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옛날에, 남들이 그 존재도 잘 모를 때, 한동안 중펜을 쓴 적이 있습니다.
습관처럼ㅋ 동대문운동장 앞을 헤매던 어느 날, 작은 용품점 진열대에서 우연히 야사카 브랜드의 중국식 펜홀더를 하나 발견하고 신기해서 바로 충동구매를 했더랬습니다.
셰이크처럼 둥근 헤드에 역시 셰이크 그립 비슷한 둥글고 짧은 원목그립이 붙어 있는데 포장에 펜홀더라고 써있더군요.
일중호에 임파샬 조합으로 김완선수를 롤모델 삼아 백핸드 스매쉬 주전이었던 제게 이 이상한 모습의 펜홀더는 또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히노끼 표면 합판이었던 얘에는 앞뒷면에 모두 마크V를 붙였는데 이유는 단지 "같은 회사 용품이어서"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중펜이 전혀 일반적이지 않던 그 시절은 TV에서 중국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던 사람들이 "쟤들은 라운드라켓(셰이크를 그렇게들 불렀죠, 둥글다고^^)을 펜홀더로 잡고 치냐, 버터플라이 펜홀더 살 돈이 없냐" 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호기심에 구입한 이 중펜을 보통 펜홀더처럼 쓰면서도 양면에 러버가 붙어 있으니 리시브할 때나 백사이드 깊이 빠지는 공을 잡을 때 저도 모르게 이면을 쓰곤 했습니다.
규정상 아무 문제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요.
어느 날 타 구장과 친선시합이 있었고 저는 이 중펜을 들고 시합에 참여했습니다.
리시브와 백쪽 공을 여러 차례 이면으로 처리하고 간혹 백사이드 뜬 공도 이면으로 스매쉬 해서 득점했습니다.
시합이 우리 구장의 승리로 끝나고 식당에 가서 뒷풀이를 하는 자리.
식사를 거의 마치고 한 잔 돌아가던 시간, 상대팀의 한 중년 남자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제 얘길 하는 겁니다.
"그 키 큰 젊은 사람, 반칙하더라"구요.
뭐가 반칙이더냐 하니 "펜홀더도 아닌 라켓을 펜홀더로 잡고 더구나 뒷판으로 친다" 하더군요.^^
제가 일어나 설명했죠.
우선 이 라켓은 펜홀더 맞고, 러버가 없는 목판이나 코르크 면으로 치면 반칙이지만 제 경우는 러버 붙은 면이기에 칠 수 있다구요.
그 분은 계속 우겼습니다.
"펜홀더는 무조건 뒷면 쓰면 반칙이야. 그리고 펜홀더도 아닌 라운드라켓(셰이크)을 그렇게 잡으면 안돼. 어른이 말하는데 젊은 사람이 왜 자꾸 우겨?"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네네~하고 끝냈었지요.ㅎㅎ
요즘은 설마 이런 분 안 계시지요?^^
제가 중펜으로 이면타법을 시전했다가 그렇게 괜한 욕을 얻어먹은^^ 그 시기가 지나 한 해인가 두 해 쯤 후에 세계참피온이었던 중국의 장지알량선수도 같은 욕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피온이 이상한 짓을 한다. 뒷면에 평면러버를 붙여서 뒷면으로 친다. 풋웤이 떨어지고 뭐가 잘 안되니까 이젠 참피온의 체면을 구겨버리고 별짓을 다 한다.."
중국 내에서도 비판의 여론이 거세게 일었던 장지알량의 이면타법 시도 사건이었습니다.
펜홀더 이면타법은 장지알량의 시도 이후 류궈량에 의해 실전에서도 사용 가능한 하나의 유용한 신기술로 확립되었고, 다들 잘 아시는 왕하오에 이르러 완벽한 백핸드 타법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정삼선수가 최초로 중펜에 중국러버를 제대로 쓴 선수였는데 그 역시 초기에는 이면은 매우 가끔 시도에 그치는 정도였고 시합에서는 거의 쓰질 못했었습니다.
이후에 익숙해진 시기에는 잘 썼죠.
예전에 북한의 김성희선수도 중펜을 사용했었는데 요시다 카이이선수처럼 이면은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이야 중펜을 들고 이면타법을 사용하는 것이 선수 뿐아니라 우리 같은 아마츄어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기본 기술이 되었지만요.
세계 최초로 이면타법을 시도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던 세계참피온 장지알량보다도 두어 해 먼저 이면을 사용하다가 동네에서 욕을 먹은 저는 역사 속에 숨겨진 선각자였던가요.^^
중펜도 그 옛날에 미리 미리 써본
공룡
첫댓글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듣는 느낌이네요 ㅎㅎ 김완 선수는 알지만 중펜은 몰랐던 시절이 있었네요.
김완, 김기택 두 레젠드가 막 유명해지고 주목받고 대표선수가 되고 그러는 시기였어요. 두 분 중 특히 김완선수의 백핸드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롤모델 삼았었죠.
워낙 저도 그 당시 대부분의 탁구인들과 마찬가지로 평면러버 일본식 펜홀더로 시작해 탁구를 하면서도 이상하게 백핸드를 더 잘 치던 스타일이었어서
히노끼 단판에 스라이버 쓰다가 두 선수가 쓴다는 일중호에 임파샬로 바로 갈아탔고.ㅎㅎ
한 십여 년 쯤은 그 조합이 주력이었습니다. 중간에 안티와 롱핌플 쓰던 시기가 대략 오 년 정도 끼어 있으니 김완 따라하기는 십 년 쯤 했나 보네요.
