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사랑’ 동호회에서 추천한 경북 군위군 화본역은 아직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지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마치 간이역박물관처럼 간이역의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기차에 얽힌 소소한 일탈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차여행이라면 마음이 설레고 맥박이 빨라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간이역 기행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 3000여명의 회원이 모인 네이버 철도동호회 ‘열차사랑’의 힘을 빌렸다. 카페 운영자이자 ‘간이역 여행’의 저자 임병국씨는 한참의 고민 끝에 경상북도 군위군의 ‘화본역’을 추천했다. 상세한 설명과 현장 사진이 담긴 글이 이메일과 함께 실려 왔다.
열차사랑 동호회가 추천한 간이역 ‘화본역’
화본역사 철로 건너편에는 증기기관차의 흔적으로 남은 급수탑이 운치 있게 서 있다. (이윤정기자)
“간이역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어디를 소개해야 할까요?” 기자의 질문에 임병국씨는 적잖이 고민하는 듯 했다. 느끼고 체험하고 알리고 보존해야 하는 간이역은 많은데 간이역 연재는 마지막에 다다랐다. 임병국씨는 고이 키운 딸을 시집보내 듯 책에도 싣지 않은 곳이라며 화본역을 추천했다. “최근 대중에 알려진 여러 기차역(호남선 연산역, 경북선 점촌역, 전라선 곡성역, 경전선 북천역 등)이 즐기기 위한 간이역이라면 화본역은 느끼는 간이역입니다. 별다른 시설이 없어도 그곳을 방문한 사람이 무언가 얻어가기에는 화본역만큼 좋은 곳도 드물 것 같습니다. 그 자체가 살아있는 간이역박물관이거든요”라고 화본역을 소개했다.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위치한 화본역에는 중앙선 열차가 지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경주시 경주역을 잇는 중앙선은 경부선에 이어 한국 제2의 종관철로다.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면 화본역에 오후 1시가 넘어 도착한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그래서 더욱 귀한 곳
1936년 완공된 화본역은 아직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몇몇 간이역이 이미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화본역은 올 하반기에나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요구 될 예정이다. 화본역에 내리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전형적인 역사건물과 ‘화본역 시비’를 만난다. 박해수시인과 대구MBC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간이역 시비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문화재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지 않은 간이역이지만 시비가 세워진 덕에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높이 약 20m의 급수탑 내부에는 두 종류의 파이프 관과 환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윤정기자)
화본역의 또 다른 매력을 꼽자면 역사 뒤편에 위치한 급수탑을 들 수 있다. 1899년부터 1967년까지 우리 국토를 달리던 증기기관차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급수탑이다. 원형 모향으로 세워진 화본역 급수탑은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아 내부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한여름이 지나가고 난 뒤 급수탑의 입구는 가시덩굴로 뒤덮여 있어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접근할 수 있었다.
높이 20여m에 달하는 급수탑의 외부는 담쟁이덩굴이 감싸 안고 있다. 마치 독일 동화 ‘라푼젤’에 나오는 탑처럼 이국적인 풍경이다. 내부에는 물탱크로부터 물을 공급하고 가열된 물을 끌어올리는 두 종류의 파이프 관과 환기구가 그대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급수탑 바닥에는 세월을 반영하듯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벽면에는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문구와 아이들의 낙서가 어지럽게 쓰여 있다.
하루에 버스 8번, 기차 4번 교통의 사각지대
화본역에는 하루에 상행 2번 하행 2번 총 4번 열차가 정차한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승하차 모두 합쳐 40여 명이다. 역이 위치한 화본1리에는 130호 정도가 거주하는데 28번 국도가 마을을 비껴가다 보니 시내버스도 하루 8번 정도만 마을을 들를 뿐이다. 마을 주민 박노흠(74)할아버지는 “예전에는 기차가 자주 서서 좋았는데 지금은 아주 불편해. 버스도 자주 없고”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근처 우보면에 사는 최영택(63)씨는 “몇 년 전만해도 우보역, 화본역에 기차가 더 다녔었죠. 2일, 7일 영천장이 서는 날에는 기차 안이 와글와글했다니까요”라며 옛 시절을 회상한다.
