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백평방도 넘는 했빛찬란한 덩실한 아빠트가 차레졌다. 안헤는 마음먹고 장식한 집인데 군자란이며 소철나무 곤명에서 사시장철 꽃핀다는 국화꽃들을 즐비하게 갖춰놓자고 서두는데 나는 말없이 작년가을에 고향 부모님의 산고에 갔다가 얻어농 갈꽃을 창턱 중간에 높히 모셨다.마누라와 애들은 화려하게 장식한 아빠트에 촌스럽게 바람에 흣날리는 갈꽃은 왜 놓는가고 몇번이고 자리를 옴기였다. 나는 할수없이 내 서재에다 모시고 끝없는 추억으로 설레인다…
언제봐도 내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꽃이다.항상봐도 가슴을 후려내는 꽃이다.죽을때까지 시골을 못 떠나는 바보꽃이래서 그리워 지는가 싱그러운 향기도 화려한 색상도 없는 꽃이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한평생 매마른 땅을 지키며 애닯게 살아가는 지겨운 갈꽃이다. 세월이 꺼꾸로 흐른다 해도 누군가 화분주는 이도 없고 춘하추동 덧거름 한줌 풀한포기 잡아주눈 이도 없는 슬픈 꽃이다.이상하지 세상에 절세가인들이 사랑을 독차지하는 봉선화 나리곷 란초곷 나팔곷 국화곷 군자란 철새곷처럼 철맞춰 실실히 피여날게지 하필이면 두메산골에서 누구도 보지않는 산골짜기에서 소문없이 피였다가 소리없이 지는 갈꽃때문에 가슴이 아련하게 슬퍼지는건 웬일이가
벼짚이 흣날리는 농촌을 흙덩이가 달려붇는 농촌을 이름모를 잡초들과 혀를 가로물고 싸워 봤댓자 시래기 밥도 배부르게 먹지못하는 고향을 떠나려고 발버둥치던 나날에 어머님의 궤춤을 녹이쓴 옆전으로 달래던 갈곷이였다. 온 일년 죽게 일해봤댓자 마이나스 8전 그것도 종이분배장을 받아들고 한숨쉬던 사원들이 솜이 삐죽삐죽 나오는 솜옷을 망둥만큼 뚱겨입고 새끼로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멱주거리 같이 질긴 시래기 깁치에다 줴기밥을 만들어서 차고 낫을들고 갈꽃을 찾아간단다. 이제 한여름 땅에서 못얻은걸 너의 가냘픈 갈대에서 찾아보련다.작년에 공농병 대학을 요행 추천받아간 나에게 단돈 5원도 못부쳐보낸게 내내 마음에 걸려서 밤잠 못이루는 어머님이다. 분홍돈 (농민들이 가을 분배돈을 말함)이래도 한푼 차레지면 무조건 부쳐보내려고 큰 마음먹엇던 어머님이 갈곷에 최후의 희밍을 걸고 나섰단다.
눈보라 흣날리는 봉밀하 강기슭에 실물나게 흩어진 갈밭에는 갈곷이란 없고 서리꽃이 하얗게 내렸다.너덜거리는 옷섶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돌덩이같은 줴기밥을 눈설음으로 에때우며 가둑나무가 우거진 깊은 골짜기를 써개훝듯 애타게 찾는 어머님이 어쩌다 갈무덤을 만났을때 너무 기뻐서 애들처럼 발을 동동 굴렀단다.천년수림속에서 인삼을 발견한듯 눈무지에서 범이 먹다버린 노루를 발견한듯 설레는 갈대를 부여잡고 부드러운 갈꽃에 얼굴을 부비는 어머니의 가슴속에서는 정녕 삶의 희망이 샘처럼 솟아낫던가 눈덮힌 산간에서 금덩이 같은 희망을 안겨준 갈대부업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란다.
꿀떡같은 돈욕심에 단숨에 아름찬 갈대를 두단이나 베였는데 아불싸 눈덮힌 서산에서 줄띄기를 하던 저녁해가 넘어가자 산간에는 무서운 어둠이 밀물처럼 다가온다. 가냘픈 녀인이 힘으로 힘겨웁게 지고나선 깔단에 깔리워서 쓰러지지 않는게 기적이 였더냐 어둠이 밀려드는 골자기를 겨우 벗어나서 봉밀하 강반에 다가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찬바람이 쌩생불어치는 강판에 큰 버들가지를 베여놓고 아름찬 깔단을 싫었다.버들목에다 각반( 옛날에는 산으로 목재부업갈때 붕대처럼 한뽐넓이로 서발이나 길게 뗀 천으로 벌목부터 장단지까지 가로세로 감겨서 눈이 못들어가게 만든 필수품을 말함)을 풀어서 어께에 메고서 얼음이 쩡정 갈라지는 강파능로 정처없이 올리끌었다.
그런데 고추팔려가면 바람만 분다더니 어둠은 밀려오지 바람은 세차지 배는 고프지 대낮에 녹아내리던 덧얼음물이 얼어붙으면서 무거운 짐을 실은 버드나무가 찰싹 얼어붙어서 꼼짝 움직이지 않는다. 중튀량난이란다. 그렇다고 목숨걸고 여기까지 메고지고 끌고온 깔단을 버랄수는 없고 망창 십리도 넘는 강바닥에 그대로 버릴수도 없고 가야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래도 금족같은 깔단을 기어코 집으로 끌고 가야해 차가운 밤알굼에 쩡쩡 갈라터지는 강팜으로 뿌지직 뿌지직 기를쓰고 끌다가 워쩐걸 어머님은 몇번이고 넘어졌는지 모른단다…
결국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이 사람이 죽었다고 홰불들고 찾아왔길래 목숨은 지켜냈는데 이게 무슨 벼락입니까 어머님이 왼팔이 딩딩 붓겨나서 공사병원으로 찾아갔더니 팔이 불러졌단다. 뼈가 불러진건 공사병언에서는 어쩔수가 없으니 망창 30리도 넘는 팔가자 병원에 가서 x쓰광 사진을 찍으란다. 갈판돈이 5원인데 엑쓰광 사진 찍는값이 5원이란다. 어머님은 둥둥부어나는 팔목에 된장을 쳐바르고 버들가지로 부목을 대고 또다시 갈부업에 나섰단다.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돈이 나올곳은 갈부업밖에 없었다…좋으나 궂으나 죽으나 살리나 갈부업박에 없었다. 허허벌판에는 갈곷이 필새도 없었다. 깊은 산골자기에도 갈곷은 보고 죽자고 해도 없었다…어머님이 부쳐보낸 돈 5원으로 나는 오매불망 바라던 지질대 반모구두를 사신었다. 비록 돈이 모자라서 털이부시시한 지질대 구두를 삿지만 어전지 어머님이 부드러운 손길이 따뜻하게 안겨와서 그날밤 나는 신발을 머리맡에 올려놓고 안고서 잦단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대학교의 허물없는 동창들을 내집으로 모시고 왔다. 전주리씨 이쪽패 가문에 전대미문의 영웅이요 와룡산골에서 처음으로 솟아난 개천의 룡이라 앞가슴에 번적이는 대학휘장을 자랑하고 싶어서 찾아왔단다. 오매에도 그리던 대학생 아들이 왔다고 평소같으면 손매돌을 씽씽돌려서 두부를 앗을 어머님이 웬일인지 날보고 두부콩을 갈아달란다. 내손으로 순두부를 았는것도 별난재미라고 우리는 씽씽 매돌을 돌려서 순두부를 앗아놓고 친구들과 함께 건배를 올리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