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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1970년 전남 담양 출생경남대 국문과를 졸업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당선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수상 제22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시집 <호랑이 발자국>2003년 창비
옻닭..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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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는 지독하다 나무 그늘만 스쳐도 살갗에 소르르 소름이 돋는다 해마다 한 번씩 자신을 스쳐간 폭염과 홍수 팔을 뚝뚝 부러뜨리던 폭설의 기억을 비벼 꼬아 제 속을 치잉칭 결박하는 나무 속을 쥐어짜 잎잎이 푸르디푸른 신음을 뱉어낸다 허나 독기라면 닭도 지지 않는다 한평생을 옥살이로 보내온 그가 아닌가 톱날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벼슬과 부리, 쇠창살 사이로 모가지만 간신히 빼내어 댕강 참수를 당하는 그 순간까지 제 것이 아닌 몸뚱이를 키우며 살아온 그가 아닌가 지독에 이른 동물과 식물이 한 몸이 되기 위해 부글부글 끓고 있다
2
독기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 나를 무심코 집어삼킨 세상에 우둘투둘한 옻독을 옮기리라 뚝배기 국그릇 속에 코를 쥐어박고 아버지와 함께 옻닭을 먹는다 두 편에 오만 원 어쩌다 받은 원고료로 삼십 년 지겟꾼살이 주식으로 삼아온 술 담배에 속을 상한 당신 술 담배 보단 서른이 넘도록 빈둥대는 아들놈 때문에 더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당신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성 갈수록 짐만 되는 아들놈의 독성 옻이 올라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오르도록 말복 더위에 쏟아져 내리는 땀방울을 섞어가며 목구멍까지 차 오른 가려움을 꾸욱 눌러 참는다 독을 우려낸 진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워 삼킨다
외할머니의 숟가락/ 손택수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마실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홍어 / 손택수
어느날인가는 시큼한 홍어가 들어왔다 마을에 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김희수씨네 마당 한가운데선 김나는 돼지가 설겅설겅 썰어지고 국솥이 자꾸 들썩거렸다 파란 도장이 찍히지 않은 걸로다가 나는 고기가 한점 먹고 싶고 김치 한점 척 걸쳐서 오물거려보고 싶은데 웬일로 어머니 눈엔 시큼한 홍어만 보이는 것이었다 홍어를 먹으면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지느니라 지엄하신 할머니 몰래 삼킨 홍어 불그죽죽한 등을 타고 나는 무자맥질이라도 쳤던지 영산강 끝 바닷물이 밀려와서'흑산도 등대까지 실어다줄 것만 같았다 죄스런 마음에 몇 번이고 망설이다, 어머니 채 소화도 시키지 못한 것을 토해내고 말았다는데 나는 문득문득 그 홍어란 놈이 생각나는 것이다 세상에 나서 처음 먹는 음식인데 언젠가 맛본 기억이 나고 무슨 곡절인지 울컥 서러움이 치솟으면 어머니 뱃속에 있던 열달이 생각나곤 하는 것이다.
흰둥이 생각/ 손텍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의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 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 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소가죽북 / 손택수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가 그랬다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버드나무처럼 쥐어뜯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던 울음에도 저런 청승맞은 가락이 실려있었다
채식주의자의 질기디질긴 습성대로 죽어서도 여물여물 살가죽에 와닿는 아픔을 되새기며 둥 둥 둥 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끌어 당겨 연신 제 몸을 친다
시집 - 호랑이 발자국 (창작과비평사)
은행나무 사리알/ 손택수
