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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회복지사라면 좋은 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꿈꾸는 가정복지, 사회복지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복지에만 매진하느라 가정복지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와 같은 궁금증을 자술 엣세이 형식으로 게재함
*제목 : 부부사회복지사의 일상엿보기
*부부사회복지사 : 이광원(꿈놀이터 원장), 이수정(곰메실버원 사무국장)
*글쓴이 : 이수정
여느 가정처럼 아침은 언제나 부산하다. 우리집은 여느 가정보다 가족이 많다. 그룹홈 아이들 7명이랑 우리 부부, 아들, 같이 일하는 사회복지사, 아침에 오시는 자활근로 도우미 선생님 이렇게 12명이 아침을 시작한다.
“일어나야지 늦었다.“ 양치질은 꼭 하고 학교에 가자”
엄마의 잔소리처럼 아이들의 일상 생활 지도를 하게 된다.
“요즘에 시험공부한다고 힘들지, 힘들지만 좀 참아내자 화이팅”
“어제 늦었지!! 늦게 오면 원장님이나 이모는 니가 올때까지 잠 못자는거 알제” 하며 아이들의 일상과 학교생활에 대해 자연스레 애기하게 된다.
아이들과의 애기를 적다보니 우리 부부사이에서 낳은 아들과는 별다른 대화가 없는 것 같다.
별말 없이 얼굴표정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알아서 일까? 아님 바쁘다는 핑게로 알아서 잘 할것이라는 생각에서 일까?
우리 부부에게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있다. 5살 때 부터 계란후라이를 만들고 7살 때 혼자 힘으로 라면을 끓일 정도로 먹거리를 자기 스스로 해결할 만큼 자활이 빨리 이루어졌다.
여느 맞벌이 부부의 모습처럼 항상 바쁘고 사무실 행사로 늦게 귀가하거나 일찍 집에 와도 손도 까딱하기 싫어하는 못난 엄마를 두어서 인지 ‘아 가만히 있다간 굶어 죽겠다’라는 생존권의 욕구를 발휘해서인지 혼자서 밥도 잘 차려먹고, 세탁기 작동이며, 청소기, 전기밥솥 사용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아들이 되어버렸다.
세월을 거슬러 우리 부부가 사회복지를 시작해서 만난 애기를 하자면, 세월은 17년전 진해에 있는 사회복지관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1995년 복지관 개관 멤버로 입사하게 되었다. 사회복지에 대한 실무경험이 없는 탓에 많이도 힘들었다는 기억속에 남편도 복지관 개관멤버로 함께 일하는 동료사회복지사였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사무실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보니 자연 같이 있는 시간이 길었졌고 힘든 시기를 서로 의지하며 사랑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2년 6개월동안 일과 연애를 함께 하며 힘든 초창기 사회복지를 같이 만들어가는 동료사회복지사로, 시간은 흘러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도 사회복지관에 1여년 정도 함께 생활하고 두사람의 발전과 기관의 발전을 모두 고려하여 남편은 다른 시설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과거를 회상해 보니 주마등처럼, 세월이 화살같다는 문장처럼 금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노인시설 사무국장으로 아동양육시설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는 진해에서 아동복지시설 공동생활가정 ‘꿈놀이터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다.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뛰어왔다고 생각되었지만 우리가 가진 재산은 유일한 집 한 채 !!
아동복지에 대한 뜻이 있어 그룹홈을 운영하려고 하니 유일한 집인 우리의 보금자리를 내어놓아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시어머니 집으로 가재도구와 짐을 옮기면서 아이들의 공간에 우리 짐이 차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꿈놀이터그룹홈은 소규모양육시설로 입소정원이 7명, 아이들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을 제공하여 신체적, 정서적으로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아동의 개별 특성에 맞추어 보호∙양육하는 선진국형 아동생활시설로서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가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아동을 위한 복지를 실현시키고 있다.
