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낙연의 강·약점은 ‘문재인 정부의 총리’… ‘문재인+김정은’에게 ‘정치생명’ 달려
⊙ 박원순, 역대 최장수·최초 3선 서울시장이란 ‘기록’ 세웠지만 당내 기반·극렬 지지자 적어
⊙ 유시민, 급부상한 ‘친노(친문)’의 대안… 정계 복귀 후 ‘시사 예능’ 통해 얻은 인기 유지할까
⊙ 황교안, 야권 주자 중 선호도 1위…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 고건·반기문 전철 밟게 될 수도
⊙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당시 ‘업적’ 있지만 ‘수도 서울’을 박원순에게 넘겨준 약점 있어
⊙ 유승민, 경제·국방·외교·통상 섭렵한 ‘학구파’… ‘배신자’란 낙인은 ‘공부’로 지울 수 없어
⊙ 박원순, 역대 최장수·최초 3선 서울시장이란 ‘기록’ 세웠지만 당내 기반·극렬 지지자 적어
⊙ 유시민, 급부상한 ‘친노(친문)’의 대안… 정계 복귀 후 ‘시사 예능’ 통해 얻은 인기 유지할까
⊙ 황교안, 야권 주자 중 선호도 1위…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 고건·반기문 전철 밟게 될 수도
⊙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당시 ‘업적’ 있지만 ‘수도 서울’을 박원순에게 넘겨준 약점 있어
⊙ 유승민, 경제·국방·외교·통상 섭렵한 ‘학구파’… ‘배신자’란 낙인은 ‘공부’로 지울 수 없어
- 사진=조선일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5개월이 지난 현재, 세간의 관심은 ‘차기 대권 주자’에게 쏠리고 있다. 9월부터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가운데, 여권과 야권의 유력 후보군이 거론되고 있다. 《경향신문》이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0월 2~4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권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여권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범여권 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서 이 총리는 20.2%, 박 시장은 16%, 유 이사장은 13.2%를 기록했다.
야권 지지층에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범야권 정치인 선호도’를 물었을 때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6.6%,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3.1%,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8.4%를 기록했다.
상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권과 야권의 선두 주자는 현 정부와 전 정부의 국무총리다. 2위는 서로 전혀 다른 도시 경영을 추진한 ‘전·현 서울시장’이다. 3위는 경제학을 전공한 ‘정치인’이자 ‘토론의 달인’이다. 이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낙연 ▲박원순 ▲유시민 ▲황교안 ▲오세훈 ▲유승민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국회에서 호통치던 ‘실세 총리’ 이해찬과 다른 이낙연의 정제된 언행
이낙연 총리는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20여 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정치권에 들어온 뒤에는 새천년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이 같은 경력 덕분인지 이 총리의 발언은 간결하면서도 논리적이란 평을 받는다.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거친 공세에도 평정을 잃지 않고, 막힘없이 논박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언행과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총리의 언행이 돋보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조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임에도 화려한 언변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함께 ‘눌변(訥辯)’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탓에 문 대통령은 2016년 말, 소위 ‘박근혜 탄핵 정국’ 때는 ‘반박근혜’ 진영에서 이재명 성남시장(현 경기도지사)이 ‘사이다’라고 호평받자, 자신을 ‘고구마(말은 느리지만, 든든하다고 자평)’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14년(2000~2014년) 동안 국회에 있으면서 ▲통일·외교 ▲산업·통상 ▲건설·교통 ▲농림·수산 ▲보건·복지 등 여러 분야를 경험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3년 동안 전남지사직도 맡았다. ‘의정’과 ‘행정’을 두루 거친, 이 총리는 현안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장차관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이 총리는 지난해 9월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동’ ‘유해 생리대 파동’ 당시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나무라고, “최단 시일 내에 업무 장악을 못할 경우엔 많은 고민(해임 건의 등)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로써 이 총리는 공무원의 특유의 무사안일(無事安逸)과 복지부동(伏地不動), 책임 떠넘기기에 지친 국민에게 호평을 받는 동시에 자신이 ‘허수아비 총리’ ‘방탄 총리’가 아닌 ‘존재감 있는 총리’란 인상을 남겼다.
李는 文과 ‘운명 공동체’… 文 정부 성패 따라 미래 달라져
이낙연 총리에겐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란 강점이 있다. 이는 이 총리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입각 이전, ‘4선 의원’이자 ‘전남도지사’이면서도 대선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다가 최근 범여권 주자 중 1위를 기록하는 건 ‘문재인 정부의 첫 총리’란 점 때문이다.