아랫배에 끙 힘을 주고 밀어낸 열매들이 온 천지를 잘 익은 된장 냄새 황금빛으로 물들여준다 동제가 있을 때면 한 상 걸게 차려놓고 밥을 먹던 은행나무 고목
사리알이 별것이간디, 언젠가 수덕사 성보박물관에서 본 滿空 스님 바리때도 저 은행나무 재목이었다 포개진 그릇마다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나 들어와 있을 법한 만공이 가득 차 있었다
스님도 한 그루 은행나무로 살다 간 것이 아닐까 아픔 몸 속에 들어와 입적한 목숨들을 품고 잘 익은 똥내음, 사리알 맺는 일에 한 평생 보내고 간 것이 아닐까
은행나무 더부룩한 아랫배가 다 개운하다는 듯 가볍게 몸을 흔든다 앗따 뭘 퍼먹었길래 이렇게 독한고, 똥 푸러 온 인부처럼 코를 쥐고 마을 사람들이 푸지게 퍼질러 놓은 알들을 줍는다
시집 - 호랑이 발자국 (창비)
살가죽구두/ 손택수
세상은 그에게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맨발로 세상을 떠돌아다닌 그에게 검은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부산역 광장 앞 낮술에 취해 술병처럼 쓰러져 잠이 든 사내
맨발이 캉가루 구두약을 칠한 듯 반들거리고 있네 세상의 온갖 흙먼지와 기름때를 입혀 광을 내고 있네
벗겨지지 않는 구두, 그 누구도 벗겨 갈 수 없는 맞춤 구두 한 켤레
죽음만이 벗겨줄 수 있네 죽음까지 껴 신고 가야 한다네
2004년 현대시 1월호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지게자국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시골버스 / 손택수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다기사 양반 소피나 좀 보고 가세더러는 장바구니를 두고 내린 할머니가손주놈 같은 기사의 눈치를 살피고억새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싱글벙글쑈 김혜영의 간드러진 목소리가옆구리를 슬쩍슬쩍 간질러대는 시골버스멈춘 자리가 곧 휴게소다그러나, 한나절 내내 기다리던 버스가그냥 지나쳐 간다 하더라도먼지 폴폴 날리며 투덜투덜 한참을 지나쳤다다시 후진해 온다 하더라도정류소 팻말도 없이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팔을 들어올린 나여, 너무 불평을 하진 말자가지를 번쩍 들어올린 포플러나무와 내가어쩌면 버스 기사의 노곤한 눈에는 잠시나마한 풍경으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니
바다를 질주하는 페타이어 / 손택수
바다를 와서야 비로소 이제껏 헛돌았다는 것을 안다 튜브 속에 거북한 바람으 품지 않고 고무 타는 냄새 없이도 질주할수 있다니
목선 양 겨드랑이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페타이어, 지상에서 밀려난 게 외려 다행스럽다
하지만 여럿을 다치게 했던 기억을 뿌리치지 못하고 파도 속을 자맥질한다
소금기에 절고 삭아서 어느 새 둥그래진 상처, 닳고 닳은 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제 몸 깊이 충격을 받아들인다
시집 '호랑이 발자국'(창작과 비평사)
벚나무 실업률/ 손택수
해마다 봄이면 벚나무들이 이 땅의 실업률을 잠시 낮추어줍니다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꽃이 있어서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서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닌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 노점을 차렸습니다 솜사탕 번데기 뻥튀기 벼라별 것들을 트럭에 다 옮겨싣고 여의도 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오르는 꽃들,
보다 보다 못해 벚나무들이 나선 것입니다 벚나무들이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현대문학 (2006년 3월호)
목련 전차/ 손택수
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 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를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꽃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오신 할아버지도 그랬겠지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으련지 모른다 지난밤 내려치던 천둥번개도 쩌릿쩌릿 저 코일을 따라가서 동력을 얻진 않았는지, 한 량 두 량 목련이 떠나간다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저 꽃전차를 따라 가면, 어머니 아버지 신혼 첫밤을 보내신 동래 온천이 나온다.
