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박이 코흘리개 소년은 어린나이 답지않게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가슴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고는 경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아니, 그 어린 나이에 스포츠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고 대한민국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았다고 목이 터져라 선수를 응원하며 거기다 애국가가 울리기라도 할라치면 혼자 코끝이 찡해져서 애국심에 불타오른단 말인가?
여하튼 아마도 기억의 시작은 염동균이 푸에르토리코까지 날아가서 윌프레도 고메즈라는 KO머신에게 무릎꿇은 경기를 지켜보면서 부터일것이다. 혼자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마도 그날은 일요일, 그것도 오전이었을게다. 우리의 호프 홍수환이 카라카스에 날아가서 '지옥에서온 악마'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맞짱을 뜬 날은..
분명 그 전날부터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경기순간만을 기다렸을 일곱살박이 꼬마는 막상 경기시간이 다가오자 슬그머니 놀이터로 향한다. TV를 보며 응원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던 게다.
초조하게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혼자서 모래를 갖고노는 어린아이란...
짐작에 경기가 끝났으리라 생각되는 시간에 들어간 집은 한마디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무려 4번씩이나 바닥에 나뒹굴었던 홍수환이 불사신처럼 일어나서 까불대던 검둥이 녀석을 때려 눕혔던 것이다.
원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와 이모부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권투라하면 야만적이라며 일체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엄마와 이모들까지 얼굴이 벌개져서흥분하고 있었다. 덩달아 일곱살짜리 어린아이는 경기도 못본 주제에 들떠서 방방거리고 있었고..
그랬다. 그때부터였던거다. 아주 중요한 스포츠 경기는 직접 관람하지 못하게 된것은...
김태식이 루이스 이바라를 뭉개버리던 경기도, 강만수가 다나까를 압도하던 모스크바 올림픽 배구 예선도, 신연호가 미친듯 달리던 세계청소년 축구대회도 나는 재방송을 봐야만 했다.
마치 그럼으로 내가 한국선수의 승리에 일조하기라도 하는것처럼...
무심코 시청하던 김태식의 LA원정경기에서 어줍잖은 마테블라에게 어이없이 패하는 KO제조기의 모습을 본후로 그건 거의 확고한 징크스가 되버렸다.
그후로도 오랬동안 나는 간절히 응원하던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스나 청보 핀토스의 경기는 직접 보지 못했으며(그팀들은 징크스에 상관없이 거의 무조건 지는 팀이였다만..) 각종 국제대회의 한국팀의 중요한 경기는 차마 볼수 없었다.
LA올림픽 축구 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이기면 몇십년만의 본선진출이 확정되는 그 중요도를 생각해볼때 나는 그경기를 보아서는 당연히 안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경기시간은 오후 11시가 넘는 늦은 시간이었고 고작 중학교 2학년 짜리가 동네를 헤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것이 아마도 불행의 시초였을 거다.
컴컴한 놀이터에 혼자 앉아 청승을 떠는 동생이 안됐던지 누나가 뛰어나왔다.
"얘, 3-0으로 이기구 있어. 어여 들어와. 들어와두 괜찮을것 같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 악마의 유혹을 한국축구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며 분연히 떨쳤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네에 앉아 버티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고 게다가 어슬렁 거리던 동네 양아치 형들의 것으로 보이는 빨간 담뱃불이 너무 무서웠다. 못이기는척 집으로 들어와 TV앞에 앉은 나는 기어코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5-4로 대역전패를 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장성한 청년은 그때만큼 한국팀의 승리를 간절히 기원하지는 않게된다. 여전히 스포츠에는 관심이 많고 우리편의 승리를 원하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우리편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고생을 감수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경기의 승패와 나의 바램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뒤늦게 떠올린 탓일까?
아니면 커갈수록 알아가는 각종 어른들의 비리와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찰 탓으로 애국심이 무뎌져서였을까?
이유야 어쨌든 난 더이상 한국팀의 승리을 위해서 경기를 관람하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희생을 하지 않게 됐고, 세상없이 중요하다던 스포츠 경기도 결국은 스포츠일뿐, 나의 일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것을 깨닫게 됐던거다.
그렇게 청년은 나이를 먹어갔고 결혼을 했으며 몇번의 올림픽과 월드컵을 시청했고 심지어는 우리땅에서 열린 월드컵도 전혀 거리낌없이 직접 지켜볼수 있었다.
비록 느닷없이 질러대는 승리의 함성에 집사람과 아이의 질타를 받긴 했지만...
그리고 맞은 아테네 올림픽.
언제부터인가 올림픽은 그저 밤잠을 설치게 하는, 그래서 회사에서 내내 졸리게하는, 하지만 재미는 있는 그정도의 스포츠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머 억울하기는 하지만 심판의 장난으로 메달을 놓치고, 메달의 색이 변하는 황당한 경우를 당해도 예전처럼 눈물을 흘리며 억울해하지는 않았다.
세상사가 다 그렇고, 힘있는 것들이 언제나 많이 가져간다는.. 그런 엿같은 경우를 이미 나는 많이 경험한 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마지막날.. 나는 간만에 경기와 내가 합일 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예전처럼 경기를 보지 않고 밖에서 서성대야만 할 것같은 강한 의무감을 느낀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자 핸드볼 경기 탓이었다.
뭐 여자 핸드볼이야 예전부터 금메달, 은메달을 심심치않게 따주던 종목인데 뭘 그리 세삼스레 야단이었냐구?
첫댓글푸후~~ 이렇듯 온 마음을 쏟아붇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 .. 읽으면서 초조하게 담배를 빨아대는 이 분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다행이네요. 이젠 편히 즐기려 하신다니 말입니다. 핸드볼 경기장에서 이 분을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앙리님 고마워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저도 서울 올림픽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핸드볼 선수였던 그때의 핸드볼 경기.. 그리고 이후 올림픽때 어떤 종목에서 느꼈던 마음과는 또다른 그런 마음... 혼자 TV를 보면서 스포츠를 보면서 그렇게 울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혼자 화이팅을 외치며 흘렸던 눈물이...
첫댓글 푸후~~ 이렇듯 온 마음을 쏟아붇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 .. 읽으면서 초조하게 담배를 빨아대는 이 분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다행이네요. 이젠 편히 즐기려 하신다니 말입니다. 핸드볼 경기장에서 이 분을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앙리님 고마워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후추에서 퍼오셨군요. 저도 이 글보고 가슴이 정말 찡해지더라구요~
정말 가슴이 찡하네여...이런분이 있는한 핸드볼은 영원할겁니다^^
나 울엇소이다...
나랑 같은 세대인듯... 석민희선수 보고싶다 ㅠㅠ 성경화, 석민희, 오성옥, 이상은, 문필희... 우리나라 우측인너의 계보 ^^
저도 서울 올림픽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핸드볼 선수였던 그때의 핸드볼 경기.. 그리고 이후 올림픽때 어떤 종목에서 느꼈던 마음과는 또다른 그런 마음... 혼자 TV를 보면서 스포츠를 보면서 그렇게 울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혼자 화이팅을 외치며 흘렸던 눈물이...
전 특히 마지막 말이 너무 와닿었어요... 이제 편히쉬라는 정말 쉬어뒤 된다는...
감동적이네여~... 우리 아줌마들 넘 머쪄~+_+
난 이 기사 협회홈피서 먼저봤는데 .나도 마지막말에 눈물찍.....
우와,,, 멋지네요,,, 감동으ㅣ 물결~~
ㅡㅡ?? 이거 복사했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