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 - 지스데반 선교사
'우물안 개구리'란 말이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 갇혀 바깥세상일은 전혀 모르고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간다는 풍자적인 비유입니다.
그런데 문득 '우물 밖 개구리는 뭐 좀 나은가?'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야가 좁거나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개구리는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말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프랑스의 영적 현실을 보여주시기 전에는 관심도, 아는 바도 전혀 없었습니다. 바로 그 개구리...
이 한심한 녀석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한인신문보고 뒷북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자로서 프랑스에 살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 보다 프랑스의 영적 현실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최소한 '성도'라 함은 자신이 속한 곳, 사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그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아야 기도할 수 있고 그런 후에야 행동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여러분에게 한가지 자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래의 사실들이 전혀 생소하시다면, 이제 이후로는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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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거주 외국인의 비율은 16%로 북아프리카(베르베르, 카바일, 레바논, 아랍, 터키, 쿠드)9%, 유럽 5%(포르투갈, 이태리, 독일, 스페인, 아르메니안, 폴란드, 러시아, 유고슬라비아) 아시아 1.3%(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서부 아프리카 0.7% 이다.
2. 프랑스 내 선교사는 40개 단체에서 1,519명(미국 738명, 영국 230명, 캐나다 74명, 독일 64명, 한국 34명)이 사역하고 있다. 외국 선교단체들은 프랑스의 독특한 문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교사들의 중도탈락율도 매우 높다.
3. 프랑스 교회 역사 - 16세기와 17세기의 잔인했던 위그노 박해의 역사가 프랑스의 어두운 잔재로 남아있다. 이때 많은 수의 개신교도가 살해를 당했고, 약 400,000명 가량이 주변국으로 피난했다. 1789-1801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폭력과 세계 정부에 대한 기대, 휴머니즘의 신격화를 낳아, 세계역사를 극단적 이상주의로 200년 동안 왜곡하여 결국 1989년 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을 낳았다. 이 격변의 영향이 아직까지 프랑스인들의 삶에 크게 끼치고 있다.
4. 미국과 영국등 영어 사용 국가들이 문화적, 언어적, 경제생활 면에서도 세속적인 프랑스식 삶을 따라하는 제국주의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프랑스 복음화는 Anglo-Saxon족에게 무관심과 부담이었다.
5. 직업적으로 일하는 점술가, 마술사, 무당들의 수가 50,000을 넘는데 이교도적 행위가 성행되며 널리 펴져 있다.
6.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크게 카톨릭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카톨릭 교회 출석성도는 6-8%에 그치고 있다. 개신교는 한때 48%에 다다랐으나 17세기의 핍박, 18세기의 인문주의 영향, 19-20세기의 명목주의로 2000년 현재 개신교도의 수치는 1%미만까지 낮아졌다. 기독교는 카톨릭에 비해 도덕적으로 덜 오염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신학과 실리를 취하는데 야합함으로 쇠퇴하였다. 기독교 인구는 알자스 지방과 남부에 더 많이 분포하나 여기도 명목상 신자의 인구가 다수이고 기독인구의 쇠퇴가 일반적이다.
7. 복음적 신자의 수가 너무 미미하다. 3000개의 교회가 약 130여개의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다행히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성장은 꾸준히 배로 이루어졌다. 약 20년간 1000여개의 복음주의 교회가 세워졌다. 오순절 교회와 하나님의 성회 교단은 가장 성장하고 있는 곳인데 같은 기간에 3배나 부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장이 이민자들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프랑스 복음적 교회는 1980년 277,000명에서 2000년 488,000명으로 늘어났다.
8.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에게는 복음 메시지가 외국에서 건너온 이방 사상정도로 느껴진다. 극단적으로 자살을 이끌어 갔던 이단들의 활동으로 복음주의 전도단체도 개혁교회에서 발생한 극단주의자로 여겨져 정부에 의해 1999년 이단으로 규정되어 졌다. 전도가 더욱 힘들게 되어지는 상황이다.
9. 프랑스의 많은 거대도시들에는 교회가 거의 없다. 그 예로 낭시에 3곳, 낭트에 8곳뿐이다. 38,000곳의 지방자치 구역중 35,000 곳에 거주하는 전도자가 없다. 많은 시골지역의 지방자치구가 전통을 고수하고 변화를 거부한다.