이 총리는 ‘호남 출신(전남 영광)’이자 소위 ‘김대중 키즈’다. 정치부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전담 취재하면서 인연을 쌓아 2000년 16대 총선 때 전남 영광·함평 지역구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호남에서 신격화된 ‘김대중 선생’이 고른 인물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는 점은 김대중 이후 마땅한 ‘지역 대표 정치인’을 찾지 못했던 전라도 사람들에게 ‘희소식’이다. 이를 고려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 총리는 현재 거론되는 경쟁자들과 달리 ‘김대중’이란 배경과 함께 ‘호남’이란 든든한 지역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총리의 강점은 동시에 그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와 이 총리는 ‘운명 공동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초반부터 각계 비판을 감수하고 추진하는 각종 ‘문재인표 정책’이 실패한다면, 이 총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특히 ‘북한 비핵화’가 실패했다고 확정될 경우 이 총리는 회복 불가능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된다. 북한 김정은을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옹호해 왔던 그이기 때문이다. 즉 이 총리의 ‘정치 운명’은 ‘문재인+김정은’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 천막·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의 ‘우렁각시’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의 가장 큰 정치 자산은 ‘3선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역대 최초로 3선에 성공한 ‘민선 서울시장’이다. 관선·민선 서울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해 매일 ‘최장수 서울시장’이란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기도 하다.
박 시장은 지난 7년간 서울 시정을 총괄하면서 ‘박원순표 정책’을 쏟아냈다. 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 등 소위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때부터 ‘틈새 전략’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였던 박 시장은 기존 도시 행정과 결이 다른 정책들을 추진했다.
서울시장 취임 후 박 시장은 “마을을 복원해야 한다”면서 소위 ‘마을공동체 만들기’ ‘마을기업 육성’ 등에 세금을 썼다. 이에 따라 이른바 ‘마을활동가’들이 서울 전역에서 활동하게 됐다.
박 시장은 또 ‘도시 양봉’을 한다며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옥상에서 벌을 치게 했다. ‘도시 농업’을 하겠다며 광화문광장에 벼 모종 상자를 설치했다. ‘도시 농업의 씨앗’을 뿌리겠다면서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이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려고 한 한강 노들섬에서 모내기를 하기도 했다.
‘탈원전주의자’인 박 시장은 ▲에너지 절감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원전 하나 줄이기’를 시행했다. ‘원전 하나 줄이기’는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전력을 대체할 능력을 갖추는 걸 목표로 2012년부터 사업비 1조9000억원(서울시+민간, 2017년 기준)을 투입한 ‘박원순표 에너지 정책’이다. 시기를 따져보면 박 시장의 ‘원전 하나 줄이기’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의 원조인 셈이다.
박 시장은 일각에서 ‘성역(聖域)’으로 여기는 세월호 사고 사망자의 유족을 각별하게 챙겨 왔다. ‘박원순 서울시’가 2014년부터 3년 동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서 지원한 예산은 총 13억2700만원이다.
박 시장은 또 소위 ‘세월호 유족’이 1000만 서울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간이어야 할 광화문광장의 일부를 점거했을 때 서울시 예산을 들여 천막을 지원했다. 이후 비판이 쏟아졌지만, 박 시장은 이를 무릅쓰고 ‘세월호 천막’을 지켰다. 이와 관련, 임종석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현 대통령비서실장)이 경찰 조사를 받자, “내가 잡혀가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설치된 ‘세월호 천막’은 4년 넘게 광화문광장 남단을 차지하고 있다.
박 시장은 ‘세월호 천막 지킴이’뿐 아니라 ‘박근혜 탄핵’을 주장한 ‘촛불집회’의 ‘우렁각시’란 평가를 받는다. 2017년 1월, 정현백 사단법인 시민 이사장(문재인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이 “촛불이 두 달 이상 이어지기 쉽지 않은데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와 박 시장의 지원에 감사한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노빠·문빠’ 같은 지지자 없는 박원순
박원순 시장은 재임기간 서울 시정과 관련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선 그가 최장수 서울시장인데도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과 달리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친환경 무상급식 시행 ▲서울시 채무 감축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무분별한 뉴타운 사업 정리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등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워 반박한다. 이 같은 ‘박원순 업적’ 관련 논쟁은 이미 박 시장이 지난 지방선거 때 ‘재임기간 7년’에 대한 평가를 받은 직후인 현재 시점에서 다루는 건 그 의미가 크지 않다.
