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차여행(4) - <익산역>, <장항역>, <서천역>
1. 남원 숙소 ‘켄싱턴 리조트’는 너무 넓은 공간이 주는 썰렁함 때문에 단독 여행자에게는 여유보다는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적절함’, 인간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기준임을 다시금 인식한다. 아침 조식을 여유롭게 즐기고, 택시 콜을 불러 남원역으로 갔다. 한때 10만이 넘었던 인구는 이제 8만이 조금 더 된다고 한다. 줄어가는 도시, 쇠퇴하는 지방의 모습이다.
2. 남원에서 <익산역>으로 이동했다. 이 곳은 남부지역의 핵심적인 교통의 요지이다. 한때 ‘이리역’으로 불렸으나 1970년대 대규모의 화약폭발 참사를 겪은 후, ‘익산역’으로 개명했다. 도시 곳곳에서 때때로 발견되는 ‘이리’라는 명칭은 과거의 어떤 흔적을 기억하려는 슬픈 기호인 듯하다. <익산역>은 전라도 지역의 두 간선 철도가 분기된다. 한 쪽은 ‘여수’를 향해 전주, 남원, 곡성을 지나는 ‘전라선’이 있고, 다른 쪽으로는 김제, 정읍, 광주, 나주를 향하는 ‘호남선’이 있는 것이다. 역 앞은 제법 혼잡스럽고 복잡하다. 다른 지역보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이동하고 있었다. 전라북도의 중심 지역임을 확인하게 된다.
3. 오늘 기차 탐사 코스는 위쪽 방향인 ‘장항선’이다. 장항선은 ‘천안역’에서 ‘익산역’까지 구간으로 대부분 충남 지역이 주 대상이 된다. 먼저 <장항역>으로 이동하였다. 서천군에 속하는 장항역 앞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조금 이동하면 ‘국립 생태원’이라는 멋진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다. 넓은 지역에 만들어진 자연의 다양함은 여유로운 탐사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서천은 신성의 ‘갈대밭’으로 유명하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갈대밭 장면 촬영도 여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 구역에 ‘갈대’, ‘억새’, ‘물억새’를 비교 정리하고 실제 ‘물억새’가 가득한 곳이 보였다. 시간 관계상 그 길을 따라 걷지는 않았지만, 다시 이 곳을 방문하게 되면 그때에는 여유롭게 따라 걷고 싶은 길이었다.
4. 장항역에서 <서천역>으로 이동했다. ‘서천역’ 앞에도 썰렁한 장면만이 반복된다. 약 10분 정도 걸으니 커다란 건물이 신축 중이다. 새로 만드는 군청사 건물이다. 좀 더 안으로 이동하니, 반가운 안내표시가 보인다. ‘서천읍성’과 ‘서천향교’이다. 읍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 외적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많은 지역에 건설되었다. 마을 관청과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조선시대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적 자료의 가치가 높은 곳이다. 서천읍성은 현재 계속 발굴 중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넓은 지역의 성벽이 드러날 것이다. 읍성 안 쪽으로 이동하자, 낡고 작은 건물의 ‘서천군청’이 보인다. 외곽 지역에 새로운 청사를 만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읍성과 청사의 배치 그리고 마을과의 연결 모습은 과거에 대한 지역적 정보를 제공한다. 기본적인 군사적, 행정적 방어망과 행정구역의 관계를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서천읍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과거의 도시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5. 장항선 답사를 하면서 조금 짜증스러운 것은 ‘기차의 연착’이었다. 목요일까지 철도 태업이 진행 중이라 무궁화 열차의 시간은 90분에서 120분 이상 늦어졌다. 많은 지역을 답사하려는 목적이 이그러졌다. 특히 무궁화 열차가 집중되어 있는 장항선에는 정도가 훨씬 심했다. 무궁화 열차 연착을 계속 만나게 되니 조금 짜증스러워져, 표를 판매하는 역무원에게 투털거렸다. ‘철도 노동자의 파업을 이해하지만, 파업의 대상이 주로 KTX가 아닌 무궁화 열차에 집중되는 것은 힘없는 시골 서민들에게만 고통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진짜 메시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KTX가 태업대상이 되어야하는 것은 아닌가?’ 여성 역무원은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열차가 들어오기 1시간 전에 알려준다고 하였다. ‘서천’의 답사는 그런 이유로 좀 더 길어졌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한 카페에 들러 쌍화차와 간식을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일탈, 그것이 계획과 다른 변화를 가져다 주며, 때론 그런 변화가 새로운 시선과 만나게 해줄지 모른다. 과거 마르크스가 박사학위 논문에 적은 유물론자 에피쿠로스의 ‘클리나벤(원자의 사선운동으로 일어나는 충돌, 변화)’의 변혁 가능성에 주목한 이유도 생각해본다.
첫댓글 - 신성리 갈대밭, 백합죽, 굴밥, 쭈꾸미해물탕......... 지나간 시간들이 지나간다. 기억 속 사건들이 남아 있던 공간의 변화는 국립생태원까지 이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