10. 포르투갈인, 스페인,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이 본국보다 복음을 더 잘 받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프랑스 사회에 잘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 약 백만의 포루투갈인, 스페인인 가운데 7 군데의 교회만 있다.
11. 유태인의 인구는 세계에서 4번째로 많고, 유럽 가운데 가장 많다. 파리에만 320,000명, 마르세이유에도 100,000명이 거주한다. 이들을 위해 5개의 선교단체중에 18명의 일꾼이 사역하고 있다. 유태인 중 600명 정도의 개신교도가 있다.
12. 이슬람은 현재 프랑스의 제2종교가 되었다. 이민자의 수와 많은 출생율로 인하여 다수의 모슬렘이 프랑스에 있다. 이들은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모슬렘들은 도시화 되어있고, 청소년들은 범죄, 폭력의 온상이 되고 있다. 약 100명의 사역자들이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15군데의 모임에 모슬렘에서 돌아온 2000명의 신도들이 있다. 불어권 아프리카 모슬렘 지역에서 많은 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은 학생, 난민 또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전도활동은 거의 없다.
13. 1970-1980년에 건너온 많은 수의 인도차이나 반도의 난민들이 이제는 프랑스의 삶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 작은 수가 깨어있는 기독교인들로 얼마는 프랑스 교회에 속하였고, 나머지는 그들 민족들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14. 프랑스에는 약 12군데의 신학교에 250여명의 학생이 있고 많은 수가 불어권 지역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이들 신학교는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약 3000명의 전임 사역자가 프랑스에 있으나 이들 중 1/3은 외국인이다. 이들 중 교회개척이 가능한 사역자의 수는 극히 소수이다. 프랑스는 교육받은 신자조차도 성경에 대한 기본지식이 아주 부족하다. 프랑스 복음주의 교회는 수는 작지만 약 300명의 선교사를 55개국에 파송 하고 있다.
15. 기능을 상실한 가정이 일반화 되어있고, 도덕성의 부재 가운데, 많은 청소년들이 무의미하고, 좌절되고, 혼동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복음의 수용에 있어서 어른들보다 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Operation World 2001년판에서-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고 - 김영일 집사
바사의 나라, 남부 이란에 열기가 점점 더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소식을 끝으로 이젠 이란 생활을 접어야 될 때가 이른 것 같습니다.
이라크 전쟁 후에 이곳 이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이곳 현지인들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종종 현지인들이 저에게 다가와 전쟁에 대해 물어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사탄이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 이라크를 싫어하면서도 한국이 파병을 한다는 이유로 한국인에게 돌을 던지는 이 나라 아이들, 이들의 경전에는 크리스챤과 유대인을 어렵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 크리스챤들을 인정하면서도 성경이 원래의 말씀에서 변형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개인 성경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오히려 무지한 아프리카 사람들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에서 너무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황무지 같이 버림받은 땅으로 느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곳 중동 땅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축복하신 땅임을 이제 2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습니다. 석유, 가스, 다이아몬드, 유리, 구리, 우라늄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황무지 땅속에 묻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면서 서방 나라들이 탐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을 조금씩 알아 가게 되었습니다. 에굽을 탈출해서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에게, 에서의 후손들과 이스마엘의 후손들과의 싸움은 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복을 주시고 번성하게 하셨음을 말씀을 보는 가운데 깨닫게 되었지만 성령님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복음의 초점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적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의 참 복음을 배척함으로 인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다가 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들이 복음의 자녀들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지만, 영적으로 무지한 백성은 가진 것조차도 빼앗기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깨닫고 있습니다.