박 시장의 가장 큰 약점은 ▲당내 우군 부족 ▲확고한 지지층 부재 등 정치 기반이 약한 것이다. 국회 또는 더불어민주당 내에 ‘박원순계’로 분류할 만한 의원은 많지 않다. 확실하게 ‘박원순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는 기동민 의원뿐이다.
“박원순 아니면 안 된다”는 극렬 지지층도 사실상 없다. 소위 ‘팬덤’이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박 시장은 한때 차기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다가 종국에는 ‘군소후보급’으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지난해 1월, 박 시장은 지지율 3%를 기록하다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시 그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당내 ‘우군’이 많지 않고, 이른바 ‘노빠(노무현 지지자)’ 또는 ‘문빠(문재인 지지자)’ 같은 극렬 지지층이 없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박 시장은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적폐’로 규정한 탓에 차기 대선에서 당내 주류인 ‘친문’과 핵심 지지 세력인 ‘문재인 지지자’의 마음을 얻는 게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 1월, 박 시장은 “문재인 전 대표는 청산돼야 할 낡은 기득권 세력” “문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청산의 대상이지 그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 시장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그 발언은 헛발질이었다”면서 문 대통령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또 “제 마음속엔 문재인 정부의 성공만 가득하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차기 대선 후보로 그를 뽑아줄지는 의문이다. 과거 언행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 박 시장이 지금처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강조할지도 미지수다.
화려한 언변·친노 간판·높은 인지도 가진 유시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란 별명을 가진 ‘친노’ 인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독일에서 경제학 석사를 취득한 유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때 재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했고, 1년 3개월가량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재임 당시 유 이사장은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전문성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고, 말솜씨가 좋아 국내 대표 논객으로 꼽히기도 한다.
유 이사장은 최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할 정도로 자타 공인 ‘친노 적통’이지만, 여느 ‘친노 정치인’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열린우리당 해체 후 대다수 ‘친노’가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에서 활동한 것과 달리 유 이사장은 외곽에 있었다.
2009~2010년 당시 유 이사장은 야권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10년 자신이 만든 국민참여당 후보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패배한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이후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가 뛰쳐나와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에 참여했지만, 주목할 만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주류 정치권에서 밀려난 듯했던 유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은 정의당에서 나와 당적도 없다. 유 이사장은 ▲작가 ▲강사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한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예능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해 각종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면서 ‘박학다식한 지식인’이란 인상을 남겼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탄핵’ 정국 때는 그가 ‘중립내각’의 국무총리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온라인상에서 돌기도 했다.
정권 교체 이후 외곽에서 문재인 정부를 측면 지원하는 ‘지식인’ 역할을 해오던 유 이사장은 최근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계 복귀 신호탄’이라고 풀이한다. 정치권 밖에서 분석하고, 지적하던 것과 달리 현실 정치에 다시 뛰어들었을 때 유 이사장이 지금과 같은 지지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화려한 언변 ▲친노 정치인 ▲높은 인지도란 강점을 고려하면 ‘친문’ 세력이 내세울 수 있는 유력한 대선 주자인 건 분명하다.
그가 정치활동을 재개한다면, 차기를 노리는 여권 잠룡에겐 상대하기 버거운 경쟁 상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단,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그렇다. 상술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다면, “뼛속까지 친노”라고 자부하던 유 이사장과 ‘차기 대권’은 무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직무 수행 긍정 평가받은 황교안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소위 ‘우파 성향’ 국민이 정치권에 들어오길 ‘학수고대’하는 인물이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 전 총리는 ‘법치’와 ‘질서’를 강조한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위헌정당’인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엔 국무총리가 돼 안정적으로 내각을 관리했다. 국회 대정부질문 때는 절제된 언행을 유지하면서도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단호하게 대응해 ‘외유내강’이란 평가를 받았다. 2016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나서 ‘대통령권한대행’이 된 후에는 혼란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 대통령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급락했지만,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률은 40%에 이르기도 했다.
황 전 총리가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이자 우파 진영에선 그를 ‘대안’으로 여겼다. 그가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요구가 쇄도했지만, 황 전 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 역할에 충실했다.
황 전 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2017년 신년사에서 “정부는 굳건한 한미연합 방위태세를 토대로 어떠한 도발 위협에도 단호히 응징하겠다” “UN 안보리 결의 등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화해 북한의 잘못한 셈법을 꼭 바꾸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북 유화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는 다른 대북관을 가졌다는 얘기다.
