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 허황후릉(許皇后陵)
경남 김해시 서상동에 있는 가야시대의 왕릉으로 김해김씨의 시조이며 가락국의 시조이다.
1580년(선조 13) 영남관찰사 허엽(許曄)이 왕릉을 수축하여 릉(陵)의 모습을 갖추고 1647년(인조 25)에 능비를 세워 “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이라 새겼다.
1884년 고종황제가 숭선전(崇善殿)이라 사액(賜額)을 내리고 침묘(寢廟)를 개축하였다.
1614년 이수광이 편찬한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인 지봉유설 (芝峰類說)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로왕릉을 도굴 당하여 지방민들이 다시 봉토를 올렸다.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許皇后)는 허황옥(許黃玉?∼188)이라 하는데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 48년(유리왕 25) 가야에 건너와 수로왕의 왕후가 되고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비롯해 10명의 왕자를 낳았다고 한다. 이중 1명은 자신의 성인 허(許)를 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김해 허씨나 인천 허씨이다.
김해김씨 숭선전지(崇善殿誌)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김해 숭선전(崇善殿)은 옛날 가락국(駕洛國) 시조왕(始祖王) 및 시조왕후(始祖王后) 허씨(許氏)의 위패(位牌)를 봉안하여 향화(香火-제사)를 받드는 전각(殿閣)이다. 이 숭선전은 우리나라 국조(國祖) 단국(檀國) 및 고구려 시조 동명왕(東明王)의 숭령전(崇靈殿), 기자(箕子)의 숭인전(崇仁殿), 신라 시조 혁거세왕(赫居世王)의 숭덕전(崇德殿), 탈해왕(脫解王)의 숭신전(崇信殿), 알지왕(閼智王) 문무왕(文武王) 경순왕(敬順王)의 숭혜전(崇惠殿), 백제시조 온조왕(溫祚王)의 숭열전(崇烈殿), 고려 태조왕(太祖王)의 숭의전(崇義殿),과 더불어 고대팔전(古代八殿)에 속하고 있다.
가락국(駕洛國)의 역사 사실을 기록하여 전하는 유일한 문헌(文獻)으로 고려 제 11대 문종 30년(1076)에 금관(金官-지금의 김해시) 지주사(知州事)인 문인(文人)이 지은 가락국기(駕洛國記)이다. 고려 인종 23년(1145)에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보다 69년 앞에 기록된 고전(古典)이다. 그 후 약 200년 동안을 단행본(單行本)으로 전해 오다가 고려 충열왕때 일연국사(一然國師)가 이를 간추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었던 것이다.
구지가(龜旨歌)는 가락국(駕洛國)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강림신화(降臨神話)의 대 서사시다. 출전 문헌인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 2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가락국에 아직 임금이 없어 9명의 추장(酋長)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42년(후한 건무 18) 3월 계욕일(액을 없애기 위하여 물가에서 목욕하며 노는 날)에 마을 북쪽 구지에서 무엇을 부르는 수상한 소리가 났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색줄 끝에 금합(金盒)에 해처럼 등근 6개의 황금알이 있었다. 10여일을 지나서 신장이 구척이나 되고 온몸에 빛이나는 여섯 동자가 태어나서 처음 태어난 동자를 거북이 머리인 수로(首露)라 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시조로 삼았다.
구지가(龜旨歌)
龜何龜何(구하구하)-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머리를 내밀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만약 안내밀면
燔灼而喫也(변작이 끽야)-구워서 먹을 것이로다
가락국준원세계(駕洛國濬源世系)는 아래와 같다.
시조 김수로왕(始祖 金首露王), 2대 도왕(道王), 3대 성왕(成王), 4대 덕왕(德王), 5대 명왕(明王), 6대 신왕(神王), 7대 혜왕(惠王), 8대 장왕(莊王), 9대 숙왕(肅王), 10대 양왕(讓王),
10대 양왕(讓王)을 구형(仇衡)이라고도 하는데 재위 12년(532) 겨울에 신라 법흥왕(法興王)에게 항복하였다. 가락국을 세운지 10왕 491년만이다. 릉(陵)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에 있는 덕양전(德讓殿)이다.
-농월-
첫댓글 정말 배울점을 많이 갖고 계신 농월 선생 지나온 길이 멋지고 부럽습니다. 감히 흉내도 못낼 수 없는 알찬 삶.....정말 부럽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