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소년으로 읽을 때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민음사.
<노인과 바다>는 외로운 노인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이야기기로 단순한 구성이다. 무대는 바다이고 주연배우는 노인뿐이다. 청새치를 잡는 과정이 3일 정도 소요된다. 단순사건, 단일등장인물, 짧은 시간으로 소설은 구성이다. 바다 속에 많은 보물이 있듯이 <노인과 바다>는 단조로운 플롯 안에 바다처럼 많은 은유를 담고 있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이백 번 넘게 고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사실주의적인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다.(p.138) 흔히 헤밍웨이의 문체를 ‘하드보일드’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는데 이때 체득한 문체가 빛을 발하게 된다. 기사처럼 쓰려고 했으며 절제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단순명료함에 집중했다.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 시대 작가가 쓴 작품 중에서 아마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p.135)라고 평가했다. 반면, 주인공 산티아고가 망망대해에서 혼자 사흘에 걸쳐 몇백 킬로그램이 넘는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것은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p.136) 지적하는 비평가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노인과 바다>는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으며 지금까지도 고전의 반열에 우뚝 서 있는 작품이다.
늙은 어부에게 바다는 어떤 공간일까. 평생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살던 어부 산티아고는 늙었어도 바다는 언제나 청춘일텐데 말이다. 멕시코 만류에서 작은 조각배로 낚시를 하는 노인은 평생 바다에서 생을 보냈다. 그러나 운이 다했는지 ‘벌써 여든 날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p.9). 항구에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한 소년이 있다. 소년 은 노인의 갈고리, 작살, 돛 따위를 나르는 일을 도와준다. 소년과 노인은 같이 배를 탔으나 사십 일이 넘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님은 다른 배에 옮겨 타게 했다.
소년은 처음과 끝부분에만 등장하지만 노인은 배에서 늘 소년을 그리워한다. 노인은 커다란 청새치 한 마리를 발견하고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계속되는 독백으로 소년이 존재성이 계속 언급된다. 고기가 미끼를 물고 달리 손쓸 도리가 없었을 때 “옆에 그 애가 있으면 좋을 텐데.”(p.46)라며 노인은 중얼거린다. 청새치를 놓지 않으려다 손에 큰 상처가 났을때도 “만약 그 애가 옆에 있었더라면 감아 둔 낚시줄에 물을 축여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암, 그렇고 말고. 그 애가 옆에 있어 주었더라면. 만약 그 애가 옆에 있었더라면 말이야.(p.84)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운이 없어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할 때 언제나 노인을 위로해 주는 사람은 나이 어린 소년 마놀린이었습니다. 마놀린은 노인에게 음식과 옷을 비롯해 비누 같은 생필품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낚시 도구를 날라 주고 미끼를 잡아 준다.
-그 애가 곁에 있다면 날 위해 손도 문질러주고 팔뚝을 위해서 아래로 주물러서 쥐를 풀어줄 텐데,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곧 풀릴 거야(p.64).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큰 유자망 어선들조차 바다로 나가지 않을 상황이었으므로 소년은 늦게까지 잠을 자고는 매일 아침 하던 대로 노인의 오두막을 찾아온 것이다.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아주 조용히 오두막을 나와 커피를 가지러 갔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 내내 소년은 울었다(p.128).
소년과 노인은 서로 정신적 힘이 되어 주는 존재로 보인다. 소년은 다섯 살 때부터 노인의 배를 타면서 물고기 낚는 법을 배운다. 소년에게 노인은 신적인 존재였다. 그 반면 노인에게 소년은 어머니처럼 자신을 보살펴주는 존재로 비춰진다. 커피를 끓여주고 신문지를 덮어주고 아픈 손에 약을 발라준다. 소년은 노인의 조각배를 기다리며 그의 존재를 확인하자 눈물을 흘린다. 노인은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면서 옆에서 조력자 역할을 보여줬던 소년을 생각한다. 이 둘은 은혜를 베풀고 서로 힘이 되어주며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듯 우정과 사랑을 보여준다.
소설은 바다로 나가기 전- 바다 - 바다에서 돌아온 후의 시간을 보여준다. 노인과 소년은 서로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동지애를 느끼며 경외감을 보낸다. 이젠 운이 끝났다는 노인에게 자신의 운을 선뜻 내어주는 소년의 한마디가 들린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운은 제가 갖고 가면 되잖아요”(p.126). 이렇게 <노인과 바다>는 소년과 노인의 숭고한 사랑을 전한다. 바다처럼 무궁무진한 보물이 있는 작품이다.
<서평-6>