앞서 밝힌 이유 때문에 황 전 총리의 정계 진출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크지만, 실제 그가 우파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단, 그의 권력의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황 전 총리는 검사 퇴직 후 잠시 변호사 활동을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평생 공무원으로 살았다. 공무원 출신은 ‘권력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이었던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포기한 사례를 보면 그렇다.
황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없다. 당내 기반도 없다. 그가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선 자신을 뒷받침할 조직을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황 전 총리는 현재 자유한국당 내 친박 세력과 접촉하고 있지만, 이는 자칫 여권의 ‘적폐 프레임’에 싸이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황 전 총리가 막상 현실 정치에 참여할 경우엔 기대감이 사라져 지금보다 지지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 반 전 총장의 경우에도 한때는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압도하는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후 본격적으로 활동하자 그의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오세훈, 소속 계파 없고 ‘적폐 공격’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99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4년, MBC의 〈생방송 오 변호사 배 변호사〉를 진행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면서 ‘스타 변호사’가 됐다. 1996~1997년엔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로 나서 인지도를 쌓았다.
오 전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진출했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강남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 그는 초선 의원 시절 ‘돈 안 드는 선거’를 위한 소위 ‘오세훈법(현행 정치자금법)’을 발의하면서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의 지역구가 한나라당 ‘텃밭’이었으므로 법안 통과를 위해 불출마를 택한 그의 선택은 기성 정치인에게서 찾을 수 없던 ‘기득권 포기’였다.
이를 바탕으로 오 전 시장은 45세 되던 2006년, 서울시장이 됐다. 이전까지 ‘초선 국회의원’에 불과했던 그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는 얘기다. 젊은 서울시장은 전임 시장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행한 토건 사업 중심의 시정과 차별화하기 위해 ‘서울 시정’에 ‘디자인’을 접목했다. ‘디자인 서울’을 표방한 오 전 시장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스카이라인’과 간판을 규제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해 한강의 ▲자연성 회복 ▲접근성 향상 ▲문화기반 조성 ▲경관 개선 ▲수상 이용 활성화를 꾀했다.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세빛섬이 오 전 시장 재임기간에 조성됐다.
오 전 시장은 서울의 고질적인 문제인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해 2008년부터 재산세의 50%를 특별시세로 징수해 25개 자치구에 균등 배분하는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시내 대기질 개선을 위해 시내버스 대다수를 천연가스버스로 교체했다. 단 한 번의 공금횡령이나 금품·향응 수수만으로도 공직에서 완전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전국 최초로 실시해 서울시의 청렴도를 전국 1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정책 측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다수 올린 셈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또 다른 강점은 소속 계파가 없고, 여권의 ‘적폐 프레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다. 오 전 시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사실상 정치권을 떠나 있었다. 변호사, 교수로 활동하다가 한국국제협력단 자문단 자격으로 페루와 르완다에서 장기 체류했다. 귀국 후 2016년 총선 때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패배 후 다시 학교로 가 교수 생활을 했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는 새누리당을 나와 소위 바른정당에 참여했다가 바른미래당(바른정당+국민의당) 창당에 반대하며 당적을 버렸다.
오 전 시장의 약점은 2011년 당시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서울시장직을 내걸었던 것이다. 해당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투표함 개봉 가능 투표율인 33.3%에 못 미치는 25.7%에 그쳤고, 오 전 시장은 서울시장에서 물러났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오 전 시장이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띄우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비판한다. 당시 ‘이명박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오 전 시장을 만류했지만, 대권 욕심에 독단적으로 나섰다가 서울시장 자리를 잃었다는 지적이다.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이 지금까지 서울 시정을 지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 전 시장 관련 기사 댓글 중엔 “박원순에게 서울을 넘겨줬다”는 원성이 많다.
유승민, “국민을 배신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한 ‘경제전문가’다. 1998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위원이었던 유 의원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해 ‘관치경제’라고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같은 해, 방한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원탁 토론회에 참가해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과 미국의 대한(對韓)정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자신의 전문성을 과시했다.
유 의원은 경제는 물론 국방 현안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8년 동안 활동하면서 ‘군사·안보 정책’을 섭렵했다. 외교·통상 분야의 경우에도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논리적이고 정확한 언어를 구사한다. 경제전문가답게 수치에도 밝다. ‘토론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의 이 같은 면모는 지난해 대선 당시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관련 재원’에 대해 치밀하게 파고들자 문 후보가 “우리 정책본부장과 토론하라”고 답했을 정도다.
