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한시-쥐 안 잡는 도둑 고양이
다산 정약용 저, 허경진 옮김, 한국의 한시 17번 다산 정약용 시선,1986, 평민사,126쪽
남산골 한 늙은이 고양이를 길렀는데
해묵고 꾀들어 여우처럼 요망해졌네.
밤마다 초당에서 고기 훔쳐다 먹고
작은 단지 큰 단지 술항아리까지 뒤엎네.
어둠 타고 교활한 짓 제멋대로 다 하다가
문 열고 소리치면 형체 없이 사라지네.
등불 켜고 비춰 보면 더러운 흔적 널려 있고
이빨 자국 나 있는 찌꺼기만 낭자해라.
늙은이는 잠도 달아나 근력은 줄어들고
온갖 궁리 해보지만 긴 한숨만 나온다네.
고양이 죄 생각할수록 악독하기 짝이 없어
칼자루 빼어들고 천벌이라도 내리고파라.
하늘이 네놈 내실 제 무엇하러 생겼더냐
너더러 쥐 잡아서 백성 피해 없애라 했지.
들쥐는 구멍 파서 어린 낟알 숨겨 두고
집쥐는 온갖 물건 안 훔치는 것이 없어
백설들은 쥐등쌀에 나날이 초췌해 가고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까지 말랐다네.
이 때문에 너를 보내 쥐잡이 대장 삼고는
마음대로 찢어 죽일 권력까지 주었지.
황금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주어
밤중에는 벼룩 잡는 올빼미처럼 밝았지.
너에게 보라매처럼 쇠발톱 주고
범처럼 톱날 같은 이빨까지 주었었지.
날면서 치고받는 용기까지 네게 주어
쥐들은 너를 보면 벌벌 떨고 몸 바쳤지.
날마다 백 마리씩 잡는다고 누가 말리랴.
보는 사람마다 네 모습 뛰어나다고 칭찬해 주고,
너의 공로 보답하는 팔사제에도
누른 갓 쓰고 큰 술잔에 따라 바치느니라.
너 요즘은 한 마리 쥐도 안 잡고
도리어 네놈이 도둑질하는구나.
쥐는 본래 좀도둑이라 피해 적지만
너는 힘이 센데다가 맘씨까지 거칠어라.
쥐가 못하던 짓도 제멋대로 저지르니
지붕을 들쑤시다가 담벽까지 무너뜨리네.
그러자 쥐들까지 거리낄 것 없어서
날락들락 웃어대며 수염까지 쓰다듬네.
훔친 물건 모아다 네게 뇌물로 주고
태연스레 너와 함께 돌아다니니
할일 없는 사람네들 너를 본받고
쥐떼들이 하인들처럼 너를 떠받드네.
나팔 불며 북 치고 떼를 지어서
깃발 들고 휘날리며 앞장서 가네.
너는 큰 가마 타고 교태 부리며
쥐들이 떠받든다고 좋아하누나.
내 이제 붉은 활에 큰 화살 매겨 너를 쏘리라.
쥐들이 행패 부리면 차라리 무서운 개를 부르리라.
2009년 2월 9일 장용창 옮겨 적음.
글을 배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가 이렇게 성현의 말씀을 번역해서 알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1986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2007년에 초판 8쇄까지 발행했다고 하니, 인문학 서적으로서는 상당한 베스틀 셀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