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편
시련의 의미와 목적
요절: 7절
내용 관찰
39편은 다윗이 중한 질병 중에 쓴 시로 보입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13)하고 호소합니다. 다윗은 이 질병이 자신이 범한 죄악에 대한 징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디(9-11).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9)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변명이나 불평을 말하지 않으려고 몹시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절에서부터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1)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근신하는 태도입니다. 더구나 "악인”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불신자들 앞에서는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고 말합니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2) 합니다. 이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한 자에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시련의 날에는 주께서 주신 견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돌아보아 반성하면서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바른 신앙 자세입니다. 그렇다고 저 사람은 죄 값으로 징벌을 당하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정죄하듯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 자세입니다. 그는 사람 앞에서는 잠잠하고 드디어 하나님 앞에 입을 엽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4) 합니다. 징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다는 것은 징계를 통하여 그의 신앙이 성숙해 감을 말해 줍니다. 5-6절은 깨달은바 연약에 관한 진술입니다. 사람의 일생이 손넓이 만큼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라“는 것 그런데도 사람은 헛된 일에 소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 이 말씀은 39편의 요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징계의 목적입니다. 징계를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나의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튼튼히 붙잡게 해주려는 것입니다.
형제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허무주의자로 전락할 것입니까? 또는 인생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한 채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는 헛된 일로 소란하겠습니까?(6)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소망이 주께 있나이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있게 될 때에야 건강도(13), 재물도(6), 그의 종말과 연한도(4)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 건강해야 됩니까? 왜 재물이 필요합니까? 당신의 남은 생이 얼마나 되는지 그 연한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당신의 병을 회복시켜 주면 무엇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입니까?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다윗은 결론 부분에서 자신은 객(客)과 거류자(居留者)임을 고백합니다(12하). 레위기 25:23에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다윗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이런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12하) 합니다. 여기에서 조상이라 함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의 믿음 장에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다"(히11:13)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이를 생각하면서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本鄕)찾는 것을 나타냄이라"(히11:14)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중병 중에서도 본향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1-2) 형제여 영원한 본향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있을 수도 생각할 수 조차도 없습니다.
39편은 몽학선생이 되어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해 주고 있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39편은 어떤 배경 하에서 쓰여졌습니까?
시련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시련의 목적(요절)은 어디에 있습니까?
적용: 시련은 연단, 즉 인생을 성숙하게 해줍니다. 형제도 시련을 만나거든 사람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하나님 앞에 입을 여십시오.
암송: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
제 40 편
귀를 동하여 들려주신 복음
요절: 7절
내용 관찰
40편은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려 주시기를"(6) 한대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귀가 열리고 뚫림을 받은 자가 깨달은 바를 진술한 예언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의 귀를 통하여 들려주신 첫 깨달음은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6)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당시로써는 가히 혁명적인 깨달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성전낙성식 때 드린 제물이 소가 22,000이요 양이 120,000(대하7:5)이었다고 했는데 이런 것을 기뻐하시지도 아니하시고 요구치도 아니하신다니 어찌 놀라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맥을 통해서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2) 구원 체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39:13에서 말씀하는 죽을 병에서 살리심을 받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5)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 무나 감사해서 "제사와 예물"(6)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이런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는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두 번째 깨달음은 "아 하나님이 나 자신을 요구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7)하고 응답한 말씀입니다. 다윗은 "내가 주의 뜻을 행하기를 즐기오니"(8) 하고 헌신을 다짐합니다. 이것이 1차적인 의미입니다.
40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예언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이 점이 히브리서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10:5)고 "예비하신 한 몸"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한 마리 양"이나 120,000마리의 양이 아닙니다. “한 몸"입니다.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구약의 제사 제도는 예비하신 한 몸이 드려주실 제사의 그림자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왔나이다"고 말씀합니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성경)에 있나이다"(7)고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시편이 다윗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란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눅24:44)이라 말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한대로 주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6:39) 하고 전적으로 헌신하셨습니다. ”이 뜻을 쫓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귀를 통하여 들려주신 말씀은 바로 이 복음(행2:30-31) 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다윗은 "의의 기쁜 소식"(9)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다름 아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롬3:21)한 ‘의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9상)합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말씀의 사역자들이여 당신은 기쁜 소식을 옆으로 밀쳐 놓고 다른 복음 전하기에 열중하려 합니까? 다윗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하겠다(9)고 말합니다. " 선포"하며 ”은휘치 아니함" 즉 숨기거나 부끄러워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입을 벌려 "하나님께 올릴 찬송"(3)을 드리는 것과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야 함은 은혜 입은 성도의 마땅히 할 사명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다윗의 첫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두 번째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40편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적용: 하나님은 형제의 귀를 통하여 이 복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형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3, 9)
암송: 내가 왔나이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