유 의원은 따뜻한 인간성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와 경북고등학교 동기인 권오을 전 의원은 “유 의원은 한결같이 어떤 문제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저돌적이고 일단 결심이 서면 행동도 빠르고 일에 대한 실수가 없다. 까칠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학창시절처럼 친구와 동료를 챙길 줄 아는 따스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가장 큰 약점은 ‘배신자’란 낙인이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유 의원은 2006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상대 진영인 이명박 후보 공격의 최전선에 나서며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명 변경과 증세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며 틀어지기 시작했다. 2015년 원내대표 시절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라고 지적해 갈등이 증폭됐다. 그해 6월,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유 의원을 겨냥해 “국민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촉구했다. 유 의원은 20대 총선 직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복당했지만, 친박 세력과의 갈등이 계속됐다. 유 의원은 소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당내 비박계와 함께 ‘박근혜 탄핵 소추’를 주도하고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유 의원이 보수 성향 국민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배신의 정치’ 단어에 대해 유 의원은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국민을 배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만약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할 말을 하는 게 배신이라면 그런 배신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우파 진영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유 의원이 ‘배신자’ 낙인을 지우지 못한다면, 대구·경북 민심을 장악하긴 쉽지 않을 듯하다. 소위 ‘보수 정치인’이 대구·경북의 지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대권을 꿈꿀 수 있을까.
유 의원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 안팎에 ‘유승민 사람’도 별로 없다. 유 의원의 한 측근은 “의원 중에 유승민과 수시로 만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결점을 가진 셈이다.
야권 지지층에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범야권 정치인 선호도’를 물었을 때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6.6%,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3.1%,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8.4%를 기록했다.
상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권과 야권의 선두 주자는 현 정부와 전 정부의 국무총리다. 2위는 서로 전혀 다른 도시 경영을 추진한 ‘전·현 서울시장’이다. 3위는 경제학을 전공한 ‘정치인’이자 ‘토론의 달인’이다. 이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낙연 ▲박원순 ▲유시민 ▲황교안 ▲오세훈 ▲유승민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국회에서 호통치던 ‘실세 총리’ 이해찬과 다른 이낙연의 정제된 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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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좌) 국무총리는 문재인(우) 정부를 향한 야당 의원들의 공격을 논박하면서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소위 ‘사이다 총리’란 별명을 얻었다. 사진=조선일보 |
이 총리의 언행이 돋보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조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임에도 화려한 언변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함께 ‘눌변(訥辯)’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탓에 문 대통령은 2016년 말, 소위 ‘박근혜 탄핵 정국’ 때는 ‘반박근혜’ 진영에서 이재명 성남시장(현 경기도지사)이 ‘사이다’라고 호평받자, 자신을 ‘고구마(말은 느리지만, 든든하다고 자평)’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14년(2000~2014년) 동안 국회에 있으면서 ▲통일·외교 ▲산업·통상 ▲건설·교통 ▲농림·수산 ▲보건·복지 등 여러 분야를 경험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3년 동안 전남지사직도 맡았다. ‘의정’과 ‘행정’을 두루 거친, 이 총리는 현안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장차관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이 총리는 지난해 9월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동’ ‘유해 생리대 파동’ 당시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나무라고, “최단 시일 내에 업무 장악을 못할 경우엔 많은 고민(해임 건의 등)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로써 이 총리는 공무원의 특유의 무사안일(無事安逸)과 복지부동(伏地不動), 책임 떠넘기기에 지친 국민에게 호평을 받는 동시에 자신이 ‘허수아비 총리’ ‘방탄 총리’가 아닌 ‘존재감 있는 총리’란 인상을 남겼다.
李는 文과 ‘운명 공동체’… 文 정부 성패 따라 미래 달라져
이낙연 총리에겐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란 강점이 있다. 이는 이 총리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입각 이전, ‘4선 의원’이자 ‘전남도지사’이면서도 대선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다가 최근 범여권 주자 중 1위를 기록하는 건 ‘문재인 정부의 첫 총리’란 점 때문이다.
