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342m)
(전북 익산시)
호남평야의 익산 벌판에 솟은 용화산은 백제 무왕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 동네 뒷산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백제 시대의 성군 무왕의 꿈이 서린 산이다. 백제 30대 무왕은 익산 땅에 왕궁을 세우고 천도를 준비했다고 한다. 특히 미륵산 남쪽에 자리 잡은 미륵사지는 동서 172m, 남북 148m에 이르는 백제시대 최대의 사찰이고 평면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미륵사는 무왕의 부인이었던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의 청에 의해 무왕이 창건하였으며 백제의 강성한 국력과 백제건축의 실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미륵사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11호로 지정돼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이며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다. 639년에 만들어진 미륵사지 석탑은 9층으로 추정되고 현재는 해체 복원중이다.
용화산은 금남기맥의 산이다. 용화산의 산줄기는 금남정맥부터 시작된다. 금남정맥 능선 상에 솟은 왕사봉(718m)서 금남정맥을 이탈하여 서쪽으로 곁가지를 친 산줄기가 금남기맥이다. 금남기맥은 선녀봉, 불명산, 장재봉, 작봉산, 까치봉, 천호산 등을 빚다가 왕사봉서 약 35Km 거리에 용화산을 일으킨다. 용화산을 지난 금남기맥은 미륵산(430m)을 솟구치고 난 다음 산줄기가 낮아져 비산비야를 이루며 군산의 장계산(110m)까지 길게 뻗어나간 후 서해바다서 그 흐름을 멈춘다.
국민생활체육 어르신 등산대회가 용화산서 개최됐다. 어르신 등산대회는 60세 이상의 산객들만 참가할 수 있고 60세-69세부, 70세 이상부의 선수들로 구성되며 각 시도에선 예선을 실시하여 선수들을 선발한다. 대회는 개인 경기가 아니고 5명이 1팀을 이루는 팀 경기이다. 어르신 등산대회 대전광역시 감독으로 선발돼 10명의 선수와 함께 전주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선수들과 함께 등산 경기가 열리는 서동공원을 찾아간다. 서동공원은 미륵산서 내려다보면 우리나라 지형처럼 생긴 금마 저수지 오른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마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마한관이 건립돼 있고 휴식공간으로 잘 조성돼 익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개회식을 마친 다음 등산이 시작된다. 서동공원서 정상까지는 2.6Km쯤 된다. 대부분의 산길이 평탄하고 널찍하여 노약자를 비롯한 가족 산행으로 적당하다. 처음에 나무 계단 길로 올라가 널찍하고 유순한 길로 산을 오른다. 산길은 평탄하여 편안한 느낌을 주고 산책하는 기분이다. 중키의 소나무들이 즐비한 기분 좋은 숲길로 진행하여 삼각점이 박혀 있는 능선에 올라선다. 이따금 경사가 급해지기도 하지만 나와 우리 선수들은 거침없이 선두로 산을 올라간다.
얼마 후 편백나무 숲길이 나타나더니 곧이어 널찍한 헬기장에 이른다. 서쪽으로 미륵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이어서 산길의 경사가 급해지며 정상에 올라선다. 우리 선수들이 전국 13개시도 선수들 중 가장 먼저 정상을 밟았고 소요시간은 1시간도 되지 않았다. 휴식도 없이 정상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뻗은 능선 길을 따른다. 바로 군부대서 설치한 경고판이 나온다. 이 지역은 공용화기 사격장이므로 지정된 등산로 이외에서의 활동은 일체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조금 후 미륵산과 선인봉으로 갈리는 갈림 능선에 닿는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리막길로 진행한다. 철조망을 따라 나있는 완만한 능선 길로 눈앞의 미륵산과 벗 삼아 산을 내려가니 서동공원 하산 표지판이 서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산을 내려가 금마저수지로 내려선다. 이어서 금마저수지와 벗 삼아 진행하여 전국의 선수들 중 가장 빠르게 서동공원으로 돌아와 산행을 마친다. 물론 빨리 완주 했다고 1등을 하는 것이 아니다. 등산경기는 속도, 등산장비소지현황, 등산상식, 팀웍등 4개 종목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데 우리 대전광역시 등산 선수단은 3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