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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낯익은 이방인
인야가 뉴욕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다르다고 느낀 것은, 풍경의 깨끗함이었다. 아름답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크다 보니 인공 건축물들이 대체로 낮고, 넓은 땅을 곁에 두고 있어 요란스럽지가 않았다.
한국은 도심이든 농촌이든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어 자연스러운 풍경이 자꾸 깎여나가는데, 여기 주택들은 높아야 3층, 대개는 2층이나 단층이었다. 게다가 숲이 많아 집들이 나무에 가려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눈에 거슬리는 대형 광고판이나 간판도 없어, 도심을 벗어나면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하나, 땅이 넓어서인지 비닐하우스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화가의 눈으로 우선 본 것이긴 했지만, 그건 분명 큰 차이였다.
'그저 자연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조건이, 저절로 부럽구나.'
눈이 갠 밤, 인야는 맨해튼의 야경을 찍으러 나가자고 후배(Ch1)에게 청했다. 고기압이 지나가는 날은 춥지만 하늘이 유독 맑다는 걸 알기에, 뉴욕의 야경을 볼 절호의 기회일 것 같아... 조바심까지 났던 것이다.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과연 뉴저지에서 바라도 본 뉴욕의 야경은 깨끗하고 화려했다. 항구 도시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무성한 숲 덕에, 평소에도 공해가 심하지 않다고 했다.
영하 십몇 도의 밤공기에 손끝이 금세 곱아왔고, 삼각대 없이 맨손으로 찍는 사진이라 몸이 흔들려... 상이 흐릿해지기 일쑤였다.
저 멀리 뾰족하게 솟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포함해 맨해튼 전경을 담아보려 했지만, 도시가 워낙 넓어 화면 하나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감동만은, 어떤 사진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찍었던 뉴욕의 야경 사진은 훗날, 인야의 '맨해튼의 야경'의 대형(120호) 유화를 그린 자료로 쓰여졌다.
집에 돌아와 인야가 컴퓨터로 사진을 확인해보니, 실제로 볼 때의 화려함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그렇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인야를 Ch1이 불렀다.
가보니 이미 술상이 다 차려져 있었다.
"오늘도 술이야?"
"에이, 이렇게 좋은 밤에 그냥 잘 겁니까? 한 잔만 해요, 형님."
"야, 이러단... 내가 죽겠다." 하면서도 인야는 싫지만은 않았다.
Ch1은 미식가라, 그를 따라다니면 희귀하고 맛있는 것들을 자주 얻어먹을 수 있었다.
"형님, 이거 병어거든요? 이렇게 싱싱한 건 한국에선 잘 못 먹어요. 사진 찍으세요!"
인야는 못 이기는 척 카메라를 세팅해 한 컷 찍었다.
벽난로 속 장작은 활활 타올랐고, 술 한 병이 금세 동나자 Ch1은 다른 술 단지를 가져왔다.
그만 마시자는 인야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Ch1은 겉옷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흥을 이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히죽거리며 수화기를 인야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고향 1년 후배 Ch2의 목소리였는데(둘은 성씨가 같다.), Ch1보다 1년 선배이기도 한 인야의 1년 후배였다.
"어? 00아."
"아, 형님! 어디에요? 뉴욕?"
"응."
"잘 갔네 보네요?"
"응... 근데 참 내, 얘(Ch1)가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바꿔주는데... 아무튼 지금 술 한잔 하고 있다."
Ch2는 반갑고도 부러운 기색으로, 한국은 마침 오후라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야, 그렇게 전화를 갑자기 걸어서 바꿔주면 어떻게 해!"
"히히히, 다 재밌잖아요."
'아, 내가 이래저래... 너 땜에 죽겠다. 밤마다 술이니.'
새벽엔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날씨가 쌀쌀해, 저녁 무렵 인야는 잠깐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오늘도 뉴욕 구경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비 때문에 또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일기예보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궂다고 하니,
'이러다가 뉴욕을 코앞에 두고도 땅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떠나는 건 아닐까?'
인야는 슬며시 불안해졌다. 관광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뭔가 뉴욕을 자신의 피부로 느껴보고 싶은 마음만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뉴욕 땅을 밟은 지 벌써 보름이 다 되어가는데, 눈에 띄게 한 게 없었다.