그룹홈을 운영한지 만 3년째,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물어봐도 대답이 없던 아이가 학교를 다녀오면 그날 있었던 애기를 술술 풀어놓는 적극적이고 밝은 아이로 변하였고, 한글을 모르고 말도 어둔하여 장애아동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학습장애가 있던 아이가 서툴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로 적어내려 가는 것을 볼때면 물질적인 보상으로 대신할 수 없는 감사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부부사회복지사라면 좋은 점은 무엇일까? 초창기 우리 부부가 사회복지를 시작할 쯤에는 부부사회복지사가 많지 않았지만 근래에는 후배 부부 사회복지사 가정이 꽤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생각을 나눈다는 점에서 부부사회복지사는 여느 부부에 비해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교류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심리적 지지와 이해도 다른 직종 부부보다 더 높으며 문제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기술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사회복지사의 집은 가정복지가 잘 되고 있을까? 저희 가정의 경우, 가정복지 점수가 높은 우등 점수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내려본다. 난해한 업무와 시기별 보고, 업무시간외 후원자와의 약속 등으로 일찍 귀가하지 못하고 주말이면 그 동안의 업무 피로를 풀기 위해 아이와 함께하는 특별한 주말프로그램은 생각하지 못하였고 주말도 간간히 사무실을 출근하거나 생활시설을 운영하는 남편일로 주말시간대가 업무의 연장이 되기도 한다. 또 사무실 근무로 아이가 아파도 선뜻 자유롭게 병원을 다녀올 수 없는 상황이라 아이에게 지정병원을 정해 놓고 자기 스스로 다녀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아이가 특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릴 때 병원에 입원하게 될 때면 일과 가정사 중 일을 우선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사회복지사가 가정일과 업무를 함께 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과정이며 남편이 함께 도와주지 않으면 몇해 가지 못해 사회복지를 포기해야 하는게 사회복지계와 맞벌이 가정의 어려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를 위해 자신의 열정을 쏟기 위해서는 비공식적 지원체계인 가족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친정엄마 혹은 시어머니에게 보통 자녀양육을 맡기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부부사회복지사가 바라는 사회복지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사회복지에 입문한지도 횟수로 17년째 사회복지영역에서 지역사회복지관, 노인복지를 알아가고 있다. 남편의 경우는 지역사회복지관, 노인복지, 아동복지를 개척하고 있다. 17년의 세월동안 쉽다는 생각보단 하면 할수록 쉽지 않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상자의 욕구도 복잡, 다양하고 그들을 둘러싼 보호자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은 좀 안다고 해도 인사는 해도 해도 녹녹치 않다. 마음을 다해서 나눠보지만 오해와 논쟁이 있다.
복잡하고 힘겹지만 마지막에는 아동(어르신)의 이익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라는 애기로 지금까지 다툼과 논쟁을 정리한다.
학부에서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실무에서 사회복지 실천을 진행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함께 도움을 나누고 주위분들께 응원의 메세지도 들으면서 돈까지 버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라고 나의 사회복지를 정의 내려본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나와 맞지 않거나 누군가와 자꾸 싸워야 해서 즐겁지 않다면 계속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게 저의 소견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감사합니다”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아들이 보충수업을 마치고 지친모습으로 집을 들어온다. 한번 꼭 안아주고 응원의 눈빛을 보낸다. 백마디 말보다 위로의 스킨쉽, 눈빛으로 지지하고 인정하는 모습, 자녀와 부모와의 무한한 믿음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우리 부부사회복지사는 행복하다.
몇일전 꿈놀이터 2관을 위해 땅을 구입하였다. 공동생활가정 그룹홈의 입소 정원이 7명이라 학대와 방임으로 방치된 아동의 입소 욕구는 많지만 그룹홈의 정원이 한정적이라 지역내 후원자분들의 도움과 저희 부부의 노력으로 1차로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까지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겠지만 이것 또한 머지않아 채워지리라 믿는다.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되고 사회복지의 가치를 오늘도 되새기며 열심히 노력하고자 다짐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며, 아이들이 꿈놀이터에 와서 밝은 웃음을 되찾은 것 같이 기적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우리가 희망하는 꿈은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