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영 시 연구』 발간
사단법인 문학사랑협의회(이사장 리헌석)에서 ‘작고문인 서지적 연구’의 일환으로 『이덕영 시 연구』를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대전문화재단에서 지원하여 발간한 이 책은 이덕영 시인 연구를 위한 자료 집성(集成)의 성격을 띤 서지적 연구입니다. 1963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化石」이 당선되었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꽃」이 가작으로 입상하여 화려하게 데뷔한 이덕영 시인의 여러 자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덕영 시인은 서라벌예술대학 재학 중에 신춘문예에 당선한 분입니다. 그 이전에 대전 시대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이 연합하여 출범시킨 ‘머들령문학회’에 참여하여 문학의 기초를 닦은 분입니다. 고등학교 1960년 2학년 재학시에 4.19혁명에서 산화한 청년들을 추도하는 시집 『焚香』에 ‘낙화의 가슴에’를 수록하였고, 1961년 3학년 재학시에 3인 시집 『太陽을 안고』를 강신본 윤 충과 함께 발간한 엘리트였습니다.
= 서평(이덕영 연구 평설에서 부분적으로 가려뽑음)
# ⸢한 줄기의 煙氣⸥는 李德英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에게나 매우 뜻있는 主題이다. 어쩌면 이 主題의 음미는 그대로 李德英의 음미일 수 있고 詩가 당면하고 있는 運命의 이해가 될지도 모른다. 文明에 얽힐 수밖에 없는 삶 앞에서 어차피 詩는 한 줄기의 煙氣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한 줄기의 煙氣가 우리를 무한한 생명에의 향수 속에 사로잡고 文明의 번질번질한 成功主義는 아랑곳도 없이 산 너머로 산 너머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렇듯 李德英은 文明으로 날렵할 수 없다. 그가 애써 눈여겨보는 것들은 그 모두가 그의 고향 가까이에서 너무도 젖어 온 우리 모두의 것들이기에 그의 날(刀)선 文明이 멀리 잊어버리기로 한 것들이다.
밀밭이라든가, 햇살, 바람, 지게 木工, 탱자꽃, 無許可 술집, 지붕, 또는 그가 어렸을 적부터 너무도 보고 들어오던 동네 이름들이다. - 원형갑의 해설 중에서
# 그는 뼈에 사무치도록 고독하게 자라면서 정의 그리움을 찾는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러한 정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 그는 주위의 권고로 당시로서는 취직이 가장 쉽게 된다는 대전공고에 입학했으나 사실상 학교 공부는 제쳐두고 오직 시에만 매달린다. 그와 동향이며 가까이 지냈던 金容材(시인· 대전대 교수)는 “중고교에 다닐 때부터 그는 오직 시에만 매달렸으며 친구들도 문학도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문학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수업에 들어간다. 학교 교지 등에 기회 있을 때마다 시를 발표하고 시화전이 열리는 곳이면 어디건 찾아나서곤 했다.
이 무렵 그는 최초로 姜信本 등과 함께 3인시집 『太陽을 안고』(1961. 11. 30, 三友출판사)를 펴냈다. “더욱이 아쉬운 이 鄕土에서 燦然한 별들”이라는 서문을 丁薰이 쓰고 발문을 林仙默이 쓴 이 시집에서도 그의 작품은 향토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 박명용 시인의 평설 중에서
# 고향에서 배우고 익힌 한국적 토착언어에 관심있게 접근하면서 아름답고 번뜩이는 서정의 세계를 승화시켜 왔다. 그의 작품은 결국 자연과 정서적 同一視의 시였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가 곧 자연이오 ‘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는 자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인 자신의 ‘심리적 사실’이었으며 한편으론 우리들의 ‘세상사’였던 것이다.
언제 읽어도 정감이 넘치고 생명력이 있는 향수를 뿜어내는 듯한 그의 시였다. 많은 독자들이 그래서 그의 시를 그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등단 13년 만에 시집 ⸢한 줄기의 煙氣⸥를 남겨놓고 후속 시집도 없이 정말 한 줄기의 연기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하략)
이덕영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1993년 7월 한밭시인선 간행위원회에서 그의 유고시를 모아 ⸢푸른 것이 더 푸른 날⸥이란 시집을 세상에 내 놓았다. - 김용재 교수의 평설 중에서
# 이덕영의 시세계는 자연에 대한 시적 탐구로 드러난다. 그의 고향이자 성장 배경이 되는 전원을 상상력의 토대로 하여 향토적 서정과 자연의 생명력을 형상화해 내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시는 전통 서정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의 시적 공간은 주로 봄이나 여름의 자연 속에서 펼쳐진다. 그의 시는 더욱 우리의 토착적인 언어에 접근하면서 그 속에서 빚어지는 서정의 아름다움을 아주 효과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조연현) 그의 시는 서정시의 정통적 차원에서 출발하여 대상에 접근해 간다.
서정시는 일반적으로 대상에 대한 동일성을 추구한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동일성을 추구함으로써 대상과 화자는 일체가 된다. 결국 시는 자연이라는 동일성의 회귀에 다름아닌 터이다. 따라서 그의 시적 화자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의 입장이 아니라, 사물과 자아가 하나로 융화되어 나타난다. - 김완하 교수의 펑설 중에서
# 『焚香(분향)』의 필자들은 1960년에 고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이다. 이들은 문학창작에 뜻을 둔 청소년들이었고, 대전에 소재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연합하여 1959년에 결성한 ‘머들령동인’들이었다. 이들은 대전일보와 중도일보에 지상 투고를 하였고, 1960년 3월 1일에 ‘3.1 문학의 밤’을 개최하여, 1919년에 발발한 3.1운동을 시로 승화시켰다.
이처럼 지역의 청소년들이 연합하여 문학창작과 문학활동을 하던 중, 1960년 4월 19일을 전후하여 ‘4.19 학생 혁명’이 발발하였다. 서울과 지방의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목숨을 걸고 자유와 민주를 지켜낸 일은 민족사에 길이 날을 의거였다. 이때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추도시제(追悼詩祭)’를 대전의 고등학생들이 ‘뷔엔나’ 다방에서 개최한 일, 이때 발표한 작품을 중심으로 시집을 발간한 일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쾌거였다.
4.19 학생 혁명이 발발한 지 1개월 여 지난 시기인 1960년 6월 10일, 희생된 학생과 청년을 추모하는 시집(詩集) 『분향(焚香)』을 발간하여 대한민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68쪽에 불과하여 스스로 ‘가난한 시집’이라 불렀지만, 이는 가난한 것이 아니고, 놀라울 만큼 위대한 업적이다. 4.19 횃불이 시들기도 전에 대전에서 시로 세운 문학혼은 두고두고 회자(膾炙)될 일이다. - 리헌석의 평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