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든 신부님
이다한 스테파노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기사:빛두레 기사/ 2025년 1월 19일
새해 첫 주말, 추운 날씨와 강설 예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눈도 많이 내렸습니다!) 집회 인파가 대거 몰리면서 서울 한남동은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 신부님 한 분이 응원봉을 들고 시민들을 화장실로 안내하는 사진과 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덩달아 수도원도 세간에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화장실과 쉼터를 개방해 주고 안내해 주신 모습에 감동 받았다’, ‘소식 접하고 신자로서 자랑스러웠다’, ‘이웃 사랑의 마음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하다’ 등 과분하고 고마운 말씀을 들으면서, 저희는 새삼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훈훈한 이야기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왜 화장실을 개방했냐고 항의하는 전화도 빗발쳤습니다. 그런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가던 어르신들, 경찰 분들도 함께 화장실을 이용하셨으므로 그런 항의가 조금 억울하긴 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 항의 전화 외에 몇몇 언론사에 문의도 있었습니다. 응원봉을 들고 시민들을 안내한 그 신부님을 인터뷰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부님을 찾는 모든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3장 30절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여기서 ‘그분’은 신부님이 모셨던 ‘시민들’이십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의 관심과 시선은 진정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저희가 화장실과 쉴 공간을 개방해 드린 일이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감동, 나아가 신앙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드렸다면 분명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따로 계시지요. 혹한의 추위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마음 졸이고 씻거나 쉬지도 못한 채 집회에서 목소리를 낸 시민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을 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수고와 희생 그분들의 내신 목소리에 비하면 저희가 한 일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래서 응원봉을든 신부님도 저희 수사들도 시선이 엉뚱한 데로 흩어지지 않기를, 부디 시민들의 간절한 호소에 모든 감각이 집중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언론 본연의 임무 또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널리 알려주고, 지금 대한민국에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녀가면서 화장실과 강당을 깨끗이 정리해 놓고 떠나신 놀라운 시민의식, 그분들의 선한 지향이 우리 사회의 크게 울려퍼지기를 바랍니다. 부디 하느님께서 우리나라와 시민들을 지켜 주시고 우리 모두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첫댓글 불교는 사철 개방되는 해우소(이름도 참 근사하다) 사실 얼마나 걱정과 근심스러운 일인지..
참 상식적인 처사였는데 이게 화제가 되는 세상이 되다니......위 내용에서 제공한 수도원이나 사용한 사람이나 서로 훌륭하게 사용하고 배려했다는 그 현실이 가장 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