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주위 시선을 무시한 채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신이 있다면 나의 목젖이 떨리는 걸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주춤거릴 시간이 네겐 없다. 게걸스럽다고 조롱을 받아도 좋다. 의식은 체면치레에 불과한 일.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입안에 조심스레 밀어 넣는다. 입안의 침을 두루 묻혀 두서너 번쯤 우물거리다 목젖 너머로 삼켜버린다. '꿀꺽' 맛있는 소리가 따라왔다.
꼭 한 번은 손수 만들어 원도 한도 없이 먹고 싶었던 찰떡 인절미였다. 약방의 감초처럼 누구네 잔칫상이나 상갓집의 식탁 위에 빠지면 허사가 되는 흔하디흔한 떡. 예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의 애경사와 함께 하는 떡이다. 우리 고장인 평동 떡마을 체험장에서 잊고 지냈던 그 냄새와 맛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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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jbnews.com%2Fnews%2Fphoto%2F203319-2-189850.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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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고 별난 음식이 넘치는 요즘 인절미가 무에 그리 좋아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할 일이냐고 반박하고도 남음이 있으렷다. 하지만 내겐 그만한 슬픈 속내와 이유가 있다. 정성스레 인절미를 만들며, 내 삶에서 낡고 낡아 무심히 잊혀져가는 기억의 파편을 붙들어 두고 싶다.
밥을 먹고 돌아서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특별히 간식이 없던 시절이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찰떡은 아니어도 가끔 밀가루로 술맛이 감도는 풀빵을 만들어주었다. 쟁반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도 잠시, 어머니가 입맛을 다시기도 전에 풀빵은 자식들 목구멍으로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이런 호사도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이 되었을 때 일이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수개월 입원해 있을 무렵, 우리 집의 형편은 쌀독의 바닥을 긁고 있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허기진 배를 물로 채워 때 이른 잠을 권유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부엌에서 조리로 쌀을 일고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훗날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집안 사정을 알게 된 직장에서 쌀 한 가마니를 보내주었다는 거였다. 내가 어린 나이에 철이 든 것도, 어머니가 억척스런 생활 근성으로 변한 것도 그 날의 배고픔의 서러움을 잊지 못하는 탓이었다.
그 무렵, 큰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던 할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왔다. 힘겨운 형편에도 어머니는 우리들 몰래 할머니의 간식거리를 챙기셨다. 소화가 잘되는 찰떡으로 만든 인절미였다. 할머니는 인절미를 손수건에 싸서 감춰두고 출출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입안에 넣고 잇몸으로 우물거렸다. 내 후각에 기억된 인절미에 얹힌 고소한 콩고물 냄새는 그때부터였는가 보다.
할머니가 정신이 맑은 날에는 한방을 쓰던 내게도 손수건을 풀어 인절미를 먹으라고 내놓으셨다. 먹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의 장롱 속에서 흰곰팡이 꽃이 핀 인절미를 발견한 어머니의 어이없는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도 밥을 굶으면서 인절미를 사 나르던 어머니나 떡을 맛있게 드시던 할머니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어머니와 할머니의 옷자락에선 콩고물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드디어 마당에 멍석이 깔렸다. 너른 떡판과 떡메도 두 개 나란히 놓여있다. 떡할메가 떡판 위에 찐 찰밥을 쏟아 붓는다. 떡메로 찰밥을 찧을 순서이다. 직원들은 돌아가며 떡메로 있는 힘껏 찧어보지만, 오히려 떡메에는 찰밥이 착 달라붙어 그걸 떼느라 물이 더 소요될 뿐이다. 팔뚝이 굵다고 팔 힘이 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보다 못한 떡마을 회장이 다시금 시범을 보인다. 모두 다 감탄사를 자아낼 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구러 충분히 찧은 떡살을 길고 반듯하게 다져 놓는다. 떡살을 먹기 좋게 알맞은 크기로 자르며, 준비해 둔 콩고물을 골고루 자른 떡살에 묻힌다. 그리곤 인절미를 쟁반에 보기 좋게 담아낸다.
이제 먹을 일만 남았다. 인절미 하나를 얼른 집어 코끝으로 가져가니, 바로 그날의 그 냄새다.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나던 콩고물냄새. 서글프게 구수한 향이 먼저 나의 코끝을 간질였다. 쌉쌀하고 고소한 맛, 씹을수록 쫄깃한 그의 성질이 입맛을 당기게 하는 떡. 이들이들하고 부드럽고 물러 혀끝에 감도는 인절미에 순간 코끝이 찡해 온다.
동안에 멀리했던 음식이었다. 기쁨의 장소든 슬픔의 장소든 식탁 중앙에 올라도 난 본체만체하였다. 누군가 권유라도 하면 생목이 오른다며 핑계를 댔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난 이제 어머니의 삶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 그리움을 떡으로 달래기라도 할 양, 아니 그날의 허기를 보상이라도 할 양 꿀꺽 또 꿀꺽 삼켜버렸다.
하마 입처럼 크게 벌어진 나의 입, 게걸스럽게 먹던 표정이 직원들의 시선에 딱 걸렸다. 한 장의 스냅사진은 만인이 클릭해보는 카페 갤러리에 올려졌다. 지금도 그 구수한 향이 물씬 코끝을 간질인다. 내 삶의 도반(道伴), 인절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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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씨는
▶청주출생, 충북대경영대학원졸업
▶2004년 월간문학 등단
▶2004년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
▶2007년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수상
▶저서로, 2005년 <검댕이>, 2007년 <망새> 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제물포수필문학회,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
▶현재 (주)대원 관리이사로 재직 중
▶email : ehleeu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