시집 <목련전차> 2006년 창비
감자꽃을 따다/ 손택수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있던 동업자 장철문형이 감자꽃을 딴다철문형, 감자꽃 이쁜데 왜 따우내 묻는 말에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꽃에 신경쓰느라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나도 감자꽃을 딴다꽃 핀 마음 뚜우 뚝 끊어낸다꽃시절 한창인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업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다는 독종꽃핀 마음 뚜우 뚝 분지르며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을 기다린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6년 9 ~ 10월호)
나무의 수사학 / 손택수
꽃이 피었다,도시가 나무에게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속마음을 곧이 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살아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속마음을 감추는 대신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나무는 나의 스승그가 견딜 수 없는 건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붕붕거린다는 것,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뜯어먹는다는 것도로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날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치욕으로 푸르다
2008 제22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앙큼한 꽃 / 손택수
이 골목에 부쩍싸움이 는 건평상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다
평상 위에 지지배배 배를 깔고 누워숙제를 하던 아이들과부은 다리를 쉬어가곤 하던 보험 아줌마,
국수내기 민화투를 치던 할미들이 사라져버린 뒤부터다평상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동백 화분이 꽃을 피웠다평상 몰아내고 주차금지 앙큼한 꽃을 피웠다
<리토피아> 2006년 봄호
거미줄 / 손택수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 놓고새끼를 건드리면 움찔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수천 킬로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한밤에 전화가 왔다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꿈자리까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지구를 반 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제비에게 세를 주다 / 손택수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단칸집이다시름시름 기울어가던 처마 끝이다
진흙둥지 되바르며보수공사에 여념이 없는 제비 한쌍신접살림을 차렸다
부스스 일어나 올려다보면밤낮으로 깨소금을 떨어뜨린다
이 허름한 적산가옥에 세를 들어 온 두 내외덕분에 가난한 나도이제는 어엿한 집주인이 된 셈인가
관리 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방을 빼지나 않을까 전전긍긍방세 대신 꼬박꼬박 챙겨주는새울음소리를 염치없이 받아쓰고 있는 나도이제는 집주인으로서의 그 알량하고 딱한체면이라는 걸 알게 된 셈인가
달빛이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와서 하룻밤 묵었다 간 뒤다
시집 <목련 전차>2006년[창비]
사과의 新房 / 손택수
사과가 너무 빨리 익으면달고 진한 맛이 잘 나지 않는 법이다조급하게 따가운 볕 그대로 받았다간겉과 속이 따로 놀기 십상그러니 사내나 볕이나 적당히퉁겨낼 줄 알아야 한다사과 껍질 위에 껍질을 한 꺼풀 더 얹었으니벗겨야 될 옷을 한 겹 더 껴입은 거 아니냐이러면 볕이야 마구 감질이 나겠지만창호문이 걸러낸 볕처럼직수굿해진 볕이라야만사과 볼빛 만큼 달콤한 맛을쟁일 수 있는 것이다
챙 모자 쓴 아낙들이종이 봉투로 한참 사과알을 싸고 있다신방에 창호문 새로 바르고,머지 않아 분단장할 딸년들연애 훈수라도 하듯이
서시 (2007년 봄호)
토하 / 손택수
통통하게 살찐 냉동 토하土蝦를 손에 쥐자 새우가 톡, 튀어오른다
죽은 줄만 알았더니 참았던 숨을 파― 하고 터뜨리듯 깨어난 새우
마취가 풀리면서 꼬리가 연신 손바닥을 쳐댄다 으쯔쯔쯔 뭉쳤던 피가 기지개를 켜면서 굳은살 박인 내 손바닥이 무슨 연못이라도 된다는 듯 냇물이라도 된다는 듯
토하, 얼얼해진 손바닥 위로 근지러운 흙냄새를 토해낸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 시향 (2006년 겨울호) 재수록
감꽃 / 손택수
1
감꽃 핀다, 어디선가 소식 없는 사람들 편지라도 한 장 날아들 것 같다.사람도 짐도 땟국물이 흐르는 기차깃 옆 오막살이 기우고 기웠지만 어딘지 정이 헤퍼 보이는 철망을 달고 옥수수 한 줌 쌀 한 줌 가난을 폭죽처럼 터뜨리던 뻥튀기 할아버지, 잠들어 계신 언덕일까 아지랑이 아지랑이 마술의 주문이 오르고 햇빛에 달귀진 선로 끝 아득히 멀리서 부터 기적이 울리면 뻥, 튀긴 희망에 주린 배를 달래 본적 있나, 설사를 하며 속아본 적 속을 줄 알면서도 튀밥이 튀면 허천나게 달려든 적이 있어! 꽃이 튄다, 저만치 떨어져서 귀를 막는다. 나를 묻는 땅속 꽃씨 한줌도 성급하게 피어날까 튀밥처럼 뻥 하고 튀어오를까, 귀청이 다 떨어지도록 치밀어오는 그리움, 아그데 아그데 감나무 굶주린 꽃이 핀다
2
감나무 아래 들이 잠에 들고 깊다 떨어진 풋감처럼 떫디 떫은 잠이라도 헤 입벌린 채 빠져들고 싶다 밭일 간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아가 울지 마라, 자꾸 울면 쐐기가 떨어진다. 이파리로 다독다독, 잎바람을 일으켜 자장가를 불려주던 유모의 품속으로 들어가 잠들고 싶다 헤 벌린 입에 젖을 물려주기 위해 받아먹지 못하는 젖을 넣어주기 위해 아래로 축 처져 있던 감나무 가지 아래
-2000년 제2회 수주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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