이 총리는 ‘호남 출신(전남 영광)’이자 소위 ‘김대중 키즈’다. 정치부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전담 취재하면서 인연을 쌓아 2000년 16대 총선 때 전남 영광·함평 지역구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호남에서 신격화된 ‘김대중 선생’이 고른 인물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는 점은 김대중 이후 마땅한 ‘지역 대표 정치인’을 찾지 못했던 전라도 사람들에게 ‘희소식’이다. 이를 고려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 총리는 현재 거론되는 경쟁자들과 달리 ‘김대중’이란 배경과 함께 ‘호남’이란 든든한 지역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총리의 강점은 동시에 그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와 이 총리는 ‘운명 공동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초반부터 각계 비판을 감수하고 추진하는 각종 ‘문재인표 정책’이 실패한다면, 이 총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특히 ‘북한 비핵화’가 실패했다고 확정될 경우 이 총리는 회복 불가능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된다. 북한 김정은을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옹호해 왔던 그이기 때문이다. 즉 이 총리의 ‘정치 운명’은 ‘문재인+김정은’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 천막·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의 ‘우렁각시’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의 가장 큰 정치 자산은 ‘3선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역대 최초로 3선에 성공한 ‘민선 서울시장’이다. 관선·민선 서울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해 매일 ‘최장수 서울시장’이란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기도 하다.
박 시장은 지난 7년간 서울 시정을 총괄하면서 ‘박원순표 정책’을 쏟아냈다. 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 등 소위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때부터 ‘틈새 전략’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였던 박 시장은 기존 도시 행정과 결이 다른 정책들을 추진했다.
서울시장 취임 후 박 시장은 “마을을 복원해야 한다”면서 소위 ‘마을공동체 만들기’ ‘마을기업 육성’ 등에 세금을 썼다. 이에 따라 이른바 ‘마을활동가’들이 서울 전역에서 활동하게 됐다.
박 시장은 또 ‘도시 양봉’을 한다며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옥상에서 벌을 치게 했다. ‘도시 농업’을 하겠다며 광화문광장에 벼 모종 상자를 설치했다. ‘도시 농업의 씨앗’을 뿌리겠다면서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이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려고 한 한강 노들섬에서 모내기를 하기도 했다.
‘탈원전주의자’인 박 시장은 ▲에너지 절감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원전 하나 줄이기’를 시행했다. ‘원전 하나 줄이기’는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전력을 대체할 능력을 갖추는 걸 목표로 2012년부터 사업비 1조9000억원(서울시+민간, 2017년 기준)을 투입한 ‘박원순표 에너지 정책’이다. 시기를 따져보면 박 시장의 ‘원전 하나 줄이기’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의 원조인 셈이다.
박 시장은 일각에서 ‘성역(聖域)’으로 여기는 세월호 사고 사망자의 유족을 각별하게 챙겨 왔다. ‘박원순 서울시’가 2014년부터 3년 동안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서 지원한 예산은 총 13억2700만원이다.
박 시장은 또 소위 ‘세월호 유족’이 1000만 서울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간이어야 할 광화문광장의 일부를 점거했을 때 서울시 예산을 들여 천막을 지원했다. 이후 비판이 쏟아졌지만, 박 시장은 이를 무릅쓰고 ‘세월호 천막’을 지켰다. 이와 관련, 임종석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현 대통령비서실장)이 경찰 조사를 받자, “내가 잡혀가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설치된 ‘세월호 천막’은 4년 넘게 광화문광장 남단을 차지하고 있다.
박 시장은 ‘세월호 천막 지킴이’뿐 아니라 ‘박근혜 탄핵’을 주장한 ‘촛불집회’의 ‘우렁각시’란 평가를 받는다. 2017년 1월, 정현백 사단법인 시민 이사장(문재인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이 “촛불이 두 달 이상 이어지기 쉽지 않은데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와 박 시장의 지원에 감사한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노빠·문빠’ 같은 지지자 없는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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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대권 관문인 서울시장에 7년 동안 재임했다는 강점과 함께 당내 기반과 극렬 지지층이 적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박 시장의 가장 큰 약점은 ▲당내 우군 부족 ▲확고한 지지층 부재 등 정치 기반이 약한 것이다. 국회 또는 더불어민주당 내에 ‘박원순계’로 분류할 만한 의원은 많지 않다. 확실하게 ‘박원순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는 기동민 의원뿐이다.
“박원순 아니면 안 된다”는 극렬 지지층도 사실상 없다. 소위 ‘팬덤’이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박 시장은 한때 차기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다가 종국에는 ‘군소후보급’으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지난해 1월, 박 시장은 지지율 3%를 기록하다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시 그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당내 ‘우군’이 많지 않고, 이른바 ‘노빠(노무현 지지자)’ 또는 ‘문빠(문재인 지지자)’ 같은 극렬 지지층이 없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박 시장은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적폐’로 규정한 탓에 차기 대선에서 당내 주류인 ‘친문’과 핵심 지지 세력인 ‘문재인 지지자’의 마음을 얻는 게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 1월, 박 시장은 “문재인 전 대표는 청산돼야 할 낡은 기득권 세력” “문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청산의 대상이지 그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 시장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그 발언은 헛발질이었다”면서 문 대통령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또 “제 마음속엔 문재인 정부의 성공만 가득하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차기 대선 후보로 그를 뽑아줄지는 의문이다. 과거 언행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 박 시장이 지금처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강조할지도 미지수다.
