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港 광양을 품고 있는 가야산
(전남 광양시청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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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길거리 장을 돌아보는데 쑥, 냉이, 씀바귀 등 봄나물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겨우내 묵은 채소에 떨어진 입맛을 돋우는 데는 봄나물이 제격이다.
봄나물은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머금고 있어 우리 몸에 생기가 돌게 하고 춘곤증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준다.
먹을 것이 귀하던 가난했던 시절 주린 배를 채우려고 먹었던 나물이 요즘은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대접받는 세상이다.
고마운 봄의 선물, 입안 가득히 봄나물향기가 베어나고 있다.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철지난 겨울옷이 변심한 애인처럼 얄밉게도 느껴지겠지!
광양시는 전남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항만도시로 금호동에는 단일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주)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있다.
섬진강을 경계로 경남의 하동군과 경계를 짓고 있는 전남도의 동쪽 관문에 해당한다.
북부의 소백산맥 줄기인 백운산일대는 산악이 중첩하나 동쪽 섬진강유역과
남쪽 해안지대는 경사가 완만하고 비교적 넓은 평야가 광양만 연안에 발달해 있다.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대형 선박 5척을 동시에 댈 수 있는 국내 최대의 항만시설이
갖추어졌으며, 광양컨테이너부두 건설, 그밖에 제철소와 연계된 철도와 도로건설 등으로
사회간접자본시설이 확충되어 지역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도시이다.
제철港 광양을 품고 있는 가야산을 다녀왔다.
가야산은 높이가 497m로 그렇게 높지 않는 산이지만 광양시청 뒤편에 우뚝 솟구친
산으로 시내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광양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교통, 지리적조건도 좋은 데다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백운산(1,217m), 그 위로
지리산(1,915m)이 보이고, 올망졸망한 섬들을 마치 새끼품은 봉황처럼 동서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어 남해의 청정해역으로 금방이라도 날아들 것 같은 장엄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보석 같은 산이다.
진안 장안산(1,237m)에서 비롯하여 소백산맥남단의 백운산까지 끝내려던 호남정맥이
남으로 국사峰(531m)과 구봉화산(473m)을 내뻗은 여세로 일으켜 세운 산이다.
주변은 산지가 많으나 백운산에서 발원한 백운천이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동천과 서천의
하류에 꽤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다.북쪽은 구례군, 서쪽은 순천시, 동쪽은 섬진강을 끼고
하동군, 남쪽은 광양만에 접하고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온다.
남쪽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제비 등을 타고 오는 것인지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고 겨우내 추위로 거칠어진 농촌들녘을 어루만지며 오는 바람아.
매 마른 나뭇가지에 새순과 꽃망울을 터트리게 하고 낙엽활엽수 떨어진 잎을 뒤집어
보기도하면서 게으른 새싹들을 잠 깨우고 있는 바람아!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날, 정말 이젠 어쩐다지?
아름다운 봄날은 자꾸 가고 있는데,
“고삐 풀린 망아지가 달려간다. / 박차고 달려가기만 하는 철부지야
한낮이 길어지고 / 봄 사자 코털을 건드리고 내달리는
때 이른 사춘기라잖니 / 이젠 어쩐다니!” (정 끝별 “춘분지나”에서)
잔털복숭이 버들강아지가 한들거리고, 산수유(생강나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음)가지에
노란꽃망울이 소담스럽기만 하는 봄날에,
둥 굴게 몸을 말아 “쭉-” 몸을 펴는 툇마루고양이처럼 우두 득! 산과 들 뼈마디 푸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가야산산행은 2시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이기 때문에 점심은 하산해서 먹기로
하고 가야산장이 있는 가야터널입구에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로 초입 길은 오르막이고 시작해서 30분정도는 호흡이 가빠지고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일이다.
평소에는 산행을 하지 않던 여성회원 4명이 산이 낮다는 산행이사 설명을 듣고 용감하게
산행에 동참을 했는데 한 명은 도중에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갔고 나머지인원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산행을 했었다.
도심을 품고 있는 산이라 많은 시민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장수약수터를 지나 작은 가야산에 오르니 발 빠른 남녀회원 3명은 산행거리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가야터널을 왕복하고 오고 있었다.
가야산정상에는 거대한 통신시설이 우뚝 서 있었고 정상표지석도 있었다.
바다와 항만과 제철소, 그리고 시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처럼 내려다보였다.
정상을 되돌아 내려오니 시내로 내려가는 길이 여러 곳으로 나있었다.
중마동 가야 샘으로 내려와 철다리를 건너니 가야터널로 가는 2차선도로가 있었다.