신기루 같은 맨해튼의 껍데기만 곁눈질로 훑어보았을 뿐, 정작 그 안으로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기야 나는 이 도시엔 그저 나그네일 뿐이지.'
그 심정을 담아 수채화 한 점을 그렸다.
'이 인야, 마침내 뉴욕에 오다'.
그건, 인야가 십 수년동안 와보고 싶어도 오지 못했던 한이 서린 그림이었고, 그 제목이기도 했다.
신기루 같은 뉴욕을 바라보는 한 이방인의 뒷모습이었다.
아무튼 인야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그 즈음의 홈페이지 글을 보면,
아, 제가 여기 '뉴욕'(아니 뉴저지)에 온지... 보름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요즘,
'내가 뉴욕에 있는 게 맞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건 비단 뉴욕 구경 뿐만은 아닌, 언어 문제에서도 느끼는 거랍니다.
보름이 다 되로록 영어 한 마디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기분이거든요?
날마다 후배와 함께 있으면서, TV며 신문 등 매스컴 매체도 다 한국 말이 나오는 세상에서... 김치 등 너무나 한국적인 음식으로 일상을 지내다 보니, 그리고 뭔가 필요해도 후배가 다 알아서 사오거나 처리해주기 때문에... 영어 쓸 일이 전혀 없다 보니, 처음 외유를 시작하면서(동경 공항에서 부터) 언어가 바뀐다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가졌던 각오(?) 같은 건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나는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영어를 못할 것 같은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여기 생활이 그렇드라구요. 어쩌면 한국에서 보다 더 영어 배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것 같은 기분요......
여긴 분명 나에겐 생소한 외국 땅인데, 어째... 그런 긴장감은 전혀 없고 늘쌍 편하고 낯익은 것들과 함께 하는 기분조차도 낯설기 시작해지는 느낌요......
(이건 뭐랄까? 친숙함은 아닌 게 분명한데 오히려 그러기 때문에 더 불안해 질 수도 있는......)
그런데 8일 부터는 '썸머타임제'가 실행되어, 그 전 한국과 시차가 14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한 시간 줄어든 열 세 시간차이가 난다는데... 그래서 시간 개념도 헷갈리고,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같은 나라 안에 있는 내 다른 친구들과도 시차로(두 세 시간 차이) 전화 통화하는 것도 시간 계산을 한 뒤 신경을 써서 해야하는 등...
변해야 하는 건 제 자리에 있고, 또 생각하지 못했던 건 불시에 나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하는... 그런 어수선함도 여전하기만 합니다.
그런 요소들은 나를 조금씩 불안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얘긴데요.
제 후밴 나에게 너무 잘해주고, 나 역시 너무 편하긴 하지만... 난 어차피 여기에 안주하고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에, 이젠 거기서 떠나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요......
(어차피 제 일정은 머지 않아 다음 코스(?)로 옮겨가야 합니다.)
근데요, 이래저래 생각해 보면...
저는 이 뉴욕이란 도시에도 나그네가 분명하지만,
이 세상 자체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 아닐까요?
3 . 12
뉴욕 Ch1의 집에서 그동안 인야는 너무나 편하게 지냈다. Ch1의 배려도 컸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처의 소탈함이 한몫을 했던 것이다.
무릇, '시아주머니와 제수씨 사이가 어렵다' 듯... 인야의 입장에서도 후배 처는 '제수씨'일 수도 있는 관계였지만, 이 부부는 엇비슷하게 단순하고 푸근해서... 손님으로 온 인야가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인야는 원래 까다롭고 눈치가 빠른 편이라, 조금이라도 불편했다면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고도 남았을 사람이었는데... 솔직하면서도 소박한 성격의 후배 처의, 남편과 주변 사람들의 잦은 술자리에도 전혀 간섭하지 않는 등... 묘한 인간미로 인야를 편하게 해 주어, 오히려 인야가 의아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말로는, 자기는 미술 하는 사람은 싫다면서도(뜬구름 잡는 남편의 삶이 힘들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바가지를 긁는 일 없이 무심한 듯한 말투나 무뚝뚝한 성격이, 오히려 인야와 잘 맞는 경상도 억양의 여자였다.