하하! 재미 있네요. 저도 중펜 쓴지가 8년쯤 되네요.2000년대 초에 중펜 치는 회원을 처음 보았지요. 전 이면에 388D1을 거쳐 c7을 오래 사용 했는데 최근에 슈퍼 안티로 바꾸었습니다. 중펜이지만 반전형으로 씁니다.
오호.. 중펜을 반전형으로 쓰시는군요.
그립은 그대로? 아니면 반전형으로 개조?
반전형 역시 꽤 오랜 기간 써봤죠.^^
안 해본 게 없네요.ㅋㅋ
주로 평면과 숏핌플 조합으로 썼고 롱이나 안티는 펜홀더로 쓰기 답답하여 잠깐 하다 말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룡 전면만 직접 코르크로 코다리를 붙여서 사용합니다. 중펜 그립 위쪽 1cm을 잘라내고 코르크를 붙입니다. 위에 붙이는것 보다 완전 잘라내고 붙이는게 더 편하더군요.
탁구 구력이 엄청 나시네요..
80년대에 중펜을... 단어조차 생소했을 시절에.. 윗글중에 마크V는 기억이 나네요.. 나비사의 국민러버 스리버 보다는 못했지만 상당히 인기가 있던 러버 였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네. 많은 사람들이 마크 브이라고 불렀던 마크 파이브.
로마 숫자 V 였는데..ㅎ
스라이버에 비해 탑시트가 부드러워서 안정적인 운영을 추구하는 올라운드 스타일의 선수나 동호인들이 무척 좋아했던 러버였지요.
유럽 지역과 일본에서의 최고 베스트셀러.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확실히 탁구 마인드가 좀 빠르고 센 쪽인가 봅니다.
@공룡 아 그것이 마크5 였었나요?
와~~그것을 이제 알았네요..ㅡㅡ;;
한가지 배우고 갑니다..꾸벅~
ㅎㅎ 엄청난 중펜 선배님이시네요^^
아무에게도 들을 수 없는 중펜 옛날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제가 아마도 우리나라 아마츄어 중에서는 최초의 중펜 유저이면서 세계적으로도 거의 최초의 이면타법 실사용자였을 겁니다.ㅋㅋ
안티와 롱핌플 역시 우리나라 아마츄어로서는 거의 최초 유저였구요.
이상한 거, 남들 안 하는 거 좋아하는 특이한 마이너 감성이 있어서요.ㅋ
안티와 롱핌플 쓰는 동안 이 중펜은 잘 모셔두고 있다가 후에 뒷면에 롱OX 붙여 간혹 갖고 놀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한참 후에 버터플라이 탁심 같은 거 처음 출시될 때 제가 얼리어댑터로 국내 최초로 시타하고 그랬었죠.
그것만 해도 꽤 오래된 얘기네요.^^
와... 공룡님께서도 중펜을 쓰신 적이 있었군요~ 이야기 재미납니다..^^
제가 중펜 쓴 기간들을 다 합치면 약 7~8년 쯤 될 것 같네요.^^
40년 넘는 세월 탁구 치면서 대략 펜홀더 반, 셰이크 반 정도 쓴 듯합니다.
이정삼 선수 영상보면 시합에서도 이면 쓰던데요.
왕하오만큼이야 당연히 아니지만 류궈량보다는 몇배는 많이 쓰는 듯.
초기에는 시합에선 아예 못 썼어요.
한 점이 중요한 시합에서 아직 확신없는 기술을 쓰긴 어렵죠.
보신 영상은 이면에 많이 익숙해진 후의 영상일 겁니다.^^
저는 이정삼선수가 중펜에 중국러버 쓰기 시작했을 때 얘길 쓴 거구요.ㅎ
그 당시.. 유튜브 영상 같은 거 없을 때요.
@공룡 그럼 커리어 초기라고 한정해서 쓰셨어야지...저렇게 써버리면 이정삼 선수는 이면도 못하던 중펜 선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올거 같은데요
@드라이브1부 옛 글들을 훑어보다가 댓글 이제야 보고 답 단 건데요..
제 글 제목과 컨셉 자체가 옛날에 옛날에 잖아요.^^
장자량이 이면타법 시도했다 라고 썼는데 지금의 할배 장자량은 백쪽은 거의 다 이면으로 치더군요.
어차피 재미로 읽는 글 쓴 건데 굳이 이정삼선수만 커리어 초기 때 얘기라고 밝힐 필요가 있었을까요.
최초의 중펜 선수로 기억한다고 좋은 의미로 쓴 겁니다.
@공룡 저는 이정삼은 이면을 시합때 못쓰던 선수였다로 단정하는 걸로 읽히는데요?
@드라이브1부 그런데.. 지금 이걸 왜 따지시는 거죠?ㅎㅎ
제가 그렇게 쓴 거 아니고 좋은 의미로 썼다고 하는데도 자꾸 이러시네요.
그럼 이런 글 쓸 때 모든 사람 얘기 다 이 선수는 처음엔 그랬지만 지금은 어떻습니다 라고 밝혀야 합니까?^^
그냥 옛날 얘기로, 재미로 봐주세요.
제가 보던 당시의 이정삼선수는 새내기 선수였고 제가 참관한 몇 차려의 시합 때 이면을 쓰지 않았습니다.
못 쓴 거 아니고 안 쓴 겁니다.
시합에서 쓸 만큼 익숙하기 전이었겠죠.
옛날 얘기입니다.
@드라이브1부 본문에 추가 문구 넣어서 수정했습니다.
이제 오해가 풀리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