화려한 언변·친노 간판·높은 인지도 가진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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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좌)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해찬(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권에 따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사실을 두고 일각에선 “유시민의 정계 복귀 신호탄이 아니냐”고 해석한다. 사진=조선일보 |
유 이사장은 최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할 정도로 자타 공인 ‘친노 적통’이지만, 여느 ‘친노 정치인’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열린우리당 해체 후 대다수 ‘친노’가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에서 활동한 것과 달리 유 이사장은 외곽에 있었다.
2009~2010년 당시 유 이사장은 야권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10년 자신이 만든 국민참여당 후보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패배한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이후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가 뛰쳐나와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에 참여했지만, 주목할 만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주류 정치권에서 밀려난 듯했던 유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은 정의당에서 나와 당적도 없다. 유 이사장은 ▲작가 ▲강사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한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예능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해 각종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면서 ‘박학다식한 지식인’이란 인상을 남겼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탄핵’ 정국 때는 그가 ‘중립내각’의 국무총리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온라인상에서 돌기도 했다.
정권 교체 이후 외곽에서 문재인 정부를 측면 지원하는 ‘지식인’ 역할을 해오던 유 이사장은 최근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계 복귀 신호탄’이라고 풀이한다. 정치권 밖에서 분석하고, 지적하던 것과 달리 현실 정치에 다시 뛰어들었을 때 유 이사장이 지금과 같은 지지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화려한 언변 ▲친노 정치인 ▲높은 인지도란 강점을 고려하면 ‘친문’ 세력이 내세울 수 있는 유력한 대선 주자인 건 분명하다.
그가 정치활동을 재개한다면, 차기를 노리는 여권 잠룡에겐 상대하기 버거운 경쟁 상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단,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그렇다. 상술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다면, “뼛속까지 친노”라고 자부하던 유 이사장과 ‘차기 대권’은 무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직무 수행 긍정 평가받은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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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 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끊임없는 대선 출마 요구에도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사진=조선일보 |
박근혜 정부 후반기엔 국무총리가 돼 안정적으로 내각을 관리했다. 국회 대정부질문 때는 절제된 언행을 유지하면서도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단호하게 대응해 ‘외유내강’이란 평가를 받았다. 2016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나서 ‘대통령권한대행’이 된 후에는 혼란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 대통령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급락했지만,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률은 40%에 이르기도 했다.
황 전 총리가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이자 우파 진영에선 그를 ‘대안’으로 여겼다. 그가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요구가 쇄도했지만, 황 전 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 역할에 충실했다.
황 전 총리는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2017년 신년사에서 “정부는 굳건한 한미연합 방위태세를 토대로 어떠한 도발 위협에도 단호히 응징하겠다” “UN 안보리 결의 등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화해 북한의 잘못한 셈법을 꼭 바꾸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북 유화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는 다른 대북관을 가졌다는 얘기다.
앞서 밝힌 이유 때문에 황 전 총리의 정계 진출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크지만, 실제 그가 우파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단, 그의 권력의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황 전 총리는 검사 퇴직 후 잠시 변호사 활동을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평생 공무원으로 살았다. 공무원 출신은 ‘권력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이었던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포기한 사례를 보면 그렇다.
황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없다. 당내 기반도 없다. 그가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선 자신을 뒷받침할 조직을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황 전 총리는 현재 자유한국당 내 친박 세력과 접촉하고 있지만, 이는 자칫 여권의 ‘적폐 프레임’에 싸이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황 전 총리가 막상 현실 정치에 참여할 경우엔 기대감이 사라져 지금보다 지지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 반 전 총장의 경우에도 한때는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압도하는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후 본격적으로 활동하자 그의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오세훈, 소속 계파 없고 ‘적폐 공격’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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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전면 확대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애초 약속대로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사진=조선일보 |
오 전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진출했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강남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 그는 초선 의원 시절 ‘돈 안 드는 선거’를 위한 소위 ‘오세훈법(현행 정치자금법)’을 발의하면서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의 지역구가 한나라당 ‘텃밭’이었으므로 법안 통과를 위해 불출마를 택한 그의 선택은 기성 정치인에게서 찾을 수 없던 ‘기득권 포기’였다.
