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학번의 36년만의 졸업식♧
2021년 2월 22일
음력으로 1월 11일
이안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군부독재 시절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여 전액 장학금을 받고 많은 이들의 부러움 속에 입학을 했지만, 나는 편안하게 공부할 수 없었다.
군부독재의 광주사태의 진상을 먼저 눈을 뜬 선배들과 교수님들로 부터 듣고부터 내 손에 들었던 책가방 속에서 책을 쏟아내고, 화염병과 짱돌을 담아 시위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학생운동 만으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선배 동료 학우들과 노동현장으로 들어 가기로 플랜을 짜고,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노동현장에 위장 취업하기 위한 방법으로 폴리텍 대학에 들어가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그래서 폴리텍 대학 전기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속성으로 전기 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인천에 있는 발전기를 생산하여 군에 납품하는 방위산업체에 입사했다.
입사 후, 인천ㆍ부천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 중 뜻을 같이 하는
의식 있는 노동자를 규합하여 "민주노동자실천협의회"을 결성하여 공동대표를 맡아 노조 결성을 준비하였다.
당시 이 회사에는 내가 이끄는 민실협 외에도 또 다른 비밀그룹이 노조 결성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방위산업체라 극도로 비밀리에 진행 되었기에 서로의 활동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그룹에서 먼저 노조를 결성한다고, 비밀리에 나에게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당시 병역특례자임에도 나에게 참여를 제안한 것은 아마도 그들의 눈에도 내가 정의롭다는 그리고 비밀을 지킬것 이라는 평소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회사 내부에서 결성식을 하기에는 위험하기에 외부에서 하기로하고, 전체 노동자 800명 중, 부천공장 30명, 인천공장 30명이 인천과 부천 중간 지점에서 다방을 빌려 노조 결성식을 하고, 다음날 회사로 들어가 노조결성 선포를하고 일반노동자들의 조합원 가입을 받기로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을 해보니, 정보가 새어 나가서, 회사측에서 정문을 막고 직장폐쇠와 휴업공고를 붙히고 일반노동자의 출입을 막았다.
다만 군에 가는 대신 방위산업체에서 5년간 일하는 병역특례병들은 쪽문을 통해 회사 안으로 들어오라는 공고가 붙었다.
공장 정문에는 일반노동자들이 웅성거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병역특례병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당시 병역특례병신분 이라서 공장안으로 들어 갔다. 들어가니 총무과 관리자들과 병역특례병 고참선배들이 먼저 와서 우리를 식당으로 집합을 시켜서,
"너희들은 병역특례병 이므로 분순 노동자들로 부터 이 회사를 지켜야한다"며, 구사대를 조직하여 공장 정문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때 내가 나섰다. 그동안 일반노동자들도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으로 시달렸지만
병역특례병은 일반노동자들 보다 더 열악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동안 회사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 우리도 공장 밖에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합시다"라고 선동하여 병역특례병들의 환호속에 관리자들을 물리치고 정문으로 달려가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굳게 잠겨 있던 철대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노동자들을 공장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부천공장에서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내가 조직해 활동하던 민실협 멤버인 친구가 부천공장에서 역할을 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관리자들을 공장 밖으로 모두 내보내고 공장을 점거하고
노동조합 인정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농성이 시작되었다.
이때 내가 농성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자로 나섰다. 노조를 설립을 주도한 그룹에서는 나의 존재에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일반노동자들도 만날 때 마다 손을 잡고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다.
농성이 시작된지 열흘이 지나도 회사측이 협상에 나서지 않아서 특단을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인천ㆍ부천 양 공장에서 힘 좀 쓰는 특수조(결사대) 각 25명씩 선출하여 회사 버스에 싣고 서울 청계천 본사 7층 건물을 기습점거 하기에 이르렀다.
본사 점거 3일만에 회사에서 노동조합 인정과 임금 1400원 인상
병역특례병에겐 2400원 인상하겠다는 항복을 받아냈다.
당시 내 기본급 일당이 4100원 이었던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승리였던 것이다.
그 후, 일년후 노조 설립 1주년 기념식에서 내가 인천ㆍ부천 통털어 노동조합 설립 공로상을 1호로 받게 되었다.
그 후 단체협상대표, 사내 새마을 금고 비리 진상조사단장, 노동조합 신문 편집부장. 홍보부장. 교육부장으로 활동하였고,
그 후, 민주노동자들의 전국단위 조직인 전노협이 창립되었고, 이때 내가 초대 대의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렇게 사회변혁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어언 삼십여년 이라는 세월 동안 책가방을 놓고 살다가 이제서야
중단했던 공부를 하여 마지막 졸업을 하게 되었다.
영예롭게도 전공학과 수석졸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이것으로 학교 공부를 모두 마친것이다.
2.22.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