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년 10월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패한 뒤 얼마되지 멸망합니다.
이 때 후백제가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고려에 귀부한 후백제의 건국자 견훤(진훤)과 고려의 장군 박술희 등이 지휘하던 좌군이 백제군의 선발대 앞에 나타나자 진훤의 모습을 본 백제의 주요 장수들은 잇달아 고려군에 투항하면서 상황이 고려군에 유리하게 됩니다.
이 때 고려에 투항한 백제의 주요 장수들은 여러 기록을 종합해 애술,덕술,효봉,명길,지훤,우봉,영식 등 백제의 주요 장수들로 백제 입장에서는 핵심전력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한 백제군은 이후 황산벌을 거쳐 완산주 근처 마성까지 퇴각하지만 이 과정에서 장군 흔강,견달,금식,우봉,은술 등이 고려군에 포로로 붙잡히거나 투항하는 등 적지 않는 피해를 당합니다.
결국 고려군에 대패한 백제군은 고려 태조 왕건에 투항하게 됩니다.
뒤를 이어 진훤을 몰아내고 진훤의 아들 신검을 황위에 올린 혁명의 주역 중 핵심역할을 한 인물인 능환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확한 기록이 남아잇지 않고 신검과 양검,용검 형제 등도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백제 부흥운동 가능성 차단 및 역성혁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역시 처형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백제의 신료들 중 부달,소달 등은 고려에서 재기용한것으로 보이며 다만 백제의 주요 장수들 일부(고려에 투항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 장수들)는 역사 기록에 남아잇지 않아 더 이상 정확한 것을 알수 없습니다.
신라 3최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최승우를 비롯하여 신덕,영순,파달,김훤,애식,한장,흥종,관흔,최견,상귀,상애,휘암 등 백제의 일부 인물들은 후백제 멸망 후 어찌 되었는지 기록에 없어 알수 없습니다.
다만 후백제 멸망 뒤 후백제 부흥운동에 대해서는 몇 가지 역사기록이 눈길을 끕니다.
근세조선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백제 장수 상국진이 고려 태조 왕건에 맞서 군사를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고려군에 패하여 죽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또 전설 형태로 남아 있는 자료이지만 백제 호족 출신 만활과 덕재,영장 등이 고려에 맞서 군사를 일으켰으나 역시 고려군에 패하여 만활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덕재와 영장은 고려군에 붙잡혀 참형에 처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1237년 이연년 형제(이연년 형제가 후백제의 호족의 후예라는 설도 있음)가 백제 부흥을 외치며 군사를 일으키나 나주에서 토벌당하며 역시 실패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백제가 망한 936년 이후 역사 기록 중에는 백제의 존재를 알려 주는 역사 기록이 눈에 띄여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몇 가지를 적습니다.
937년 10월의 백제 사신의 후진 방문기록.
938년 5월 백제 사신의 후진 방문기록.
977년 송 태조 조광윤이 고려에 보낸 국서에 다시 백제가 언급됨.
982년 송나라 시대의 역사서 중 고려 강역 설명 부분에서 백제의 분봉지가 고려 강역에 포함된다 함.
1273년 7월 백제 사신 양호 원나라 방문기록.
(이 시기의 백제는 이연년 형제의 백제 부흥운동과도 연결될 가능성 있음.향후 연구 필요.)
1279년 원 세조 쿠빌라이가 고려로 보낸 국서에서 장회지방의 백제를 잘 보존하라 함.
1593년 명나라의 역사서에 삼한백제가 언급됨.
이 몇가지 기록은 흥미로운 기록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후백제 황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까 합니다. 추가 자료조사후 몇 가지 가설과 가능성에 대한 검토과정을 곁들여 글을 적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