게다가 식탁에서도 이런저런 자신의 집안 얘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인야의 의견을 묻기도 해서, 어느새 인야는 이 집의 한 가족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인야는 이 집의 아홉 살 늦둥이 딸내미와도 죽이 잘 맞았다.
인야가 아이들 좋아할 요소를 여러 가지 갖춘 사람이다 보니, 이 아이는 틈만 나면 인야와 놀 궁리를 해... 오히려 엄마에게 야단을 맞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또 뉴저지에 사는 다른 고교 후배 하나가 다른 동네까지 가서 생닭 한 마리를 구해와 백숙을 끓였다.
어른 넷이 둘러앉아 뜯어 먹고, 그러고도 성에 안 찼는지... 고스톱까지 쳤다.
평소(명절 때) 집에서 형수님들과 치는 것 외엔 손도 안 대던 화투였는데, 여기서는 인야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한참을 웃고 떠들기도 했다. 그러니 인야 스스로도,
'뉴욕에 까지 와서 내가 이럴 줄 알았나?' 하고 머쓱해 하고도 있었다.
떠나기 며칠 전 저녁, Ch1의 처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아저씨,(그녀는 인야를 편하게 '아저씨'로 불렀다.) 내일은 소갈비를 사다가, 아저씨 텍사스 가시기 전에... 좀 드시게 하고 보내드리려고 하는데요."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요."
인야는 펄쩍 뛰면서 손사래를 쳤지만, 그 마음 씀씀이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이미 여기서 맛있다는 식당 몇 곳을 데려간 것만도 여러 번인데, 떠나는 마당에 갈비까지 챙기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지 않고,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거기 텍사스에 계신다는 신부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아시면, 제가 내일 마트 가는 길에 사다 드릴 테니... 가져다 드리세요."
"아니, 내가 무슨 신부님한테 가는데... 선물까지 사간답니까." 인야는 또 다시 펄쩍 뛰었다.
신부님도 인야의 사정을 뻔히 아는 사이인데, 무슨 선물이 필요하냐는 것이었고... 그렇잖아도 이 집 신세를 지고 있어 미안하고 고마운데, 떠나는 사람한테까지 이렇게 마음을 써주다니...
''부창부수'라더니, 이 집 사람들은, 너무들 좋구나......'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다 내 복이다. 나는 어딜 가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러니까 복이라는 거지......' 하고 좋아하면서도 인야는 속으로 감동까지 하고 있었다.
어느 흐린 아침, 인야는 처음으로 자발적인 뉴욕 나들이에 나섰다. 야경을 그림으로 옮겨보고 싶어, 사진을 좀 더 찍어두려... 잠바 위에 방수 겉옷까지 걸치고 나선 길이었다.
동네 버스정류장에서 중남미계로 보이는 한 가족을 만났고, 인야는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다.
동양인이 스페인어로 길을 묻는 게 신기했는지, 그들은 조금 놀란 얼굴로도... 매우 친절히 답해주었다.
맨해튼까지 가는 버스인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돌아올 땐 어디서 타야 하는지, 요금은 얼마인지까지 한 번에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를 아는 게 이렇게 유익할 줄이야.'
뉴저지에서 허드슨강 아래 터널을 지나 맨해튼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 터미널 건물 내부의 구조가 낯설어, 앞사람을 따라가다 엉뚱한 계단을 올라 폐쇄된 주차장 같은 공간 앞에 서게 되었다.
몇 년전 마드릳 사건 이후 폐쇄된 통로를 유독 싫어하는 인야에게, 그 순간 살짝 폐쇄공포 비슷한 게 엄습해왔다.
정신을 차리자고 다잡고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 지나가던 동양인 남자에게 돌아가는 버스 위치를 물어 확인해두었다.
안내판의 'Street' 표시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 오르내린 끝에, 정면에 커다랗게 'The New York Times' 글자가 새겨진 건물이 보였다.
'저것만 기억하면 길 잃을 일은 없겠구나.'
그렇게 도착한 곳이 타임스퀘어였다.
