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 밝았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밝아오는 것이 살짝 싫었다. 끙! 소리를 내며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실역에서 만난 종숙 씨와 일행은 대뜸 내 몸 상태를 걱정했다. 어쩔 수 없다. 두어 번 ‘간다’와 ‘못 간다’를 번복한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다’였으니 지금부터 내 몸을 여행에 최적화시켜야 한다. 다행히 승우여행사는 음악도 틀어주지 않고 주최 측의 너스레도 없고 모두에게 소곤소곤 말하기를 주문하는 여행사다. 나눠 준 김밥 반 줄 먹고 잠이 들었다.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나니 이미 공주를 지나 전라도길에 들어선 듯하다. 창밖 햇살은 따사롭다. 아직 덜 진 선홍색 단풍잎들이 반긴다. 승주나들목 근처 진일기사식당 점심은 먹을 만했다. 갓김치와 열무김치에서 나는 독특한 향은 거북스러웠지만 들깨 넣어 무친 토란과 파래무채는 입맛을 살려주었다.
순천만 갈대습지, 이곳엔 다섯 번쯤 왔지만 한 번도 용산 전망대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다. 이곳에 와서 용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순천만 갈대를 보았다 말하지 말라고 한다더니 그 말이 맞지 싶다. 왜 올라야 하는지 알겠다. 너른 갈대숲과 그 뒤로 펼쳐지는 논과 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S자로 휘어져 바다로 나가는 물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가루처럼 부서지며 내리꽂히는 햇빛은 갈대뿌리를 적시고 흘러온 탁한 물마저도 반짝이게 한다.
처음 이곳에 온 게 언제였더라. 십 년도 넘은 11월 하순이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야간 여행기차를 타고 새벽에 와서 희뿌윰하게 밝아오는 새 아침을 맞이했다. 그 땐 주차장도 포장도로도 없었다. 단체 여행객 수백 명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는 갈대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온전히 제 모습을 다 드러낸 갈대숲을 바라보며 현기증이 났다. 압도당했다. 순천만의 갈대들은 키가 크고 조밀하게 자기들끼리 모여 있었다. 도무지 그것들이 흔들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갈대의 순정’이라는 유행가가 나올 만큼 가녀린 여성적 이미지가 아니었다. 새벽 찬기운이 몸속을 파고들어 오들오들 떨면서도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진흙뻘에 푹푹 빠지더라도 갈대숲을 헤치고 깊숙이 들어서고 싶었다. 일단 갈대숲에만 들어서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한 번쯤 그렇게 나를 뭉개보고 싶었다. 한 번쯤 존재의 실종신고를 내고 싶었다.
2008년 12월 31일 해거름녘에도 잠깐 이곳에 들렀다. 저물녘 바람끝이 몹시 찼다. 한 뼘도 남지 않은 야윈 겨울 햇살을 받으며 갈대숲이 흔들렸다. 흔들릴 때마다 숲을 이룬 갈대들은 제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오롯이 홀로였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저 갈대들이 어찌 각각의 존재임을 알 리 있을까. 숲을 이루었을 때는 단지 멋진 풍경이었지만, 바람에 흔들리며 각자의 몸을 보여줄 때는 물기가 다 빠져나간 앙상한 몰골의 슬픈 존재였다. 슬픈 것들이 서로 몸을 의지해 서걱이는 소리를 시인 신경림은 속으로 조용히 눈물 흘리는 울음으로 들었다. 귀 밝은 시인이기에 그리 들렸을 게다. 시인들은 타인의 슬픔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 민감성은 고요하게 상대를 보듬어 주는 눈빛이다. 조금도 채근하거나 윽박지르거나 하지 않고, 그저 그 슬픔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아주 조금 같이 느껴주는 마음이다. 시인이 아닌 나는 그 자리에서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는 들었지만 우는 소리는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바람 한 점 없는 늦가을 오후, 갈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지된 상태에서는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울음은 온몸을 흔든다. 흔들리는 몸짓에 실어 후두둑 슬픔을 게워내고 게워낸 슬픔들은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간다. 갈대는 그렇게 흔들리고 울 때 비로소 존재를 증명한다. 이번 여행길의 갈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는 이번에 갈대를 보긴 보았으나 갈대를 만나지는 못했다.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의 차이는 아득하다. 그러니 갈대가 우는 날 다시 와야 하리라.
내가 내는 신음소리가 내 잠귀에도 들렸다. 몸은 돌덩이처럼 굳었다. 그런데도 잠실 지하상가의 상품들에 눈길이 갔으니 촌티를 어쩌지 못한다. 지하상가 옷들은 다들 패스트 패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들어선 집은 그렇지 않았다. 조카가 좋아하는 채플린 모자와 막 입어도 좋을 체크무늬 패팅코트를 샀다. 송아지색 캐시미어 반코트도 샀다. 들었다 놨다 하던 가방은 결국 놓고 나왔다. 조카는 초록색 모자를 반겼고 캐시미어 반코트를 칭찬하였으나 패팅코트는 싸구려 같다고 면박을 주었다. 시장 가거나 여행갈 때 막 입을 것이니까 싸구려로 보여도 좋다고 응수했다. 뭐 13만원이면 겨울옷치곤 어차피 비싸지는 아니잖은가.
미루나무 한 그루 |
출처: 엽서 한 장 원문보기 글쓴이: 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