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24.04.03
이름: 정현걸
포지션: 내과의(Medical Doctor)
파견 국가: 차드
활동 지역: 아드레
활동 기간: 2023년 11월 – 2024년 1월(3개월)
차드 아드레 임시 캠프 내 텐트 병원에 내원한 환자 상태를 진단 중인 정현걸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정현걸
이번에 처음으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다녀오셨습니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차드 아드레에 소재한 임시 난민 캠프 지역 천막 병동에서 일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수술도 진행하는 좀더 제대로 지은 텐트형 병동은 아드레 소재 다른 구역에 따로 있고, 제가 이번에 가서 일한 곳은 이제 막 형태가 갖춰지려고 하는, 말 그대로 천막을 친 상태의 병원이었는데요. 아무래도 해당 난민 캠프 지역은 일종의 임시 경유지로, 그곳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오우랑(Ourang) 소재 난민 캠프로 난민들이 다시 이동하는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관련글 읽어보기). 2023년 4월 수단 분쟁이 본격 점화한 후 7-8월경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서 비상 대응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저는 소아 및 성인 외래 환자들을 보고, 소아의 경우 단기 입원 환자들도 진료했습니다. 현지인 의사 및 간호사들이 환자 진료를 하면서 제게 잘 모르는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고, 제가 직접 진료도 하는 형태였죠. 아무래도 아랍어를 쓰는 환자들이 많으니 아랍어 통역이 있었고, 저는 현지 의료진들과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 즉 타국 출신 활동가들과 현지 직원들의 건강 관리도 일부 담당했고요.
체감하신 주요 의료보건 문제로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어떤 환자들을 주로 만나셨나요?
말라리아 환자가 6-70퍼센트를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아들이 특히 말라리아에 취약하지만, 성인 외래 환자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워낙 주기적으로 말라리아를 앓으니까 무슨 감기나 걸린 듯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합병증이 생기면 위중해질 수 있으니 일단 열이 나는 환자는 무조건 말라리아 검사를 했습니다. 뇌까지 침범해서 의식 불명 상태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요.
또한 저로서는 교과서에서만 본 질병으로, 한국에서는 더는 못 보고 아시아 일부 지역에는 있다고 하는 주혈흡충증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오염된 물이 원인으로, 기생충이 방광벽에 살면서 피오줌(혈뇨)을 보게 만드는 질환입니다. 우리 진료소에 피오줌을 본다고 내원하는 소아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증상과 해당 기생충이 유행하는 지역을 고려해볼 때, 주혈흡충증이 강하게 의심되는 소견이 있어 자세한 평가를 위해 상급 진료 시설로 인계를 했습니다. 한 가족 중 3형제 모두가 피오줌을 본다고 내원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어린이들이 아무래도 면역 방어체계 및 피부 점막이 더 약하고 위생 관리가 잘 안되어 감염에 더 취약한 것 같습니다. 제 임기 후반부에는 황달 환자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는 풍토병인 황열 또는 바이러스성 간염 유행을 의심케 해서 방역 대책이 시급히 필요한 상황으로 생각됐습니다.
하루에 진료소에 약 150-200여 명이 찾아왔습니다. 외래 진료소가 2개, 그 안에 4개의 진료실이 있는데 저는 이들을 기반으로 순환 근무하며 하루 평균 50명 정도의 환자를 만난 것 같습니다.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찾아온 아동 환자들 얼굴이나 몸에 파리들이 앉아 있고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서 진료실을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하지만 나중에는 좀더 익숙해졌고, 감정적 흔들림 없이 진료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아동 환자를 진료 중인 정현걸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정현걸
수단 분쟁으로 아드레에 난민 캠프들이 증설되고 비상 상황에 임시 대처하는 상황이라 생활 환경이 좋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아드레가 차드와 수단의 국경지대로서 양국의 사람들을 품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왕래가 자유롭고 제한이 없어 아드레에 이미 친지 등 연고가 있는 피난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곳에 피난민들이 많이 유입되는 이유기도 하고요.
아직 긴급 대응이 진행중인 상황이라 국경없는의사회 내부 방침에 따라 저도 3개월만 근무하고 왔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르완다 등지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고, 현지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실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사무실인데 생각보다는 괜찮았어요. 낮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곳이긴 했지만요.