록펠러 센터 쪽으로 걷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드디어 마음의 평온을 얻은 뒤, 나무 벤치에 앉아 서울의 지인 몇에게 엽서를 썼다.
노란 택시가 공원 안 도로를 달리는 모습,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개가 길에 실례를 하자 주인이 미리 준비해온 비닐봉지로 뒤처리하는 모습도 인상 깊게 지켜보았다.
그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형님, 어디에요?"
"응, 센트럴파크."
"벌써 거기에 도착했어요?"
"응, 벤치에 앉아 있어."
"잘 찾아갔나 보네요. 아무튼 조심해서 돌아오세요."
혼자 뉴욕 관광에 나선 인야가 못 미더워, 후배가 건 전화였다.
그날 홈페이징에 올렸던 기록이다.
오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맨해튼 관광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비록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요.
마치 유럽(독일) 날씨처럼 음울하고 축축한 아침이었는데, 뉴저지 한국 수퍼마켓 앞에선 '뉴욕 관광'에 나서는 한인들이 하나둘 모여들더군요.
여행 온 한인들이었을 텐데요, 시골에서 올라온 듯한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딸들 등, 대부분 가족 단위였습니다. 여기서 미니밴을 타고 허드슨강을 건너 맨해튼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홀로 관광에 나선 할머니 한 분과 옆자리에 앉는 인연으로, 그렇게 '하루 관광 파트너'가 되어드렸습니다.
아침 나절 비까지 내리고 춥던 날씨는, 간간이 햇빛이 나오는 등 아침에 비해선 좋은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한글이 새겨진 2층 관광버스에 오른 뒤, 오전엔 맨해튼 다운타운 쪽으로 해서 월가, 항구에서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까지 한 바퀴 돈 뒤 UN 빌딩을 거쳐,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뉴저지 식당에 비해선 맛이 없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구경을 한 뒤(여름철엔 한두 시간 기다려야 올라간다는데, 오늘은 바로바로 입장이었습니다) '업타운'으로 올라가다 센트럴파크에서 내려주었습니다.
그 부근엔 구겐하임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각자 취향에 따라 방문할 곳이 많은 것 같았고, 록펠러 센터 앞에도 내려주더군요.
미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곳이라면서요.
그런 뒤 타임스퀘어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오후 5시), 맨해튼 관광은 끝이 났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남쪽 풍경, 높은 건물들이 몰려 있는 곳이 월가라고 했습니다.
그 부근 오른쪽에 9.11 테러로 지금은 헐린 무역센터가 있었다는데, 당시엔 그게 가장 높았던 건물이었다는군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는 세계 각국의 인종 전시장 같았고, 센트럴파크에도 봄은 오고 있었습니다. 버들강아지가 눈에 띄더군요.
날은 서서히 저물어가고, 도심의 불빛은 그에 반비례하며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도심은 조금씩 더 화려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늘로만 치솟은 건물들로 정말 하늘은 몇 평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사진으로 찍기엔 그 면적이 다 화면에 들어오질 않더군요.
사실 저는 이렇게 '관광객 냄새'를 풀풀 풍기며 사진이나 찍고 다니는 사람 역할은 싫은 사람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림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어쩝니까? 내 일이지요. 일을 하는데 귀찮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이 높은 건물들, 저는 유난히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좁은 스카이라인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그래서 몇 컷 동영상으로 그 상황을 담아보긴 했는데, 디카 모니터를 가로로 해야 할지 세로로 해야 할지 찍다 보면 이리저리 바뀌곤 했습니다. 어쨌든 이 느낌만은 담아가서 나중에 컴퓨터로 다시 보아야 할 것이기에요.
그렇게 타임스퀘어에 도착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불야성이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도, 여기가 관광의 중심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습니다.
저 역시 거기 한 틈에 서서 뭘 찍을까 하고 '이미지 사냥'에 열을 올렸습니다.
거기서도 동영상을 찍고 다소간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갖췄습니다.
너무 늦지 말라던, 버스가 끊기면 곤란하다던 후배의 염려가 생각나서, 한 곳에 정신을 팔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저는 긴장을 하며 돌아가려는데,
아무래도 밤이라서 그런지 길을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헷갈리더군요. 그러니 하는 수 있습니까, 길을 물을 수밖에요. 아까는 묻지 않고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한 젊은이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바로 저기요. 한 블록만 더 가면 '뉴욕 타임스' 건물이 보일 겁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밤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같은 번호의 버스인데도 두 종류라네요. 제가 알았나요?
