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원시림 향한 하얀 그리움으로 하얀 꽃 바라봅니다
지난 목요일부터 어제 일요일 밤까지 나흘에 걸쳐 일본의 천연림 트레킹을 다녀왔습니다. 아직 하얀 눈을 소복히 품고 있는 삼천미터 높이의 산정을 포함해 숲 곳곳에서 만난 천년 나무들은 제가끔 자기의 생명에 알맞춤한 생명 노래를 품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되어 온 숲을 가득 메운 생명 교향곡의 큰 울림은 오래도록 큰 느낌으로 남겠지요. 어제 밤 열한 시쯤에 돌아와 기껏해야 열 시간도 채 안 지났습니다만, 그 크고 아름다운 생명을 향한 그리움은 간절함으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알알이 쌓입니다.
나흘에 걸쳐 다녀온 천년의 일본의 아름다운 숲과 큰 나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룹니다. 어제 늦은 밤에 돌아와 아직 채 숲의 생명들이 들려준 천년의 이야기를 채 정리하기 전입니다. 《나무편지》는 그렇게 늘 한걸음씩 늦습니다. 계절을 재우치며 속살거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한 걸음이라도 더 빠르게 들려드려야 마땅하겠지만, 언제나 몸이나 마음의 걸음걸이가 하냥 느려 안타깝습니다. 하릴없이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지난 《나무편지》에서 미처 못 다한 목련 종류 이야기 조금 더 보태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백목련이나 자목련과 같은 전형적인 목련은 이미 시들어 떨어진 지 오래 됐습니다. 목련이라는 이름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어엿하게 목련 종류의 하나인 이 나무의 꽃은 지금이 한창입니다. 초령목이라는 이름의 나무입니다. 초령목의 꽃은 여느 목련에 비해 꽃송이가 작은 편입니다. 고작해야 삼센티미터 정도 길이이며, 꽃이 활짝 피었을 때 꽃송이의 지름도 그 정도 크기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그의 향기는 워낙 강합니다. 마치 바닐라 향기와 같은 달콤한 향기가 멀리까지 오래 퍼지는 좋은 나무입니다.
초령목이라는 이름은 부를 초招와 영혼 령靈을 이어붙여 지은 이름입니다. 뜻을 풀자면 ‘영혼을 부르는 나무’ 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 나무가 영혼을 부를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그의 달콤하고도 강렬한 향기에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조상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에 초령목의 가지를 꺾어 제사상에 올렸다고 합니다. 조상의 영혼을 모셔와 후손의 뜻을 전달해 줄 영매로 삼은 거죠. 실제로 초령목의 향기를 탐색해 보면 일본 사람들의 오래된 제사 풍습의 까닭을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생각됩니다.
초령목은 옛날에는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우리나라의 남부 섬 지역에서도 자생하는 초령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흑산도에서 자라난 초령목 한 그루는 매우 큰 규모로 자라나서 1992년에 천연기념물 제369호로 지정해 보호했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크게 망가지는 바람에 2001년에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커다란 초령목이 서 있던 숲에서는 그 나무에서 퍼져나간 치수들이 자라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잘 살펴보아야 할 겁니다.
흑산도 뿐 아니라, 제주도에서도 자생하는 초령목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제주도 하례리에서 발견된 초령목은 고사한 흑산도 초령목을 대신할 만큼 큰 나무였습니다. 해서 2005년에 제주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해 보호했지요. 그런데 다시 또 안타깝게 제주도 하례리 초령목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사하는 바람에 이듬해인 2006년에 지방기념물에서도 해제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할 만큼 크고 의미있는 초령목은 발견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릴없이 당분간은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초령목 꽃 향기가 온 숲에 번져나올 즈음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로 가침박달이 있습니다. 가침박달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아닙니다. 잘 자라봐야 5미터 정도까지 자라는 가침박달은 평소에 그리 존재감이 없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꽃이 피어나기만 하면 주변의 모든 풍경을 압도하는 특별한 나무가 됩니다. 바로 이 즈음이 가침박달의 온 나뭇가지에 하얀 꽃을 탐스럽게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이름에 박달이 들어있어서 혹시 박달나무와 친척 관계의 나무 아닌가 싶지만, 가침박달은 장미과의 나무입니다. 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의 나무인 걸 보면 두 나무의 관계는 그리 가깝지 않은 편이지요. 박달이라는 이름은 목재가 박달나무만큼 단단하다는 데에서 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가침’은 바느질에서 ‘감치다’라는 말에서 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가침박달의 열매에서 드러나는 씨방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칸이 감침질 한 것처럼 실로 꿰맨듯해서 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성하게 돋아난 초록 잎사귀들 틈에서 무더기로 불쑥 솟아오른 하얀 꽃송이는 하나하나가 무척 청아하고 전체적인 수형이 참 우아한 모습입니다. 키도 아담해서 정원에 관상수로 키우기에는 알맞춤한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건 자연 상태에서 가침박달을 많이 만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가침박달 군락지가 전북 임실군에 있기는 하지만, 개체 수는 턱없이 적은 편이어서 더 아쉽습니다. 주로 중부 이북 지방에서 자라는 가침박달이 자랄 수 있는 남쪽 한계지가 바로 이곳 임실군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위쪽의 한 장과 바로 위에 띄운 사진은 ‘삼색참죽나무’라는 나무의 이 즈음 모습입니다. 새 봄에 돋아나는 잎이 사진에서처럼 붉은 빛을 띠는 특징을 가진 특별한 나무입니다. 이 붉은 빛은 보름에서 스무 날 정도 쯤 이어지다가 어느 날 붉은 빛은 사라지고 화들짝 노란 빛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다시 또 스무 날 정도 지나서는 여느 나뭇잎들처럼 초록 빛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하나의 나무가 세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삼색참죽나무라고 부르는 예쁜 나무입니다.
나흘 동안의 천연림 답사에서 만났던 크고 작은 나무들, 먼 길을 함께 걸었던 좋은 사람들, 고작 하루 지났건만 다시 그리워집니다. 간절하게요. 그 모두의 웅숭깊은 생명 이야기는 다음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