이를 바탕으로 오 전 시장은 45세 되던 2006년, 서울시장이 됐다. 이전까지 ‘초선 국회의원’에 불과했던 그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는 얘기다. 젊은 서울시장은 전임 시장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행한 토건 사업 중심의 시정과 차별화하기 위해 ‘서울 시정’에 ‘디자인’을 접목했다. ‘디자인 서울’을 표방한 오 전 시장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스카이라인’과 간판을 규제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해 한강의 ▲자연성 회복 ▲접근성 향상 ▲문화기반 조성 ▲경관 개선 ▲수상 이용 활성화를 꾀했다.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세빛섬이 오 전 시장 재임기간에 조성됐다.
오 전 시장은 서울의 고질적인 문제인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해 2008년부터 재산세의 50%를 특별시세로 징수해 25개 자치구에 균등 배분하는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시내 대기질 개선을 위해 시내버스 대다수를 천연가스버스로 교체했다. 단 한 번의 공금횡령이나 금품·향응 수수만으로도 공직에서 완전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전국 최초로 실시해 서울시의 청렴도를 전국 1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정책 측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다수 올린 셈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또 다른 강점은 소속 계파가 없고, 여권의 ‘적폐 프레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다. 오 전 시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사실상 정치권을 떠나 있었다. 변호사, 교수로 활동하다가 한국국제협력단 자문단 자격으로 페루와 르완다에서 장기 체류했다. 귀국 후 2016년 총선 때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패배 후 다시 학교로 가 교수 생활을 했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는 새누리당을 나와 소위 바른정당에 참여했다가 바른미래당(바른정당+국민의당) 창당에 반대하며 당적을 버렸다.
오 전 시장의 약점은 2011년 당시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서울시장직을 내걸었던 것이다. 해당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투표함 개봉 가능 투표율인 33.3%에 못 미치는 25.7%에 그쳤고, 오 전 시장은 서울시장에서 물러났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오 전 시장이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띄우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비판한다. 당시 ‘이명박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오 전 시장을 만류했지만, 대권 욕심에 독단적으로 나섰다가 서울시장 자리를 잃었다는 지적이다.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이 지금까지 서울 시정을 지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 전 시장 관련 기사 댓글 중엔 “박원순에게 서울을 넘겨줬다”는 원성이 많다.
유승민, “국민을 배신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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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물론 국방, 외교, 통상 분야에 해박하고 토론을 잘하는 등 많은 강점을 가진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의 최대 약점은 ‘박근혜(우) 전 대통령’이다. 사진=조선일보 |
유 의원은 경제는 물론 국방 현안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8년 동안 활동하면서 ‘군사·안보 정책’을 섭렵했다. 외교·통상 분야의 경우에도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논리적이고 정확한 언어를 구사한다. 경제전문가답게 수치에도 밝다. ‘토론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의 이 같은 면모는 지난해 대선 당시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관련 재원’에 대해 치밀하게 파고들자 문 후보가 “우리 정책본부장과 토론하라”고 답했을 정도다.
유 의원은 따뜻한 인간성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와 경북고등학교 동기인 권오을 전 의원은 “유 의원은 한결같이 어떤 문제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저돌적이고 일단 결심이 서면 행동도 빠르고 일에 대한 실수가 없다. 까칠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학창시절처럼 친구와 동료를 챙길 줄 아는 따스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가장 큰 약점은 ‘배신자’란 낙인이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유 의원은 2006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상대 진영인 이명박 후보 공격의 최전선에 나서며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명 변경과 증세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며 틀어지기 시작했다. 2015년 원내대표 시절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라고 지적해 갈등이 증폭됐다. 그해 6월,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유 의원을 겨냥해 “국민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촉구했다. 유 의원은 20대 총선 직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복당했지만, 친박 세력과의 갈등이 계속됐다. 유 의원은 소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당내 비박계와 함께 ‘박근혜 탄핵 소추’를 주도하고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유 의원이 보수 성향 국민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배신의 정치’ 단어에 대해 유 의원은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국민을 배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만약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할 말을 하는 게 배신이라면 그런 배신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우파 진영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유 의원이 ‘배신자’ 낙인을 지우지 못한다면, 대구·경북 민심을 장악하긴 쉽지 않을 듯하다. 소위 ‘보수 정치인’이 대구·경북의 지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대권을 꿈꿀 수 있을까.
유 의원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 안팎에 ‘유승민 사람’도 별로 없다. 유 의원의 한 측근은 “의원 중에 유승민과 수시로 만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결점을 가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