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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inkPool 원문보기 글쓴이: 석이
일요일아침 잠에서 깨어 예전에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갶쳐해둔 간직해 다시 읽고 싶은 글들을 살펴보다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것같아 몇개 올리려 합니다. 글쓴이 허락없이 옮기는 것이 죄송하나 그분들도 힘들어하는 대다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고마운 마음이였을테니, 여러사람에게 앍히는것을 불괘히 생각지는 않으실테지요. 아래글은 씽*의 콘돌쓰리데이란 분이 04/9/11일 올리신 글입다, 그분이 지우라면 즉시 삭제 하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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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를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매매일지를 쓰는 사람이 열에 하나 둘 정도로 매우 적다. 굳이 매매일지가 아니라 좀 넓게 '복기' 개념으로 살펴보아도 제대로 자신의 매매에 대한 복기를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삼분지 일도 채 안되는 것 같다.
매매일지도 복기도 없이 오늘도 매매를 하고 내일도 매매를 하는 파생인이 있다면, 나는 그가 천재거나 또는 막가파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녁 늦게 hts를 켜고서 10여분 정도 선물과 옵션 차트를 이것저것 잠시 일별하고 주체별 매매동향 잠깐 확인하고 오늘 수익은 얼마였지, 손실은 얼마지 확인하고 실시간 나스닥 시세 한번 구경한 뒤, "내일은 신의 가호를" 이렇게 기도하고 잠드는 것은 '복기'라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 매매 복기란 이런 것이다.
한국 바둑계의 두 거목 조훈현과 이창호는 처절한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바둑 신동 이창호가 어린 나이에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가 그의 집에서 6년을 기거하면서 바둑을 배운 사제지간의 인연을 갖고 있다.
내제자를 둔 스승 조훈현은 이창호와 몇번의 지도대국을 두었을까? 단 세번의 대국을 했을 뿐이다. 6년 동안에.. 그렇게 쪼잔하게 가르쳐 줄거면 뭐하러 집에 데리고 있었냐고? 그건 나도 모르겠다. 다만, 바둑에 대해서라면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평생 세번의 지도대국을 해주는 것이 관례요, 제자는 그 세번의 지도가 일생의 영광이요 가르침으로 여긴다고 한다.
'바둑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바둑계에서 이룰 만큼 다 이룬 거성들이 수백 수천명의 어린 준재들 가운데서 장성할 싹이 보이는 단 한명이나 두명을 골라 5년이고 10년이고 데리고 있으면서 세번의 지도대국을 시켜주는 게 소위 '내제자'의 전통이다.
그 세번의 지도대국을 수백번 복기하며 스스로 분석해 스승이 지닌 모든 기량과 안목을 터득하여 결국 스승을 능가하는 '청출어람'에 이르는 것이 제자의 사명이란다.
아항, 그럼 대충 짐작이 간다. 이창호가 스승과 둔 세 판의 바둑을 얼마나 오랜 세월 곱씹고 뒤집어보고 미분해보고 적분해 보았을런지를...
빛바랜 사진 한장을 꺼내보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는 있으나 여섯 시간 동안 벌인 사투를 10여분 일별해 보는 것을 진정한 '복기'라 하긴 어렵다.
************************************************ 내가 아이큐가 200이라면 시장의 아이큐는 2000쯤 된다. 파생판은 살벌하기 이를데 없긴 하지만, 다행히도 바둑계처럼 쪼잔하진 않기에 준재는 커녕 범인도 못되는 나같은 사람과도 수십판의 지도대국을 기꺼이 벌여준다. 다만, 지도대국을 할 때마다 수업료를 좀 요구할 뿐이다.
나는 수업료가 아까워서 수업이 한판 끝나고 나면 차트를 인쇄해 대학노트 왼편에 붙이고 나의 진입과 청산시점을 사인펜으로 체크를 한 뒤, 오른쪽 페이지에는 진입했던 이유, 그때 기준으로 삼은 지표, 청산 목표와 손절가 등등을 깨알같이 적었다. 청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고 애초 마음먹은 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때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점에 흔들렸는지를 상기하며 기록해갔다. 어떤 마음이 나를 흔들어대는지, 참회한 불량배가 반성문 쓰듯이 속속들이 적었다.
