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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원문보기 글쓴이: 호박조우옥
뜨거운 정열을 그대 품안에..
검붉은 장미 그 뜨거운 정열을 불태우는 님이시여~! 반만년 역사 위에 오로지 한줄기 빛이 되어 서광을 비춰 온 님이시여~! 내 두개골이 진토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영겁의 세월이 흐른다 해도 일편단심 님을 향한 이내 마음 그 어찌 변하리오~! 천년만년 살고지고 님의 품안에서 베갯머리 푸오리다~!
<2013년 병역명문가 국무총리상 수상자 이영형씨와 대통령 표창 수상자 안희주씨 >
‘나라지킴이 3대 가족 병역명문가 수상’을 축하 하며..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광화문과 세종로는 경복궁과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조망을 자랑하는 곳으로 과거 한양의 중심거리였던 육조거리의 흔적을 재현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거리로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광장'이라 불리는 그 곳에는 창의와 실용의 정신으로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기에 한국인의 ‘혼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장소이다.
<자랑스러운 명문가 반열에 오른 가문들을 위하여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
<흐뭇한 마음으로 명문 가족들을 바라보는 각계 인사들..>
병무청(청장 박창명)은 지난 14일 세종문화회관 홀에서 ‘나라지킴이 3대 가족 병역명문가 시상식’을 개최 하였다. 각계의 인사들과 수상자 가족들이 함께 동참하여 축하의 자리를 빛내 주었다. 개회식에 이어 박대통령의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고 표창장 수여와 병역명문가 인증서 수여식이 거행되었다. 축사에 이어 캠페인 홍보대사 안성기씨와 함께 공정병역 퍼포먼스를 펼치고 마술 공연과 퓨전 음악 등으로 행사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안성기씨는 명문가 상을 받는 님들이 부럽다고 ..>
<2004년도 초대 명문가 중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송재섭(좌)씨를 반기며 환영하는 박창명 병무청장>
2004년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병역명문가 시상식은 병역을 명예롭게 마친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한 취지로 꾸준히 개최되어 온 것이다. 지난 2월부터 1개월 동안 전국에서 928가문이 신청 접수를 했는데 이중에 엄정한 심사와 사실 확인을 거쳐 역대 최대 545가문이 선정 되었다. 10년 동안 1908 가문만이 병역이행 명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쉽지 않은 영광의 자리로서 자랑스러운 가문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는 것이다.
<2013년도 병역명문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안희주씨 가족의 자랑스러운 얼굴들..>
<2013년도 명문가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이영형씨 가족의 자랑스러운 얼굴들..>
<명문가 가족을 반갑게 맞아 인사를 나누는 박창명 병무청장..>
영예의 대통령표창은 안희주씨 가문(서울 마포구)이 선정 되었고, 국무총리표창은 이영형씨 가문 (서울 은평구)과 유수상씨 가문 등 총 20 가문이 표창을 받았다. 대통령표창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상패 및 상금 500만원이 전달되었고, 국무총리표창 수상자와 국방부장관상, 병무청장상 수상자 모두에게 차등의 상금이 전달되었다.
또한 해외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이 분단된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입대한 병사를 비롯한 모범병사 15명도 수상하며 행사장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범병사로 수상대에 오른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들과 함께 아자 파이팅..>
<모범 병사 가족과 감사의 인사를 나누며..>
박창명 병무청장은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 장군님이 살아 계셨다면 대한민국의 병역명문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수상자와 가족들은 나라를 위하여 3대가 헌신하신 자랑스러운 가문입니다. 훌륭한 애국자로서 명문가 여러분이 우대받는 사회로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격려를 하였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2013년 병영명문가 안희주씨에게 인증패를 전달하며..>
<2013년 병역명문가 대통령 상을 수상한 안희주씨의 자랑스러운 모습..>
<2013년도 자랑스러운 병역명문가 545 가문을 위하여 꽃다발을 바칩니다.>
2013년도 병역명문가 대통령 표창 수상자 안희주씨를 만나다 !
5천만을 대표하는 애국자의 반열에 오른 주인공 안희주씨.. 자랑스러운 명문가 출신답게 수려한 외모에서 빛나는 광채로 세종문화회관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청아한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정성스레 답변에 임하신 안희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1. 질문: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남자로서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공직자로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된다는 가르침과 나라 사랑과 국가 발전을 위한 충성심이 매우 강하셨던 큰 뜻이 가족 모두에게 삶의 지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모두가 아버님의 덕이라 생각합니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은 아쉽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안씨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질문: 병역명문가에 대한 소식을 처음에 어떤 매체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까?
답변: 아버님이 국가 보훈 유공자이셔서 나라사랑 신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어 서울지방병무청에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여기 저기 사실 확인도 해보고 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질문: 명문가 신청 시 어려웠던 점이나 가족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답변: 아들과 함께 미리 사전에 명문가에 대한 조사와 상담을 마쳤습니다. 형님네 가족들과 모두 함께 모여 명문가에 대한 취지를 설명했더니 명문가에 뽑히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모두들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명문가에 신청 접수를 했는데 오늘 이런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4. 질문: 군 복무 중 힘들었던 점은 없었습니까?
