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빠알리공부모임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익명 게시판 십이연기에서 行에 대해 동영상 법문을 들으며
익명 추천 0 조회 125 22.03.06 11:54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익명
    22.03.06 13:02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_()_

    saṅkhāra(行)에 대한 단상

    초불의 설명처럼 가장 어려운 단어 중에 하나가 이 saṅkhāra(行)이지 싶습니다.
    봄봄은 먼저 이 saṅkhāra(saṅ-karoti / saṁ + kṛ / saṁs-kāra)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면서
    그 의미를 유추해 보았습니다.
    <본 카페에 이미 올려 둔 의견 saṅkhāra(saṅkhata)
    https://cafe.daum.net/pali-study/8Xy1/1285>

    먼저 뒷부분 karoti(kṛ / kāra)는 이른바 起動동사형으로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行으로 한역하였지 싶은데 앞부분 saṅ은 saṁ인지 saṁs인지 확실하지 않고
    그 의미도 알 수 없습니다.
    khāra의 가운데 -h-로 짐작하면 saṁs-가 어원이지 싶은데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단어와 주석과 여러 경문의 용례에서 짐작으로 말씀드리면
    復舊 反復
    대표적인 것이 身行이라고 하는 呼吸
    또한 대표적인 것이 '~할려는' 의도적 행위
    呼吸에는 (자유)의지라고 할 만한 의도는?

  • 익명
    작성자 22.03.06 16:57

    예,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_()_
    * 링크 걸어주신 글을 읽으니, 유튜브 동영상 법문에서 왜 의도적 행위를 세 가지, 즉 ‘선업 형성, 불선업 형성, 부동 형성’(또는 ‘공덕이 되는 행위, 공덕이 되지 않는 행위, 흔들림 없는 행위’)으로도 많이 설명하시는 지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 그리고 전정판 아비담마 길라잡이에 나오는 설명의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책에 의하면: 의도(쩨따나)는 두 가지 문맥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신과 결합된 법들을 대상에 묶는다-이 경우는 대상을 알려는 최소한의 자극이며, 어떤 마음이든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인 반드시들(촉, 수, 상, 사(의도), 집중, 생명기능, 작의)에 속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쌓는 역할을 한다-이것은 유익함과 해로움에만 있으며, 업을 짓는 의도(즉 의도적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 익명
    작성자 22.03.06 20:09

    * 그래서 언급하신 // 呼吸에는 (자유)의지라고 할 만한 의도는? // 에 대한 저의 생각(추측)은: (업, 마음, 온도, 음식 – 이 네 가지가 물질이 생기는 요인이다.‘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설명이 있고) ‘들숨과 날숨은 마음에서 생긴 것(바람의 요소)’이라고 하므로, 들숨과 날숨에도 (의도의 두 가지 문맥 중에서 두 번째인 업을 짓는 의도는 아니지만) 첫 번째 뜻인 의도(어떤 마음이든 함께 일어나는 반드시들에 속하는 마음부수인, '자신과 결합된 법들을 대상에 묶는다'는 의미의 의도)는 작용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오후 8:09에 조금 수정함)

  • 익명
    22.03.06 23:50

    심(찌따)과 의(마노)에는 샹카라가 있고,
    식(위냐나)에는 샹카라가 없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십니까?

  • 익명
    작성자 22.03.07 11:38

    예,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하지만, (다른 분들께서 답변을 하지 않으시니,) 제 관점에서 한번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견해라서 아마 많은 부분이 틀릴 수가 있으니, 저의 견해는 단지 참고로 읽으시고 버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식(윈냐냐)은 여섯 가지로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여섯 가지로 생겨날 때의 識은 그 여섯 가지가 무엇인가에 따라 각자 이름을 달리 합니다.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으로 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이때의 식은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라서 현재 업을 짓는 의도(思, 쩨따나)는 작동하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업 형성(업을 짓는 행위)이 아니라는 뜻에서 상카라가 없다는 표현을 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 익명
    작성자 22.03.07 20:03

    * 심(찟따)은 ‘몸과 마음’의 관계로, 또는 ‘삼매’의 문맥에서, 또는 ‘청정한가 오염되었는가’ 등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듯 하고, 이때는 바른 수행자라면 적극적으로 선법(善法)과 관련된 의도(思, 쩨따나)를 일으켜서 心의 상태를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니까 아마 心에는 상카라가 있다고 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
    * 의(마노)는 제가 배운 바에 의하면 ①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이 일어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마음이고(받아들이는 마음), / ②(색성향미촉) 대상으로 향하는 마음(오문전향의 마음)인데, (이때 ①의 받아들이는 마음은 과보의 마음이고, ②의 오문전향의 마음은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서, 이러한 의(마노)는: 현재 업을 짓는 의도(思, 쩨따나)는 작동하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이때의 상카라는 ‘자신과 결합된 법들을 대상에 묶는다-대상을 알려는 최소한의 자극’ 정도의 상카라만 작동할 것 같습니다. (오후 8:04에 수정함)

  • 익명
    22.03.07 21:41

    감사합니다. 식을 과보의 마음으로 보시는 듯 합니다. 그런데, S12:38 경을 보면, 의도하고, 도모하는, 무엇인가에 경향을 갖는다면 이것은 식(위냐나)을 일으키는 바탕(대상)이라고 합니다. 심행과 의행은 있는데, 식행이 없다는 것의 의미를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뭘 가지고 행이라고 할까? 심행은 상과 수라고 하는데, 이렇게 자신(심)을 두텁게 증장(복제, 팽창)하는 것을 행이라고 하는가? 등등을 저는 궁금해 하고 있습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