또한 기록을 하면서 짚이는 것이 있고 실험해 보고 싶은 기법이 생각나면 행여 잊기라도 할까봐 다음 페이지에 시뻘건 사인펜으로 큼지막하게 적어놓는다. 예를 들어.... "20이평과 25이평, 어느쪽이 더 휩소가 적고 매매기준으로 삼기에 적절한지 실험할 것!"
이때부터는 틈나는 대로 이 아이디어를 과거 차트를 놓고 시뮬레이션 하는 게 일과가 된다. 시스템 트레이딩 툴을 활용할 줄 몰랐던 시기였으므로, 의문이 드는 것은 무식하게 몇달치를 직접 차트를 움직여가며 하나하나 손익을 기록해 점검했다. (역시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한다) 이윽고, "20이평이 신호가 빠르긴 하지만 failure가 종종 발생하여 오히려 25이평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 승률과 수익률 면에서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몇일이 걸리기도 하고 몇달이 걸리기도 한다. 물론,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매매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 다시없는 고수, 아니 고수 할애비가 가르쳐줘도 내 손과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결코 그 기법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똥고집이 있다.
풀로 붙이고 사인펜으로 적고 적어놓은 거 나중에 밑줄치며 또 확인하고 그러느라 노트들은 너덜너덜해지고 손때가 묻어갔다. 이런 식으로 기록한 대학노트가 십여권에 이르고 나자 비로소 이 둔재도 매정한 스승의 가르침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루 복기를 하면서 매매일지를 작성하는 데 평균 두세시간이 소요되고, 아이디어 검증과 실험에 또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되곤 했었다. 지금은 매매일지를 차트 캡처하여 웹상에서 해버리고 실험하고픈 것은 시스템 툴을 돌려서 검증하니 무척 시간도 빠르고 편하다. 참, 나처럼 머리 나쁜 사람 살기좋은 세상이다...
이 시장에는 성공하는 매매방식이 열개쯤 있다면 실패하는 매매방식이 백개쯤 존재한다. 나는 매매 복기를 통해 성공하는 방식은 채 몇개 익히지 못했으나 적어도 실패하는 백개의 방식 가운데 50개쯤은 피하는 길을 배웠다.
블로그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의 여러 미니홈을 방문해보면 수집 게시판에 온갖 훌륭한 글들을 복사해 놓고 있다. 나는, 이 시장 최고수의 글 100개를 가져다 놓고 주야로 읽느니보다 자신의 매매에 대한 진정 처절하고도 냉정한 복기(한탄과 하소연이 아니라)를 100번 하는 사람이 훨씬 발전이 빠르리라고 믿는 편이다.
************************************************************ 6년여를 스승의 집에 기거하면서 홀로 복기를 통해 바둑 실력을 쌓은 이창호가 89년인가 90년인가 시합에 나가서 스승 조훈현을 처음으로 꺾은 날이었다.
조훈현에게는 스승의 기쁨과 보람을 맛본 날이요, 평생 최대의 강적을 제손으로 키웠음을 깨달은 회한의 날이었으며 이창호는 한국 바둑계의 거성을 꺾은 날이자 그간의 피나는 수련에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바로 그날,
집으로 돌아온 스승과 제자는 서로 아무런 말 한마디도 없이 각자 제방으로 묵묵히 들어갔다. 집안 분위기가 하도 을씨년스러워 잠을 못이룬 조훈현의 부인이 살그머니 이창호의 방으로 건너가 무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그 야심한 시각, 세상에 이창호는 예의 그 돌부처같은 표정으로 바둑판을 앞에 놓고 묵묵히 그날 스승과 두어 이겼던 바둑을 한수한수 복기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예전에 블랙죠가 우스개소리로 제게 이런말을 하더군요. "희망새가 손실인날 다음날 따라하면 먹을 확율 아주 높다" 실패한 날은 밤에 복기를 열씸히하고 다음날 원칙을 잘 지킨다는 뜻일겁니다. 사실 저는 실패한 날 저녁에 반성하다보면 내가 만든 원칙을 심각히 어긴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래서 다음날 이런원칙을 좀더 잘 지킬것을 다짐하는 선에서 복기를 마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이시장에서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손실을 인정하고 다음날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 아닌가합니다. 화이팅입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