어렵게 현지인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시작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신앙고백까지 듣고 싶었지만 성경을 더 보고 나서 훗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형제를 아쉽게 보내야 했습니다. STAS 교회 예배를 통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2년 여 동안 실감있게 체험했고, 이제 짐을 싸야 될 시점에 이르러 또 한번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가 현지인 예배를 인도하고 있고 현지인에게 전도를 하고 다닌다는 내용과 현지인 중에서 교회에 나왔던 형제들의 명단이 언급되어있는 편지를 보안부에 밀고를 해버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를 당장 이 땅에서 쫓아내라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동안에도,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20일 후면 이곳을 출발하는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나 하는 연약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담합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비밀경찰에서 이 사건을 접수한 후에 이곳 현지인 회사에 통보를 했고 교회에 참석했던 현지인들이 불려가서 호통을 내고 있고 그들은 변명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가 많이 죽어서 저한테 와서 이런 사건이 터져서 이젠 교회에 도저히 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직 저 한테 까지는 아무런 연락이 온 것이 없습니다. 교회 참석했던 현지인이 저한테 와서 하는 말이 이제 교회를 안 나갈 테니 없었던 일로 해 달라고 간곡히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에 대해서는 아무런 혐의가 없으니 건들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어렵게 유럽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만약 당국에서 제가 속한 유럽 회사에 공문을 보내면 적지 않은 개인적인 불이익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저 담담하기만 합니다. 기도하게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던 현지인이 저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걸 보면서 마치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이젠 철저히 저를 감시하는 것이 사실화되어 있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형편이 되어가고 있어 하나님께서 일터를 옮기시는 가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이 시련 앞에서도 승리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사도 바울은 나의 갇힘도 오히려 복음에 유익함이라 했지만, 전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제 방에 남아 있는 성경책을 일단 교회로 모두 옮겨 놓았습니다. 언제 불시검색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 한 것은 별로 마음의 부담이 없지만 그들에게 성경책을 나누어 준 것은 명확한 위배 사항입니다. 이번 달 말에 이곳에서 철수를 하면서, 현지인들은 교회 출석이 어렵겠지만 인도인과 필리핀형제들이 끊임없이 교회를 출석하고 있기에 예배 인도를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되는 문제를 놓고 여간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도하실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번 달 계획은 다음주에 시편 1편 암송대회와 제가 인도하게 될 마지막 예배에는 세족식을 하고자 합니다. 이번 달 말에 이곳을 떠나서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쉼을 얻고, 아프리카 앙골라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속한 유럽 회사가 수행하는 앙골라 프로젝트에 한국기업이 참여를 하게 되어있어, 6월초에 제가 발주처 감독관 자격으로 한국으로 파견 받아 갈 예정입니다. 한국에서의 일정기간을 머물고 나서는 (1-2년 예상) 앙골라로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기도의 동역자분들과 선교헌금을 주셔던 분과 성경책을 보내 주셔던 목사님과 기도의 동역자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닥친 이번 사건이 저한테도 무사 할 뿐더러, 현지인들에게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아니하도록 간절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는 날까지 예배를 쉴 수 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처음 이 땅을 밟을 때 약속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사정을 보지 아니하고는 실감할 수 없겠지만, 이라크에도 얼마 전 누구도 손 델 수 없었던 동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던 것처럼 사탄의 세력이 무너져 내려야 하는 특수한 환경인 것을 꼭 기억하시고 함께 쉬지 아니하고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시고 진리에 눈먼 어두운 이 땅을 새롭게 고쳐 주시옵소서, 진리의 말씀으로 이 민족과 이 땅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아멘)
그 동안 2001년 7월부터 2003년 지금까지 저의 직장 속에서 작은 사역을 통해 은혜를 주시고 윤택한 삶을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함께 기도해 주셨던 목사님, 사모님, 집사님 그리고 청년회원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또 다른 환경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
프랑스 오실 일 있으시면 멜을 주시거나, 파리에서 전화(01-47-61-00-53)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란에서 2003년 4월 11일.
불어권 아프리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어느덧 한국은 짧은 선교역사 속에서도 급성장한 교회들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피선교지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 많은, 만 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한 국가로 변모하였다. 서구 선교사들이 감소하고 제3세계의 선교사들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선교단체들로부터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선교한국대회를 통해 청년, 대학생들에게 선교동원의 바람이 불었고, 국제선교단체들도 8,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한국교회에 눈을 돌리고 지부를 개척하고 적극적인 동원사역을 펼쳐나갔다. 많은 경험과 장점을 가진 국제선교단체들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을 하나님의 선교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자생 선교단체들도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많이 생겨났고, 활발한 사역의 전개로 많은 자원들을 선교의 현장으로 인도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특수한 지역을 품고 작은 몸부림으로 사역해온 단체들 가운데 하나가 한국불어권선교회(CCMF)이다. 한국불어권선교회는 불어권지역도 아닌 한국에서 자생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불어권만을 겨냥한 단체이다. 하나님은 왜 불어권이 아닌 한국에서 불어권을 향한 선교단체를 시작하게 하셨을까?
