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
> 120년 전, 우연히 선사 시대의 뛰어난 예술 작품이 발견되었다.
1879년 여름, 에스파냐 북부 산탄데르 교외의 어떤 동굴에서 향토 고고학자인 사우투라는 5세 된 딸 마리아를 데리고 발굴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동굴 입구 부분을 조사하고 있는 동안 마리아는 아버지의 작업에 실증을 느끼고 몰래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수 m 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돔 모양의 천장에 기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이것 보세요. 소 그림이 있어요.” 그것은 몇천 년의 시간을 거쳐 구석기 시대의 예술이 현대인의 눈에 띄게 되는 순간이었다. 딸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뛰어들어간 사우투라는 그들 그림을 램프로 비춰 보았다.
거기에는 뛰어오르거나 달리거나 지면에 웅크리고 있는 들소(bison)들의 모습이 놀랄 만큼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는 금세 그 그림이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확신하였지만, 그러한 생각은 좀체로 용납되지 않았다.
당시의 과학자에게는, 동굴에 사는 원시인에게 그렇게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 있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에스파냐와 프랑스에서 차례로 동굴 벽화가 발견되고,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솔뤼트레 문화와 마들렌 문화기에 걸치는 시대에 크로마뇽인에 의하여 그려진것임이 밝혀졌다.
더욱이 방사성 동위 원소 탄소 14(14C)의 연대 결정으로 알타미라동굴의 대 홀(大 Hall)의 그림은 약 1만 4500년 전의 작품임이 판명되었다. 오늘날 알타미라 동굴은 미켈란젤로의 벽화로 유명한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견주어 ‘선사 시대의 시스티나 예배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화 유산의 하나가 되었다.
대 홀의 작품은 단 한 사람의 뛰어난 아티스트에 의하여 그려졌다대 홀의 돔 모양의 천장에는 크기가 2m를 넘는 많은 들소를 비롯하여 말·소·멧돼지 등의 동물이 다양한 색깔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바위의 갈라진 틈이나 자연히 융기한 부드러운 바위 표면을 이용하여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그림 속의 동물들에게 넘치는 약동감을 주고 있다.
동굴 안의 다른 그림과는 달리, 모든 그림에서 보여지는 붓의 놀림이 한결같다는 것이 이 홀에서 볼 수 있는 회화의 특징이다. 목탄으로 그려진 선의 두께, 바위에 대한 그림의 압력, 그리고 그림의 윤곽을 잡는 방법이 모든 그림에 공통되어 있다. 윤곽은 항상 머리에서 꼬리, 이어서 뒷다리로 내려가고, 다시 머리로 되돌아가서 거기서 앞다리와 배를 향한 다음 끝낸다. 필치는 힘이 넘치고, 아무런 수정의 흔적도 없다.
이처럼 일관된 작풍에서 이들 그림은 단 한 사람에 의하여 그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지금부터 약 1만 4500년 전의 구석기 시대 후기에 존재한 그야말로 선사 시대의 미켈란젤로였다. 대 홀에는 바깥의 빛이 들어오기는 해도 그림을 그리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이장소에서는 연기나 불을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다. 그러나 바닥 특히 벽 가까이에서 많은 뼈와 따개비 등이 많이 발견되었다. 처음에 이것은 식사의 흔적으로 생각되었는데, 나중에 밝기를 얻기 위한 연료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1만 4500년 전의 제작자는 동물의 골수와 식물 섬유로 만든 심을 넣은 점토로 만든 램프 등을 사용하여 연기를 내지 않고 동굴 안을 비추었을 것이다. 그가 살고 있던 시대는 뷔름 빙기 끝 무렵으로, 유럽의 넓은 범위가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사람들은 동굴을 주거지로 하여 수렵과 어로, 식물의 뿌리와 줄기, 숲의 여러가지 산물을 채취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혹독한 기상 조건 때문에 오늘날과는 다른 두꺼운 털로 덮인 매머드·들소·순록 등이 살고 있었음을 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그러나 그가 남긴 장려한 작품은 이러한 선사 시대의 인류가 우리 현대인과 똑같이 생각하고, 예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1만 4500년 전과 같은 기법으로 알타미라의 예술이 재현되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이 귀중한 예술을 감상하려고 알타미라 동굴을 찾아왔다. 1964년부터 동굴을 찾는 사람의 수는 연간 10만 명을 웃돌았고, 1973년에는 17만 3000명의 기록이 달성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림은 매우 손상되기 쉽고, 특히 온도와 습도가 급격히 상승하면 색소가 분리되면서 씻겨 내려가는 사태가 일어난다. 또 하루에 몇천 명이나 되는 견학자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증기의 산성화를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응결하여 석회암을 침식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벽화의 보존이 어려워진 알타미라 동굴은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폐쇄되고, 그 사이에 동굴을 완벽하게 복제시키는 일이 검토되었다. 한편으로 1993년에는 거대한 에스파냐의 테마 파크가 일본에서 건설되었는데, 그 곳에서의 전시를 위하여 에스파냐 전문가들에 의하여 알타미라 벽화가 복제되었다. 복원대상으로 대 홀의 천장화 일부가 선정되었다. 천장화를 연구한 결과, 그림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융기한 바위의 표면, 바위의 갈라진 틈이나 감촉 등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인공적 벽면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리고 구석기 시대의 제작자와 같은 순서대로 벽화의 제작을 진행하였다. 우선 조각용 도구로 에칭을 하고, 이어서 흑색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하였다. 색깔은 혼합시키지 않고 단순히 겹쳐 칠하기만 하였다. 그림 물감도 당시와 똑같이 산화철과 황토에 물을 섞은 것이고, 이를 손이나 무두질한 가죽 등으로 칠해 나갔다. 흑색으로는 목탄이 사용되었다.
이로써 알타미라 제작자의 솜씨가 멋지게 재현된 것이다. 알타미라 벽화는 현재 보존을 위하여 동굴 안으로의 입장이 제한되어 몇 년을 기다려야만 볼 수 있다. 그러나 동굴에 인접해 있는 박물관에 훌륭한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누구나 선사 시대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아무리 훌륭하게 복제한다고 해도 1만 4500년 전에 그려진 실물 그대로를 재현할 수는 없다. 이 선사 시대의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될 인류의 귀중한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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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
즐감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