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새해를 맞으며
행촌수필,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이윤상
갑오년 새해 새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솟아올랐다. 금년은 말띠로 청마(靑馬)의 해라한다. 이 세상에 푸른 말이 있을까? 그렇다고 청마는 용처럼 상상의 동물인가?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청마(靑馬)는 노마(老馬)에 대비한 말이다. 청마는 날렵하고, 씩씩하고, 활기찬 젊은 말이다. 다시 돌아오는 갑오(甲午)년까지 60년 동안에, 말띠의 해는 5번 온다. 이른바 갑오(甲午), 병오(丙午), 무오(戊午), 경오(庚午), 임오(壬午)년은 말띠의 해로 12년마다 돌아온다.
그 중에서 첫 번째 말띠의 해가 갑오년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을 청마의 해라고 하지 않았는가 싶다. 내 생애에 두 번째로 갑오년을 맞는다. 첫 번째는 1954년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때는 6ㆍ25전쟁 휴전 즉후, 국민소득 60불시대로 온 국민이 끼니조차 걱정할 지극히 빈곤한 시절이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무역량이 1조원, 수출액 5천억 불, 국민소득 2만 4천불로 세계 8대 무역 강국, 12대 경제대국으로 잘살게 된, 두 번째 갑오년을 맞이하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갑오년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변혁이 일어났다. 120년 전, 1894년 갑오년에는 고종황제께서 양반과 상민의 신분을 차별한 반상(班常)의 철폐를 비롯하여, 관혼상제, 과거제도, 문물제도를 개혁하는 혁명적인 갑오경장을 선포한 해다. 또한 관료사회의 부패와 수탈에 울분을 터뜨린 동학혁명이 일어난 해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과도한 수세를 징수한 반발로 보국안민 (輔國安民)의 기치(旗幟)를 들고 봉기한 동학군을 관군이 진압하지 못하니, 조정의 훈구파는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여 청군이 들어왔고, 개화파는 일본에 요청하여, 일본에서 10만의 군사를 파병하였다. 마침내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군사는 물러가지 않고 조선에 주둔하며 침략의 발판을 굳혀갔다. 이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청국과 맺은 협정에 삼팔선이 등장한다. 조선팔도를 삼팔선이남(4도)은 일본이 지배하고, 이북(4도)은 청국이 지배하는 것을 묵인하는 은밀한 청일협정의 선이, 바로 조선분단의 시초인 운명의 삼팔선이었다.
1894년 갑오년은 나의 선친(先親)이 출생하신 해요, 그로부터 60년 뒤 1954년 갑오년은 우리 집안의 장손인 큰 조카가 출생한 해로, 평생 잊을 수 없는 뜻 깊은 해다. 여러 가지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갑오년을 내 생애에 두 번째 맞게 되니 만감(萬感)이 교차된다.
새해의 설날 아침에 원불교 교전(敎典)을 열어보고, 대종사님이 대종경 인도품 34장에 밝힌 “난세(亂世)를 무사하게 살아가는 비결(秘訣)”이라는 선현(先賢)의 법문을 되새겨보았다.
“處世柔爲貴요 剛强是禍基니라 發言常欲訥하고, 臨事當如痴하라.
急地尙思緩하고, 安時不忘危하라.”一生從此計하면上知而行之者 常安樂”
“처세는 부드러운 것이 제일 귀하고, 강강함은 재앙의 근본이니라.
말하기는 항상 어눌한 듯 조심하고, 일을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
급할수록 그 마음을 늦추고, 편안할 때 위태로운 것을 잊지 마라.
일생을 이 글대로 행하면 누구나 항상 안락하게 살아가리라.”
이 말씀대로 실행한다면, 무탈하고 안락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실행이 문제다. “백각이불여일행(百覺而不如一行)” 백 번 깨달음이 한 번 실행한 것만 못하다는 나옹선사의 말씀을 다시 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말의 해를 맞이하여 말을 조심하고, 신중히 하라는 고사명언(故事名言)을 생각해 보았다. 고사(故事)에 삼사일언(三思一言)하라 했다. 말을 할 때는 세 번 생각하고, 말을 해야 실수를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상대방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말(馬)과 관련된 대화의 기본 예의로
“말꼬리 잡지 마라. 말허리 자르지 마라. 말머리 돌리지 마라.”
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가르침을, 새해의 화두(話頭)로 삼고 일상에서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내 생애에 두 번째 맞는 갑오년에는 무엇인가 국가적인 큰 변혁이 올 것 같다. 기초의회를 폐지하고, 소규모 시ㆍ군을 통합하는 개혁이 된다거나, 북한이 내부로부터 붕괴하여, 통일의 문이 열리는 개벽(開闢)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럴수록 금년에는 선현(先賢)의 지혜로운 법문대로 행동하고, 바른 대화법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쪼록 가족이 건강하고 안락한 한 해가 되기를 법신불(法身佛) 전에 기도드리며 새해 아침을 맞았다.
(2014년 1월 元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