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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철탄산(영주초등 54회)
 
 
 
카페 게시글
모교/고향 관련 자료실 스크랩 2011년 백주년 영주초등의 어제와 오늘
철호짱 추천 0 조회 34 11.04.12 18: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가 다닐 때의 영주 국민학교.

이젠 초등학교로 바꼈지만 그래도 국민학교란 칭호가 우리에겐 더 익숙해서

아직 영주 국민학교 몇해 졸업생입니다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그 어느날 국민학교의 어원을 알고부터 국민학교란 표현을 안 하고

이젠 초등학교라고 한다.

 

지금은 일제시대 때의 질기고도 질긴 인연을 끊고

옛 이름을 버리고 선계동이란 이름으로 새로이 단장을 하였지만  

그 쥑일 넘의 일본 황제에게

신사참배를 하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신사골.  

 

오로지 천황을 위해야 한다는,

천황만을 위한 국민의 학교란 (황)국(국)민 학교......

 

그 국민학교란 명칭의 더러운 역사를  알고부터 이젠 그 명칭을 버렸다.

 

그렇지만 어찌됐건 그 나의 모교가 백 년의 생일을 맞는다고 하니

자랑스럽다.

 

 

우리가 졸업할 때까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던 학교 정문 앞의 고목은

세월이 흘러 자기 몫을 다하고 땅으로 스러졌고

 

고목을 의지하고 외로이 서있던 불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도로 확장을 빌미로 지금의 세무서 옆,

도립공공 도서관의 마당으로 옮겨져 멋진 집을 국가로 부터 하사받아 호화롭게 모셔져 있다.

 

 

왜놈들의 등살에 어쩔 수 없이 군사훈련을 받고있는 징욤병들의 뒷편 건물들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들에게까지도 낯이 익다.

 

젤 왼쪽 건물은 셈들이 숙직을 하였던 곳이였고 불 때던

그 숙직실의 아궁이가 있던 곳은 지금으로 따지면

급식소를 겸했었다.

미국으로 부터 강냉이 가루를 원조 받아 죽을 끓이거나 빵으로 만들어 주던 곳.

 

우리 친구들 중 짖궂은 몇몇은 거기서 강낭떡 쎄베 먹다가 걸려

그 죗값으로 입에 강낭떡을 물고 전 학교 교실을 돌았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지금도 가끔 술좌석에서 가끔 나오곤 한다.

  

 

 

 

이 학년 때부터 사용하던 교실이 59년에 지어졌다니.....

일 학년 때는 오전 반 오후 반으로 갈려져 수업한 기억은 없는데

이 학년 때부턴 바로 이 건물에서 이부제 수업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오 학년 때까지.

 

사 학년까진 여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화기애애하게 같이 공부했었는데

왜 오육 학년 땐 반을 갈랐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혹시 손이라도 스치면 얼라를 밸 것이라 생각한 어리숙한 택도 아인 샘 때문이였을까?

 

 

한때 폐교의 위기로까지 몰렸던 영주 초등은

개교 백 주년을 맞아 새로이 변신 중이다.

건물 외벽에 구멍을 뚫고 철재 빔으로 온 몸을 휘두르고 ....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바뀔진 모르지만 너무너무 좋은 일이다.

 

철탄산 자락의,

영주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변하는 나의 모교.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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