CCMF는 1992년도에 불어공부를 위해 모인 작은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강금희 교수를 통해 불어를 배우는 가운데 불어권지역의 열악한 영적 상황을 알게 되었고, 이몽식 대표를 비롯한 7명의 지체들이 함께 '무지개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무지개선교회'에서 '한국불어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선교한국대회와 소식지인 '방주'지 등을 통해 한국교회내 알려지지 않은 불어권 선교에 대한 긴급한 필요를 알리기 시작했다.
불어권지역은 전 세계적으로 51개로 전 대륙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북미, 남미, 태평양,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약 4억의 인구가 불어권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다. 특히 아프리카대륙에는 선교학적으로 중동으로 분류하는 북부지역(모로코, 모리타니, 알제리, 튀니지)을 제외하고도 24개국에 이르는 불어권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종교적으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슬람을 인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지역에 비해 기독교의 영향이 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정치, 경제, 군사에 있어서는 지금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노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 명목상의 독립은 이루어졌지만, 지금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프랑스는 그 나라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아프리카에서의 기득권을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
불어권아프리카의 상황은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선교회에서 90년대 중반에 불어권아프리카에 대해 정보를 수집할 때만 하더라도 내전이 빈번한 영어권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고 보았으나, 지금은 내전과 구데타로 인한 혼란을 겪고 있는 지역이 늘어가고 있다. 챠드에서, 말리에서, 콩고민주공화국(구, 자이르)에서 구데타가 일어났었고,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중앙아프리카에서, 꼬드디부와르 등에서 구데타가 일어나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이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불어권아프리카 나라들 가운데 국제선교단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은 언어의 영역보다는 종교적으로 이슬람과 기독교가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지역이다. 여느 종교보다 선교에 적극적인 종교가 이슬람이다. 중동에서 시작된 이슬람은 지금 전 세계를 향해 강한 선교를 펼쳐나가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을 통해 기독교와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고, 중국에서도 꿈틀거리고 있고, 소련에서 독립한 서아시아의 공화국들에서도, 기독교의 중심지라 불리우는 서구사회에서도 급속히 이슬람은 증가하고 있다. 아프리카도 예외가 아니다. 오랜 역사속에 아프리카 대륙의 북부에 위치한 나라들은 그들의 정체성이 아랍이며, 석유를 통해 돈을 번 중동과 북부아프리카의 나라들이 막대한 돈과 인력을 쏟아부으며 아프리카를 이슬람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영어권인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의 강력한 이슬람세력들이 샤리아법을 적용시켜가며 강력한 이슬람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슬람 선교의 중심에 서있는 국가들이 바로 불어권아프리카 나라들이다.
그 지역들은 중동아프리카와 접해있는 세네갈, 말리, 니제르, 챠드 등이며 사하라사막을 끼고 있는 지역들이다. 이 지역은 남하하고 서진하고 있는 이슬람과 200년 정도의 선교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가 실제적으로 만나 영적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역이다.
아프리카는 한국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미지의 선교지라고 할 수 있다. 짧은 한국선교의 역사 속에서도 더 짧은 선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현장이 아프리카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케냐와 남아프리카 등을 포함하고 있는 영어권을 제외한 불어권의 선교역사는 더욱 짧다. 가장 오래된 선교지라 하더라도 20년이 넘지 않는다.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가기 이전에 통일교가 들어가 활동한 지역들도 있다. 전체 아프리카에서 사역중인 선교사들의 숫자에서도 50%가 넘는 나라 수를 가진 불어권은 영어권의 10%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 세계에 '미전도종족선교'와 '10/40창 집중선교'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에서도,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되면서도 한국교회 가운데 주목을 받지 못한 지역이 바로 불어권아프리카 지역이다. 최근에 와서 WEC, SIM, SIL, AIM, NTM 등 국제선교단체들이 한국에서 선교동원을 활발히 하면서 이 지역이 더 많이 한국교회에 소개되어지고, 또 사역자들을 내보내려고 무척 애쓰고 있는 지역이며, GMP, GMS, 바울선교회 등 한국 자생선교단체들도 지역의 중요성과 긴급한 필요를 인식하고 사역자를 파송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지역이다. 여전히 사역자의 지원과 교회의 동원이 쉽지 않은 지역이지만, 점차적으로 많은 사역자들이 팀사역을 준비하고 나가야 할 지역들이다.
