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차는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가능해요. 면허를 막 취득하고 조금씩 운전에 익숙해지던 어느 주말, 부모님과 드라이브를 나섰던 저녁 시간이 생각나네요. 저는 좀 의기양양 했던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멋진 도구가 손 안에 있었고, 늘 뒷좌석이나 조수석에서 선망하던 부모님의 자리에 제가 앉아 있었으니까요. 어쩐지 어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아이 같은 마음이기도 했어요. 이제 와서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어른의 도구를 손에 쥐고 있는 아이 같았습니다.
그날, 쭉 뻗은 교외 도로에 들어섰을 땐 신이 났던 것 같아요. 오른발에 힘을 줬습니다. 속도계가 오른쪽으로 점점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옆 차선에 있던 차들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긴장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의 어떤 장면을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빠르고 여유있는 속도로 혼자 밤 드라이브를 즐기는 장면 말예요. 그렇게 몇 분인가 달리다 교차로 신호 대기에 멈춰 섰습니다. 어머니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우성아, 빨리 달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다 이해한다는 듯, 달래듯 하던 그 목소리.
“그렇게 달리기만 하는 건 잘하는 운전이 아니야.”
딱 두 마디였어요. 저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였어요. 그대로 숨고 싶었습니다. 규정속도를 훨씬 웃도는 속도로 달리면서, 책임질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면서, 그 와중에 어떤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던 유치함 때문에 정말이지 어쩔 줄을 몰랐어요. 이제 막 운전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20대 남자애가 속도에 대한 감도 없이 빨리만 달리고 싶어하던 그 순간에 부모님은 얼마나 불안하셨을까요? 또 얼마나 미숙해 보였을까요?
그 이후로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그날 어머니께서 무심코 하셨던 두 문장을 몇 번이고 기억합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운전, 내가 즐길 수 있고 동승자가 안심할 수 있는 운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답을 바로 찾을 수는 없었어요. 숱한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고, 자동차 저널리스트로서 전 세계의 진짜 프로페셔널들이 ‘운전’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단련하며 즐기는 지를 몸으로 체험한 후에야 가까스로 알게 됐습니다.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운전, 운전의 재미라는 게 ‘성취’라는 단어와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좀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어요. 운전도 일종의 수련 혹은 단련으로 여기면 어떨까요? 주어진 근육과 근막, 힘과 유연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설정해 놓은 한계를 조금씩 극복해 가는 과정 말예요. 요즘은 아주 일상적인 듯 보이는 모델을 통해서도 한층 쉽게, 이렇게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고성능’이라는 단어에 집중할 시간이에요.
모르는 사람이 볼 땐 자칫 평범한 모델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딱 보기에도 화려한 디자인의 스포츠카나 슈퍼카에 비교하면 아주 일상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거든요.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한 눈에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고성능 모델이라는 건 아주 은은한 방식으로 개성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은은하지만 강렬한 디테일에 힘을 주는 거죠. 전체적으로는 같은 디자인 언어를 구사하지만 작은 디테일 몇 개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구사하는 거예요. 엠블럼에 추가된 알파벳 하나, 엉덩이 아래 하나 더 추가된 배기구 하나 정도? 인테리어에 추가된 어떤 색깔 정도로 아주 세세한 디테일.
하지만 달릴 때의 기세 만큼은 그렇게 세세하지 않습니다. 아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차이점이 있어요. 분명히 똑같이 생긴 모델인데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달린다거나, 소월길이나 북악스카이웨이 같은 산길에서 다른 차들은 못 따라갈 것 같은 몸놀림으로 코너를 주파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그 차가 바로 고성능 모델이에요.
흔히 ‘팝콘 튀는 소리’ 혹은 ‘콩 볶는 소리’라고 하죠? 고성능 모델들은 배기구 쪽에서 ‘타다다닥’ 하고 뭔가 타면서 튀어 오르는 것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속도를 빠르게 줄일 때 엔진에서 타고 남은 연료가 뜨거운 배기관 위에서 ‘타다닥’ 하고 마저 연소되면서 나는 소리예요. 고성능 모델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지금 막 출시한 벨로스터 N이라면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자, 그럼 조금 더 집중해볼까요?
