 잊으신 채 선수이자 고문으로 시종일관 타의 모범을 보이면서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로 거액을 쾌척하신 김도현 선배님께도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우리 모두의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멋진 전통의상을 가져와 우리들의 패션을 돋보이게 해주신 안장환 선배님과 우리의 선전을 기원하며 수상(受賞)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준 한림원 선배, 동료, 후배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회는 시종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지만 경쟁은 치열했다.
대회에 참가한 4백여 명의 선수에다 스튜디오 강당을 빽빽이 메운 1천 명 가까운 청중들이 내뿜는 함성과 박수소리 등으로 대회장은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참가선수들의 기(氣)를 꺾어 놓기에 충분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한림원 식구들은 시종 침착하고 의연했으며 특히 실력에 있어서는 단연 발군(拔群)이었다.
다른 참가팀들은 대부분 일단의 문장들을 보고 읽을 뿐, 우리처럼 외워서 성독하지 않았으며, 성독하는 문장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아마도 그 덕분에 우리가 첫 성독대회 참가임에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정읍대회의 열기는 성독 전국대회가 열리는 진주, 안동 등 몇 개 지역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성독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 그리고 유실 위기에 처한 전통문화의 회복과 유학의 확장이라는 차원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성균관 한림원에 관한 한, 성독은 이제 시작이다.
첫 걸음을 뗀 이상, 쉬지 않는 발걸음으로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유학은 물론이고 성독 보급의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과 의무가 있다. 훌륭한 스승이 있고, 스승으로부터 실력을 전수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경험 많고 성실한 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유학의 한 요소인 성독의 저변을 넓히는데 한국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 그중에서도 실력있는 유생들의 집합체인 한림원이 앞장서 나가야 함은 시대의 요구이자 대세다.
오늘의 우리 유학이 성독을 통해 ‘말하는 유학’으로 영역을 확장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사대부들의 전유물로 판소리와는 또 다른 독특한 운율과 정취, 고저장단의 가락을 갖고 있는 성독의 저변 확대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면서 곧바로 유학의 대중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성독도 판소리나 민요 같은 국악처럼 정부가 인정하고 장려하는 전통문화예술로 지정돼 인간문화재가 연이어 배출될 날도 멀지 않다.
우리 옛 선조들은 성독으로 귀신도 쫒아버렸다고 전해진다.
그런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은 차치하더라도 성독을 통해 심신 수양과 단련, 인격 함양, 암기력 복원, 그리고 옛 선조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다는 점 등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구할 유학의 대중화를 성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편이 될 수도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데 그날의 기쁨과 감격이 꽤 컸었나 보다. 정읍 성독대회에 참가했던 우리들의 귓전에는 지금까지도 사물잠(四勿箴)이 맴돈다.
“其視箴에 曰 心兮本虛하니 應物無迹이라...克己復禮하면 久而誠矣리라...” (끝).
첫댓글 "성독의 암흑기..." 란 표현이 인상적이네...
'성독' 하면 우리에게 떠 오르는 것은 그저 영화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읊어대던 장면 정도랄까...
아~ 참! 이 도령은 몰래 연애하러 가고 방자 넘이 대신 책 읽는 척 했던가... 기억이 아물아물...
ㅎㅎㅎ... ^^
한림원 하면 노벨상과 관련이 있는
스웨덴 한림원이 생각납니다.
장원을 축하드립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할제 쉬어간들 어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