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가 나타나면서 상황전환이 일어납니다. 현재기독교가 땅의 것으로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을 잘 섬길까 하고 티격태격하는데 엘리후와 같이
영의 문제를 들고 나와 땅에 속한 인간의 인과응보에 따라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식으로 말씀을 증거하는 이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은혜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 말에 길이 들여져서 진짜 은혜가 뭔지 가려져
있습니다. 은혜 받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은혜는
성경이 말씀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닙니다. 만일 자신이 투자한 것이
하나도 없고 원인을 제공한 것이 전혀 없음에도 구원의 총량이 내게 주어졌다면
그건 분명히 은혜입니다. 원인이 하나님이시니 그 결과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은 너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욥과 세 친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왈가왈부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원인이 인간의 문제이고 너의 문제라는 겁니다. 반면에
욥은 나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문제라고 우겼습니다. 그러나 32장부터 엘리후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말을 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엘리후의 주장을 봅니다.
8절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들음을 주시나니”
인간의 철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말합니다. 이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인데 욥이나 세 친구 같은 이들은 입부터 닫혀야 얻습니다.
9절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큰 사람이라고 지혜롭고 노인이라고 하나님의 의를 아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람의 겉 나이와 속 나이는 다릅니다. 눅2:52절 예수님은 그 키와
지혜가 자라가므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웠다고 하십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이 키와 지혜는 내면적인 키와 지혜을 말하는 겁니다.
10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엘리 제사장이 영의 눈이 어두우니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므로 말씀하시되 우리와 일문일답은 아니 하십니다.
욥33:13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묻는 말에 대꾸는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되 우리 인간과 퀴즈하듯 일문일답은 안 하십니다.
12절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라”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보세요.
그야말로 동문서답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인간은 대화가 안 됩니다.
지금도 욥처럼 하나님께 자기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속은 후련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닿는다는 건 아닙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귀하게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고아들은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은 받지만 사랑을 쉽게 못 받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쌍방 소통이 되지 않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13절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행하시는 모든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려고 하느냐’ 엘리후가 이렇게 말합니다.
14절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난리가 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개 달 보듯 하는 겁니다.
15절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하나님과 맹세를 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졸듯이 인간은 항상 그렇습니다.
16절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귀에
넣고 딱 봉해 버립니다. 어느 교회 담벼락에 오줌 싸는 술주정뱅이에게 누군가
‘예수 믿고 천국 가’하고 외친 소리가 그의 귀에 쟁쟁하게 남더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17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인해 행실을 고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아차하고 깨닫는 순간 새롭게 출발하는 회개가 됩니다.
18절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잔소리가 징계가 되는 겁니다.
19절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욥의 경우입니다.
20절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21절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절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엄청난 고난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고난을 요양원에 가서 받는 이들이 많은 겁니다.
23절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자 곧 통역이신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24절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대속물 곧 속전을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욥이나 세 친구들에게는 자신들이 옮다 주장할 뿐 속전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25절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절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28절 “하나님이 내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라”
엘리후는 잘잘못이 아니라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사역자입니다.
29절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절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라”
31절 “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인간적으로 이치에 합당한 말을 하다가 입이 다물어지는 순간에 구원이 시작됩니다.
32절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리 그대는 말하라”
33절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이는 마땅히 목사가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법관 같은 목사도 많고
검사와 같은 목사도 많은데 성령의 증인인 영적인 변호사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35장에서도
5절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절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절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절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겁니다.
철학은 인간과 인간의 고리의 문제일 뿐,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니란 말입니다.
욥은 사람과의 관계만 철저히 생각하는 신앙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신학도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냐? 곧 지식뿐이냐?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입어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아
진리를 알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지식이냐는 겁니다.
11절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가 없구나”
하늘의 새는 자연계시를 그대로 순종하므로 먹이와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그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내셨음에도 진리를 순종하여 하나님을 찾는 이가 적습니다.
꼭 열 명의 나병환자가 나음을 받았지만 다 자신이 깨끗하게 된 것만 생각할 뿐
한 문둥이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이 드뭅니다.
12절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절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헛된 기도 곧 한국교회를 회개 시켜 주세요,
남북통일을 빨리 시켜 주세요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14절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가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인데 기다리지 말고 그 분을 찾아야 합니다.
욥과 세 친구들에게는 하나님을 찾아 가는 영적인 비밀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성령 안에서 진리를 따라 하나님께 찾아가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갖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천국에 가면 자기 상급이 있다고 말합니다.
15절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절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였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말을 많이 하였구나 하고 나무랍니다.
이는 인간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사에 대해서 주거니 받거니
했을 뿐 진리 안에서 체험이 없는 말 곧 영생에 대한 간증은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객관적인 지식이 성령으로 주관적인 지식이
되어 보편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인 믿음의 비밀을 습득해야만 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생명 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