그런 우여곡절도 있긴 했습니다만, 어쩝니까, 초행길인데.
그러긴 했지만 내리는 곳에선 정확히 내렸지요. 아까 오후에 출발했던 바로 그곳의 길 건너편으로요.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오늘도 술기가 오른 후배는 마침 담배를 피우러 바깥에 나와 있다가,
"아이, 형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이거 축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근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히 돌아오셨어요? 나도 못 할 것 같은데. 사실 난 여기 살면서도 단 한 번도 버스를 탄 적이 없거든요(그는 25년 미국에서 살았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버스 타고는 나갈 자신이 없는데, 우리 형님 대단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한 잔 안 하실랍니까?"
"너, 지금 나 꼬시는 거지? 오늘은 안 마신다, 알어?"
3 . 12
어느 날 저녁, Ch1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님, 텍사스 비행기 표를 구해놨는데요."
"날짜는?"
"다음 다음 주 월요일요."
"뭐야, 농담하지 마."
"아니, 진짜요."
"뭐? 안 믿어!"
"진짜라니까요."
Ch1의 얼굴을 보니 농담은 아니었다. 원래 예정보다 일주일이나 늦어진 날짜였다.
인야가 미리부터 서둘러 예매하자고 그렇게 일러왔건만, 천하태평이던 Ch1이 뒤늦게야 표를 알아본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야, 너는 왜 내 인생을... 트냐고! 너, 책임 져!"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야가 비행기표 결제를 위해 아침에 건네준 카드마저, 오늘 사무실 밖으로 나간 적도 없는데 어디 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야, 내가 정말 미치겠다. 에이, 내가 너냐?"
인야는 한숨까지 쉬면서 허탈해 했지만, 죄지은 얼굴로 아무 말 못 하는 Ch1을 더 다그칠 수도 없어...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나, 너처럼... 되는 대로 살고 싶지 않거든?"
한 마디를 흘긋 던지고 나니, 저녁 식탁에서 Ch1이 슬쩍 양주를 내왔다.
얼음을 채운 잔 두 개를 놓고 굳이 건배를 청하는 통에, 결국 둘이는... 또 히히덕거리며 술잔을 부딪쳤다.
"형님, 이렇게 된 거, 아예 이번엔 워싱턴으로 3박 4일 여행 갈까요?"
"니 맘대로?"
"아니요, 처한테 허락받아놨거든요."
인야는 눈에 힘을 준 채 다시 한번 흘겨보고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 여기서는... 되는 대로 살아야 한다.'
마침내 3월 16일, 인야는 짐을 챙겨 텍사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라 과르디아 공항의 보안검색은 유독 까다로워 신발까지 벗어야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공항에서 환승하는 여정이었는데, 직항보다 값이 싸서 택한 길이었다.
뉴욕을 나설 땐 두꺼운 잠바에 목도리, 모자까지 챙겨 입었는데, 남쪽의 샬럿에 내리니 반팔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겉옷부터 벗어야 했다.
비행이 예정보다 지연되어, 텍사스 어스틴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오스틴은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처럼 불빛이 빼곡했다. 국내선이라 세관 절차는 따로 없었다. 마중 나온다던 멍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서로 위치를 모른 채 엇갈리고 있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가려는데, 고개를 드니 신부님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에이, 싱겁게시리.'
먼길 떠나온 사람을 마중 나온 이가 찾아야 하는데, 오히려 인야 쪽에서 먼저 신부님을 발견한 것이었다.
신부님은 젊은 신자 커플과 함께 차를 몰고 나와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인야의 책(여름 편, 겨울 편)을 통해 그를 알고 있는 눈치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이 제법 유명하다는 사실이, 여전히 낯설고 멋쩍은 일이었다.
사제관의 빈방 하나가 인야의 자리로 정해졌다.
신부님이 미리 준비해둔 컴퓨터 덕에, 홈페이지에 글 올리는 일도 별 어려움이 없을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