알파벳 ‘N’은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모델 라인업을 상징합니다.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이 글자를 발견했거나 문을 여는 순간 시야 아래에서 ‘N’을 발견했다면 조금 긴장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 차를 타면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인증 같은 거니까요. 앞바퀴에선 이미 달아오른 것 같은 빨간색 브레이크 캘리퍼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최대토크 36.0kg.m, 시속 200킬로미터를 훌쩍 넘어 달릴 수 있는 고성능 모델이라면 정지할 때도 어마어마한 성능과 힘이 필요할 테니까요.
흔히 ‘뒷날개’라고 편히 부르는 리어 스포일러도 고성능 모델의 분위기와 기세를 한껏 강조합니다.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공기의 흐름과 저항을 제어하는 기술이 중요해지는데, 이 리어 스포일러가 훨씬 더 안정적인 고속 주행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거든요. 물론 멋 그 자체만으로도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고성능 자동차의 판타지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기도 하고요.
인테리어로 들어가면 훨씬 더 본격적으로 고성능 자동차의 면면을 즐길 수 있어요. 일단 에코, 스포츠 모드 등을 넘나들 수 있는 ‘드라이브 모드’ 버튼이 스티어링 휠 왼쪽에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체커기가 그려져 있는 버튼이 있어요. 어때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지 않나요? 이 비밀스러운 버튼을 누르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또 왼쪽 버튼과 오른쪽 버튼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물론 평범한 모델에서도 스포츠 모드로 달릴 때는 평소와 조금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성능 모델은 좀 다른 차원이에요. 같은 스포츠 모드라도 아주 다른 성능과 쾌감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체커기는 보기에도 훨씬 더 본격적이잖아요? 그대로 레이싱 트랙의 상징, 조금 더 본격적인 드라이빙과 승리, 단련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버튼들을 기어봉 주변에 두지 않고 스티어링 휠에 배치한 덴 더 큰 의미가 있어요. 고성능 모델 N을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두 손을 스티어링 휠에서 한 순간도 떼지 않도록 배려한 겁니다. 어떤 순간에도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운전 자체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도록 말예요. 여기서, N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스티어링 휠에 ‘REV’라고 써있는 버튼이 있어요. 이 버튼은 무슨 마법에 가깝습니다.
우리 다 같이 레이싱 트랙을 달리고 있다고 상상해볼까요? 저 앞에 코너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브레이크 페달에 힘을 주면서 속도를 줄이고, 그에 맞춰 최적의 출력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기어 변속을 또한 준비합니다. 바로 이때, 프로 드라이버들은 ‘힐 앤 토’라는 기술로 저단 변속 순간의 충격을 최소화 합니다. ‘힐 앤 토’는 제동, 저단 변속, 엔진 회전수 보정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발가락 끝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뒤꿈치로는 가속 페달을 밟습니다. 속도를 줄이면서 엔진 회전수는 높여주기 위해서죠. 그래야 기어를 한 단 한 단 내릴 때 차체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유지하면서 엔진의 힘을 코너 끝까지 최고로 끌어갈 수 있습니다. REV 버튼을 누르면 그 과정을 벨로스터 N이 알아서 해줍니다. 이제 막 스포츠 드라이빙에 재미를 붙인 사람이라도 직접 힐 앤 토를 하는 기분으로 코너를 탈출할 수 있는 거예요. 난이도 있는 기술을 어렵지 않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선물 같은 기능이에요.
벨로스터 N을 앞에 두고도, 저는 그 옛날 주말 저녁의 어머니 말씀을 기억할 것 같습니다. 속도만 올리는 운전은 잘하는 운전이 아니고, 직선 주로를 빠르게만 달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는 말. 더불어 운전석에선 조금 더 깊이 고민할 것 같아요. 이 한 대의 자동차에는 얼마나 큰 가능성이 숨어있는지. 고성능 모델의 운전석에 앉았을 때 운전자가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운전의 이상은 또 어떤 모양인지 말예요.
그런 고민 속에 N이 상징하는 고성능 운전의 진짜 쾌락과 재미가 숨어있다고 믿습니다. 코너마다 연마하는 거예요. 자신과의 경쟁, 혼자서 아주 비밀스러운 경주를 벌이는 겁니다. 그렇게 나만의 고성능 자동차와 운전을 다듬어 가다 보면, 서울 어딘가의 산길을 달릴 때도 WRC 트랙의 일부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현대 월드랠리팀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아주 개인적인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밤을 상상하면서 말예요.
글. 정우성
자동차, 고전음악과 인터뷰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며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레이디 경향>, <지큐>, <에스콰이어>를 거쳐 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