솔직히 말하면 국경없는의사회 여느 활동 지역보다도 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긴급 대응 활동 지역인 만큼 숙소에도 익숙하지 않은 방문객들(쥐, 도마뱀, 여러 종류 곤충들)이 많긴 했죠(웃음). 사막 건조기후라 일교차가 심해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져 이불 두 장은 덮고 자야 했고요. 밤중에 쥐가 가끔씩 방으로 들어와서 한밤중에 쥐 잡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새벽에 침대 머리맡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서 불을 켜고 찾아보면 쥐가 있고, 잡으려고 하면 옆방으로 도망가고요. 쥐똥이 구석에 쌓여 있고 주변에 쥐들이 돌아다니니까 쥐들이 옮기는 전염병 가능성에도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처음엔 아무래도 위생 상태와 음식 준비 등이 부족해서 저와 같이 타국에서 파견된 활동가들의 경우도 설사를 많이 앓았습니다. 일주일에 8-10명 꼴로 열이 나고 설사했던 것 같아요. 화장실이라고 해 봐야 커다란 구멍이 파여 있고 일을 보고 나면 물을 부어 씻어내야 하는 구조라 아침에 가면 그 전날 다른 이들이 겪은 고통의 현장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달까요(웃음). 많은 이들이 설사병으로 제 방문을 두드리니, 제가 사는 숙소에서 설사병 유행에 대한 역학 조사가 필요해질 정도였습니다. 발생 건수와 증상 등을 기록하다 보니까 일종의 패턴이 있더라고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 해소 및 긴장 완화 등을 위한 정신건강 보호 활동 일환으로 토요일마다 바비큐 파티를 했는데, 그런 행사가 열린 주말 이후 월요일만 되면 숙소에 설사병 환자들이 증가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곳에 나온 고기나 불판 위생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근무를 마칠 무렵엔 식수위생관리팀이 수도시설을 바꾸고 이것이 안정화되어 설사 환자 발생 빈도도 일주일에 많아야 1-2명꼴로 줄어들었습니다. 나중에는 화장실에 타일도 붙이고 샤워기 같은 것도 설치하고 하더라고요.
활동가가 근무한 사무실 및 숙소 인근 난민들의 임시 거처 일부 ©국경없는의사회/정현걸
고생하셨습니다. 방도 1인 1실이 아니었다니 아무래도 더 불편하시지 않았나요?
근무지와 단 10미터 떨어진 곳에 방이 있었고, 제가 머문 기간 주로 함께 방을 쓴 룸메이트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간호활동 관리자(Nurse Activity Manager) 디코라는 동료였어요. 무슬림이라 하루에 5번 기도를 하는데, 처음엔 저한테 미안하다고 새벽 다섯 시 반에 방 밖으로 나가서 모래 바닥에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솔직히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아침저녁으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보니까, 그리고 그 친구가 아랍어로 하는 기도의 내용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그걸 알려주니까 저까지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신은 위대하다부터 시작해서 가족과 공동체, 자기 일의 안위, 게다가 마지막엔 저의 안위까지 빌어주는 마음이라고 하니까요. 나중에는 제가 다섯 시 반이 되면 ‘너 기도할 시간이야’하고 깨워주고 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일한 국경없는의사회 첫 활동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아무래도 인도주의를 기반으로 생명을 살리는 데 목표를 둔 조직이라서 그런지 동료 직원들이 인간적으로도 괜찮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같이 일한 동료들은 유럽 지역보다는 서아프리카, 특히 부르키나파소나 세네갈, 니제르, 카메룬에서 온 활동가들이었는데요. 어쩌면 이 동료들이 한국인인 저와 정서적으로 더 맞고 성실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이 동료들은 우선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습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게 국경없는의사회라고들 해요. 의사 전달 체계가 상당히 간소화되어 빠르고, 수평적 조직이라 일이 빨리 빨리 해결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파견된 활동가들과 현지 직원들 교육에도 적극적이고요.
의사나 간호사 등 현지 의료진은 대부분 수도 은자메나 출신인 차드 사람들이었어요. 차드 보건부 소속은 아니고, 국경없는의사회가 수단 난민이 대규모로 유입되는 아드레에서 캠프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직 활동을 해서 온 것이죠. 수도에서 차로 이동시 이틀은 소요되는,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인 1,200km거리인데도요.
근무지에서 동료 직원들과 함께한 정현걸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정현걸
인도주의란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요?
인간이 인간을 돕는다는 건 사실 막연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현장에 가서 나와 같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고통에 공감해 본 것이죠. 물론 동정심이 인도주의적 일을 하러 가는 동기의 일정 부분을 이룰 수 있습니다만, 이를 현장에서 실행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측면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 이번 활동을 통해 직접 느꼈습니다. 더불어 아무래도 제가 한국인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게 돼요. ‘만약 전쟁이 생겨 내가 난민이 된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인접국에 전쟁이 나서 인접국 출신 난민들이 우리나라로 대규모 유입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차드 사람들처럼 이 피란민들을 보듬어줄 수 있을까?’하고, 전쟁이란 것과 인간의 조건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드레 현장에서 현지 직원들과 함께한 정현걸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정현걸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 아이들이 지금 8살, 6살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부인이 생계를 담당해주고 있어서 저는 이런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인간의 조건이라든가, ‘사람은 왜 사는가’, 그런 거 생각하는 걸 원체 좋아해서일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 ‘내가 평소에 가진 게 얼마나 많았나’, ‘우리가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그런 생각도 더 하게 되잖아요. 그런 걸 느끼기 위해서 활동을 나가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활동하고 나서 제 마음이 더 넓어진 건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살면 다른 것은 생각 안 하고 돈 버는 것, 나와 내 주변 친구들로 시야가 한정되니까요.
하지만 아무래도 가족들이 있으니, 의논을 해서 다음 활동 계획을 결정할 것입니다. 우선은 긴급 대응 활동이 환경이 열악하다고는 해도 파견 기간이 짧기 때문에 이게 제게 더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프랑스어를 더욱 연마해서 국경없는의사회의 프랑스어권 활동 현장으로 더 나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