답변: 대학을 졸업하고 군 입대를 했는데 그 시절에는 아주 큰 사건들이 많이 터졌습니다. 대통령 비상사태 및 광주 민주화 사태를 겪어서 매일 긴장하며 보냈습니다. 어려움이 많은 때였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 긴장감을 경험 삼아 역경을 극복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동기들과 연락하며 만나고 있습니다.
5. 질문: 병역명문가로서 군복무에 대하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요즈음 군복무는 2년도 채 안됩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그 기간을 허송세월이라고 억울해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군 입대를 회피하려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군에 가서도 본인이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서 얻어 올 것이 무궁무진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전공했습니다. 군에서는 통신병과 일을 배웠습니다.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 공항에서 근무하며 IT 전산계통으로 항공기 관제에 관한 일을 32년 간 지속적으로 연계하여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명문가 병무청장상을 수상한 이수철씨와 귀염둥이들..>
<군인아저씨가 멋져요~! 수줍음으로 미소짓는 귀요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축하합니다. 박수를 보내며 함박웃음을 보내주는 박창명 병무청장과 안성기씨..>
대통령 표창 안희주씨 가문 소개
1대 (故)안경모 2대 안희천, 안희도, 안희태, 안희주, 안희복 3대 안태균, 안영균, 안홍균, 안상균, 안도균, 안원균 모두 12명이 총 복무기간 326개월 동안 현역으로 군복무를 성실히 마친 자랑스러운 가족이다. 1대 (故)안경모 옹은 6.25 전쟁기간 동안 철도 공무원으로 군 수송 작전에 참여 했다.
전쟁 중 파괴된 한강 철교와 북한강 양수리 철교 등의 복구와 국토의 기간 교통시설을 복구하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08년도에는 국가 유공자로 결정되었다.
83년 이후 공직자로서 울산공업기지 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기본계획 수립에 앞장 서 왔으며, 소양다목적댐과 여천 석유화학 공업단지 등 국토건설과 산업기지 조성에 크게 이바지함으로서 녹조근정훈장, 보국훈장천수장, 청조근정훈장,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은 훌륭한 인물로서 10년도 9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하였다.
2대 1남 안희천씨는 60년도 하사관으로 입대하여 교육대 사병 교육을 맡아 모범 사병으로 포상을 받았다. 후에 통신보안부대로 전출되어 통신수단을 이용한 간첩 색출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의 아들 안태균씨는 93년도에 입대하여 우수사병으로 선발되어 표창장을 받았으며 만기 제대하였다.
2대 2남 안희도씨는 ROTC 8기로 71년 남북적십자회담에 동참하여 그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월남전의 군수물자 비축 및 공급에 기여한 공로가 있으며, 그의 아들 안영균씨는 2000년도 육군에 입대하여 행정업무 및 문서 전령 담당자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만기 제대하였다.
2대 3남 안희태씨는 ROTC 11기로 수도 경비사령부 헌병대 소대장으로 근무시 수도권 방위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74년도 국군의 날 행사 모범 병사로 표창을 받았다. 그의 아들 안홍균씨는 2000년도 헌병 병과에 입대하여 사병, 부사관 및 장교들의 기초 보수 교육과 종합행정학교 내의 군 행사 임무를 원활히 수행 후 만기 제대하였다.
2대 4남 안희주씨는 78년부터 제대 시까지 육군 통신병으로서 군의 통신수단 운영에 만전을 기하였다. 군 제대 후 통신계통으로 항공기 관제장비 담당분야에 종사하면서 군 경험이 사회 생활에 기반이 되었다. 그의 아들 안상균씨는 10년도 공군에 지원 입대하여 무기정비병으로 근무 만기 제대하였다.
2대 5남 안희복씨는 82년부터 수도권지역 군부대에 물자 보급 및 정비 업무 담당으로 물자절약 정신을 일깨우는데 앞장 서 왔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무사히 개최 할 수 있도록 일조를 하였다. 또한 충주댐, 용담댐, 등 국내 15개 댐의 설계, 시공 관리 업무를 담당하여 국민에게 안정된 수자원을 공급하는데 일조하여 산업포장을 받았다. 그의 아들 안도균씨는 08년도에 공군 제17전투비행단에 지원대로 배치 받아 관사 관리 근무 후 만기 제대하였다. 차남 안원균씨는 09년도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수송대에서 성실히 복무를 마치고 만기 제대하였다.
< 축하의 분위기로 기분 나이스..청춘예찬 블로그 기자단과 행사 담당자들의 수고에 파이팅을 보내며..>
<공동취재: 청춘예찬 강세희 김은지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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