산행버스는 출발점인 터널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햇살은 맑고 좋은데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너무 세게 불었다.
태양이 우리가 사는 북반구에 더 많은 햇살을 비추기시작하는 춘분이 지난지도 며칠이
되었는데 이맘때 산과 들에 스며드는 햇살은 추운 날 주머니 속으로 슬며시 파고들던
연인의 손길처럼 따스하고 짜릿하다.
그 촉감에 방망이질 치던 젊은 가슴과 흥분, 그리고 전율로 현기증을 느꼈던 날에도,
매화는 그 두근거림으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 같은 지역의 매화도 일조시간에 따라 꽃이 피는 때가 같지 않으니,
꽃 피울 그날을 조급해 하지마라, 그대가 꽃피는 그때가 진짜 봄이 아닐까?
우리도 매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섬진강변 매화마을을 찾아 가기로 했다.
섬진강변 백운산자락의 약33만㎡ 지역에 군락을 이룬 매화단지는 전국에서 매화 경치로는
으뜸으로 칠 정도로 아름다워서 “취화선”, “다모” 등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다압면섬진강변 섬진마을(매화마을)과 섬진교 둔치에서 해마다 3월 중순에 열리는데
1997년부터 고품질의 매실과 매실식품을 널리 알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한 이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큰 축제가 되었다.
매화를 주제로 한 축제로는 전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개최되는 꽃 축제이다.
2003년에는 축제를 찾은 사람이 무려 25만 명에 이르렀다.
이곳 매화나무는 1930년경 청 매실농원 주인 김 오천에 의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집단재배가 시작되었으며, 현재 대표인 며느리 홍 쌍리가 매화나무의 수를 늘리고
품종개량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청 매실농원(16만5천㎡ 면적)에는 매실과 장 종류를 저장하는 2,000여 개의 옹기
항아리가 있었으며, 다양한 매실제품과 매화나무묘목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무높이가 5-10m정도인 매화나무는
꽃을 매화, 열매를 매실(梅實)이라고 하는데 중부지방에서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붉은색을 띤 흰빛이며 향기가 난다.
7월에는 노란색열매로 익고 신맛이 강하며 과육(果肉)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 매화, 만첩 흰 매화, 붉은 꽃이 피는 것을 만첩홍매화라고 한다.
5-6월에 덜 익은 열매를 따서 약 40℃의 불에 쬐어 과육이 노란빛을 띤 갈색(60% 건조)
이 되었을 때 햇빛에 말리면 검게 변하는데 이를 오매(烏梅)라 하며
한방에서는 수렴, 지사, 진해, 구충의 효능이 있어 설사, 이질, 해수·인후종통, 요혈,
혈변, 회충복통, 구충증 등의 치료에 처방한다.
뿌리는 매근, 가지는 매지, 잎은 매엽, 씨는 매인이라 하여 역시 약용으로 쓴다.
덜 익은 열매를 소주에 담가 매실주를 만들고 매실로 매실정과, 과자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꽃말이 “고격, 기품”(高格, 氣品)이라는 매화를 조선초기의 文臣 강희안은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줌으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고,
늙은 몸에서 정력이 되살아나는 회춘(回春)을 상징하였다고 했다.
또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 중에서 으뜸이며 詩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더 유명해진 화개장터를 귀로(歸路)에 들렸다.
화개장터는 지리산에서 시작한 화개川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열리던 전통적인
재래식시장이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나 최근에는 상시시장이 개장되어
특별히 5일장이 따로 서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화개장터는 전국에서도 이름난 시장이었다.
지리산일대에서 생산되는 산나물과 약재, 전라도 곡창지대의 쌀과 보리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보부상들이 가지고 온 생활용품 및 남해안 일대 어부들이 섬진강을 통해 가져온
미역과 고등어 등의 수산물도 볼 수 있었다.
하동읍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10里 벚꽃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봄이 되면 전국의 물산과
꽃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예전에는 지금의 화개川다리 아래에서 장이 섰지만 현재는 화개장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과거의 정취가 조금은 퇴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몇몇 초가집상가와 누각으로 과거의 운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추천 먹 거리로는 재첩 국이 재격이며 빙어와 은어 회 또한 일품이란다.
곡성 오일장터 주차장에서 하산 酒를 먹었다.
양동 영례 매씨가 준비한 북어 국에 묵은 김치, 봄나물무침이 너무나 맛있어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하고 말았다.
꽃피는 봄날처럼 포근하고, 항상 천사의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랑하는 매씨여!
오늘의 모습으로 영원불사(永遠不死)하시라.
(2011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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