폐교된 산성중학교 1954년 4월 20일 산성중학원으로 개교한 산성중학교는 한때 학생이 200~300명에 달할 정도로 마을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마을에 어린 학생이 계속 줄어들자 총 3,094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산성중학교는 올해 3월 결국 폐교되었다. 마을 정문 앞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금지’라는 표지판만이 학생으로 북적였던 학교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윤정기자)
역 앞에서 47년째 역전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오영자(69)씨는 “옛날에는 여기가 기차도 자주 서고 사람도 많이 살았죠. 산성중학교 학생만 200~300명이었는데 지금은 학교가 아예 폐교됐잖아요”라며 마을 변화상을 설명한다. 화본역 류원우 역장은 “이 지역이 도로교통이 좋지 않아서 기차가 주민의 유용한 교통수단이었죠. 하지만 점점 이용객이 줄다 보니 화본역에도 언젠가는 기차가 서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어요”라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역과 급수탑이 자아내는 운치 덕분에 화본역에는 출사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화본역이 세월의 흐름에도 묵묵히 그 곳을 지켜가길 바라는 듯 오늘도 카메라 렌즈는 조용히 화본역을 담아내고 있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가는길/ 청량리역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중앙선 무궁화호를 타면 오후 1시 10분에 화본역에 도착한다. 부산 부전역에서 오전 6시 55분에 떠나는 무궁화호는 오전 10시 5분에 화본역에 다다른다. 화본역에는 하루에 4번만 여객차가 정차하기 때문에 미리 한국철도공사 홈페이지에서 기차시간을 알아봐야 한다.
화본역에 들어온 열차 동대구에서 출발해 북영천을 거친 무궁화호 열차가 오후 5시 22분 화본역에 정차했다. 화본역에서는 강릉까지 가는 이 열차에 아무도 타지 않았다. 반대로 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어림잡아 20명 가까이 됐다. 교통이 불편한 산성면 화본리에서는 영천장에 가기 위해 주로 열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하루에 딱 4번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화본역은 오후 5시 30분이 지나자 하루 영업을 마감할 준비를 한다. (이윤정기자)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급수탑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화본역의 매력을 꼽으라면 단연 급수탑과 역이 어우러지는 운치를 꼽을 것이다. 급수탑에 가까이 다가서자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급수탑 외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본역 급수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한여름을 보내고 울창해진 가시 덩굴로 작은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동화 ‘라푼젤’에 나오는 탑처럼 오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윤정기자)
‘열차사랑’ 동호회가 추천한 화본역 네이버 철도동호회 ‘열차사랑’의 운영자이자 ‘간이역 여행’의 저자 임병국씨는 간이역 기행지로 경상북도 군위군의 ‘화본역’을 추천했다. “별다른 시설이 없어도 그곳을 방문한 사람이 무언가 얻어가기에는 화본역만큼 좋은 곳도 드물 것 같습니다”라는 소개처럼 화본역은 조용한 마을과 아담한 역사가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윤정기자)
화본역 시비 화본역에 내리면 박해수시인이 쓴 ‘화본역’ 시비를 만난다. 박해수시인과 대구MBC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간이역 시비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인데 이러한 시비가 대구경북지역 간이역에 10개쯤 만들어졌다. 문화재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지 않은 화본역이지만 시비가 세워진 덕에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윤정기자)
역전상회와 버스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서 영천이나 군위 읍내에 나가려면 교통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28번 국도가 산성면을 비껴가기 때문에 마을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하루에 8대 정도 밖에 없다. 화본역에도 하루 4번 여객차가 머물 뿐이다. 역전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오영자(69)씨는 “옛날에는 여기가 기차도 자주 서고 사람도 많이 살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윤정기자)
고추 말리는 집 화본리에서는 고추, 깨, 콩 등을 주로 경작한다. 집집마다 마당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내어놓고 햇빛을 쬐여주고 있다. 농사를 짓는 주민에게 올해 농사가 어땠냐고 묻자 “산에서 고라니, 너구리가 내려와서 밭을 망쳐놓는다”며 하소연을 한다. 그래도 마을 골목골목에는 깨, 고추가 넉넉하게 나와 있다. (이윤정기자)
빈집의 우편 수취함 마을 주민에게 화본리의 변화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하나같이 변한 게 전혀 없다고 했다. 단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빈집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역 앞 오래된 집 한 채도 사람이 살지 않은 지 꽤 된 듯 보였다. 녹슨 우편 수취함 안에는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이 세월의 무게를 안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윤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