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하던 사진철을 잃어버렸네요 해외근무를 반복하다보니. 후배님들께 보여드리고 싶은 배경이 많이 있었는데..67년 입대후 69년까지 36개월,
김신조 사건후 6개월이 연장되고 취사장 상황판에 매일 게릴라 소탕작전 상황이 계시되던 때 67년 이었지요.
하루 2시간 복초에 안팎으로 힘들고 고달픈시절, 거의 매일 취침전 몽둥이질을 당하고. 행사는 왜그리 많은지..트럼펫터로 기상, 취침, 상하기식, 사단행사, 연예대, 진혼나팔 까지 하다보니 군 36개월중 휴가는 단 7일 밖에 못가고..당시는 명월리에서 망우리 터널을 지나려면 6시간이 소요되던 때.
엘리뇨가 없던 시절 10월에 시작된 겨울은 이듬해 5월까지 계속되고 근무중 얼어붙은 장갑을 오줌으로 녹이고, 난방기름이 없고 흙이 절반인 석탄이 불봍지 않아 매일 나무하러 막사 뒷편 개울을 따라 몇굽이 산을 넘어 전신주 만한 나무를 잘라 밤새 톱과 곡갱이로 잘라 막사 난로를 때던,
밥에 국을 말아 허리에 차고간 항고가 얼어 붙어 대검으로 꿐꿐 찔러 불에 녹여먹고, 실탄장전된 칼빈 메고 톱과 낫을 들고 그 험한 산을 몇개나 넘나들었던...잦은 장대비에 판초한장에 팬티만 입고 화이버속에 화랑담배 성냥, 삽과 지난 가을 뒷산에서 베어온 싸리비를 메고 유실된 도로복구,
작전도로 확보를 위해 치워도 치워도 하염없은 눈을 쓸고 또 쓸던 시절....
이것은 당시의 일상이었고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것은 시계청소, 철책선과 벙커작업 이었어요. 북의 잦은 도발을 막고 시계확보를 위해 사단모든 산의 9부
능선위의 그크고 아까운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철책과 벙커구축을 위해 모래와 자갈을 따블빽에 짊어지고 남산같은 산을 매일 하루 두번씩 몇주일씩 올랐지요.. 하도 힘들다 보니 고막이 나가더군요.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은 3개월 교대로 춘천파견 가던때, 화이버와 냄새나는 통일화를 벗고 작업모에 군화를 신고 민간인들을 보러가니 마음이 설렜지요.
게다가 토요일 외박에 지금과는 전혀다른 오리지날 닭갈비와 막걸리..ㅎㅎ
막사 건너편 언덕이 복분자로 빨갛게 물드는 봄이면 바스켓에 가득딴 딸기를 바위로 눌러 즙을내어 차거운 계곡물에 칠링해서 px 댓병 경월소주에 섞어마시던 때가 행복했어요.
음악을 하면 밥굶기 쉬운때라 제대후 사십년 가까이 악기를 입에대지도 않았지만 지난 몇년전부터 다시 트람펫을 시작했어요.
흑석동 육본 군악병으로 자원입대 한것이 어찌된일인지 103보 춘천을 거처 명월리까지 가게된 저의 기억하기 마음 아픈 군생활이 되었네요.
후배님들께 선배로서 즐거은 이야기를 못해 드린것 같네요.
무더은 날씨 몸조심들 하세요.
첫댓글 글을 읽다보니
눈물이 나고 말았네요
모두 만나보고 싶습니다
저는 육본군악대에 있다가 103보거쳐 명월리 에서 제대했습니다
77군번임니다....10년고참이시네요
벤쿠버 살고있습니다
선배님들의 고생하신 추억을 한편의 영화로 만들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