한국불어권선교회는 불어권아프리카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한국선교에 있어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지역을 섬기며 사역해오고 있는 단체이다. 인적·물적 자원도 부족하고, 선교 경험도 부족한 가운데 하나님의 Vision으로 시작한 개척자들이다. 기도, 개척, 헌신, 협력의 정신으로 설립 당시부터 불어권아프리카에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한국교회를 향해 외쳐왔다. 지금 그 작은 결실들이 선교회를 통해서 뿐만아니라, 다른 선교단체들을 통해서도 사역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그 땅으로 나아감으로 맺어지고 있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CCMF가 아프리카를 향해 실질적으로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95년 한일수·박인창 전도사가 비전 트립을 통해 세네갈, 가봉, 꼬뜨디부와르, 부르기나파소 등의 한국선교사들과 선교지를 방문하면서이다. 그 후로 1997년 말리 도곤족 단기정탐사역, 1999년 말리단기선교를 다녀왔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하라지역으로 집중적인 선교를 펼치기 위한 '사하라프로젝트'의 전개를 통해 2001-2003년 챠드단기선교 등을 통해서 단기팀과 단기사역자들을 지속적으로 훈련시켜 파송하고 있다. 매년 MTF(불어권을 위한 단기선교훈련)과정을 통해 사역자들을 모집하고 3주 정도의 단기사역을 실시하고 있다. 단기사역을 통해서는 성경학교, 노방전도, 찬양사역 등으로 현지 선교사들을 돕고 개개인의 비전을 발견하도록 돕고 있는데,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단기사역을 경험한 지체들이 대부분 재헌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불어권을 섬기는 모든 선교사들을 동역자로 섬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교사들과 나눈 기도제목으로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중보기도하고, 매일 셋째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에 있는 정기기도모임과 매월 첫째, 셋째주일 저녁 7시에 드리는 불어예배를 통해, 매월 발행하는 기도월력을 통해 동역자들과 함께 중보기도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불어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사 자녀 생활관을 프랑스에서 사역중인 한일수 선교사 가정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선교회는 말리와 챠드, 그리고 프랑스를 집중적으로 팀사역지로 조성해나갈 것이다. 챠드는 현재 양승훈 선교사, 박종민 선교사 가정과 문행선 단기선교사가 팀을 이루어 교회개척과 제자사역, 학교사역을 전개하고 있는데, 곧 두 가정과 한 명의 단기선교사가 더 합류할 예정이다. 말리는 안창호 선교사 가정이 초등학교와 주일학교사역을 진행중인데, 내년에 본부사역자를 중심으로 팀사역자들이 나갈 예정이며, 지속적으로 학교와 교회사역 등을 함께 할 사역자들을 모집하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한일수 선교사 가정을 시작으로 MK사역과 지부개척 사역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인데, 우선적으로 MK 전문사역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불어권아프리카는 하나님이 만드신 땅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소중한 영혼들이 복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땅이다. 그 땅을 위해서 하나님은 불어권이 아닌 한국에 불어권을 위한 선교회를 세우셨다. 지금까지 선교회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면서 성장해왔다. 때로는 선교사님들과 관계속에서 어려움도 있었고, 선교사들과 선교지를 섬기는 부분에 있어서도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비전이 있고, 그 비전을 향해 오늘도 선교회 아침은 기도로 시작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적은 무리가 모여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기에 한국불어권선교회는 결코 작은 단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선교사들과의 교제 속에서 격려와 질책도 받으면서, 아름다운 동역의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선교회, 많은 선교 관심자와 동역자들이 함께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기쁨과 눈물로 동참하며 성장해가는 선교회가 되도록 먼저 하나님께 무릎꿇고 아버지의 뜻을 묻는 선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주님께 기도한다. 아버지여, 주님의 이름으로 헌신된 100명의 동역자를 보내주소서. 할렐루야!
2003년 4월 중순 새벽에
한국불어권선교회 본부총무 허태준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