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과 비역, 그리고 천효天孝 사상

여성女聖- 비역秘域[부엌]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다     여성의 신성은 생명에서 비롯됩니다. 여성은 생명을 낳고 기르고 살림살이하는 일로 성스러운 것입니다. 그 살림살이의 신성한 터전이 부엌입니다. 부엌은 본래 비역秘域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지금도 북한말에서는 부엌을 비역이라고 부릅니다. 그 비역秘域은 곧 ‘신성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또 남도 지방에서는 부엌을 정지淨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정지淨地는 ‘깨끗한 땅’이 됩니다. 그러니 부엌은 ‘신성하고 깨끗한 터’가 됩니다.   부엌은 먹거리를 짓고 만드는 살림살이의 터입니다. 그곳을 ‘신성하고 깨끗한 터전’으로 이름 부른 옛 선조들의 혜안慧眼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부엌, 즉 비역은 가족 생명의 양식을 밥 지어 먹이는 곳이니, 성소聖所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부엌은 그 신성한 경건함으로 드나들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전통 가옥의 부엌에는 보통 세 개의 솥이 걸려 있습니다. 그 까닭의 의미에도 심오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부분 맨 왼쪽의 가장 큰 무쇠 솥을 ‘가마솥’이라고 부릅니다. 이의 ‘가마’는 ‘하늘감堪’의 글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그러니 머리 꼭대기의 ‘가마’는 곧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 ‘하늘 솥’에 밥을 짓고 밥뜸을 들입니다. 이때 그 훈증 연기가 하늘로 오릅니다. 그로 인해 비역에서 천제 의식을 거행한다는 뜻을 새겼습니다. 그래서 ‘가마솥’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한 가운데 있는 솥이 ‘오지 솥’이었습니다. 이는 국조이신 환웅님의 14대 천황으로 알려진 ‘자오지 치우 환웅’님께 훈증 흠향을 올리는 솥 이름이었습니다.   맨 오른 쪽의 세 번째 솥 이름은 ‘노고 솥’이었습니다. 노고는 노고老姑의 뜻으로서, ‘옛 어미’를 말합니다. 이는 다름 아닌 ‘삼신할미’를 의미했습니다. 흔히 ‘노고미쌀’ ‘노구메쌀’이라 하여,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 줌씩을 모았 습니다. 그 노고미쌀로 삼신할미께 천제를 올렸던 것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삼월 삼짇날이었습니다. 각지마다 있는 노고단老姑壇에 ‘노고미老姑米’를 올리고, 생명 번영의 천제를 올렸던 것입니다. 비역秘域, 곧 부엌은 이렇듯 성스러운 곳임을 가르쳐왔던 것입니다. 살아있는 가족에게 성스러운 생명을 기르는 살림살이의 성소聖所로 그 뜻을 새겼던 것입니다. 또 하늘과 조상에게는 신성과 감사의 천제天祭를 올리는 곳이 부엌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그 제례 의식이나 차례 음식이 모두 부엌에서 만들어지니, 그곳은 바로 ‘비역秘域의 ‘신성하고 깨끗한 터’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 부엌의 주인은 여성입니다. 그러니 여성은 가족 생명 살림살이의 주인이요,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제사장이라는 애기입니다. 그 제사장이 아내=안해이며,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신성하고 깨끗한 터와 같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즉, 그 몸을 깨끗하게 하고 가족 생명의 살림살이를 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신성하게 하고, 비역秘域에서 하늘에 훈증의 흠향을 올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뜻이 그러하니, 여성은 부엌을 드나들 때마다 그 옷깃을 여미어야 합니다. 바로 그 신성하고 깨끗한 여성의 사랑이 온 세상을 살림살이해야 합니다. 그리되면 온 누리는 생명의 빛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뿌리 정신 문화는 경천敬天이요, 애인愛人이었으니, 곧 천효天孝 사상을 생활 문화 깊숙히  그 뜻을 되새겨 가르쳤던 것입니다. <民調詩> 가마솥 제사장                                          도현 金鉉洙                               부엌키 비역秘域*인디, 아 너그 할매 하늘제사터여. 스르릉 설그렁 가마솥에 따순햇뜸은 가마한울님 훈증 흠향이고. 사르릉 살그랑 오지솥에 익은쌀뜸은 신불치우*님 흠향올린 거재. 차르릉 삼시랑 노고솥에 뜨신햇뜸은 아,마고삼신 노고단 천제여. 비역秘域*은 신시神市인디, 아 너그 어매 한울님터랑께. 그렁께, 조선의 여자들은 죄다 신비헌 다물多勿 가마솥 제사장이랑께.       *비역秘域: 신비로운 땅. 부엌의 본래 말이다.       *신불치우: 제14대 한웅 자오지 치우 천황. 불패 신화의                  화신이라 하여, '붉은 악마' 응원단의 깃발에                  도깨비상으로 되새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